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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해인, 임수연(‘씨네21’ 기자),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김겨울(작가)
디자인. 전유림

‘웬즈데이’ (넷플릭스) 

윤해인: ‘웬즈데이’는 신문 카툰에서 시작해 드라마와 영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아담스 패밀리’를 원작으로, 아담스 일가의 장녀 웬즈데이 아담스를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드라마다. “Wednesday’s child is full of woe(수요일의 아이는 우울로 가득하다.).” ‘웬즈데이’의 주인공 웬즈데이 아담스는 마더 구스의 노래에서 따온 그 이름 자체를 형상화한 인물이다. 고스족을 연상시키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흑백이고, 매 순간 무표정에 감정은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며, 어둠과 죽음을 친근하게 여기는 10대 소녀. 게다가 사물을 만졌을 때 과거나 미래가 보이는 그러나 제어할 수 없는 초능력도 지녔다. 드라마는 그런 웬즈데이가 남동생 퍽슬리를 괴롭히는 남학생 무리에게 살인미수에 해당하는 수위의 복수를 하다 퇴학을 당하고, 자신을 받아줄 유일한 학교이자 그 자신처럼 다양한 초능력을 구사하는, 이른바 ‘별종’들이 모인 ‘네버모어 아카데미’로 전학을 가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려낸다. 마치 고전 추리소설의 구조처럼 소설을 집필 중인 웬즈데이가 연쇄살인 사건의 중심에 서고, 용의 선상에 오른 주변 인물들 중 진짜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은 드라마를 끌고 가는 주요한 줄기다. 동시에 ‘별종’이라 불리는 네버모어의 캐릭터들의 능력은 판타지이지만, 부모와의 갈등을 겪고 그 속에서 주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연애 관계나 우정에 대해 느끼는 고민들은 그 무엇보다 현실적인 10대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전 섬인 게 좋아요. 상어로 둘러싸인 난공불락의 섬.”이라 스스로를 말하는 웬즈데이가 회차를 거듭하며 조금씩 타인과 교류하게 되는 과정은 예측 가능하지만, 그 성장사가 주는 긍정적인 쾌감을 분명하게 선사한다. 하이틴 드라마 특유의 에너지, 뱀파이어와 늑대 인간, 세이렌과 고르곤 같은 신화와 고전 판타지를 한데 모아놓은 ‘세계관 충돌’의 재미, 그걸 특유의 통통튀는 우중충함으로 시각화한 팀 버튼 감독의 연출 그리고 스토리라인의 중심에 놓인 추리극까지 그 모든 것이 한 작품에 모였다. 

‘본즈 앤 올’

임수연(‘씨네21’ 기자): 태생적으로 개인적 생존이 사회적 금기와 연결되는 종족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 이를테면 식인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소녀 마렌(테일러 러셀) 같은 존재들이 직면할 딜레마다. 돌연한 본성이 오랜만에 드러나자 보호자였던 아빠는 결국 곁을 떠나고, 홀로 남겨진 마렌은 어릴 적 자신을 버렸던 엄마를 찾아 나선다. 그 여정에서 마렌은 자신과 닮은 소년 리(티모시 샬라메)를 만난다. ‘본즈 앤 올’은 기본 설정이 야기하는 윤리적 질문을 피하지 않으면서 보편의 외로움을 응시하는 로드 무비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애정을 갈구하지만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기에 영원히 고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마침내 마렌과 리가 택한 완성한 합일의 방식은 사랑과 공포, 애욕과 폭력이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는 부분을 독창적인 필치로 구현해낸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과 티모시 샬라메의 재회로 화제가 됐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극 전체를 이끄는 테일러 러셀과 또 다른 식인종 노인 설리를 연기한 마크 라이런스가 못지않은 잔상을 남긴다. 

‘신세계 (feat. 이랑)’ 황푸하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한국에서 만들어진, 발붙인 땅에 대한 음악을 마주할 때가 있다. 지금 그 땅에 같이 발 딛고 서지 않은 사람으로서 무슨 말을 한다는 게 낯부끄럽지만, 그럼에도 이 곡 ‘신세계’는 가급적 많은 이와 나누고 싶다. 황푸하는 포크 음악가이자, 목사이자, 도시 개발로 강제 퇴거를 겪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활동가다. 이랑은 이제 한국 포크를 듣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이름이다. ‘신세계’ 속 아름답게 대구를 이루는 가사에서는 그간의 이랑이 그리고 이랑의 목소리를 통해 황푸하의 시선이 배어난다. “성실하지 않으면서 죽어버리자 노래하는 나를 보고 오만하다고 (‘환란의 세대’, 이랑)”, “나는 세상이 정해준 이단 (‘늑대가 나타났다’, 이랑)” 등 말이다. 작금의 한국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란 물질적 축복이나 사후 천국만을 추구하는 종교란 이미지가 있지만, 본래 기독교엔 ‘신의 나라가 땅에 임한다.’는 개념이 있다. 예수를 따르기로 한 사람들이 이곳에서부터 천국 시민처럼 (남을 돕고 정의를 세우며) 살면 이 땅이 곧 ‘하나님 나라’, 천국이 된다는 생각이다. 가난과 약함과 아픔과 생명을 주제로 노래를 짓는 사람들이 있다. 발붙인 땅에서 신념에 따라 사는 사람에 대해, 그런 음악에 대해 생각한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 김영민

김겨울(작가): 연말이 다가오며 왜인지 마음이 들뜨게 되는 요즈음. 흥성흥성한 기운 속에서도 슬며시 고개를 드는 허무함과 쓸쓸함이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구나. 이것이 삶이던가? 김영민 교수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나이 드는 일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당신 나이가 되면 모든 게 선명해질까요?” “아니요.” “그럼 더 혼돈스러워지나요?” “그냥 빨리 흘러가요. 비 많이 왔을 때 흙탕물처럼.” 해가 지날수록 선명함도 혼란스러움도 뒤섞인 채 흙탕물처럼 정신없이 흘러가버리는 삶을 차분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김영민 교수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영화와 책을 오가며 삶을 받아들일 것을, 냉소하지 말 것을, 인간됨을 팔아넘기지는 말 것을, 그저 인간의 죽음과 허무를 인정할 것을 요청한다. 자신을 속이지도 물건으로 전락시키지도 않는 저자의 태도는 한결같이 읽는 이에게 위로를 준다. 피상적인 위로가 아닌, 허무를 인정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초연한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