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어느 쪽 얼굴을 자주 쓰냐는 포토그래퍼의 물음에 바로 “왼쪽”이라 답하며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그렇게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정원이 스스로에 대해 말했다. “아이돌로서의 삶이 행복하다.”라고.
마음(반려견)이는 잘 지내고 있나요?
정원: 얼마 전 눈이 올 때 부모님이 마음이가 옥상에서 뛰노는 사진을 보내주셨어요. 엄청 신났더라고요. 마음이는 누나가 유기견 보호 앱을 보다가 데려오게 됐어요.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고 누나도 학교에 가면 할머니가 맨날 혼자 계셨거든요. 근데 이제 마음이가 있으니까 덜 심심해하셔서 좋아요.
숙소에서 지내다 보면 마음이가 보고 싶을 때가 있겠어요.
정원: 촬영장에서 강아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가 보고 싶더라고요. 마음이는 본가에 갈 때마다 자라 있어요. 진짜 빨리 커요. 요즘 특히 성장기라 그런지 정말 많이 먹는대요.
‘EN-loG’에서 마음이 나이가 딱 ENHYPEN과 같다고 소개하기도 했어요.
정원: 팀이 벌써 1년 차라는 게 되게 신기해요. 특히 요즘 시상식 준비를 하면서 시간이 진짜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습생 때 찍었던 프로필 사진을 봤거든요. 지금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어요.
2021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이하 ‘MAMA’)에서 ‘남자 신인상’과 ‘월드와이드 팬스 초이스 톱 10’을 수상했을 때도 팀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어요.
정원: 첫 2관왕이라 놀라고 감사했어요. 연말 시상식을 준비하면서 퍼포먼스디렉팅팀이 엄청 많이 고생하셨거든요. 그래서 꼭 퍼포먼스디렉팅팀을 언급해야지 생각하다 ‘멜론 뮤직 어워드(이하 ‘MMA’)’ 수상 소감 때 시혁님을 빠트린 거예요. 너무 죄송해서 ‘MAMA’ 때엔 더 집중해서 감사한 분들을 다 언급하려고 했어요. 사실 작년과 달리 대면으로 시상식 무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엔진분들과 다른 관객분들에게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즐겁고 행복했어요.
그런 무대에 대한 호응을 봤을 땐 기분이 어땠나요?
정원: 기분 너무 좋죠. ‘MAMA’ 때는 좀 잘한 것 같아요.(웃음) 연습 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느낌이 안 왔는데 관객분들 앞에서 딱 갑자기 뭔가가 폭발한 것 같아요. 무대에서 강하게만 한다면 다른 디테일한 부분들이 무너질 수도 있었는데, 연습한 것보다 더 잘한 것 같아서 조금 만족스럽습니다. 다만 무대에서 동작이 약간 깔끔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런 것들이 좀 더 잡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들을 대면한 뒤에는 무대에 대한 마음가짐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정원: 정말 달라요. 이 무대에서 내 모든 걸 보여주자고 생각했어요. 관객분들이 앞에 있으니까 저도 모르게 힘이 훨씬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땀이 정말 많이 났어요.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오프라인 공연이 일상화돼 있던 때 활동하셨던 선배님들이 지금 얼마나 힘드실지 상상조차 안 돼요. 저희는 비대면일 때 데뷔했으니 그나마 지금 상황이 익숙한데, 그분들은 정말 허전하셨을 것 같아요. 올해 관객분들을 직접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제가 하는 일에 대해 맛은 본 것 같아요. 완전히 다른 직업을 갖게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내가 하는 일이 이런 것이었구나.’를 실감했어요.
관객들과 대면하는 무대가 정원 씨에게 확실한 전환점이 됐네요. 콘셉트 포토에서도 데뷔 초를 연상시키는 ‘YET’과 이번 앨범 ‘DIMENSION : ANSWER’를 나타내는 듯한 ‘NO’에서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줘요.
