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IGHIT MUSIC

(전체 곡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을 참여한지라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참 민망하기도 하지만)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음악의 작사 작업은 정말 쉽지 않았다. 시와 가사가 전혀 다른 문법을 갖고 있다는 것이야 참 당연한 일이고, 작사 경력이 일천한 내게 작사 작업이 수월하지 않은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느낀 어려움은 작사 작업의 낯섦 탓은 아니었다. 날 어렵게 한 것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라는 그룹이 가진 유니크함이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지난 시간 동안 쌓아 올린 그 특유의 문법이 나로서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세계관이라는 말이 아이돌 씬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된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1세대 아이돌 시절처럼 이효리는 레드, 이진은 블루 하는 식으로, 별명에 가까운 콘셉트 잡기에서 나아가, 보다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캐릭터 메이킹을 수행하는 것을 작금의 아이돌 세계관 작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브컬처에 강하게 영향을 받은 아이돌 특유의 세계관은 아이돌을 보다 만화 주인공 같은 존재로 만들어주며, 그 비현실성이 오히려 더욱 깊게 몰입시킨다. 이 전략은 강한 몰입을 끌어냄으로써 아이돌의 매력을 더욱 다양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지만, 반면에 너무 깊고 진한지라 접근하기는 다소 어려워진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K-팝 자체가 글로벌하게 전개되기 시작하면서 서브컬처의 문법을 활용하는 대신 보다 대중적인 접근을 꾀하는 요즘의 흐름에서는 확장성 면에서 약점을 갖는 아이돌 세계관 구성이 모종의 리스크를 짊어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이런 와중에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선택한 것은 오히려 이 세계관을 강화하고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꿈의 장: STAR’, ‘꿈의 장: MAGIC’, ‘꿈의 장: ETERNITY’로 이어지는 ‘꿈의 장’ 3부작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세계관을 확립해 나가기 위한 초석 다지기로 볼 수 있을 텐데, ‘어느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 (CROWN)’가 그리던 뿔난 소년의 이미지에서 시작하여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Run Away)’를 비롯한 ‘꿈의 장: MAGIC’ 앨범 전체의 비일상과 탈주의 모티브, ‘세계가 불타버린 밤, 우린...(Can’t you See Me?)’의 ‘세카이계(세기말 일본 서브컬처에서 유행한 서사 유형으로 두 소년 소녀의 관계가 세계의 운명과 직결되는, 청소년 시기의 예민한 감수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비일상적 세계의 이야기를 뜻한다.)’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일련의 일관성 있는 세계관은, 세계관 설정이 익숙해진 작금의 아이돌 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진한 농도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상술한 것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세계관의 전부라면 작사 작업이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밀도가 높기는 하지만, 단순하고 분명한 세계이기도 하므로 그 문법을 잘 따르고 활용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내가 작업을 하며 곤란하다고 느낀 것은 비일상성을 특징으로 삼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세계관이 확장됨에 따라 현실과 적극적으로 접속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었다. 

그 징후를 먼저 보여준 것은 ‘꿈의 장’ 3부작에 이어 나온 ‘minisode1: Blue Hour’의 ‘날씨를 잃어버렸어’였는데, 여기서는 코로나19 이후의 세계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비일상적인 접근과 아주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다. 학교는 문이 닫혀 돌아갈 수 없고, 모두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세계에서, 마치 시간 속에 갇힌 것처럼 되풀이되는 3월 1일에 대해 말하며 계절을 그리고 너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이 노래는 K-팝에서 드물게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담아낸 흥미로운 사례이자 뛰어난 성취이기도 하다(나는 이 노래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모든 노래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섬세한 가사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사실 현실에 대한 관심은 이전의 작업에서도 일부 드러나기는 했다. ‘그냥 괴물을 살려두면 안 되는 걸까’에서 천진한 시선으로 경쟁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Drama’에서도 약하게나마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보다 적극적인 현실과의 접속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혼돈의 장: FREEZE’와 리패키지 앨범인 ‘혼돈의 장: FIGHT OR ESCAPE’다. ‘Frost’의 경우 ‘날씨를 잃어버렸어’로부터 이어지는 멈춰버린 세계를 그리고 있으며, ‘LO$ER=LO♡ER’ 역시 ‘혼돈의 장: FREEZE’ 전체에 감돌던 혼란과 절망의 분위기를 계승하며, 경쟁 사회에 대한 분노를 ‘세카이계’적인 문법으로 풀어낸다.

