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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랜디 서(음악해설가)
디자인. 페이퍼워크(@paperxworks)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현재 영미권 팝 시장에서 컬래버레이션은 대중음악 산업을 이루는 중요한 줄기 중에 하나다. 차트에서도 ‘feat. XXX’이나 OOO X OOO 등의 표기가 포함된 노래 제목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힙합이 이 시대 팝의 주류로 등극한 영향이 크다. 미국 팝으로 한정 지어 생각해볼 때, 과거에도 뮤지션들이 다른 아티스트의 곡에 참여하는 경우는 많았다. 미국 팝의 뿌리가 재즈이고 재즈는 잼(다자간의 즉흥 연주)이 기본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참여를 크레딧에 넣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모타운처럼 공동 생산 체계를 갖춘 팝 음악도 그랬다. 작곡가가 코러스에 참여하는 일은 흔했지만 오로지 작곡가에만 이름을 올릴 뿐이었다. 힙합은 한 곡에 여러 래퍼가 돌아가며 짧은 버스를 불러 채우거나, 유명한 DJ가 비트나 스크래치로 참여했음을 강조하는 등 협업 사실을 알릴 이유가 많았고 또 그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크레딧 명시는 곧 힙합의 ‘리스펙트’ 문화가 산업적으로 번역된 것이나 다름없다.

 

모든 컬래버레이션은 기획이다. 우연한 기회에 만나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대중 앞에 나왔다면 그 순간부터는 단독 퍼포먼스로서는 존재하지 않았을, 새로운 영향 혹은 아티스트 간의 시너지를 볼 수밖에 없다.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지금까지의 팝 시장을 돌아보면 여기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로 신인 가수의 등용문 역할이 대표적이다. 작년 가장 주목받은 신인 중 한 명인 메건 디 스탤리언이 좋은 예다. 그는 카디 비의 ‘WAP’에 피처링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중견 가수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아티스트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기꺼이 플랫폼 역할을 자처하는 일도 있다. 메건 디 스탤리언의 솔로 앨범 ‘SUGA’ 수록 곡 ‘Savage’에 비욘세가 리믹스로 피처링하며 그의 인기 가도에 훈풍을 더해주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에게 이런 역할이 되어준 아티스트로는 스티브 아오키와 할시를 꼽을 수 있다. 방탄소년단은 2017년 빌보드 음악상(이하 BBMA)에 등장한 당시 이미 4년 차 가수였지만, 미국 시장은 이들을 처음 보는 신인처럼 대했다. 2010년대는 유명 EDM DJ가 팝 가수와 협업을 통해 대거 팝 시장에 존재감을 드러낸 시기이기도 하다. 스티브 아오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DJ 중 한 명이자 미국 주류 사회에 잘 알려진 아시아계 혈통이다. 그리고 할시 역시 EDM 프로듀서 체인스모커스의 피처링으로 이름을 널린 알린 가수이자 인터넷을 중심으로 태동한 팝 센세이션 방탄소년단을 이해하는 동시대의 마인드로서 이들을 든든하게 지원했다.

 

피처링은 음악적 진정성을 더하기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요즘은 특히 힙합 비트를 기반한 팝 곡이 그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래퍼를 기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라틴 팝의 영향이 느껴지는 남부 힙합 베이스의 팝 곡 카밀라 카베요의 ‘Havana’는 남부 애틀랜타 출신 영 서그의 도움을 받았다.

 

방탄소년단의 경우, 초기 컬래버레이션을 돌아보면 이런 예시가 있었다. 이들이 미국 LA에 가서 힙합 스쿨 프로그램을 듣는 과정에 워렌 지를 만나는 일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이후 RM의 ‘P.D.D’ 싱글에 워렌 지가 피처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RM은 직접 LA로 날아가 그와 힙합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이는 한국인 래퍼 RM에게 한국 힙합 너머를 생각하고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마지막으로 화제를 모으기 위한 유명 가수끼리의 컬래버레이션이다. ‘Me Against The Music’의 브리트니 스피어스-마돈나처럼 듀오의 형태도 있겠고, ‘Bang Bang’의 제시 제이, 아리아나 그란데, 니키 미나즈처럼 팝 스타의 ‘어벤저스’ 인상을 주는 복수의 모임도 있겠다.