정원: ‘YET’ 촬영지가 강원도 양 떼 목장이었거든요. 가을이었는데도 춥고 바람이 정말 많이 불어서, 자세히 보시면 머리가 망가져 있을 텐데 그게 실제 상황입니다.(웃음) 팬분들이 좋아해주시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서 웃으며 촬영했던 것 같아요. ‘NO’는 파격적이었죠. 여러분께 저희 콘셉트를 설명드리자면, 저희가 여태까지 해온 모든 것들이 축복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엄청난 부담감과 억압이란 걸 깨달았다는 설정이에요. 타이틀 곡 ‘Blessed-Cursed’는 그런 억압들을 무시하고 나의 길을 가겠다는 콘셉트를 담고 있어요. 콘셉트 포토에서 곡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반영해서 촬영한 건 처음인 것 같아서 반응이 기대돼요. 오늘(26일) 자정에 공개됩니다.(웃음)
타이틀 곡 ‘Blessed-Cursed’의 첫인상은 어땠어요?
정원: 일단 딱 들었을 때부터 춤이 진짜 ‘대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Tamed-Dashed’는 처음에 멜로디가 되게 좋아서 그냥 노래 자체가 좋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Blessed-Cursed'는 곡 자체가 파워풀해서 춤이 먼저 생각났던 것 같아요. 역시나 예상이 맞더라고요. 코러스에는 좀 더 강렬하게 가자는 시혁 PD님 의견으로 발차기가 추가됐어요. 그만큼 힘들지만 멋있는 춤이 나온 것 같아요.
‘Blessed-Cursed’는 안무뿐 아니라 곡에서도 거칠고 힘 있는 목소리를 들려줘요. 녹음 과정은 어땠나요?
정원: 영어 가이드가 진짜 멋있었어요. 프로듀서님이 영어 가이드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자고 하셨는데, 한국어와 영어는 발성이나 발음할 때 입 공간 쓰는 것도 다르잖아요. 정말 여러 번 힘들게 녹음했어요. 'Blockbuster (액션 영화처럼) feat. 연준 of TOMORROW X TOGETHER' 녹음을 하면서 우연히 목을 긁는 소리를 내봤는데 의외로 좋았거든요. ‘Blessed-Cursed’에서도 적절하게 쓰게 됐어요. 'Tamed-Dashed'가 높은 음역대에서 감정을 밝게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그냥 완전히 제 에너지 자체를 뽑아냈던 것 같아요.
수록곡 ‘Polaroid Love’는 안무 없이 부르는 곡이다 보니 보컬 표현에 집중해야 했을 것 같아요.
정원: 우선 주제 자체가 딱 보정 없이 그 사랑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는 러블리한 노래잖아요. 최대한 행복하게 불렀던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내 마음을 보여주는 거니까 보컬도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 같아요. 음역대가 저와 맞아서 좋기도 했고요.(웃음)
‘Polaroid Love’의 노랫말은 사랑이란 감정을 폴라로이드 사진에 빗대어 표현해요. 정원 씨는 어떤가요? 직접적으로 애정 표현을 하는 편인가요?
정원: 사실 사랑한다는 말은 살면서 많이 안 해본 것 같아요. 제가 특히 더 안 하는 편인데. 엔진분들에게 글로 전할 때 말고는 없는 것 같고. 그래도 평소에 좋다는 감정 표현은 좀 해요. ‘좋아해’라는 말보다는 평소에 나오는 행동이나 자연스러운 표정들로 표현되는 것 같아요.
위버스를 보니까 ‘밥’을 되게 중요시 하시더라고요. 엔진들의 ‘맛점’을 기원하고 ‘점메추(점심 메뉴 추천)’를 묻는 등 점심 식사를 자주 챙겨요.