 

기존의 아이돌 음악을 되짚어 보면 세계관이 깊게 관련된 곡은 현실은 어느 정도 가려진 채로 전개되며, 현실에 대한 접촉이 더욱 많은 곡이라면 비일상적인 세계관은 뒤로 물러나는 식이었다. 일종의 투 트랙 전략을 주로 택해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음악은 현실을 적극적으로 세계관 안에 들이는 방식, 즉 두 영역을 결합함으로써 세계를 확장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혼돈의 장’ 앨범에서 록적인 색채가 강해진 것도 이런 현실에 대한 의식을 한층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겠다). 이 쉽지 않은 선택의 까닭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옳은 선택인지는 앞으로 이어질 음악들에서 밝히고 또 증명해야 할 테지만, 일단 현시점에서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작업이 매우 유니크한 것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작사 작업 역시 세계관과 현실이라는 두 층위를 동시에 염두에 두고 그것이 대중가요로 성립하도록 균형을 맞춰야만 한다. 이런 문제를 3분가량의 음악 안에서 풀어내려면 가사의 밀도가 높아지는 수밖에 없고, 압축적인 언어와 은유적인 이미지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결과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독자적인 호흡과 문법을 가진 그룹이 되었다. 

정보량이 많은 긴 제목들, 복수의 곡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무너지는 세계 속 두 사람의 이미지, 유독 그 간극이 큰 가사들과 그 가사가 재현하는 몽타주들, 이런 요소들은 모두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고밀도의 언어와 이미지들을 유지하는 이 전략을 나는 문학의 문체와 비슷한 효과를 노린 것으로 이해한다. 아티스트의 개성을 드러내는 특징적인 말하기 방식을 아이돌 음악에서 시도하는 한편, 음악적 면모를 다양화하면서도 기존의 스토리텔링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흥미로운 접근이다. 덕분에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음악을 계속 따라 듣는 이들이라면 이전 앨범에서 등장한 특정한 노랫말이 이후의 다른 곡에서 발견되며 이어질 때,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세계관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를 읽어낼 때, 이들의 이야기에 더욱 깊이 몰입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음악의 가사를 쓰기 위해서는 이런 맥락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이전 음악에서 사용한 모티브와 이미지들, 뮤직비디오에서 활용한 이미지들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지 않으면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그간 구축해온 세계관에서 벗어날 위험이 있으니 말이다. 또한 상술한 바와 같이 고유한 세계관과 현실이라는 두 층위를 염두에 둔 채로 이야기를 풀어가야 하는 만큼, 은유적인 이미지를 중심에 두고, 해당 곡과 앨범의 키워드가 되는 단어나 문장을 축으로 작업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이런 모든 것을 담아내려면 앞서 말한 것처럼 밀도 높은 정보를 짧은 말과 이미지에 녹여내는 것 또한 불가결했다. 

 

그러니 가사를 쓰기 어려울 수밖에. 아마 그간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작업을 맡은 많은 작사가들이 이런 난관 앞에서 머리를 부여잡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최소한 나는 그랬다고 고백한다. 다만 그 덕분에 아주 즐겁고 흥미로운 작업이었다는 사실도 함께 말하고 싶다. 나 또한 다른 분야의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고 배워 나가는 일은 무엇보다 큰 기쁨이다. 앞으로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어떻게 그 세계관을 넓히고 또 성장해 나갈 것인지, 현실과의 접속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또 나아갈 것인지, 그것을 지켜보며 기대하는 것이 아마 나뿐만은 아니리라. 

글. 황인찬(시인)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