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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예진, 임수연(‘씨네21’ 기자), 김겨울(작가),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티빙

‘방과 후 전쟁활동’ (TVING)
이예진: 하늘을 뒤덮은 미지의 생명체, 일명 ‘구체’의 낙하로 인해 전시 태세로 돌입한 대한민국에서 고 3 학생까지 소집하는 국가 총동원령이 내려진다. 2023년 대입 수시 전형은 모두 취소된 와중에 정시 전형은 유지. 수능을 앞둔 미성년자들에게 학교에서 정규 수업과 군사훈련 병행을 요하는 상황을 납득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대입 가산점이다. 군사훈련에 참여하는 학생에 한해 수능 가산점을 부여하고, 합숙 훈련 성적과 생활 태도에 따라 부과되는 상벌점 제도는 극중에서 국가가 학생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다. ‘방과 후 전쟁활동’의 성진고등학교 3학년 2반 학생들은 ‘구체’와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군사 교육을 받고, 훈련을 책임지는 소대장은 그들에게 “죽고 싶지 않으면 뛰어. 그 누구도 너희를 지켜주지 않는다. 스스로 생존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급박한 순간에 친구의 보호 장비를 대신 채워주고, 부상을 입은 친구와 함께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더라도 끝까지 단합하여 다같이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야 만다. ‘방과 후 전쟁활동’에는 생명의 위기 앞에서 누군가 이기적이거나 미운 행동을 할지라도 이른바 ‘빌런’ 역할을 하는 캐릭터는 없고, 학생들은 공포, 분노, 슬픔, 죄책감 등이 뒤엉킨 감정 속에서도 절망 대신 희망을 찾으며 성장한다. 7~10화에 해당하는 파트 2는 4월 21일에 공개된다. 

‘에어’
임수연(‘씨네21’ 기자): 가장 대중적이면서 여전히 핫한 나이키에게도 업계 꼴찌였던 시절이 있었다. 1984년, 컨버스와 아디다스에 밀려 업계 3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이키는 브랜드 혁신을 위해 새로운 모델을 찾아 나선다. 나이키는 신제품 마케팅에 사활을 걸고 스포츠 유망주들을 발굴하는 스카우터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를 고용한다. 소니는 NBA에서 한 번도 뛰어본 적 없는 신인 선수 마이클 조던의 잠재력을 주목하고 나이키 사장 필 나이트(벤 애플렉)에게 신생 농구화 부서의 모든 예산을 조던을 위해 써보지 않겠냐는 파격 제안을 한다. 농구 자체보다는 훗날 중요한 게임 체인저가 된 기업과 인물을 다뤘다는 점에서 ‘에어’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보다는 ‘소셜 네트워크’를 닮았다. 나이키가 지금의 입지를 다질 수 있게 해준 ‘에어 조던’의 탄생기를 통해 스포츠 비즈니스와 마케팅의 풍경을 흥미롭게 조망하고 직관과 뚝심의 가치를 재치 있게 보여준다. 유명한 성공담이지만 의외로 그 과정에 드라마틱한 사건이 많지는 않다는 점, 모두가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는 태생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들의 갈등과 조화를 리듬감 있게 다룬 연출이 이야기의 긴장을 끝까지 놓지 않게 만든다. ‘굿 윌 헌팅’,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 이어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협업한 세 번째 작품이자, 벤 애플렉의 다섯 번째 연출작이다. 

‘컬티시’ - 어맨다 몬텔

김겨울(작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의 파문이 조금 가라앉은 듯하다. 그러나 현재진행형의 대화가 줄었을 뿐 사이비 종교에 대한 경각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 보인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아마도 가장 궁금해할 법한 부분은 대체 누군가가 어떻게 의심 없이 사이비 종교에 마음과 몸을 맡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유튜브에는 ‘사이비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의 특징’과 같은 영상이 계속해서 재생산된다. 어떤 영상에서는 정신과 의사가 의학적인 관점에서 이를 풀이하고, 어떤 영상에서는 심리학자가 나와 인간 심리를 통해 이를 풀이하고, 어떤 영상에서는 역사학자가 역사 속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데, 어맨다 몬텔의 ‘컬티시’는 ‘광신의 언어학’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이를 언어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사람을 세뇌하고, 다른 친밀한 관계로부터 차단시키고,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키는 작업이 언어라는 강력한 도구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사이비 종교만이 아니다. 다단계 비즈니스, 자기계발 셀럽, 뷰티나 피트니스 인플루언서들이 사용하는 언어 속에도 그 언어를 수용하는 사람을 매혹하고 특정한 신념을 부추기도록 하는 장치들이 숨어 있다. 사이비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라, 나의 신념 체계가 어디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Mercurial’ – 실리카겔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음악 감상을 할 때 비주얼의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부족하지 않다. 1981년 음악 전문 채널 MTV가 개국한 뒤 ‘Video Killed The Radio Star(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인다)’며 쩌렁쩌렁 울려 퍼진 버글스(Buggles)의 노래는 머지않은 미래를 예측한 촉 빠른 예언이었다. 그로부터 40여 년 뒤, 예언은 동아시아의 작은 땅에서 현현한다. K-팝은 어느새 보는 음악의 선두 주자이자 풀 패키지의 모든 것이 되었다. 미래가 이렇게 될 줄은 MTV의 증조할머니도 몰랐을 것이다.

 

실리카겔은 2013년 결성 당시부터 이 거대한 흐름의 한가운데를 정확히 조준한 대표적인 밴드다. 노래 ‘Mercurial’과 뮤직비디오는 악기가 아닌 영상(VJing) 담당을 정식 멤버로 두었던 초기에서 이제는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영상 감독인 멜트미러(Meltmirror)와 절묘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지금까지 이들이 만들어온 괴상하지만 의외로 다정한 것들의 총체다. 지난해 발표한 싱글 ‘NO PAIN’ 이후 물이 오를 대로 오른 감각적인 멜로디 워크와 실리카겔만의 고유한 환상 서사는 기이한 손맛이 느껴지는 정교한 영상과 함께 비선형 나선을 그리며 노래의 끝까지 무한히 얽혀 들어간다. 8개월이라는, 브랜드와의 협업 작품임을 고려하면 최대라 해도 좋을 넉넉한 창작 기간과 그로 인해 보장된 자유가 노래와 영상 곳곳에 살아 숨 쉰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넘치는 건 물론이다. 우리가 음악으로 도달하고 싶어 하는 바로 그 궁극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