정원: 대면 팬 사인회를 하면서 끼니를 거르는 엔진분들이 많다는 걸 알았어요. 저희 때문에 굶고서라도 ‘팬싸’에 오신 건데, 사실 먹는 건 사는 데에 중요하잖아요. 그것 때문에라도 자주 말하는 것 같아요. 또 저희가 점심 메뉴를 잘 못 고르는 편이라 실제로 엔진분들이 추천해주신 메뉴를 먹곤 해요. 고기류는 다 좋아하고요. 하이브 식당 밥도 굉장히 맛있거든요.(웃음) 밥이랑 디저트 배는 따로 있어요. 젤리나 초콜릿도 되게 좋아해요.
‘위버스 매거진’과의 지난 인터뷰에서 “앞으로 더 힘들어지면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 같다.”라고 했는데, 디저트가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정원: 해결책을 찾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힘든 일은 언젠가는 지나가니까.’, ‘이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아직 못 견딜 정도로 힘든 순간은 없다.’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딱 그 힘든 지점이 넘어가는 것 같아요. 막 이걸 이렇게 해결해야지 하진 않고, 그냥 지나갈 때까지 견뎌요. 아, 그게 제 해결책인가봐요. 스트레스 받을 땐 침대에서 멍 때리고 있는 게 최고더라고요.(웃음) 산책도 좋죠. 초겨울쯤 약간 추울 때가 좋아요. 반팔 티에다가 패딩 하나 걸치고 산책 한 바퀴 돌고 오면 딱 시원해지거든요. 음악도 안 듣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걸어요.
스스로에게 엄격한 만큼 리더 역할을 할 때에도 그런 편인가요?
정원: 사실 그런 소리를 좀 듣긴 해요. 단체 연습할 때도 기준을 높게 잡고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성훈이 형이랑 잘 맞는 것 같아요. 성훈이 형은 자기 기준이 아마 저보다 더 높을 거예요. 연습할 때 계속 꾸준히 하니까 리더로서 고마웠어요. 연습은 주로 안무 연습실에서 멤버들과 다같이 춤 연습을 해요. 또 개인적으로 시간이 나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을 보충하는데, 저는 요즘에 주로 보컬실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어요.
무대 밖의 자신에게도 냉정한 편인가요?
정원: 네. 하지만 뭔가 체계적으로 계획은 해도 행동으로 옮기기는 힘들어해요. 얼마 전에 ‘필로소피 랩’이라는 책을 읽어보려고 샀는데, 딱 펴보니까 너무 졸린 거예요.(웃음) 어렵더라고요. 얼마 못 읽어서 지금도 가방 안에 있어요.
솔직하네요.(웃음) 꾸며내기보다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를 좋아하나 봐요. 옷차림도 워낙 편안한 걸 좋아해서 데뷔 초엔 청바지가 불편할 정도였다고요.
정원: 맞아요. 그래도 이젠 공석에서는 어느 정도 꾸며 입으려고 하고, 연습만 있는 날에는 진짜 편하게 입어요. 얼마 전에 털 달린 크록스(신발)를 샀는데 정말 편해서 요즘 ‘최애템’이에요. ‘MMA’ 때 입은 회색 면바지 그리고 후드 티를 입으면 정원 룩이 됩니다.(웃음) 연습복은 따로 있고 평상복은 그렇게 입고 다녀요.
상의 소매나 후드를 잡아당기는 등 ‘습관 부자'로 팬들 사이에서 유명해요. 무대에 오르기 전에도 꼭 해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습관 같은 게 있나요?
정원: 인이어 볼륨을 꼭 만져요. 볼륨 체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날 때도 있고 안 날 때도 있거든요. 계속 만지고 있다가 리허설할 때 소리가 들리면 바로 조절해요. 사실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데, 어느 정도 맞춰놔야 안심이 돼요. 열심히 준비한 무대를 그거 하나로 망치면 아쉽잖아요.
