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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해인, 강일권(음악평론가), 김겨울(작가)
디자인. MHTL
사진 출처. 요정재형 유튜브

‘요정재형’ (유튜브)

윤해인: ‘요정식탁’은 뮤지션 정재형이 집으로 게스트를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며 오가는 대화들로 꾸린 유튜브 채널 ‘요정재형’의 한 코너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게스트와 근황이나 추억을 나누고 상대에 맞춰 여러 주제를 오가면서도, 정재형은 게스트의 본업에 대해 조금씩 짚어주며 그들의 대화가 토크쇼처럼 흘러가도록 이끌어낸다. 오랜 친분을 기반으로 티격태격 건네는 농담까지 더해, 보는 이가 편히 웃을 수 있는 유머까지 갖췄다. 

 

특히 ‘오늘은 안테나가 부러진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에서는 그 티격태격의 매력이 조금 더 돋보인다. 그가 소속된 안테나뮤직 아티스트를 초대한 영상은 오프닝부터 “조용하게 좀 돌아 있는 애들이 많아 가지고…”라는 정재형의 말이 암시하듯, 자극 없이 잔잔하지만 어느새 웃음이 새어나온다. 곧 데뷔 20주년을 맞이하는 그룹이지만 “안테나 경로당”에서는 막내라 설명하는 페퍼톤스 이장원과 신재평의 시니컬한 유머, 스스로를 “카페 사장으로서의 인생을 산다.”고 설명하는 뮤지션 이상순, 1시간이 넘는 신곡을 믹스하다 너무 졸려서 힘들었다는 일화를 조곤조곤 풀어놓는 루시드폴, 오랜 시간 음악을 만든 음악인으로서 레코딩과 오토튠 기술에 대해 논하다가 “이 얘기를 노래 잘하는 애들이 하면 이해가 되는데”라며 자조적으로 말하는 정재형까지. 전형적인 ‘방송 톤’은 아니지만, 어딘가 조금 이상한 이들의 대화는 특유의 진지함과 시니컬함이 묘하게 웃음으로 치환되는 순간의 재미가 있다. 여기다 프랑스 유학 경험과 요리 방송을 진행한 경력이 있는 정재형이 내어주는 좋은 만듦새의 요리와 아늑한 공간은 정서적 편안함까지 더해준다. 정갈한 음식과 샴페인, 좋은 음악과 친한 친구들 사이의 격의 없는 즐거운 대화. 어쩌면 연말에 가장 어울리는 유쾌함과 따뜻함이 아닐까.

HIPHOPDX AWARDS 2023

강일권(음악평론가): 보통 12월에서 1월 사이에 이루어지는 음악계의 각종 시상식 및 결산은 아주 좋은 정보의 장이다. 그해의 동향을 가장 축약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힙합 쪽에선 블랙 엔터테인먼트 전반을 아우른 ‘BET 어워즈’와 힙합에만 초점을 맞춘 ‘BET 힙합 어워즈’가 제일 유명하다. 그런데 이 같은 메이저 시상식 못지않게 신뢰할 수 있으면서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선정이 궁금하다면, 온라인 매거진 ‘힙합디엑스’의 결산 리스트를 추천한다. ‘힙합디엑스’는 뉴스, 인터뷰, 칼럼은 물론, 힙합 씬에서 유일하게 앨범 비평을 이어오는 매체다. 무엇보다 베테랑과 신예, 메인스트림과 인디를 고르게 다룬다. 매해 발표하는 어워즈의 후보만 봐도 매체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차트에서의 성적보다는 그들이 세운 비평적 기준에서의 랩 실력과 음악성을 중요하게 본다. 대니 브라운(Danny Brown), 제이 콜(J. Cole), 릴 웨인(Lil Wayne), 나스(Nas), 킬러 마이크(Killer Mike)가 포진한 ‘베스트 래퍼’ 부문, 섹시 레드(Sexyy Red), 롤라 브룩(Lola Brooke), 댓 멕시칸 오티(That Mexican OT), 티조 터치다운(Teezo Touchdown), 비즈(Veeze) 등이 포진한 ‘올해의 신예’ 부문 등은 대표적이다. 매년 ‘힙합디엑스’ 팀은 함께 모여서 결산 선정작을 놓고 토론하고 때론 논쟁을 벌인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최종 결과가 바로 ‘힙합디엑스 어워즈’다. 2022년 12월 1일부터 2023년 12월 1일까지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일주일 내내 후보자를 공개해왔고, 지난 12월 18일부터 수상자를 공개했다. 모든 시상식과 결산의 결과가 그렇듯이 ‘힙합디엑스’의 선정 또한 모두가 수긍하고 만족할 순 없다. 그러나 ‘우리만큼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힙합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한 가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소스를 반영한 어워즈’라는 그들의 자부심엔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야말로 미국 힙합의 2023년이 가장 농축된 리스트다.

‘둠즈데이북’ - 코니 윌리스

김겨울(작가): 거리에 울려퍼지는 종소리와 들뜬 사람들, 북적북적한 펍.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둔 2054년, 키브린은 중세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려는 참이다. 중세의 문화도 복식도 연구했고 언어도 익혔으며 예방 접종도 종류별로 맞았다. 던워디 교수와 연구원 바드리도 키브린의 강하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키브린의 강하 후 바드리는 문득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바드리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말을 남긴 채 열로 쓰러지고, 사람들 사이에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다. 봉쇄되는 병원과 대학. 던워디는 키브린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지만 여의치 않고, 중세에 강하한 키브린 역시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이제 던워디는 키브린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키브린은 중세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온몸을 던진다. 

 

현재와 중세를 오가며 벌어지는 일은 긴급하고 스펙터클하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장 진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어느새 등장인물들에게 마음을 쓰게 되고, 던워디와 키브린은 주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그러면서 키브린은 끊임없이 말한다. 아무리 못난 짓을 한 사람이라도 이렇게까지 병으로 끔찍한 고통을 받을 이유는 없다고, 전염병은 신의 죄가 아니라고. 어쩌면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은 이런 책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코니 윌리스는 크리스마스 단편집의 서문에 이렇게 쓴 바 있다. “압도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는 ‘인간은 변할 수 있고 속죄할 수 있다.’는 교훈을 믿는 사람들의 시간이다.” 부디 사랑과 너그러운 마음으로 올해를 보내고 내년을 맞이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