 

방탄소년단의 최신 컬래버레이션 작 ‘My Universe’는 콜드플레이와 방탄소년단 간에 어떤 공감대를 두고 만들어진 곡이다. 컬래버레이션 자체는 일찍이 논의되고 있었으나, 준비하는 기간 중에 2021년 초 독일의 한 DJ가 방탄소년단에 인종차별 발언을 하며 콜드플레이를 언급하는 사건이 있었다. 인종차별은 방탄소년단과 콜드플레이 두 팀 모두 분명하게 반대하는 가치였다. 그만큼 마침내 공개된 컬래버레이션 작품에는 이러한 사회적 맥락이 추가되어 한 곡의 노래보다 더 큰 음악이 되었다.

 

그럼 이제 방탄소년단의 역대 해외 컬래버레이션 곡들을 하나씩 들어보도록 하자.


THANH - ‘Danger (Mo-Blue-Mix)’ 

‘Danger’의 작곡가 중 한 명인 베트남의 싱어송라이터 탄 부이(Thanh Bùi)가 편곡과 보컬로 참여한 리믹스. 베트남은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30대 미만인 ‘젊은’ 나라로, K-팝 같은 유스컬처를 소비하는 인구도 많다. 막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아이돌 방탄소년단에게는 좋은 해외 협업 출발점이 되었다.

Warren G (RM) - ‘P.D.D’ 

방탄소년단은 2014년 방영된 Mnet의 ‘아메리칸 허슬라이프’ LA 힙합스쿨에서 서부 힙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펑크(G-Funk)의 대표 주자 워렌 지를 만났다. ‘P.D.D’는 이듬해인 2015년 RM이 LA를 재방문해 워렌 지와 함께 작업한 곡이다. 스튜디오에서 함께 녹음하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 워렌 지는 RM을 여러 번 칭찬하고 격려했다. 힙합을 하는 아이돌로서 팀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자주 나오던 시기에 이런 지원은 큰 힘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P.D.D’는 믹스테이프 ‘RM’을 내기에 앞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Mandy Ventrice (RM) - ‘Fantastic’ 

2015년 RM은 ‘P.D.D’에 이어 영화 ‘판타스틱 4’와 컬래버레이션한 작업 곡 ‘Fantastic’을 내놓기도 했다. 화제성이 중요한 할리우드 히어로물은 종종 이런 랩 컬래버레이션 곡을 기획한다. 에미넴을 비롯한 아티스트들이 동명의 영화를 위해 내놓은 ‘Venom’ 등이 그 예다. 이때 보컬로 참여한 맨디 벤트리스는 방탄소년단의 해외 컬래버레이션으로는 첫 여성 아티스트였다.


Wale (RM) - ‘Change’ 

왈레와의 인연은 트위터에서 촉발되었다. 한 팬이 2016년 11월 RM의 연습생 시절 왈레의 트랙에 랩을 한 음원을 올렸는데, 왈레가 여기에 “Collab???!” 하는 인용 트윗을 올린 것. 두 사람은 이후 준비와 교류를 거쳐 이듬해 3월에 한국에서 만났고, ‘Change’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진행했다. 이 트랙은 무료 믹스테이프로 발매되었다. 두 사람의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들어볼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Steve Aoki, Desiigner - ‘MIC Drop (Steve Aoki Remix)’ 

