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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연, 임수연(‘씨네21’ 기자),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

‘달려라 방탄’

이지연: “우리 이제 뭘 해볼까요?” 방탄소년단은 돌아온 ‘달려라 방탄’에서 제작진에게 촬영 아이템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이에 멤버들은 동네 아저씨들과의 7대 7 족구 대결, 세팍타크로, 농사, 폴 댄스 등 왠지 모르게 시작도 전에 그들의 모습이 상상되는 ‘몸 쓰기’ 아이템들을 말했고, 정국이 말한 ‘플라잉 요가’가 첫 도전으로 낙점됐다. 이른바 ‘신체 능력 향상 특집’이라고도 불리는 방탄소년단의 몸 쓰기 아이템들은 무대 위에서 엄청난 능력을 보이는 그들의 모습과 많이 다른 모습으로 늘 재미를 불러일으켰고, ‘달려라 방탄’ 100회 특집에서는 족구를 통해 또 다른 의미로 화려한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플라잉 요가’ 또한 그들의 예상과 ‘달려라 방탄’을 지켜보는 아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누군가는 다급하게 선생님을 부르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팔랑거리는 보라색 해먹으로부터 고통받는 멤버들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 와중에 활동하며 단련된 코어 힘으로 어떻게든 동작들을 버텨내곤 하는 게 또 다른 포인트. 시작할 때와는 달리 부쩍 지쳐버린 선생님과 아직 에너지가 넘쳐나는 멤버들의 모습이 ‘달려라 방탄’다운 재미를 끌어낸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또 잘하면 잘하는 대로 최선을 다하고, 실패해도 계속 다시 도전하는 방탄소년단인 것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임수연(‘씨네21’ 기자): 다중 우주는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양자경의 멀티버스’라고도 불리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최근의 마블 히어로 무비보다 확률에 따라 증식하는 멀티버스의 세계를 더 근사하게 다룬다. 어렵게 세탁소를 운영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중국계 미국인 에블린(양자경) 앞에 남편 웨이먼드(조너선 케 콴)와 외모는 똑같지만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알파 웨이먼드’가 나타난다. 그에 따르면 선택과 확률에 따라 분리된 무한수의 우주가 존재하고 각 세계에는 또 다른 에블린이 존재한다. 그리고 절대악 조부 투파키에 대항해 멀티버스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이 세계의 에블린뿐이다. 에블린의 불운은 역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된다. 요리를 잘하는 에블린, 쿵푸를 잘하는 에블린, 배우가 된 에블린 등 다른 우주의 그와 연결돼 능력을 전달받게 되면서 에블린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영웅으로 부상한다. 또한 무한 우주 설정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부터 ‘라따뚜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 다양한 레퍼런스를 재치있게 끌어들이고, 40년 가까이 액션, 무협, 시대극,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종횡했던 양자경의 궤적을 총망라하며 마음껏 놀 수 있는 토대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다중우주론이 결국 빠지곤 했던 허무주의의 늪(영화에서는 베이글이 이를 상징한다.)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의 실존을 긍정하게 한다. 양자물리와 철학 이론을 근간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인지한 실존적 존재는 그것을 해낼 수 있는 길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멋지게 설득해낸다.

​‘자유주제’ - 배현이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당장 스쳐가는 감에 나를 맡기자 / 아무 말이나 뱉어봐 게으른 몸뚱아리야.” 그리고 배현이는 ‘자유주제’를 자유 연상하기 시작하고, 의식의 흐름처럼 비틀대는 비트에 몸을 맡기다 “브뤠킷다운” 하고 주문을 외우면 주위 풍경이 멎어버리는 듯싶더니, 잡음 많은 음질의 웅덩이로 풍덩풍덩 뛰어들다가, 아무렇지 않게 원래의 궤도로 돌아온다. 언제든 탈선할 수 있는 만큼 멀쩡히 복귀할 수 있는 그 세계에서 첫 번째 규칙은 이럴지도 모른다: “아무렇게나 틱 / 의식 던져두기.” 자유 의지라도 있다는 듯 풀어놓은 코러스와 추임새 또 중얼거리는 랩을 “나를 마중 나와”준 길동무 삼아, ‘자유주제’가 “생각이란 장애물을 버리자”는 일념 하에 늘어놓은 일련의 주제들은 꽤 임의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쁜 말만 아니면 돼 너 겁쟁이냐”며 자의식이 문득 돌아오는 리듬감으로 멈칫대는 그루브나, “나비 날듯이” 여유로운 도입부부터 진행된 한 줄기 소리가 나중에서야 “휘파람 불듯이” 흘러나온 것이라 넌지시 알려주는 복선 등은, 작년의 가장 개성 넘치는 팝 음반인 ‘위위’를 손수 지어낸 배현이의 “지저분하면서도 깨끗한” 설계 솜씨를 들려준다. 뛰어난 즉흥이란 결국 딴딴한 기예를 바탕으로 구현되니, “노동노래를 악보로 만든 건 아닐”지 모를 ‘알바비’에서도 노련하게 익힌 갖갖 재주들로 “나는 선비는 절대로 못 된다”는 걸 들려준 그가 요번에도 (조금 뻔뻔히 인용해오자면) “별 달아주실 업자 분들 좆까”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게 이 때문일 테다. “우리 집 동물 걸을 때 / 풀냄새 맡듯이” 자유롭게 제 갈 길 찾아 나선 아무 말들을 어지러이 정리정돈된 꼴로 모아오는 배현이의 “감”은 어떤 주제를 자유로이 골라 잡아타든 “저기 멀리보기”를 하며 기어이 목표점에 도달하고, 직업에 귀천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