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걸 같이 먹을 생각을 했을까?” 방탄소년단의 멤버 RM은 리얼리티 프로그램 ‘인 더 숲 BTS편’에서 ‘짜파구리’를 먹으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영화 ‘기생충’을 통해 세계적으로도 화제를 모은 짜파구리는 한국의 인스턴트 라면 브랜드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반반씩 섞어 짜장면에 매운맛을 더한 요리다. 방탄소년단의 자체 콘텐츠 ‘달려라 방탄’에는 RM의 질문을 떠오르게 하는 음식들이 종종 등장한다. 중국 음식인 탕수육 위에 이탈리아의 피자 토핑과 김치를 올린 ‘김피탕’, 한국의 고깃집에서 흔히 나오는 사이드 메뉴인 깍두기 볶음밥에 치즈를 올린 ‘치즈 깍두기 볶음밥’, 한국식 인스턴트 라면에 한국식 스팸과 소시지를 넣은 ‘순딩이 라면’. 다른 문화권의 음식들을 한식에 섞거나, 한국에서도 보편적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조합의 음식들이다. 뿐만 아니다. 지난 1월 방송된 ‘달려라 방탄’ 125회의 제목은 ‘K-햄 특집’이었다. 스팸은 1937년 미국 호멜 식품 회사가 개발했지만, 한국에서는 김치, 밥 등과 함께 먹는 한식 반찬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한국인의 기존 밥상에 없었던 음식들이 현대에 들어와 국적을 정의할 수 없는 새로운 메뉴로 탄생 중이다.

“모차렐라 치즈는 지금 한식에서 매우 중요한 식재료다.” 박찬일 셰프 겸 음식 칼럼니스트의 말은 상징적이다. 미쉐린 빕 구르망에 3년 연속 선정된 한식 레스토랑 ‘광화문국밥’과 이탈리안 레스토랑 ‘로칸다몽로’의 셰프로 한식과 양식 양쪽 분야에서 활동 중인 그는 “젊은 한국 세대가 좋아하는 한식에는 대부분 치즈가 들어간다. 닭갈비, 김치찌개, 볶음밥 등 최근 한식에서 치즈가 활용되는 사례가 많다.”면서 “재료의 원산지 또는 발상지는 한식에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한국의 치킨은 파우더를 써서 닭고기를 튀기는 미국 KFC(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요리와 과학을 접목시키는 미국의 혁신적인 요리 집단인 ‘모더니스트 퀴진’ 팀에서도 양념 치킨을 ‘한국 스타일 프라이드 치킨’으로 인정한다.”는 점을 짚기도 했다. 미국에서 유래한 음식이 한국으로 건너와 독자적인 스타일로 자리매김하고, 그 스타일이 본고장에서 다시 자리 잡는 셈이다. 반대로 한국 고유의 음식이 해외에서 새롭게 현지화되기도 한다. ‘뉴욕타임스’에서는 샐러드 또는 한국의 ‘무침’과 유사하게 발효를 거치지 않고 빠르게 만드는 김치 레시피를 ‘Quick Kimchi’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김치의 표준을 벗어난 레시피가 해외에서 소비되는 현상에 대해 미식의 별 음식평론가는 “코덱스 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서 한국 김치를 정의하는 기준 중 하나는 저온에서 젖산 발효 단계를 거치는 것”이라면서, “멕시칸 요리가 미국 남부로 들어가서 텍스멕스가 만들어졌고, 한국인들이 텍스멕스에 김치를 넣어 김치 타코(K-텍스멕스)가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오리지널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다양한 음식 문화가 상호 교류할수록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더욱 늘어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타국의 음식이 특정 국가의 문화와 조건에 따라 변용되는 현상 자체는 이전부터 보편적으로 존재했다. 예를 들어 현재 한식으로 인식되는 부대찌개의 경우,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미국 스팸이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음식이다. 다만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는 “미디어의 발달, 특히 유튜브와 스마트폰의 보편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음식의 다양한 퓨전화와 현지화를 가속화시킨다고 진단한다. 그는 한국에서 김피탕이나 투움바 치킨(투움바 파스타 소스를 활용한 한국식 치킨), 뚱카롱(K-마카롱, 필링을 극단적으로 두껍게 넣은 한국식 마카롱) 같은 퓨전 음식들이 지난 몇 년 동안 유행해온 현상에 대해 “한국에서 ‘뉴욕타임스’ 사설을 읽을 수 있는 시대다. 젊은 세대는 영어 사용이 상대적으로 익숙하고, 어릴 때부터 양식을 경험하고, 다국의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수용하다 보니 새로운 식재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라면서 “다양한 음식의 재료를 자유롭게 섞는 ‘괴식’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제공한다면 맛이 없어도 그만이다. 