‘LOVE YOURSELF 承 'Her'’ 앨범이 발매된 지 2개월 뒤, DJ 스티브 아오키와 래퍼 디자이너가 피처링한 ‘MIC Drop (Steve Aoki Remix)’가 디지털 싱글로 공개되었다. 방탄소년단이 2017년 BBMA에 수상자 자격으로 미국 땅을 밟은 지 약 1년 만이었다. 새 리믹스는 가사의 다수를 영어로 바꾸어 방탄소년단 측이 미국 내의 열렬한 팬덤 인기를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 시장을 의식하고 발매된 첫 싱글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미국 아미는 선물 같은 리믹스 발매에 뜨겁게 호응했고, 이는 방탄소년단 사상 첫 빌보드 핫 100 40위권 진입(최고 순위 28위)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초반 1분여를 디자이너의 버스로 꽉 채운 독특한 구성은 방탄소년단이라는 외국 그룹을 낯설게만 여겼던 사람들에게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게끔 만들었다. 스티브 아오키의 리믹스로 좀 더 트렌디한 일렉트로 트랩의 인상을 갖게 된 이 곡으로, 방탄소년단은 한국 연말 시상식과 미국 TV 방송에서 여러 번 인상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2017년 ‘MAMA in Hong Kong’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첫 만남은 스티브 아오키가 방탄소년단을 먼저 초대하며 이루어졌다. 그는 음악뿐만 아니라 관객이 원하는 쇼맨십을 갖춘 DJ 그리고 대중적인 인기의 흐름을 잘 읽는 프로듀서로 유명하다. 미국 음악 산업계에서는 드물게 활발히 활동하는 아시아계 유명인이기도 하다. 그가 전 세계에서 돌풍을 불러일으키는 한국인 그룹 방탄소년단에 관심을 보이고 협업을 청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방탄소년단의 역사적인 첫 미국 싱글은 이처럼 미국 산업계에서도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과의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이후로도 방탄소년단과 스티브 아오키는 친목을 돈독히 유지하며 두 곡의 컬래버레이션 곡을 더 냈다. 올해 7월에는 리믹스 10억 스트리밍 기념으로 스티브 아오키가 ‘BTS MIC Drop Celebration Megamix’를 내놓기도 했다.

Fall Out Boy (RM) - ‘Champion (Remix)’ 

폴 아웃 보이 측이 리믹스에 랩 피처링을 요청해 성사된 케이스. 당사자인 RM이 브이라이브에서 밝히길, 그가 같은 해 앞서 왈레와 발표한 컬래버레이션 곡 ‘Change’를 듣고 연락하지 않았나 추측한다고 한다. 이처럼 2017년은 컬래버레이션 작업이 거듭되며 인지도가 쌓이고, 그 결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참여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한 해였다.

Nicki Minaj - ‘IDOL’ 

‘LOVE YOURSELF’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IDOL’은 니키 미나즈 피처링 버전이 디지털 싱글로 추가 발매되었다. 니키 미나즈는 대표적인 피처링 강자이기도 하다. 컬러풀한 비주얼 작업으로도 유명한 그는 역시 축제처럼 알록달록한 ‘IDOL’의 뮤직비디오에서도 찰떡 같은 존재감을 뽐냈다(뷔가 선보인 금발과 핑크색 반반 머리는 니키 미나즈가 출세작 ‘Super Bass’에서 선보인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의 뒤로 지나가는 영어 랩 가사의 한글 음독 스크립트는 니키 미나즈 본인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Steve Aoki - ‘전하지 못한 진심’ 

‘MIC Drop’ 리믹스로 방탄소년단과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 스티브 아오키는 이듬해 발매된 다음 앨범 ‘LOVE YOURSELF 轉 ‘Tear’’에도 ‘전하지 못한 진심’으로 이름을 올렸다. 맨 처음 트랙리스트가 공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협업자 스티브 아오키를 보고 이 곡을 EDM 댄스 트랙일 거라 예상했지만, ‘전하지 못한 진심’은 그런 기대를 시원하게 배반하는, 방탄소년단으로서는 극히 드문 장대한 스케일의 발라드 곡이었다. 이런 의외성 역시 대중음악가 스티브 아오키답다고 볼 수 있다. 이 곡은 방탄소년단의 ‘LOVE YOURSELF’와 ‘SPEAK YOURSELF’ 투어에 세트리스트로 포함되어 많은 나라에서 불리웠다.


HONNE (RM) - ‘seoul’ 

RM이 트위터를 통해 2016년 영국의 듀오 혼의 ‘Warm On A Cold Night’를 언급했고, 혼이 여기에 관심을 보이며 인연이 시작된 경우다. 2016년이면 방탄소년단이 인터넷에서 전 세계급 라이징 스타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하던 때였지만, 아직 영미권에서는 미디어의 주목을 끌기 전이었다. 혼은 한국에서 특히 큰 사랑을 받는 팀으로 자연히 한국 가수인 방탄소년단에도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2018년 RM의 두 번째 믹스테이프이자 플레이리스트 ‘mono.’의 ‘seoul’에 프로듀싱으로 참여하며 마침내 긴 교류 끝에 결과물을 공개했다. 영미권에서의 자리를 막 굳혀가고 있었던 방탄소년단에게는 타이밍상 좋은 지원이 되기도 했다.


