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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리은, 임수연(‘씨네21’ 기자), 김겨울(작가), 강일권(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하루하루 문숙 유튜브

‘하루하루 문숙

김리은: 무엇이든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풍요가 오히려 결핍을 낳는 시대다. 배우 문숙의 유튜브 채널 ‘하루하루 문숙’은 현대사회에서 좀처럼 찾기 어려워진 여백의 가치를 일깨운다. 1954년생으로 올해 만 68세인 문숙은 삶의 굴곡과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 치유식 전문가이자 요가 지도자가 되었다. 이 채널에서 그는 채소와 최소한의 천연 조미료를 활용하는 자연식 레시피 또는 숲속에서 요가를 하는 일상 같은 삶의 방식을 공유한다. 일반적인 유튜브의 문법과 달리 편집을 최소화한 ‘하루하루 문숙’의 화면은 보는 이에게 그 순간을 함께 체험할 것을 요구하듯 느릿하게 펼쳐진다.

 

재료의 성질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는 문숙의 자연식 레시피를 따라가다 보면 우유를 넣지 않고도 단호박 크림 수프에 부드러운 맛을 더할 수 있고, 설탕 대신 소금으로도 재료 본연의 단맛을 살릴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연식, 베지테리언, 비건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설명하거나 요가 중 손가락에 앉은 벌레에게도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거는 문숙의 모습은 기후변화의 시대에 자연과의 공존을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지침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한 발자국씩, 하루하루” 육류 섭취를 줄여나가는 작은 실천이 오히려 장기적인 변화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음을 짚고, 어떤 음식이든 자신의 몸에서 오는 신호가 가장 중요하니 입맛에 맞지 않는 재료는 아주 최소한으로 시도하라고 제안한다. “무엇인가 이뤄져야만 행복해진다는 관념의 고리를 걸지 마세요.”라는 문숙의 말처럼, 시든 꽃의 아름다움이나 재료 본연의 맛처럼 근본적인 가치를 일깨우는 힘은 특정한 철학이 아닌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자연의 태도로 자연스럽게’, 충만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의 지혜다.

  • ©️ Korean Academy of Film Arts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임수연(‘씨네21’ 기자): 같은 속옷을 입는 여자들은 어떤 관계일까. 제목의 의미를 골똘히 고민하다 이정(임지호)과 수경(양말복)이 모녀 관계라는 것을 알아차리면 썩 괴이할 것도 없는 표현이다. 두 여자는 가장 사적인 물건을 당연하게 공유하지만, 수경은 이정의 중·고등학교 졸업식도 그냥 넘어갈 만큼 딸에게 관심이 없다. 무심과 진저리를 오가던 감정은 수경의 차가 이정에게 돌진하는 사고가 터지면서 시퍼런 칼날이 되고야 만다. 이른 출산으로 자신의 인생이 뒤틀렸다고 믿는 엄마와 평범한 애정을 갈구하지만 제대로 응답받지 못한 딸의 결핍은 사회가 규정한 정상적 모성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현미경으로 미시 세계를 세밀하게 관찰하면 거시 세계를 이해하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영화는 예민한 감각으로 모녀의 전쟁을 투시하며 관계, 특히 가족이란 특성이 만드는 딜레마를 탐구해간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5관왕을 시작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을 받는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화제가 됐던 독립 영화다.

‘라이더가 출발했습니다’ - 강혜인, 허환주

김겨울(작가):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이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될 듯하다. 배달의 민족. 한 업체의 마케팅 문구로 시작한 이 문답은 이제 코로나19 이후 우리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구가 됐다. 음식을 실은 오토바이가 길 위를 쉬지 않고 오가는 동안 식재료와 빨래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길 위를 함께 올랐다. ‘혁신’에는 물건만 있는 게 아니다. 대리 기사도 가사 도우미도 이제 플랫폼의 호출 한 번에 신청자가 요청한 장소로 ‘배달’된다. 그러는 동안 누가 돈을 벌었고, 누가 위험을 떠안았으며, 우리의 인식은 어떻게 변했는가? ‘라이더가 출발했습니다’는 우리가 몰랐거나 알았어도 외면했던 플랫폼 노동자들의 현실을 깊이 파고든다. 기자 두 사람이 직접 몸으로 배달을 뛰고 플랫폼 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플랫폼 노동이 자유를 보장해줘 편리하다면 그 반대급부는 위험 부담과 비용 부담이다. N잡러에게는 배달이 꿈을 꾸며 틈틈이 할 수 있는 노동이고 대리 기사에게는 단골 업장을 관리하는 불필요한 업무가 사라졌지만 안전 교육은 짧게 이뤄지고 사고 수습은 개인이 한다. 원청이 하청에, 플랫폼이 노동자에 위험 부담을 넘기는 익숙한 풍경. 우리나라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 지위를 두고 소송전이 벌어진 시점, 우리의 노동은 어디쯤 있는지, 미래의 노동은 어디로 갈지 깊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파리대왕 (feat. QM)’ - Jngkn

강일권(대중음악 평론가): 급소를 찌르는 가사를 통해 사회의 치부 혹은 병폐를 들추어내는 작업은 사람들이 랩/힙합에 매료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대상이 되는 사회는 국가일 수도, 아티스트가 속한 씬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음악의 질적인 부분이 동반된다면 그 어떤 장르에서도 듣기 어려운 쾌감을 전한다. 큐엠(QM)은 한국 힙합 씬에서 이 같은 랩을 뱉어온 몇 되지 않는 래퍼다. 신인 힙합 프로듀서 Jngkn(정근)의 EP ‘Black Comedy’에 수록된 ‘파리대왕’에서도 예의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인다. 한국 힙합 씬을 포함한 사회의 어둡고 모순된 단면을 꿰뚫고, 그 안에서 뒤엉킨 여러 감정을 빈틈없는 랩에 담아냈다. 비트를 꾹꾹 눌러가며 유려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플로우와 명확한 딜리버리도 여전하다. 당연히 Jngkn의 탁월한 비트도 상찬의 근거다. 소리의 조합과 잔향에 집중한 듯한 구성, 몇 번의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는 루프 그리고 불쾌함을 느끼지 않을 만큼 가미된 노이즈까지 잘 만들어진 앱스트랙 힙합(Abstract Hip Hop)이다. 곡이 끝나면, 지독히 염세적인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주는 가사가 귀에 맴돈다. “그렇게 파리가 돼가는 거야, 그중 왕이 되려면은 똥 묻혀라, 밑바닥 색과 제일 비슷해져야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