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훈은 9세 때부터 시작해 ENHYPEN으로 데뷔한 그해, 2020년 2월까지 피겨스케이트를 탄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이기도 하다. 2년간 선수 생활과 연습생 생활을 병행하면서 데뷔 직전까지 피겨스케이팅을 놓지 않았을 만큼 피겨스케이트는 어린 시절의 전부이기도 했다. 그래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며칠 전, 성훈에게 피겨스케이팅에 관한 이야기를 청했다. 성훈의 말 속에는 자신이 힘껏 무언가에 몰두했던 그 시절에 대한 사랑과 지금도 은반 위에 서 있는 이들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었다.
피겨스케이팅은 기술과 예술의 융합
성훈: 피겨스케이팅은 예술과 스포츠, 두 개의 다른 분야가 결합된 느낌의 종목이기 때문에 매력적인 것 같아요. 링크장이 하얗다 보니 무대 같은 느낌도 나고, 어떻게 보면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예술 같기도 한데, 점프나 스핀 같이 집중해서 봐야 하는 기술들을 점수로 매기는 스포츠이기도 하니까요. 그만큼 볼거리도 풍부하고요.
알고 보면 더 좋을 것들
성훈: 주요 종목으로 싱글, 페어, 아이스 댄스로 나뉘는데 각각의 종목마다 적용해야 하는 기술이 달라서, 이런 기술들과 볼거리의 차이에 집중해서 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그리고 한 종목에 쇼트 프로그램, 프리 프로그램의 두 점수를 합산해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보니 프리 프로그램에서는 이겼지만 쇼트 프로그램에서는 져서 미묘한 차이로 결과가 뒤바뀔 수 있는 점도 재미 요소인 것 같고요. 또 물론 선수들이 연습을 정말 완벽하게 해서 실수를 줄일 수도 있었겠지만, 혹시라도 너무 긴장하거나 링크장 환경에 문제가 있다면 미묘한 영향이 있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만약에 실수를 하더라도 끝까지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중간에 넘어지거나 하면 엄청 큰일이 난 것 같이 느낄 수 있는데, 다시 다른 데서 완화시키면 되니까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피겨스케이트를 처음 만났던 때
성훈: 체험 삼아 아이스링크장에 가서 다른 분 스케이트를 빌려 처음으로 피겨스케이트를 탄 기억이 있어요. 제가 원래 아이스하키를 먼저 했고, 중간에 쇼트트랙도 잠깐 해서 기본적으로 스케이트를 타는 법은 알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익숙하게 탔는데, 확실히 느낌이 다르긴 하더라고요. 스케이트를 타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작이나 기술로 여러 가지를 구사할 수 있고, 장비가 없어서 몸도 더 가볍기 때문에 확실히 저랑 더 맞는다는 느낌이 좀 들었어요. 그날 부모님이 어떠냐고 물어보셨는데 재밌는 것 같다고, 조금만 더 해보고 싶다고 얘기해 바로 취미반에 등록해서 타기 시작했죠. 기본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다음부터는 금방금방 실력이 늘어서 선수반으로 올라가고, 급수를 딴 후에 경기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피겨스케이트에 빠지다
성훈: 제가 원래는 피겨스케이트에 진심이라기보다는 그냥 재밌어서 하는 느낌이었어요. 처음에 아이스하키를 하게 된 데엔 알려진 대로 사회성을 기르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제가 아기 때부터 아빠랑 한강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자주 탔었던 이유도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스케이트를 자체를 그냥 재밌게 쭉 해오다가, 전국동계체전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이후부터 ‘이 길로 계속 가도 되겠다. 더 잘하고싶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전에는 재밌기도 하고 선생님이 무서워서(웃음) 뭔가 얼떨결에 계속 하게 된 느낌도 조금 있었는데, 경기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제 자신이 잘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리고 경기를 하고 나면 그동안 훈련했던 결과가 딱 나오잖아요. 경기를 잘해내고 좋은 결과가 나올 때마다 너무 뿌듯하고,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기술들을 하나하나 익혀가는 재미도 있었고요. 사실 기술을 익히는 과정은 되게 힘들지만, 계속 안 돼서 연습했던 게 어느 순간 딱 되면 기분이 정말 엄청 좋거든요. 짜릿하고. 그런 맛에 계속 했던 것 같기도 해요.