Steve Aoki - ‘Waste It On Me’ 

방탄소년단과 가장 많은 협업 작업물을 낸 해외 아티스트는 스티브 아오키다. 이들의 세 번째 컬래버레이션 곡 ‘Waste It On Me’는 2018년 10월 디지털 싱글로 선발매되었고, 이후 스티브 아오키의 ‘NEON FUTURE III’에 수록되었다. 코미디언 겸 배우 켄 정이 주인공으로 분한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스티브 아오키 본인과 그의 동생인 모델 겸 배우 데본 아오키, 지미 오 양, 한국계 배우 제이미 정 등이 출연했고, 한국계 뮤지션 겸 비주얼 아티스트인 조 한이 감독을 맡았다. 마치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 내 아시아인 셀럽 모임 같다. 2018년은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성공하며 미국 대중문화에서 아시아인 대표성(Asian Representation)이 약진한 원년과도 같았다. 방탄소년단의 부상은 이와 같은 흐름에 맞물렸거나 혹은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였다.

 

Honne (RM) + BEKA - ‘Crying Over You’ 

RM의 믹스테이프에 혼이 참여한 후, 주거니 받거니 하듯 혼의 ‘Crying Over You’ 리믹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mono.’의 ‘seoul’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작업했다고 한다. RM의 랩 버스는 곡의 후반에 배치되어 마지막 코러스 전 곡의 페이스에 박차를 가하는 역할을 한다.

Halsey -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 

방탄소년단이 할시를 처음 만난 건 이들이 2017년 빌보드 음악상(이하 BBMA) 톱 소셜 아티스트를 받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때였다. 이미 소셜 미디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방탄소년단에 관심을 갖는 셀럽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할시는 인터넷 문화에 밝았고, 웹상에서의 방탄소년단의 위상과 영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팬이기를 자처하는 양자의 만남은 여타 아티스트끼리의 만남보다 특별했다.

 

친분은 ‘MAP OF THE SOUL : PERSONA’ 앨범 타이틀 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 컬래버레이션으로 이어졌다. 2019년 4월 공개된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 할시는 미리 익혀온 안무를 방탄소년단과 함께 선보이며 한 프레임 안에 어우러져 등장한다. 이후 2019년 BBMA에서 합동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는 당시로서는 한국어 곡으로는 드물게 미국 라디오 에어플레이 면에서 선전했다. 여기에는 2016년 체인스모커스에 피처링한 ‘Closer’나 2018년 본인의 솔로 히트 곡 ‘Without Me’가 라디오에서 큰 사랑을 받은 할시의 역할이 컸다. 전 세계에서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보이 밴드와 트렌디한 보컬의 라디오 프렌들리 솔로 여성 가수의 무해한 디스코팝 합작은 다른 나라의 언어로 된 노래는 쉽게 뚫기 어려운 레거시 미디어에 호기심을 안길 만한 적당한 프로젝트였다. 이렇게 방탄소년단은 이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벽 하나를 또 넘을 수 있었다. 할시는 방탄소년단과의 협업으로 미국을 넘어 국제적으로 팬덤을 확장할 수 있었으니 상부상조였다.

 

이 시기 할시는 여러 인터뷰에서 방탄소년단과 그들의 팬덤 아미를 자주 언급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아시아 출신’의 ‘보이 밴드’ 방탄소년단에 차별적이거나 부정적인 함의를 내비치는 인터뷰어들 앞에서는 적극적으로 오해를 바로잡거나 지적하기도 했다. 평소에도 할시는 그의 진보적 정치관으로 유명한 셀럽이다(지난 미 대선 때는 버니 샌더스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인터뷰 시리즈를 진행하기도 했다). 아시아인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대화 자리에서는 언제나 지체 없이 그 부분을 짚어냈고, 그런 모습은 특히 방탄소년단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직까지 많은 팬들이 그를 ‘아워 걸(Our girl)’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Charli XCX - ‘Dream Glow’ / Zara Larsson - ‘A Brand New Day’ / Juice WRLD - ‘All Night’ 

넷마블을 통해 내놓은 ‘BTS WORLD’는 방탄소년단이 긴 시간 촬영한 게임 콘텐츠임과 동시에 화려한 사운드트랙 라인업으로도 큰 관심을 모았다. 일주일에 한 곡씩 한 달간 총 네 곡이 공개되었고, 이 중 세 곡에 유명 해외 가수와의 컬래버레이션이 있었다. 영국 출신인 찰리 XCX, 스웨덴 출신 자라 라슨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된 미국 출신의 주스 월드 세 사람은 모두 주목받는 젊은 가수였다. 이 세 가수는 각자 트랙에서 매력을 뽐내며 정식 앨범에 가까운 퀄리티를 완성시키는 데에 일조했다.

