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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예진, 강일권(대중음악 평론가), 김겨울(작가), 임수연(‘씨네21’ 기자)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인더숲(IN THE SOOP) 제공

‘인더숲 세븐틴편 시즌2’

이예진: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정취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숲속의 작은 마을, 온전한 휴식을 위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쉼터. 누군가의 개입이나 어떠한 책임과 의무 없이 무엇을 해도, 무엇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 2022년 정규 앨범과 리패키지 앨범 활동 이후 월드 투어 일정을 소화하며 숨가쁘게 달려온 세븐틴이 일본 돔 투어를 앞둔 상황에서 ‘인더숲’을 다시 한번 찾았다. 

 

세븐틴은 취미 생활을 위해 구비된 맞춤형 공간과 용품, 갖가지 종류의 식재료, 도구 등 없는 것이 없는 환경을 200% 활용해 운동, 낮잠, 낚시, 요리, 독서, 드라이브, 카약, 등산, ‘불멍’ 등 ‘휴식’이라고 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하면서 저마다의 쉼을 누리는 방식을 보여준다. 디에잇은 도겸과 티타임을 가지면서 더 이상 자극적인 행복을 추구하지 않게 된 가치관의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그래도 현실에선 자극을 추구해야 된다며 다급하게 다도 세트를 정리하고 신나게 ATV 드라이브를 즐긴다. 멤버들과 단체로 식사할 때 우스갯소리와 실없는 장난을 치며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던 승관은 조슈아와 단둘이서 그간 드러내지 못했던 속마음을 얘기하며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한 명이 요리를 시작한 주방해서 하나둘씩 모이더니 어느 순간 동시에 다섯 가지 요리가 진행되어 결국 단체 식사를 하고, 누군가가 연을 날리기 시작하면 어느새 주변에 여러 멤버들이 모여 함께 즐기고 있다. ‘인더숲’은 13명의 멤버로 구성된 세븐틴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8,177개의 조합의 일부를 계속해서 다채롭게 보여주며, 가장 편안한 공간에서 새롭게 채워지는 세븐틴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가지 주의할 점. 쫄면, 양푼비빔밥, 코코넛닭, 은박지 삼겹살구이와 두부요리, 닭갈비볶음밥, 김치만두전골, 해장 라면, 중국식 자장면, 등갈비, 제육볶음, 콘치즈불닭, 닭강정 등 온갖 음식이 등장하기 때문에 야심한 시각은 피해서 ‘인더숲’을 시청하길 권한다. 잘생기고 유쾌한 사람들이 함께 힐링의 시간을 보내는데 그사이 맛있는 음식까지 끊임없이 나온다? ‘밥 친구’로 더할 나위 없다. 

‘서울에서 살아남기’ - Luci Gang 

강일권(대중음악 평론가): 여성 래퍼의 수는 늘었지만, 저변은 여전히 넓지 않은 한국 힙합 씬에서 루시 갱(Luci Gang)의 행보는 눈에 띈다. 데뷔 이래 2년여 동안 앨범 단위의 결과물을 석 장이나 발표했다. 무엇보다 랩 실력이 나날이 발전 중이며, 주제 선정도 남다르다. 단선적인 섹스어필이나 자기과시처럼 어느새 한국 힙합에서도 클리셰가 된 따분한 가사와는 거리가 멀다. 이상 루시 갱의 차별화된 강점을 체감할 수 있는 곡이 바로 싱글 ‘서울에서 살아남기’다. 서울은 누군가에게 행복한 삶의 터전이지만, 누군가에겐 살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격전지다. 루시 갱은 후자의 이미지를 투영한 서울에서 비주류 혹은 사회 초년생으로서 절망하기 전에 살아남는 법을 설파한다. 총 10장으로 이루어진 그의 병법은 명료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제 10장 영리함이 곧 무기인 법 / 사치가 된 친절은 됐고 약게 움직여”. 미국 래퍼들이 종종 주제로 삼는 ‘후드(Hood)에서 살아남는 방법’의 재치 있는 변주다. 미니멀한 구성의 프로덕션은 중독적이며, 비트 위에서 탄력적으로 나아가는 래핑도 타이트하다. 한국 힙합 씬은 그에게 더욱 이목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몸의 시간은 젊게)’ - 정희원

김겨울(작가): 트위터에서 ‘가속노화’에 대한 이야기로 순식간에 이슈몰이에 성공한 노년내과 의사 정희원의 책. 대개 다이어트를 새해 목표로 삼는 사람들도 이맘때 즈음이면 기세를 누그러뜨리기 일쑤인데, 이 책을 읽다 보면 다이어트가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생활 습관 자체가 삶과 사회 전체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근육의 허용치를 초과하는 혈당 섭취와 기술 발달로 인한 질 낮은 쾌락 중독이 비만과 성인병뿐만 아니라 인지 기능 저하와 빠른 노화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사회적 비용 증대로 이어진다는 저자의 주장은 자기계발적으로도, 사회학적으로도 읽힌다. 식단과 운동에서부터 쾌락 관리, 욕망 관리, 올바른 자세 찾기 등 삶을 총체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과 그 방법을 제시하는 책으로, 모든 것이 과잉된 현대 사회에서 내 몸과 정신을 어떻게 지켜가야 할지에 대한 하나의 가이드가 될 만하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임수연(‘씨네21’ 기자): 스마트폰 하나면 그 사람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평소 어디에 가는지, 남몰래 찾아보는 콘텐츠가 어떤 것인지, 심지어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군지까지.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준영(임시완)은 누군가 분실한 스마트폰에 담긴 정보를 해킹해 살인 사건을 꾸미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다. 그의 이번 타깃은 술에 취해 실수로 버스에 스마트폰을 흘리고 내린 나미(천우희)다. 분실물을 보관하는 평범한 시민으로 가장한 준영은 나미의 직장, 가족, 응원하는 프로야구팀, 좋아하는 뮤지션 등 상세한 정보를 취득해 그에게 치밀하게 접근한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를 끌고 가는 동력은 개인 정보 유출을 두려워하는 현대인의 보편적 공포에 있다. 여기에 스마트 기기 스크린을 활용한 다양한 연출이 몰입도를 배가해 장르적 재미가 돋보이는 매끈한 상업영화가 나왔다. ‘비상선언’에 이어 또 한 번 악역을 연기한 임시완은 디테일한 캐릭터 분석으로 전작과 캐릭터가 겹치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가뿐히 떨치고, 범죄에 휘말린 평범한 여성을 연기한 천우희는 일상성에서 광기 어린 얼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화하며 극을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