주로 대회에 출전하는 운동선수들이 그런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한 습관을 갖고 있잖아요. 정원 씨는 앞선 인터뷰에서 “나에 대한 신뢰를 잃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정원: 제가 되게 오글거리게 말했네요.(웃음) 아마 무조건 해야 되는 일인데, 그걸 알면서도 약간 하기 싫어하는 상황을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닐까요? 지금은 되게 재밌고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 나중에 그런 마음이 들까 봐 무서운 것 같아요. 지금 제일 무서운 건 다치는 거요. 다들 다치지 않기를 바라요.
올해 코로나19를 앓아 치료를 받기도 했죠.
정원: 다른 것보다도 아무것도 못한다는 게 너무 무섭더라고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보여드리기로 한 것들을 못한다는 게 너무 싫었어요. 요즘에는 원하지 않아도 갑자기 상황이 변할 수도 있는 거니까.
격리 해제 뒤 지난 11월 ‘EN-CONNECT : COMPANION’에서 9개월 만에 엔진들을 만나게 됐을 때 더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당시 “오늘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정원: 2월에도 대면 때는 정말 첫 대면이다 보니 아무것도 모를 시절이었어요. 한 번 엔진분들을 만나고 나서 다시 팬 미팅을 하니까 그제서야 조금 느낌이 오더라고요. 첫 무대부터 저도 모르게 힘을 너무 써버려서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연습할 때도 되게 설렜어요. 특히 ‘Polaroid Love’는 처음으로 춤을 안 추고 팬분들이랑 직접 만나면서 돌아다닐 수 있었던 무대여서 다들 기분 좋게 노래했던 것 같아요. 제스처도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Polaroid Love’ 무대 중 팬들 한 명 한 명을 가리키며 눈에 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정원: 좋았습니다.(웃음) 그날을 기억하고 있어요.
‘1년 뒤 나에게 from.2020’에서 2020년 8월의 정원 씨를 보며 당시 생각하던 초심과 지금 생각하는 초심의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고 말했어요. 어떻게 달라졌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정원: ‘춤, 노래를 열심히 하자.’에서 ‘즐기면서 하자.’로 바뀐 것 같아요. 데뷔 전에는 그냥 춤, 노래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데뷔하고 나니까 이렇게 인터뷰도 있고 화보나 콘텐츠 촬영도 많고, 팬분들과 소통도 하고 다양한 활동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걸 왜 해야 돼?’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수긍하게 되고 즐기게 됐어요. 버스 기사님이 버스를 운전하는 것처럼, 아이돌이니까 아이돌이 하는 일을 하는 거죠. 재밌게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나중에 초심을 잃고 억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딱 1년 전쯤 매거진 데뷔 인터뷰 때 정원 씨는 팀과 엔진을 각각 ‘인생’과 ‘에너지’라고 표현했어요. 초심의 뜻이 달라진 것처럼 ‘ENHYPEN’과 ‘엔진’도 변화했나요?
정원: 그땐 뭘 모르는 상태로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사실 둘 다 제가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는 이유죠. 우리 팀, 멤버들은 제 인생에서 없다는 걸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당연한 사람들이 됐어요. 그리고 엔진은 ENHYPEN의 존재 이유이지 않을까요? 봐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무대를 이렇게 열심히 준비할 수 있는 거니까요.
당시 ‘1년 뒤 자신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지금 뭘하고 있는지 제일 궁금할 것 같다.”였어요.
정원: 일단 과거의 저에게는 “요즘 시상식과 위버스 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할 것 같아요. 1년 뒤 저에게는 내년에도 시상식을 준비하고 있을 테니 당연히 힘들겠지만, 행복한지 물어보고 싶어요. 지금은 행복하죠. 1년 뒤 저도 여전히 그런지 궁금해요.
1년 뒤에도 시상식을 준비하고 있겠군요.(웃음) 그럼 조금 더 먼 미래의 정원 씨는 뭘하고 있길 바라나요?
정원: 개인적으로는 가족들, 멤버들이랑 여행을 가고 싶어요. 생각해보니 ‘I-LAND’부터 지금껏 카메라 없는 여행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거든요. 리더로서는 ENHYPEN 멤버들이 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들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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