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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연, 임수연(‘씨네21’ 기자),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티빙

‘서진이네’
이지연: ‘윤식당’ 시리즈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인 ‘서진이네’가 시작되었다. 전작 ‘윤식당’의 이사였던 이서진은 사장이 되어 K-스트리트 푸드인 분식을 알리기 위해 멕시코 바칼라르에서 분식집 ‘서진이네’를 열었다. 기존의 ‘윤식당’이나 ‘윤스테이’가 평화로운 힐링 예능 프로그램이었다면 ‘서진이네’는 오히려 우당탕탕한 느낌의 시트콤처럼 느껴진다.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꿀 정도로 ‘사장’ 이서진과 새로운 ‘인턴’ 뷔의 등장은 큰 변화를 이끌어낸다. 박서준의 “내가 알던 형이 사장님이 됐어요. 형이 아니에요, 이제.”라는 말처럼 그간 동고동락해온 친절하던 형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수익이 왕이다.”라고 외치는 사장님만 남아 있을 뿐이다. 더불어 그런 사장에게 쉽사리 굴복하지 않는 어딘가 모르게 엉뚱하고 해맑은 신입 인턴 뷔의 조합은 이색적인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낸다. 주스가 몇 개 팔렸냐는 질문에 2개를 팔았고, 너무 목말라서 4개를 마셨다고 밝게 얘기하는 인턴 뷔와 그 말을 듣고 두 눈을 질끈 감는 사장 이서진의 모습처럼 말이다. 사장과 인턴뿐 아니라 이사 정유미, 부장 박서준, 인턴 동기 최우식까지 출연진 간의 다채로운 케미스트리는 1화 곳곳에 웃음 포인트로 녹아 있다. 영상 속 담긴 멕시코의 이국적인 풍경과 손님들이 “내일 여기 또 와야겠어.”라고 말할 정도로 입맛을 당기는 K-스트리트 푸드의 화려한 비주얼은 덤이다.

‘더 웨일’
임수연(‘씨네21’ 기자): 몸무게 272kg, 혈압 238/134, 울혈성 심부전 환자 찰리(브렌든 프레이저)는 타인의 도움 없이는 거동도 어려운 상태다. 유일한 친구이자 간호사인 리즈(홍 차우)는 그가 병원에 가지 않으면 일주일 안에 죽을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찰리는 치료를 거부하고 자신이 버렸던 딸 엘리(세이디 싱크)를 9년 만에 만나 소설 ‘모비 딕’에 대한 에세이를 함께 완성하고 싶다고 전한다. ‘더 웨일’은 ‘레퀴엠’, ‘더 레슬러’, ‘블랙 스완’ 등에서 극한에 다다른 자기 파괴 끝에 (반)종교적 구원의 가능성을 질문해왔던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신작이다. 찰리가 동성 애인의 죽음 후 자살에 가까운 폭식으로 생체 기능을 망치는 묘사는 비만 혐오의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전작 이상으로 불편하고 논쟁적인 지점이 있다. 하지만 ‘더 웨일’에서 인간 구원은 진실한 에세이 쓰기, 즉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할 때 비로소 가능하고, 찰리의 신체 이미지는 절제되기 보다 가능한 한 관객을 괴롭게 만들어야 한다. ‘미이라’ 시리즈 이후 긴 침체기에 빠졌던 브렌든 프레이저는 이 작품으로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떠올랐다.

‘설이’ - 조월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설이’에서는 모든 소리들이 희뿌옇게 덩이져 있다. 한국 언더·인디 음악 씬에서 21세기 내내 가장 내밀한 마음의 풍경들을 가장 치밀한 화풍의 사운드로 그려온 조월의 솜씨가 요 몇 년 동안의 곡들처럼 능숙히 발휘된 덕이다. 그중에서도 ‘설이’가 가장 많이 닮아 있는 건 작년 노래인 ‘후문’으로, 지속적으로 작업해온 솔로 작업물의 소리 조각들이 기억의 파편들처럼 점점이 흩날리는 정경은 ‘설이’에서 여러 소리들이 겹쳐져 만든 눈안개와도 무척 닮았다. 기타 한 대만으로도 장관을 펼치는 이태훈과 한상철이 각각 연주·샘플로 ‘때아니게 내리는 눈’처럼 동참하지만, 그 흔적을 명확히 가늠하기 힘들 만큼 자욱하게 뒤섞인 소리 덩어리는 낯설게 들려올 테다. 그렇지만 ‘아주 많이 내리는 눈’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다른 모양의 수많은 눈송이들을 각각 알아볼 수 있듯, 이 설경에서도 낯익은 형태들을 알아들을 수 있다. 하단 배경에서 울렁이는 (한상철의 솔로 음반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되는) 노이즈를 걷어내면, 흩날리는 드럼 소리들이 스쳐 지나갈 때의 까끌거리는 질감과 전기기타가 지글거리며 쏟아내는 몇 줄기의 두꺼운 눈발, 그 소리들의 끄트머리에 남겨진 자그마한 울림이 느껴진다. 나지막이 읊조리는 목소리와 미세하게 화성을 덧댄 코러스가 두텁게 쌓이며 눈밭을 만들어 나가고, 폭설이 느리게 호흡하며 들이치는 와중 현악기와 건반 소리가 목소리들이 없는 여백을 채우며, 설원의 저 먼 곳 어딘가에서 고함이나 외마디 물방울 소리가 대뜸 튀어나온다. 모든 소리가 서로에게 짙게 휩쓸리고 뒤덮인 ‘설이’는 그럼에도 서릿발처럼 차갑기보다 따스한 온기를 띠고 있는데, 이는 가요적으로 섬세한 멜로디와 구성을 가요에겐 익숙지 않은 음색으로 감싸 서정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조월의 작법 덕일 테다. 우연한 만남을 통해 작업에 참여한 리카르도 마틴스(Ricardo Martins)의 베이스 연주가, 무엇보다도 뭉글거리는 톤과 뭉클한 리프를 띠고 소리와 감정의 눈보라 속에서도 확연히 들려오는 것이 아마 우연이 아닐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