Lil Nas X - ‘Old Town Road (Seoul Town Road Remix)’ 

‘Old Town Road’는 인디 래퍼 릴 나스 엑스를 지금에 위치에 있게 한 시작점이자 2019년을 휩쓴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가장 미국, 백인적인 장르라 일컫는 컨트리와 불량하고 쿨한 트랩의 믹스라는 색다른 시도 탓에 빌보드 컨트리 차트에 올라갔다가 제외되는 해프닝마저 겪은 곡이다.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리믹스 컬래버레이션은 이 곡에 화제에 화제를 더했다. RM은 공식 리믹스 4종 중 마지막 트랙 ‘Old Town Road (Seoul Town Road Remix)’에 참여했다. 아시아 출신 그룹인 방탄소년단에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던 그래미였지만, 방탄소년단은 이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릴 나스 엑스와 함께 역사적인 첫 그래미 어워드 무대를 가질 수 있었다.

Becky G (j-hope) - ‘Chicken Noodle Soup’ 

제이홉의 개인 믹스테이프로 발매된 ‘Chicken Noodle Soup’는 리메이크 곡이다. 2006년 발매된 웹스타와 영비의 원곡은 양팔을 닭의 날개처럼 파닥이거나 두 줄 줄넘기(Double Dutch)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재밌는 동작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시기 유행한 힙합 댄스는 대부분 흑인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졌고 그래서 ‘Chicken Noodle Soup’의 리메이크 작업이란 자기 뿌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 노래와 춤의 뿌리에 역시 리스펙트를 보내는 해석이 중요했다. 제이홉의 ‘Chicken Noodle Soup’는 라티넥스 출신 뮤지션 베키 지와 함께하면서 여기에 다양성의 레이어를 한 겹 더 씌우는 데에 성공했다. 이 곡은 한국 광주 출신의 스트리트 댄서로 시작한 제이홉의 한국어 랩, 3세대 남미계 여성 아티스트로 괄목할 만한 커리어를 쌓은 베키 지의 스페인어 랩 그리고 영어 보컬 버스가 교차하는 3개 국어의 컬래버레이션이다. 자연스럽게 힙합이 중요시하는 출신지(Home)를 향한 사랑과 일가를 이룬 자기 노력의 자랑이 묻어난다. 이 곡은 힙합의 종주국 미국의 바깥에서 미국 안을 향하는 섬세한 시도로 많은 사람에게 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Lauv - ‘Make It Right’ 

에드 시런이 제공한 곡 ‘Make It Right’는 앨범 곡으로 먼저 발매된 후, 후속으로 라우브가 피처링한 리믹스가 발매되었다. 라우브와의 인연은 그가 방탄소년단의 웸블리 공연 백스테이지로 찾아오면서 시작되었고, 컬래버레이션하는 사이까지 발전했다. 라우브는 칠(chill)한 음악으로 스포티파이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신진 아티스트였다. 이 영향이 라디오 등 기성 매체에까지 미쳐, 라우브가 피처링한 ‘Make It Right’ 역시 그때까지와 비교해 준수한 라디오 방송 점수를 올렸다.


Halsey (SUGA) - ‘SUGA’s Interlude’ 

호혜에 기반한 사이답게,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 이후 할시의 음반에 방탄소년단이 피처링을 하기도 했다. ‘Manic’의 수록 곡 ‘SUGA’s Interlude’는 방탄소년단의 해외 아티스트 곡 피처링으로는 최초로 슈가 혼자 참여했다. 영어권 가수의 앨범 수록 곡에 한국어 랩이 쓰였다는 점을 특기할 만하다. 처음 할시로부터 참여 요청이 들어왔을 때, 슈가는 왜 영어 가사를 쓰지 않는 자신을 선택했는지를 궁금해했다고 한다. 할시는 슈가의 또 다른 자아인 어거스트디(Agust D)의 믹스테이프를 인상 깊게 들었다며, 내면에 집중하는 자기 고백적인 가사를 이 곡에도 써주길 원한다고 설명했고, 슈가는 여기에 납득해 곡에 참여하게 되었다. 방탄소년단의 연이은 성공과 비-영어에 열린 자세를 취하는 일부 영어권 아티스트들이 늘며, 슈가의 한국어 랩 컬래버레이션은 맥스의 앨범 참여 등으로 이어졌다.


