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이현이 2021년을 사는 법
‘빅히트의 정도전’은 어떻게 유튜브에서 새 터를 찾았나
2021.09.08
2006년에 발매된 이루의 ‘까만 안경’은 2021년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서 유명 유저들이 커버하며 유명세를 탔고 멜론 종합 차트 100위권에 진입했다. 양준일은 2019년 유튜브 ‘온라인탑골공원’에서 30년 전 KBS ‘가요 톱10’ 공연 영상이 30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고, 이후 그는 JTBC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3’에 출연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MBC ‘놀면 뭐하니?’는 2020년 ‘싹쓰리 프로젝트’로 듀스가 1994년 발표한 ‘여름 안에서’를, 2021년 ‘MSG워너비’ 프로젝트로 2000년대 중반에 인기를 얻었던 SG워너비의 과거 히트 곡을 각종 음원 서비스 차트 상위권에 올려놓았다. 팬데믹 이후 야외에서의 음원 이용량은 감소한 반면, TV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올라갔다. 또한 틱톡 ‘챌린지’나 유튜브의 하이라이트 영상, 인스타그램의 ‘릴스’와 같은 소셜 미디어상의 입소문이 음원의 히트에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과거의 곡들이 음원 서비스 차트에서 ‘역주행’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최근 ‘빅히트의 정도전’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가수 이현은 이 변화의 흐름을 자신의 방식으로 따라가고 있다. 2007년 혼성 그룹 에이트로 데뷔 후 ‘심장이 없어’, ‘잘가요 내사랑’, ‘그 입술을 막아본다’와 남성 듀오 옴므에서의 ‘밥만 잘 먹더라’, 솔로 앨범의 ‘내꺼중에 최고’ 등으로 인기를 얻었던 그는 2021년 3월 유튜브 채널 ‘혀니콤보 TV’를 개설하며 ‘빅히트의 정도전’으로 불리는 자신의 캐릭터를 콘텐츠에 적극 활용한다. 이현은 지난 2018년 MBC ‘라디오스타’에서 “다들 내가 빅히트에 있다고 하면, 네가 왜 방탄소년단 회사에 있냐고 한다. 그런데 나는 빅히트에 처음부터 있었다. 빅히트 1호”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현재 하이브의 레이블이 된 빅히트 뮤직에서 자신의 역할을 유쾌하게 이야기했다. 이현은 그의 이런 캐릭터와 가수 이현의 모습을 결합해 ‘혀니콤보 TV’를 운영한다. 하이브가 신사옥 이전 당시 ‘빅히트의 정도전’이라는 자신의 캐릭터에 걸맞게 신사옥 투어 영상을 올렸고, 방탄소년단의 ‘Permission to Dance’ 챌린지가 유행했을 때는 해당 안무를 작업한 손성득 퍼포먼스 디렉터에게 안무를 전수받으며 하이브의 다른 아티스트나 스태프와의 관계를 보여준다. 방탄소년단의 ‘Butter’ 뮤직비디오 리액션 영상에서는 피독 프로듀서와 손성득 퍼포먼스 디렉터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Seori’에서는 슬로우래빗 프로듀서가 초대돼 콘텐츠 비하인드를 푸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현은 뮤직비디오 리액션 영상이 “리액션 영상이지만 리액션이 없는, 비하인드에 가까운” 영상인 이유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서로 오래 봐온 아티스트라면 그리고 그 콘텐츠에 참여한 입장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며 아티스트이자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알아온 사람으로서의 입장을 말했다. 그가 ‘구성원 체험’을 통해 콘텐츠팀 직원으로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만나는 기획을 하게 된 것도 “밤 9시부터 12시 사이에 운동하고 있으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친구들이 스케줄 끝나고 온다. 처음에는 그냥 보다가 운동 자세를 도와주면서 PT 선생님처럼 했던 적이 있다.”며 운동을 함께한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의 의전팀 직원을 하게 된 배경에는 “예전에 방탄소년단과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 콘서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호텔에서 서로 ‘스태프에 대한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만 계속했다.”는 경험에서 비롯됐다. 이현은 ‘빅히트 1호’답게 빅히트 뮤직의 아티스트와 스태프들과의 관계를 활용해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다른 유튜브 채널이라면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아티스트와 스태프의 일하는 현장을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이현이 방탄소년단의 의전팀을 경험하는 두 편의 콘텐츠는 8월 31일 기준 1편 약 226만 회, 2편 약 255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각 7,000~9,0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영상 댓글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쓴 글들이 달리고, 그가 유튜브 실시간 방송을 하는 중에도 해외 팬들의 댓글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관심이 모이면서 그는 지난 7월 13일 유튜브로부터 받은 실버 버튼을 인증하는 영상을 올렸고, 8월 31일 현재 35만 6,000명 이상의 구독자를 모았다. 