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자동 완성 게임을 해보자. 검색 창에 ‘Why K Pop’까지 입력하면, 맨 위에 ‘why k pop is popular’가 나온다. 두 가지는 확실하다. 첫째, K-팝은 인기가 있다. 둘째, 누군가 그 이유를 궁금해한다. 한동안, K-팝 또는 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닌, 일반 매체에서 K-팝을 언급하는 기사 중 상당수는 실제로 그 질문에 답하여 노력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 장르는 청각과 시각을 아우른다. 청각적으로는 거의 모든 서양 대중음악 장르를 소화하여 캐치한 멜로디를 뽑아낸다. 시각적으로는 콘셉트를 중심으로 패션, 안무, 스토리텔링이 엮인 뮤직비디오를 제공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하여 재능과 개성 있는 아티스트들이 오랜 트레이닝을 거치고, 그들은 아티스트 페르소나가 아니라 자연인으로서의 매력도 갖췄다.

각각의 설명은 옳다. 하지만 이는 K-팝이 외부로 드러난 방식이자, 그에 대한 묘사에 가깝다. 물론 그 모든 요소가 국제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높은 수준에 올랐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K-팝의 역사를 다루는 해외 기사들은 보통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시작하여, 싸이와 소녀시대를 거쳐 방탄소년단에 이르는 연대기를 작성한다. 그 역사 안에서 이루어진 질적 향상과 고유성의 획득은 중요한 문제다. 미국 시장에 새롭게 진출하는 K-팝 밴드가 시장의 취향을 공략하는 콘셉트와 함께 위에서 나열한 모든 요소를 강조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는 지금 다루고자 하는 질문의 충분한 답변은 아니다. 왜 지금 세계 최고의 보이 밴드가 K-팝 밴드인가? 또한 새로운 아티스트 중 누군가는 아직 특별한 북미 프로모션이 없음에도 자생적인 인기를 얻는가? ‘잘한다’ 말고, 무엇이 이들을 차별화하는가? 이 답을 위하여 작년 여름 미국이 인종 이슈로 뜨겁던 시기의 특이한 현상 하나를 되돌아보자. 음악 산업 내의 인종차별을 고발하기 위한 #BlackoutTuesday 운동에 대응하여, #WhiteoutWednesday 또는 #AllLivesMatter 같은 해시태그 캠페인이 등장한 바 있다. 당연히 차별적 아이디어에 근거한 것이다. 당시 일군의 K-팝 팬들은 문제의 해시태그와 함께 자신들이 좋아하는 K-팝 아티스트의 비디오, GIF, 사진을 대거 포스팅하여 증오 발언을 휩쓸어 버렸다. 이 사건의 외견은 K-팝 아티스트의 선한 영향력이다. 한 겹 걷어내면 K-팝이 해외 시장에서 자리 잡은 초기부터 사회적 마이너리티에게 어필해온 배경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근원적으로는 K-팝이 전통적으로 다루어 왔고,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만, 실은 대중문화에서 그렇게 당연하지 않은 주제가 보인다. 젊은 세대에 대한 위로와 성찰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자는 메시지로 이어지고, 구조적인 부조리에 대한 인식은 사회적 관심으로 이어진다. 저 멀리 H.O.T.부터 K-팝 ‘아이돌’의 고유한 주제다.

이는 미국의 주류 대중문화에서 일종의 공백이다. ‘Parental Advisory: Explicit Content’ 딱지로 대표되는 너무 위험한 것과 디즈니 채널로 대표되는 너무 안전한 것들 사이의 진공이다. 미국에서도 누군가는 다양하고 멋진 방식으로 그 주제를 다룰 것이 틀림없지만, 톱 아티스트와 프라임 타임 TV 쇼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K-팝 아이돌은 주말 TV 쇼에서 학원 폭력과 획일적 교육, 잃어버린 꿈과 ‘헬조선’을 노래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 현상이 세계 최고의 교육열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경쟁 체제로 유명한 한국에서 나타난 것은 당연하면서, 동시에 신기한 일이다. 이 아이러니는 지난 20년간 이상 한국의 아이돌 산업 안에서 무르익어, K-팝의 완성도 높은 시청각적 쾌감과 결합하고, 미국의 젊은 세대와 만났다. ‘WAP’과 ‘Dynamite’의 차트 경쟁을 말할 때, ‘Dynamite’를 가리켜 부모가 안심할 수 있는 노래라고 하던 농담은 사실의 일부를 담고 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Minisode1: Blue Hour’는 지난 11월, ‘빌보드 200’ 차트 25위까지 올랐다. 당시 데뷔 2년 차 K-팝 아티스트로서는 가장 높은 성적이고, 코로나19로 인해 K-팝 아티스트가 미국 현지에서 활동하지 못하는 것을 감안하면 새삼 의미 있는 기록이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인지도가 높은 아티스트가 아무래도 차트 진입이 유리한 상황에서 데뷔 앨범이 빌보드 200에서 140위를 했던 팀이 미국 내에서 그만큼 팬덤을 늘려갔다. 일본 데뷔 앨범 ‘Still Dreaming’은 대부분이 일본어 트랙이지만, 발매 당시 미국 내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장 주목하는 K-팝 앨범이었다. ‘Still Dreaming’의 타이틀 곡인 ‘5時53分の空で見つけた君と僕 [Japanese Ver.]’는 ‘Still Dreaming’의 발매 주간 동안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타이달이 공통적으로 K-팝 섹션의 가장 주요한 신보로 띄우고, 관련 플레이리스트에서도 앞쪽으로 밀었다. 인기 K-팝 아티스트의 곡이라 해도 일본어 트랙이 이런 관심을 받는 것은 이례적이다. K-팝 아티스트가 낸 일본 데뷔 앨범이 미국 내 음원 소비자에게 관심을 모으는 이 현상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시작부터 10대의 관계와 감정을 중심 주제로 삼아온 것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최근 앨범에서는 ‘날씨를 잃어버렸어'처럼 코로나19가 10대의 학창 생활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10대의 설렘과 불안도 아이돌에게 당연한 주제 같지만, 이 또한 사랑 노래로 미처 채워질 수 없었던, 일깨워지지 않은 수요다.

K-팝은 싸이가 언어를 뛰어넘는 흥미와 유행을 만들어냈을 때 어떤 정점에 오른 바 있다. 그리고 현재, 언어와 무관하게 보편적이지만 동시에 외면당했던 감정을 다루는 것으로 더 큰 확장을 만들어냈다. K-팝의 ‘내일’은 더 큰 화려함이 아니라, 좀 더 세심한 관찰과 배려에 있을 것이라 보는 이유다. 전 세계 어디서나, 10대는 그들의 시선에서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노래를 원한다.
글.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