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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수연(‘씨네21’ 기자), 윤희성,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Paramount Pictures

‘바빌론’

임수연(‘씨네21’ 기자): 영화 ‘라라랜드’에서 고전기 할리우드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줬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아예 1920년대 LA를 무대로 한 시대극을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할리우드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일은 그리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아직 사운드 녹음을 병행하지 않던 1926년, 영화 일을 꿈꾸는 멕시코인 매니(디에고 칼바)는 마약과 변태적인 성교가 난무하는 파티에서라도 인맥을 쌓아보려고 발을 들였다가 스타성을 타고난 배우 지망생 넬리(마고 로비)를 만난다. 운 좋게 작은 배역을 따낸 넬리는 넘치는 재능으로 영화의 신 스틸러가 돼 스타로 부상하지만,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 개봉을 기점으로 제작 시스템이 격변하면서 그의 호시절도 끝난다. ‘바빌론’은 할리우드 산업의 야만성을 일차원적인 은유와 과잉된 연출로 제시하다가도 시네마틱한 순간에 숨을 고르고 기꺼이 매혹된다. 특히 무성영화의 찬란함을 기리며 유성영화의 등장을 배변물에 비유하기까지 하는 데이미언 셔젤의 시각이 흥미롭다. 하지만 사운드가 들어오고 테크니컬러가 도입되면서 컴퓨터그래픽이 모든 것을 그려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해도 영화는 태생적으로 대중과 함께이기에 숭고할 수 있다. 천박하기에 역겹지만 천박하기에 대중 예술일 수 있는 영화를 결국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열렬히 고백하는 작품.

‘애봇 초등학교’ (디즈니 플러스)

윤희성: 필라델피아의 공립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ABC ‘애봇 초등학교’는 지난 한 해 미국에서 가장 많은 칭찬을 받은 코미디 시리즈 중 하나다. 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이 작품은 수많은 시상식을 거쳐 골든 글로브와 프라임타임 에미 시상식의 주요 부문을 수상했다. 하지만 작품의 탁월함을 설명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애봇 초등학교’는 아주 기발하거나, 획기적으로 아름답거나, 짧은 바이럴 영상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펀치라인으로 가득한 세련된 시리즈가 아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기법은 ‘오피스’에서 비롯된 시트콤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작고 권태로운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들에 대한 시선 역시 낯익은 계보를 떠올리게 한다. 넷플릭스와 틱톡을 이야기하지만 첫 번째 시즌 피날레에 인용되는 레퍼런스는 무려 1980년대 학원물인 ‘패리스의 해방’과 ‘조찬 클럽’이다. 

 

첫 시즌 11번째 에피소드에서 ‘선생님 스타일’로 사건을 해결한 재닌(퀸타 브런슨)과 제이콥(크리스 퍼페티)은 ‘굿 올드 패션드’한 방식으로 해냈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 시리즈의 지향이자 미덕이다. 늘 예산이 부족한 학교, 능력과 불화하는 열정을 가진 선생님들, 사랑스럽지만 만만치 않은 아이들까지, 드라마가 포착하는 장면들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만들어낸 이야기’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모습들이다. 하지만 TV 밖에는 여전히 그대로인 세상이 있고, 누군가 이것을 계속 기억하고 살펴봐야 한다면 ‘애봇 초등학교’는 그 역할을 씩씩하게 해내려는 작품인 것이다. 각본과 제작에 참여한 주연 배우 퀸타 브런슨은 실제 필라델피아 출신으로 그녀의 어머니는 40년 경력의 교사라고 한다. 그리고 “진짜 이야기를 하겠다.”고 선언하듯, 퀸타 브런슨은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이름인 ‘애봇’을 시리즈의 제목에 새겨 넣었다. 어떤 사람의 인생이 드라마가 되는가. 평범한 이웃의 삶이 ‘쇼’가 되기 위해서 온 세상이 마약과 폭력, 불법과 부정을 더해볼 때 ‘애봇 초등학교’는 그저 사랑과 진심을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이 소박한 방식으로 작품이 획득하는 트로피들은 ‘평범함’에 대한 응원이자 위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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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 BUTTER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소울 또는 R&B가 듣고 싶은데 까다로워질 때가 있다. 너무 요란하거나 시끄럽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적당한 그루브를 원한다. 그런데 잠자리에서 들을 정도로 편안하면 좋겠다. 동시에 익숙한 고전 소울은 아니고 신선한 음악으로 환기를 시켜주면 좋겠다. 한마디로,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은 기분. 스포티파이의 플레이리스트, BUTTER가 훌륭한 답이 된다. 실크 소닉이나 비욘세 같은 익숙한 이름도 있다. 하지만 이 플레이리스트의 강점은 넓은 장르 안에서 특정한 성향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탁월함이 있다. 샬롯 데이 윌슨의 ‘I Can Only Whisper (feat. BADBADNOTGOOD)’는 한동안 BUTTER의 취향을 대변한 트랙이다. 동시에 아디 오아시스의 ‘Adonis’와 같이 복고적인 접근이 있는가 하면, 리틀 심즈의 ‘Gorilla’처럼 랩/힙합으로의 확장도 있다. 혹은 마세고처럼 재즈, R&B, 힙합을 자신 안에서 결합하는 아티스트에게 이보다 편안한 플레이리스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