몸의 감각
성훈: 처음 배울 때는 자세부터 하나하나씩 디테일을 다 잡고 하지만, 몸에 다 익히고 나서 점프를 하거나 할 때는 모든 게 너무 한순간이기 때문에 전부 머릿속에서 계획하고 컨트롤을 할 수가 없어서 내 몸이 가는 대로, 감에 맡기고 해야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조금만 쉬어도 그 느낌을 금방 잊기 쉬운데다 저는 하루만 쉬어도 몸이 무거워지고 감이 많이 떨어져서 되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렸었어요. 쉴 때는 모르다 막상 타면 희한하게 갑자기 됐던 기술이 안 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만큼 몸의 감각이 중요해서 키가 크거나 체중이 늘면 영향이 있기도 해요. 한창 키가 클 때 제 몸은 원래 키에 맞춰 점프를 하지만 알고 보면 몇 센티미터가 커져 있잖아요. 거기서 가끔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링크장 안에서의 훈련 못지않게 지상 운동이 중요해요. 코어 힘과 균형 감각, 민첩성도 키워야 하고, 체력 증진을 위해 유산소 운동도 해야 하고. 링크장 밖에서는 몸을 다져놓고, 안에서는 기술을 익히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래도 몸이 튼튼한 편이라 큰 부상이 많이 없었는데, 자잘하게 가끔 골반이 아프거나 점프를 하다가 발목을 접질러서 꽤 오래 쉬었던 적이 있어요. 사실 한 번에 큰 사고로 다칠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몸에 무리가 가고 누적이 돼서 아픈 경우가 더 많거든요. 그래서 항상 스케이트를 타기 전에 몸을 잘 풀어주고, 타고 난 다음에는 아픈 곳이 없어도 얼음 찜질을 해주고, 뼈를 보호해주기 위해 근육 단련하면서 몸의 기초를 잘 다져야 했어요. 몸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거죠.
‘내 마음의 크레파스', 피겨 인생 최대 슬럼프
성훈: 전체적으로 큰 기복 없이 나름 순조롭게 피겨스케이트를 타왔었는데, SBS 프로그램 ‘내 마음의 크레파스'를 촬영했던 그 시기가 최대 위기였어요.(웃음) 부모님이랑도 많이 싸우고, 동작이 마음대로 안 되면 화내고 짜증내고. 근데 그러니까 오히려 더 안 되는 것 같은 거예요. 운동 강도를 더 올려보기도 하고, 새로운 선생님께 배우고, 마음을 다잡고 빨리 몸 상태가 돌아오기를 기대하면서 매일 연습만 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오랫동안 계속해서 한 가지를 어떻게 했나 싶기도 하고.(웃음) 어린 나이에 오히려 지금의 저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감당한 것 같기도 해요.
김연아와 스테판 랑비엘
성훈: 예전에 김연아 선수가 하시는 아이스 쇼에서 화동으로 참여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스테판 랑비엘 선수를 딱 봤는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표현력도 너무 좋고 스케이팅 기술도 대단하고 멋있으셔서 롤모델로 삼았었어요. 김연아 선수의 프로그램 중에서는 우리나라 전통 음악 ‘아리랑’으로 프로그램을 한 걸 인상 깊게 봐서 ‘오마주 투 코리아'가 기억에 남아요.
2020년 2월, 은퇴 경기
성훈: 한창 ‘I-LAND’ 촬영을 준비하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었던 때였고, 마지막 경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10년 동안 해온 것이기 때문에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새로운 꿈이 생겼기 때문에 잘 마무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사실 어릴 때를 생각하면 기억나는 게 피겨밖에 없어요. 그동안 피겨스케이트를 타면서 엄청 스펙터클한 기억들도 많고, 지금도 알게 모르게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이 있을 수 있고, 많은 분들이 제가 뭘 해도 피겨 하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만큼 저 자체로도 피겨의 분위기를 많이 갖게 된 것 같고, 더 이상 피겨스케이팅을 하지 않지만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아요. 그 시간이 아프면서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훈: 제가 아기 때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출전 선수들에 대한 리스펙이 큰 것 같아요. 만약 계속 피겨스케이팅을 했다면 부러워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준환 선수, 이시형 선수랑 옛날에 같은 링크장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같이 상비군 훈련을 하기도 했거든요.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두 분 모두 실력이 출중하시고, 특히 차준환 선수 같은 경우에는 점프도 되게 잘하고 표현력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 역대 피겨스케이팅 남자 선수 중에 가장 잘하는 선수인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기대가 많이 돼요. 선수들이 경기를 하기까지 정말 치열하게 준비를 해왔고, 4~5분이라는 시간 동안 계속 스케이트를 타고 점프 한 개 한 개 뛸 때마다 체력 소모가 되게 큰 걸 알거든요. 겉으로는 밝고 우아한 모습으로 표현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는 홀로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응원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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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훈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겼어요"2022.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