Sia - ‘ON’ 

‘MAP OF THE SOUL : PERSONA’의 타이틀 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에서 할시의 도움을 받았다면, ‘MAP OF THE SOUL : 7’의 타이틀 곡 ‘ON’에는 호주 출신 싱어송라이터 시아가 목소리를 보탰다. 협업의 형태로 보자면 할시 쪽보다는 오리지널 버전에 피처링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합친 니키 미나즈와의 작업과 더 가까웠다. 본래도 방송 활동을 자제하는 시아라는 아티스트의 특성상 양쪽이 만나 인터뷰를 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나 ‘Make it Right’ 때와는 달리, ‘ON’은 미국 라디오 방송을 그렇게 타지는 못했다. 라디오 프렌들리 팝 가수의 협업이 꼭 에어플레이 필승 카드는 아니라는 것은 이렇게 확인할 수 있었다.

Lauv - ‘Who’ 

‘Make It Right’ 리믹스로 함께한 라우브와는 이후 그의 2020년 앨범 ‘How I’m Feeling’의 수록 곡 ‘Who’로 한 차례 더 호흡을 맞췄다. 이 컬래버레이션에는 방탄소년단에서 정국과 지민 두 명이 참여해 나른하면서도 격정적인 곡을 이상적으로 불러냈다. 정국과 지민이 섬세한 표현에 능한 R&B 싱어라는 것을 보여준 곡이다.

MAX (Agust D) - ‘Burn It’ 

슈가가 또 다른 랩네임 어거스트디로 내놓은 두 번째 믹스테이프 ‘D-2’에는 다양한 아티스트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그중 눈길을 끄는 이름은 해외 가수 맥스였다. 슈가는 발매 후 브이라이브에서 이 곡은 애초부터 미국 가수가 불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찾던 중 맥스와 연락이 닿았고 지금의 ‘Burn It’이 되었다. 슈가는 특히 맥스가 한국어 가사의 독음을 받아다 코러스 트랙을 만들기도 하는 등 많은 정성을 기울여준 것에 큰 감사를 표했다.

Jawsh 685 and Jason Derulo - ‘Savage Love (Laxed - Siren Beat) (Remix)’ 

‘Savage Love (Laxed - Siren Beat)’는 2010년대 히트 가수에 머물러 있던 제이슨 데룰로를 부활시킨 곡이자 사모아-쿡섬계 조시 685를 세계적인 프로듀서의 반열에 올린 곡이다. 안무의 틱톡 바이럴 힘을 받아 빌보드 핫 100 상위를 점하던 이 곡은 방탄소년단의 피처링이 마지막 한끗으로 작용해 마침내 조시 685의 커리어 첫 정상 곡이자 방탄소년단의 두 번째 빌보드 핫 100 1위 곡이 되었다. 이는 방탄소년단의 달라진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MAX (SUGA) - ‘Blueberry Eyes’ 

슈가는 ‘Burn It’으로 함께한 맥스의 ‘Color Vision’ 앨범 수록 곡으로 또 한 번 한국어 랩 피처링에 나섰다. 처음 맥스 측에서는 ‘New Life’라는 곡에 참여를 의뢰했는데, 슈가는 본인이 그 곡에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며 한 차례 고사했다고 한다. 이어 맥스가 앨범 전체를 그에게 보냈고, 슈가가 직접 골라 작업하기 시작한 곡이 ‘Blueberry Eyes’다. 슈가와 맥스 두 사람은 개인 시간에 스포츠 경기를 함께 관람하거나 만나서 대화하는 등 이미 친분을 쌓아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고 한다. 맥스는 뮤직비디오에 슈가의 별명인 고양이를 등장시키거나 그의 한국어 랩 버스를 적극 익혀 라이브에서 부르는 등 많은 애정을 보였다. 