그리고 그가 유튜버로, 또는 하이브 아티스트에 관한 예능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생긴 관심을 점진적으로 가수 이현을 알리는 데 활용한다. 그는 ‘혀니콤보 TV’에 “요즘 고정된 상태에서 음악을 많이 듣다 보니 실제 라이브를 들을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는 현실 속, 스트리밍 라이브 ‘작업실 ‘꿀’ 라이브’나 하이라이트 영상인 ‘혀니 노래혀니?’, 7월 컴백에 맞춰 공개한 ‘Live Clip’ 등의 콘텐츠를 꾸준히 올리고 있다. 이현은 ‘혀니콤보 TV’에서 “이현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허브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유튜브를 통해) 내 음악을 조금 더 편안하게 들려주면 좋겠다.”며 유튜브 채널 개설 계기를 밝혔다. 그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자신을 알릴 방법을 찾았고, 이를 통해 얻은 관심을 그의 음악을 듣는 계기로 만들고 있다. 음원의 흥행이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한 홍보, 소셜 미디어를 통한 화제성 그리고 ‘본캐’나 ‘부캐’ 같은 아티스트의 캐릭터 만들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시대에, 이현은 자신의 터전인 하이브를 통해 유튜브에서 그만의 MBC ‘놀면 뭐하니?’, JTBC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그리고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모두 하고 있는 셈이다.
이현이 ‘혀니콤보 TV’에 올린 ‘내꺼중에 최고’, ‘잘가요 내사랑’, ‘밥만 잘 먹더라’ 등은 이전과 전혀 다른 분위기다. 그가 과거에 섰던 음악 방송이나 콘서트 무대와 달리 양초로 은은하게 불을 밝힌 침실이나 소파와 다양한 식물들로 꾸며진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다. 2000년대에서 2010년대 초반 유행했던 짙은 아이 메이크업과 왁스로 고정된 머리, 몸 라인이 드러나는 재킷과 진은 자연스러운 헤어와 메이크업, 루스 핏의 셔츠와 면바지로 바뀌며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보컬 스타일 또한 변했다. 이현은 “시혁이 형이 연습곡으로 부르게 했던 곡들이 다 굉장히 섬세한 곡들이다. 지금 발라드랑 어울리는 곡들이 많아 그때의 노래들을 디테일하게 연습했다.”며 연습생과 데뷔 초반에 불렀던 노래를 2020년에 다시 부르며 요즘 스타일을 연습했다고 밝혔다. 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에서는 신곡 ‘바닷속의 달’의 ‘바다가 두렵기만 했던 나’라는 가사를 원래의 톤과 바뀐 톤으로 바꿔 부르며 “정국 씨 많이 따라 했어요. 정국 씨 참고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이유다. “방탄소년단이나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음악을 들었을 때 보컬적으로 귀가 쫑긋해지는 부분들을 그냥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따라 해보고 싶은 거죠. 음악의 결이나 방향성이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그 노래들이 사랑받고 있잖아요. 그리고 동생들을 많이 따라 해보니까 표현할 때 예전에는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답이 아닐 수 있네, 이런 것들도 있네 하는 부분들도 생겨 오히려 더 좋아요.” 이를테면 ‘내꺼중에 최고 (You are the best of my life) [Live Clip]’에서 그는 이별을 막 경험한 사람의 극대화된 슬픔의 감정이 전달되었던 2011년의 원곡과 달리, 2021년의 라이브는 노래의 끝 음절이나 고음을 부드럽게 발전시키며 마치 시간이 지나고 그 감정을 회상하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변화를 줬다. ‘혀니콤보 TV’를 통한 유튜버 이현의 등장은, 가수 이현이 시대에 맞춘 변화를 선택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현은 ‘바닷속의 달’을 “누구나 사랑하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좋은 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걸 노력도 상처도 없이 얻을 순 없다. 만약 사랑이라면 희생도 없이 얻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노래”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그가 지금 계속 노래하기 위해 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는 “‘내가 뭔가 조금 더 새로운 것을 할 수 있을까? 아니라면 하나 안 하나 그만일 텐데’라는 두려움”을 극복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알리기 시작했고, “타고난 보컬리스트가 아니라 노래를 습득하는데 오래 걸리는 기존의 나와 이질감이 있어 긴장되는” 순간을 이겨내며 지금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노력한다. 2007년의 가수가 2021년에도 계속 신곡을 부르기 위해 일하는 방식이다.
글. 오민지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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