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글. 오민지,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임수연(‘씨네21’ 기자)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할명수

‘할명수’

오민지: ‘무도 키즈 세븐틴 버논과 (아)무(것)도(모르고) 나온 그냥 키즈 디에잇’. ‘할명수’의 ‘105화 팬미팅할 명수’ 편은 제목만으로 20분가량의 내용이 설명된다. ‘70년생 룩북(LOOKBOOK)’ 편의 박명수 의상을 입고, ‘무한도전’에서의 박명수 명대사를 달달 외우며 벅차오르는 마음을 숨기지도 못한 채 수백 장의 사진을 남기고 있는 ‘찐팬’ 버논과 그 옆에서 감흥 없는 눈으로 앉아 있지만 버논이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박명수에게 페이스체인을 ‘얹’고, 꽃잎을 휘날리는 ‘머글’ 디에잇이 한 프레임에 들어올 때마다 덕질을 해본 사람 혹은 덕질하는 친구가 있는 사람이라면 동질감이 느껴질 것이다. 이때 이들의 솔직함은 이번 화의 가장 큰 무기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반짝거리는 눈을 숨기지 않고 마음껏 ‘덕심’을 표출하는 버논과 “혹시나 오늘 와서 또 체크를 할까 봐” 어제 ‘할명수’ 채널을 구독했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디에잇을 보다 보면 이런 생각마저 든다. 솔직함이 ‘무기’ 혹은 ‘무례’가 되는 시대에, 누군가를(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깎아내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날을 세우지 않는 솔직함이야말로 진정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찰나’ - 조용필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시의적절한 동명 트랙에서 최백호는 10년 전부터 ‘다시 길 위에서’ 들려줘온 말년의 양식을 무엇보다도 목소리에 담아낸다. 웅장한 현악 편성 위로 “이미 지나버린 찰나여 나의 영원한 찰나여”를 떨리듯 읊조리는 건 나이 듦을 거쳐 시간의 진행을 받아들였다는 뜻이기도 할 테다. 고작 며칠 뒤에 나온 또 다른 ‘찰나’는, 피할 수 없는 그 흐름에서부터 정반대로 완전히 닻을 올려버린 양 시간을 꾸며낸다. 그러니까 조용필과 최백호가 1950년생 동갑이라고 이야기했었나? 가요사의 절대적인 상수 값으로 자리매김하며 1980년대를 관통하는 동안, 조용필에게는 어쩌면 시간과 무관해질 수 있는 힘이 생겨난 걸지도 모르겠다. 당대의 양식들을 모조리 ‘가요’로 종합하며 생성된 전자적이고 디지털한 팝 록 사운드가, 알맞게 낡아가며 스튜디오 음반과 대형 공연장 양편에 효과적으로 적용되는 영구기관이 되었으니까. 13년 동안 14장의 정규 음반을 발매한 전무후무한 행진의 종점이었던 1992년도의 ‘CHO YONG PIL’만 하더라도 이 사운드는 ‘고독한 Runner’로서 시간을 받아들인 중년의 양식으로 귀결됐지만, ‘찰나’는 이때가 없었다는 듯이 간격을 뛰어넘어 “이 순간을 영원히 아름다운 마음으로 미래를 만드는” 1984~85년도 즈음의 조용필에 곧장 접속한다. “나는 분명하게 기억”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이 반짝이고 결정적인 찰나가 불멸할 것처럼 지속되고, 분리된 시공에 스스로를 기록한 조용필은 광활한 시간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반짝이는 너 흐트러진 나 환상적인 흐름이야.” 그렇지만 이 영원성에 대한 환상은, 거의 10년 전 능청맞고 능숙하게 전했던 ‘Hello’라는 인사말에서도 들을 수 있지 않았었나? 시간이 그 이음매에서 언제부터 어긋났던 거지? “머릿속이 윙윙.” 어지럼 뱅뱅. “지금 나는 어지러워, 너무 어지러워.”

‘올빼미’

임수연(‘씨네21’ 기자): 섬세한 침술과 정확한 진단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궁에 입성한 맹인 침술사 경수(류준열)는 사실 주맹증 환자이기 때문에 밤이 되면 앞을 볼 수 있다. 본 것도 보지 않은 것처럼 침묵하며 살아야 하는 궁에서 유일하게 맹인만이 소현세자(김성철)의 독살을 목격했다는 아이러니를 주축으로 긴장감을 쌓아간다. 주맹증 설정과 진실의 은폐를 시각적으로 연결한 비주얼은 영화를 하나로 묶는 단단한 토대가 되고, 인조(유해진)의 위태로운 위치는 결국 뒤틀린 콤플렉스로 이어지는 정치적 상황이 설득력 있게 묘사돼 솜씨 좋은 장르물을 완성했다.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반전은 영화가 재료로 삼은 가설을 짐작할 관객까지도 ‘역사가 스포’인 스릴러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소현세자가 청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약물에 중독된 것 같은 모습으로 죽었다는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