Megan Thee Stallion - ‘Butter (Remix)’ 

방탄소년단은 여름을 마무리하며 메건 디 스탤리언의 피처링을 더한 ‘Butter’ 리믹스를 내놓았다. 이 곡은 특이하게도 레이블의 홍보가 아닌 메건 디 스탤리언과 그의 레이블 1501 서티파이드 엔터테인먼트(이하 1501)의 법정 공방을 통해 먼저 알려졌다. 메건 디 스탤리언의 주장에 따르면 1501는 메건 디 스탤리언을 발탁하고 데뷔 시절부터 관리해왔으나, 그의 인기가 높아지자 아티스트의 영향력을 제어하려 했다고 한다. 아직 소송이 진행 중이라 확언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점은 1501이 메건 디 스탤리언의 음원 발매에 제동을 걸었고 메건 디 스탤리언은 법원에 긴급 구제 신청을 넣어 어렵게 곡을 발표해왔다는 것이다. 히트 곡 ‘Savage’가 수록된 앨범 ‘Suga’도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Butter’ 역시 발매 직전 구제 신청이 받아들여져 예정된 날짜에 발매될 수 있었고, 방탄소년단은 이 리믹스로 빌보드 핫 100 1위를 1주 추가할 수 있었다. 전 세계 아미들이 이 소송에 관심을 가지며 정보 공개된 법적 문건을 함께 읽었고, 이를 통해 방탄소년단 측이 협업 시 창작자를 존중하는 계약을 하려 애쓴 흔적이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에는 방탄소년단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뉴욕의 UN 본부를 방문한 후 메건 디 스탤리언과도 잠시 회동을 가진 영상이 공개되었다. 제이홉, 지민, 정국이 메건 디 스탤리언의 랩 위에 춤춘 영상 이야기를 나누며 안무 손동작을 함께 배워보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Coldplay - ‘My Universe’ 

방탄소년단은 과거부터 좋아하는 아티스트로 콜드플레이를 자주 언급했다. 포스트 브릿 팝의 기대주로 데뷔했던 콜드플레이는 시간이 지나며 점차 아레나형 밴드로 탈바꿈했고, 음악은 록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흡수하며 거대 관중과 함께 부를 수 있는 앤섬을 다수 만들어왔다.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며 점차 홀에서 아레나로, 아레나에서 스타디움으로 공연 장소 규모가 커져가던 방탄소년단으로서는 참고할 만한, 영향력이 있는 아티스트였을 것이다. 두 팀 간에 컬래버레이션 이야기는 진작부터 오가고 있었다. 여기에 티저 공개를 하듯, 방탄소년단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2021년 MTV Unplugged 프로그램에서 콜드플레이의 ‘Fix You’를 커버했다.

 

많은 사람들이 무대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독일 DJ 인종 혐오 발언 사건’은 상징적이었다. 콜드플레이의 팬을 자칭한 이 DJ는 ‘Fix You’ 무대 비평을 위시해 한국인 그룹 방탄소년단에 대한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럽과 미 대륙을 중심으로 높아진 아시아인 혐오 분위기 속, 전 세계급 인기  가수인 방탄소년단도 혐오를 피해가지 못함을 보여준 이 일은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했다. 독일을 비롯한 전 세계 아미들이 그를 비판하며 사과 요청을 했고, 랠리가 이어져 나중에는 당시까지 함께 협업했던 아티스트들, 스티브 아오키, ‘Euphoria’ 등을 작곡한 DJ 스위블, 할시, 라우브 등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방탄소년단이 입은 혐오 발언 피해 보도에 소극적이었던 ‘빌보드’지 등도 여타 아티스트들의 연대 끝에 기사를 내놓았다.

 

방탄소년단은 상기한 사건 이전, 아시아인 여성이 다수 희생 당한 애틀랜타 총격 사건에 애도와 분노의 입장을 표명한 바 있었다. 콜드플레이 역시 1996년 데뷔한 이래 여러 차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놓아왔다. 이들의 협업 곡 ‘My Universe’는 ‘독일 DJ 인종 혐오 발언 사건’ 전부터 논의된 작업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맥락 때문에 “And they said that we can’t be together / Because, because we come from different sides”라는 가사가 더욱 큰 울림을 주게 되었다. 음악적인 지향점이 비슷한 두 밴드의 만남이기에 결과물이 더욱 자연스러웠다고 볼 수 있겠다. ‘My Universe’는 콜드플레이에게 밴드 커리어 사상 첫 번째 핫 100 핫샷 데뷔라는 선물을 안겼고, 지금까지 순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