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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오민지, 임수연(‘씨네21’ 기자),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김겨울(작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썰플리 유튜브

‘썰플리’

오민지: ‘인문학적 사유로 삶에 대해 깊이 있게 질문하는 철학 채널😊’. 유튜브 설명과 달리 ‘썰플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철학’과 ‘인문학’의 어려운 내용 대신 ‘대충 살자 썰’, ‘썸 탈꺼야 썰’, ‘기빨린 썰’, ‘빌런 썰’ 등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볼 만한 쉬운 질문에 대한 길거리 시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역설적으로 가장 가볍게 삶의 면면을 들여다본다. 남자친구와 이별 후 가슴이 아파 아픔을 다른 아픔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가슴 운동을 하고, 악기를 못하지만 노는 걸 좋아해서 밴드 동아리에서 ‘멤버’를 맡고 있거나, ‘오빠 볼에 뽀뽀하기 vs. 백만원 기부’라는 질문에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린 채 “좋은 곳에 백만원이 갔으면 좋겠어요. 진짜 진심으로.”라고 이야기하고, 월급 받으면 테니스 채를 살 수 있어 우선 테니스 가방만 메고 다니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보면 누군가의 댓글처럼 ‘어디서 저런 일반인을 찾는’건가 싶을 정도다. 화려하고 독특하진 않더라도 누구나 ‘썰’로 풀 법한 일상이 모여 하나의 ‘플레이리스트’가 만들어지는 걸 보다 보면 평범한 삶이 가진 재미와 공감이 느껴진다. ‘음악을 빼놓고 인생을 논할 수 없게 된 시대’에 밥 먹으며 틀어 놓기 좋은 콘텐츠와 설거지할 때 틀어놓을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까지, 일상적이지만 각자의 ‘삶’과 ‘썰’의 주인공인 모두를 위한 콘텐츠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임수연(‘씨네21’ 기자): “따단 딴 따단 딴 딴~.” ‘슈퍼 마리오’ 게임을 하면서 마리오(크리스 프랫)가 왜 파이프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섯왕국에서 분투하게 됐는지, 그가 구하려는 동생 루이지(찰리 데이)가 갇힌 다크 월드가 어떤 곳인지, 쿠파가 왜 ‘슈퍼 마리오’ 시리즈의 메인 빌런인지, 루이지를 납치한 쿠파가 어떻게 슈퍼스타를 차지하고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는지 보다 자세한 사연을 듣고 싶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우리에게 익숙한 슈퍼 마리오 세계관의 탄생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탄탄한 내러티브보다는 ‘슈퍼 마리오’라는 상품에 기대하는 캐릭터의 매력과 박진감을 살리며 마치 극장에서 게임을 즐기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는 영화가 영화답지 못하다며 평단의 혹평을 받는 이유가 됐지만, 관객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충족했다는 점에서는 성공한 기획이다. 북미 개봉 당시 역대 비디오게임 영화 중 가장 높은 수익, 역대 애니메이션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워 화제가 됐다.

‘AMYGDALA’ - Agust D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AMYGDALA’는 슈가의 앨범 ‘D-Day’ 안에서도 튀는 곡이다. 일렉 기타가 주가 되어 얼터너티브 록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반면 래퍼 본인이 직접 부르고 오토튠을 더한 사운드는 일부러 청신경을 긁는다. 가사는 태어난 날을 시작으로 그의 인생 속 비극적 에피소드들을 나열한다. 편도체(Amygdala)에 트라우마로 저장됐을 만한 내용이다. 듣기에 결코 편한 곡은 아니다. 

 

Agust D(어거스트 디)는 슈가가 공포 혹은 고통과 싸우며 끊임없이 자신을 쪼개고 비판한 메타 인지 기록이다. 고통을 이성적으로 보고자 함은 대응 기제 중 주지화에 해당한다. 여기엔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다. 그런데 내가 차마 손대지 못한 감정에 타인이 교감할 때 그것이 마중물처럼 상처에 닿아 치유가 시작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표현을 하고, 타인과의 교감을 찾아 헤맨다. ‘AMYGDALA’는 고통을 끝장낼 그날(‘D-Day’)에는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게 닿을 있는 그대로의 고백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음을 설파한다.

 

후렴은 내내 마이너로 달리다가 후렴의 마지막에 “이곳에서 구해줘(II Maj)/어서 빨리 꺼내줘(IV)” 하며 밝은 메이저 코드를 흘린다. 절규 속 잠시 나약해지는 이 순간은 그의 다른 곡 ‘D-Day’의 가사처럼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 같은 음악적 표현이기도 하다. 오아시스의 ‘Stop Crying Your Heart Out’의 도입부가 이와 같은 vi - (I) - II Maj - IV로 흘러간다. 오아시스의 곡에서 ‘II Maj’ 코드에 나오는 가사는 “Dont be scared(겁먹지 마)”다. 공포와 고통은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 속에 옅어진다.

‘앓아누운 한국사’ - 송은호

김겨울(작가): 만약 과거와 미래 중 하나를 택해 떠나볼 수 있다면 어디로 가겠는가? 이 질문을 두고 ‘미래’라고 답하는 사람들은 대개 과거로 돌아갔을 때의 끔찍함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 끔찍함은 이를테면 각종 차별이나 위생 상태 그리고 부족한 의료 인프라 같은 것이다. 지금에야 다치거나 아프면 경중에 따라 집에서 응급처치를 할 수도 있고 병원에서 증상의 원인을 비교적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일단 원인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마취 약조차 없었다. 하지만 인간의 몸이 유리알 같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은 아플 때 어떻게 대처했을까? 아팠던 사람들 중 가장 극진한 진료를 받았을 왕의 사례조차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안 그래도 약한 몸인데 커피에 탄 아편으로 암살을 당할 뻔한 순종은 평생을 과민성 대장증후군으로 고생했다. 끊임없는 암살의 불안에 시달리며 불면의 밤을 보냈던 정조도 있고, 하루 24시간 평생을 워커홀릭으로 살았던 세종의 강직성 척추염과 당뇨도 빼놓을 수 없다. 사극과 역사서 속에서 근엄하기만 했던 인물들도 다 비슷한 고생을 했던 사람들인 것이다. 지금도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책을 읽으며 웃기고 슬픈 공감의 끄덕임을 보이게 될 것 같다. 하다 못해 설사로 고생했을 이순신 장군에게 설사약이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