음식은 이미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약 4만여 명의 트위터 팔로워를 가진 BTSARMYKitchen 팀은 이 시대의 미디어 환경이 세계의 음식 문화를 어떻게 엔터테인먼트로 만드는지 보여주는 예다. “잘 훈련된 전문 요리사들, 재능 있는 가정 요리사들, 멋진 바텐더들 그리고 열정적인 제빵사 아미들로 구성된” 그들은 방탄소년단의 콘텐츠와 관계 있는 음식들의 레시피를 제작해 SNS를 통해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ARMY)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아미들이 음식과 대화를 통해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인 그들은 ‘방방콘 The Live’와 ‘MAP OF THE SOUL : ONE’ 등 방탄소년단의 온라인 콘서트에서 아미들이 즐길 수 있는 스낵 레시피를 소개하는 이벤트를 연 바 있다. 또한 방탄소년단이 활동 중 투어를 위해 방문했던 국가들을 선정해 그 국가의 요리를 팬덤들에게 소개하는 #BTSSoupWeek 같은 이벤트를 기획하거나, 방탄소년단과 함께 한국의 명절 설날을 축하하기 위해 떡국과 수정과, 약과, 전 등 한국 전통 음식의 레시피를 만들어 공유하기도 했다. 그들은 이런 이벤트 기획에 대해 “어떤 이벤트가 아미들에게 재미있을까?”라고 스스로 질문하고 거기에서부터 출발한다.”라고 밝혔다.

아미처럼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음식을 매개로 소통하는 과정은 지금 세계가 서로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방법 중 하나다. BTSARMYKitchen 팀은 떡국이나 꼬막 비빔밥 같은 한식의 비건 버전 레시피를 함께 제공하거나, 정국이 마시면서 화제가 된 콤부차의 할랄 제품이 있다는 정보를 아미들과 공유하는 등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한다. BTSARMYKitchen 팀은 “우리는 항상 모든 아미들의 다양한 생활 방식이나 선호 그리고 종교를 포용하고 존중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우리 모두가 방탄소년단의 음식을 먹을 수 있지는 않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음식을 경험할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 써서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들은 “다국적의 아미들은 한국 음식을 요리할 때 필요한 재료를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레시피를 만들 때 요리의 맛을 바꾸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체 가능한 재료들을 제안하려 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 음식이 세계에서 건강식 또는 비건식으로서의 가능성을 갖게 된 것은 문화적 다양성과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는 세계의 흐름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는 “해외에서 한국의 사찰 음식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안다. 비건 음식에 대한 수요 때문이다.”라고 언급했다. 미식의 별 음식평론가 또한 “김치, 비빔밥, 전, 찌개, 잡채 같은 한식들은 비건 레시피로 바꾸기 쉽다.”면서 “시대적 흐름에 부합할 수 있는 한국 음식의 가능성”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는 음식 문화의 다양성이 갖는 의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2019년 12월 기준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등 15개국에 수출 중인 비비고 만두는 연 매출 1조 원 중 65%가 해외 매출일 만큼 큰 성과를 거뒀다. CJ제일제당의 한 관계자는 “만두는 타코, 교자, 덤플링 등 해외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랩핑 푸드와 유사한 음식이기 때문에 현지인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라면서 “만두피가 얇고 고기, 채소 등 만두소가 꽉 찬 비비고 만두의 특징이 해외에서는 건강식으로 인식됐다. 한편으로는 실란트로(고수)와 치킨처럼 현지 입맛에 맞춘 상품을 출시해 현지화 전략을 펼친 점도 유효했다.”라고 성공 원인을 분석했다. 