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글. 김리은, 임수연(‘씨네21’ 기자), 김겨울(작가),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안테나 플러스

‘빰빰소셜클럽’ (뜬뜬)

김리은: 친분이 없던 출연진 6명이 모여 밤 10시부터 12시까지 술 게임을 하며 친분을 쌓는다. 유재석의 웹 예능 프로그램 ‘핑계고’로도 알려진 안테나 플러스의 유튜브 채널 ‘뜬뜬’의 ‘빰빰소셜클럽’은 팬데믹 이전 대학교에 있었던 신입생들의 MT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뜬뜬’에서 제작하는 ‘핑계고’와 마찬가지로 회차당 30분~1시간을 넘는, 유튜브로서는 파격적인 러닝타임 내내 주우재, 이용주, 박세미, 아이키, 몬스타엑스 주헌, 더보이즈 선우가 말 그대로 술 게임을 하며 벌주를 마시는 것이 콘텐츠의 전부다. 그러나 ‘빰빰소셜클럽’의 제작진들은 출연자들이 자신이 마실 잔의 크기와 주종을 선택하는 룰을 통해 과거의 술 게임이 갖고 있었던 폭력적인 요소를 지워내고, 이미 대중적으로 알려진 ‘바니바니 게임’의 구호를 단지 ‘히이잉’이라는 말의 구호로 바꾼 것에 가까운 ‘조랑말 게임’이나 출연진들이 잇몸을 노출하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상태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망고뮤직 게임’은 익숙한 룰에도 불구하고 뜻밖의 웃음을 연출한다. 그사이 어느새 벌칙으로 모든 출연진에게 영상통화를 걸게 된 이용주가 동갑내기 주우재와의 어색한 통화를 그대로 재연하거나, 소위 ‘술찌(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는 사람)’인 주우재와 더보이즈 선우가 서로를 도발하는 것처럼 예능적인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어느새 전 회차에서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한 이용주가 모든 출연진을 위해 백화점에서 정성스럽게 선물을 골라오고, 아이키가 미국 일정으로 부재하는 동안 출연진들이 그를 주제로 한 게임에 열중할 만큼 친밀해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일면식 없던 이들이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서이기도 하다. 요컨대 ‘빰빰소셜클럽’은 술을 마시며 게임을 하는 것처럼 단순한 시공간의 공유만으로도 친밀해질 수 있었던, 팬데믹 이전의 청춘에 대한 2023년의 재현이다. 바꿔 말하면, 새로운 ‘랜선 술친구’ 콘텐츠의 등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파벨만스’

임수연(‘씨네21’ 기자): 스티븐 스필버그의 35번째 장편영화이자, 그가 처음으로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 스필버그를 대변하는 캐릭터 새미가 극장에서 부모와 ‘지상 최대의 쇼’를 본 이후 영화 이미지에 사로잡혔던 순간부터 할리우드 경력을 시작하기까지 10대 시절을 다룬다. 부모의 이혼은 ‘E.T.’, ‘캐치 미 이프 유 캔’ 등에서 외로운 아이들이 반복해 등장한 배경을, 캘리포니아 고등학교에서 겪은 유대인 차별은 그에게 ‘쉰들러 리스트’가 중요했던 이유를 떠올리며 스필버그의 필모그래피 전체를 되짚어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파벨만스’는 이미지의 통제로 인간의 감정을 통제하고, 때때로 감독의 의도를 벗어나 원치 않았던 (사실이 아닌) 진실을 드리우기도 하고, 고도의 테크닉이 결국 인류의 화합과 관용을 설득하게 만드는 영화의 특성을 사유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개인적 회고에 그치지 않는다. 감독 개인의 상흔을 치유하면서 사적인 감정에 파묻히지 않고, 극 전체에 걸쳐 영화 매체의 본질을 묻지만 현학적이지 않다. 1970년대부터 꾸준히 영화 그 자체가 되어왔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2020년대 또 한 번 중요한 마스터피스를 만들었다.

‘미래과거시제’ - 배명훈

김겨울(작가): 과거-미래 시제가 아니라 ‘미래과거’ 시제다. 작품 세계를 단번에 보여주는 듯한 제목은 묘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데, 언제나 그렇듯 소설가 배명훈은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SF소설이라는 큰 장르 안에서도 20년 가까이 쌓아올린 자신만의 작품 세계와 확고한 팬층을 가진 배명훈이 7년만에 출간하는 단편소설집이다. 유머와 애수, 환희와 슬픔, 소소함과 경이를 아우르는 그의 소설에서는 만담꾼의 재능과 탐구자의 기질이 함께 엿보이는데, 무엇보다도 좋은 건 그가 세상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차카타파의 열망으로’에서는 팬데믹 상황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파열음’의 문제를 재치 있게 뒤틀고, ‘접히는 신들’은 실제 우주 탐사에도 활발히 쓰이는 ‘종이접기’ 기술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판소리 형식을 빌린 SF부터 언어학에 걸친 SF까지 즐거움과 차분함으로 빚어낸 이야기가 하나하나 빛나고, 이전의 작품과 달리 한 작품마다 달아둔 작가의 코멘트는 더욱 읽는 재미를 더한다. 순전한 기쁨을 주는 SF.

‘Swing Slam’ - 서사무엘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창작의 샘이 도무지 마를 것 같지 않은 아티스트가 더러 있다. 그중 한 명이 서사무엘이다. 래퍼로 데뷔하여 싱어송라이터로 전환한 이래 놀라운 결과물을 연속으로 발표해왔다. 약 8년 동안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R&B/소울, 펑크(Funk), 힙합, 재즈, 얼터너티브 팝이 공존하고 개성 있는 언어와 가치관이 투영된 가사가 입혀져 완성된 그의 음악은 소울풀하고 과감하며, 때때로 비선형적이다. 독보적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여기 ‘Swing Slam’만 들어봐도 그렇다. 단출한 구성 속에서 음 하나하나의 힘이 피어오르는 ‘재즈 + 소울’ 프로덕션,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듯 치밀하게 짜인 보컬 퍼포먼스, 말맛을 살린 언어로 조합하여 리듬감을 자아내는 가사까지, 다소 힘을 빼고 만든 것 같은 곡에서도 서사무엘이 지닌 장점이 고스란히 스며 나온다. 편안하게 와 닿으면서 관습적이지 않다. 과시를 위한 작위적인 구성 또한 느껴지지 않는다. 싱글이든 앨범이든 실망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이번에도 깨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