해외에서 한국 음식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고, 한국은 다시 각 문화권에 어울리는 제품을 개발하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방탄소년단이 향유하는 음식 또는 비비고 같은 제품이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에 퍼지고, 그것을 다양한 문화권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수용하는 현상. 그래서 다른 나라의 음식과 마찬가지로, 최근 ‘K-푸드’라 불리기도 하는 한국 음식 또한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K-푸드’의 ‘K-’는 단지 기존의 한국 음식, 또는 한국 음식의 영향력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BTSARMYKitchen 팀은 한국 요리의 특징으로 “한 재료가 다양한 요리에 활용될 수 있는 다재다능함”을 이야기하면서 “이는 방탄소년단과 그들의 음악, 그리고 한국 음식의 공통점이다. 방탄소년단 역시 폭넓은 음악적 스타일과 콘셉트를 유연하게 오가면서 한 그룹 내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그들의 말처럼, 방탄소년단은 힙합, 록, EDM, 국악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한 음악을 전 세계에 히트시켰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핫소스의 영향을 바탕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서 만들어진 ‘불닭’ 소스가(주영하, ‘백년식사’) 유튜브에서 ‘파이어 누들 챌린지’로 화제를 모으면서, 극단적인 매운맛이 한국의 이미지 중 하나가 된다. 미식의 별 음식평론가가 한국 대중식의 특징으로 ‘무국적성’을 이야기한 것은 상징적이다. 그는 “대중식이 발달한 한국에서는 전통 한식과 무관한 요소를 활용한 퓨전식이 많다. 한국의 빙수 브랜드 ‘설빙’은 대만 빙수의 영향을 받았지만, 빙수와 무관한 음식이었던 치즈를 활용해 ‘망고치즈빙수’ 같은 상품을 출시하고 인기를 끌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라고 평했다. 요컨대 ‘K-푸드’의 ‘K-’가 의미하는 것은 전통적인 한국 음식에 담긴 요소들의 유무가 아니다.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뒤섞이면서 기존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미디어를 통해 다시 다양한 문화권에서 자생하는 2021년의 풍경. ‘K-’는 그 풍경의 일부다.

한국 음식이 다수 문화권의 음식과 교류할수록, ‘K-’라는 접두사의 의미는 퇴색된다. 미디어의 발달은 여러 문화권이 뒤섞이면서 새로운 현상을 낳고, 그 과정에서 국경은 무의미해진다.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문화적 교류와 문화적 유능*이다.” BTSARMYKitchen 팀의 말은 문화적 교류 자체가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이 시대에 한국의 다양한 ‘K-’에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더 잘 아는 것은 우리가 의견의 차이를 좁히고, 다른 관점들을 배우고, 편향된 사고에 도전하고, 고정관념을 줄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세계가 정신 건강 위기, 더 큰 사회 경제적 분열, 억압, 인종차별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이런 태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K-’의 의미는 세계인의 관점에서 재해석될 수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 국경을 뛰어넘는 문화적 병합이 일어나고, 다시 세계인들을 통해 통해 자유롭게 현지화되는 지금 이 시대를 대변하는 접두사인 동시에, 그로 인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키워드다. 요컨대 ‘K-’에 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의미가 있다면 이것이지 않을까. ‘NOW’.

*문화적 유능 :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인식하고 끊임없는 자기 점검으로 문화적 지식과 자원을 확장하여 소수자의 요구에 보다 효과적으로 부응하려는 노력을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글. 김리은
디자인. 엄지(instagram @andeomji / eomji_illust@naver.com)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감수. 박찬일(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