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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나원영(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FNC 엔터테인먼트

체리블렛의 두 EP ‘Cherry Rush’와 ‘Cherry Wish’에는 많은 아이돌 팝이 그렇듯 조립하기 용이한 과거의 조각들이 잔뜩 담겨 있다. 그럼에도 연작처럼 이어지는 타이틀 트랙 ‘Love So Sweet’와 ‘Love In Space’ 양쪽에서 패티김의 ‘그대 없이는 못 살아’나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과 의외의 유사성을 발견하는 반응들은, 아이돌 팝이 당숙이나 큰외할머니 같은 옛 가요들과 맺고 있는 분명한 연관성을 꽤나 직접적으로 톡톡히 들려준다. ‘Love So Sweet’의 “캔디/초콜릿보다 달콤”한 후렴구가 밝은 장조의 선율로 나아가려 하면서도 종종 반음을 오르내리는 것이나, ‘Love In Space’의 멜로디컬한 속사포 랩이 단조로 시작되어 장조들을 거쳐 돌아오는 것은 여러 가요 트랙에서 고정된 성공 공식처럼 작용해온 친숙한 화성 진행의 힘을 들려주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보컬 멜로디의 진행만이 하나의 트랙을 구성하는 유일무이한 재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두 트랙은 은은하게 조절된 신스음이 정박으로 미니멀하게 점멸하는 구간을 붙여 넣고, 네온 빛이 강조된 복고 조형물 같은 음색에 통속성 강한 가요 멜로디를 숨겨 넣는 것 또한 공유한다. 새콤달콤한 체리 향 아이돌 팝에 익숙한 가요 맛을 담은 총알이 발사되면, 어디로 날아가 박히는 걸까?

‘멋대로 해’와 ‘Broken’의 디스코 리듬과 전기기타 리프는 최근에 더욱 널리 쓰이는 재료인 한편, 많은 트랙들이 그렇지만 특히 ‘닿을까 말까’에서 쨍하게 반짝이며 튀어나오는 수많은 전자음과 효과음 같은 힘찬 영창에 집중하는 가창은 2010년대 중반 여성 그룹들의 고당도 에너지를 가득 담고 있다. 사실 ‘탁구공’이나 ‘눈에 띄네’에서의 유사하게 번쩍이는 광택을 지닌 전자음들을 돌이켜보면, 이런 달달한 인공감미료의 성질은 체리블렛의 인상적인 트랙들을 가장 잘 수식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Hiccups’가 빈티지한 모타운 소울과 명쾌한 후크 송 구조를 결합시켰던 2010년대 초·중반의 아이돌 팝을 되살리면서도, 그들의 사운드에 맞춰 어떻게 다듬었는지가 상징적이다. 1950년대 미국풍의 의상을 입고 “바라라람”거렸던 ‘라팜파 (Follow Me)’와 비슷하게 ‘둠바바’ 하고 ‘슈왑슈왑’ 하는 다디단 두왑(doo-wop) 화성과 멜로디가 적극적으로 들어가고, 리버브로 퍼져 울리는 클래식한 드럼과 탬버린 및 카우벨 소리도 퍼커션을 대신한다. 하지만 트랙은 ‘Shy Boy’나 ‘Lion Heart’, ‘You Don't Love Me’처럼 실제 악기의 음색으로 트랙을 꾸미지 않고, 대신 잘게 쪼개지는 트랩식의 하이햇과 엇박으로 외치는 보컬 샘플, 껌뻑이며 나타나는 신스음을 하부에 배치해 전자적으로 제작된 성질을 부러 표출한다.

체리블렛의 트랙들은 이렇게 채도 높은 사운드로 무장한 다른 아이돌 팝과 견줘도 잇몸이 시릴 정도의 단맛을 지니는데, 양쪽 EP에서 당도와 강도 모두를 최고치로 올린 ‘폼 나게 (Keep Your Head Up)’와 ‘My Boo’가 톡 쏘는 달착지근함의 합성법을 들려준다. ‘My Boo’는 특유의 전자적인 질감으로 다듬어진 화사한 신스음을 후렴구의 인상적인 화성과 음정 변화에 따라 환하게 깜빡이도록 배치한다. 색채가 분명한 사운드들의 강약을 고압 전류가 끊임없이 흐르듯 조절하며, 트랙은 “찌릿찌릿 전기가 통해”버리는 감각을 철저하게 배합한다. 한편 ‘폼 나게 (Keep Your Head Up)’가 날렵한 묘기 운전사 같은 폼을 뽐내는 방식은 각 구간들끼리의 마찰열을 내내 급격히 올려버리는 솜씨로 펼쳐진다. ‘My Boo’가 감전되는 것만 같은 순간적인 찌릿함으로 둘러졌다면, ‘폼 나게 (Keep Your Head Up)’는 두툼하게 쿵쿵 박히거나 문득 뭉실거리며 나타난 신스음에 으르렁거리는 엔진과 찢어지는 타이어, 심지어 긁어대는 목구멍과 말 그대로의 “충돌” 소리까지를 왁자하고 종종 갑작스럽게 삽입해, 특유의 속도감과 과다함이 서로를 향해 추돌할 때의 진동파를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탄산과도 같이 기능하는 이런 구성은 최고조로 합성된 단맛과 어우러져, 청자에게 강산성일지 모를 과일 사이다를 식도가 따끔거릴 만큼 곧장 들이마시는 쾌감을 청각적으로 제공해준다.

 

그럼에도 이러한 트랙들의 뒷맛은, 마냥 달지는 않고 가끔씩 쌉싸래해지기도 하는데, 여기서 시간을 건너고 평행 우주마저 건너서 극강의 달콤함을 찾아다니는 타이틀 곡들의 가요와 닮은 후렴 멜로디들을 다시금 끄집어낼 수 있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단조와 반음 또 이를 부르는 고음의 콧소리는 뽕나무 열매처럼 익숙한 가요적 새콤함을 형성한다. 원색의 전자음이 영미권의 일렉트로 팝에 담아놓은 비현실적인 쾌감이 국내의 ‘댄스 가요’에서도 오래간 추구되어온 만큼, 체리블렛의 트랙에도 제작된 당분이 순도 높게 담겨 있다. 하지만 아이돌 팝에서, 멜로디에 담기는 가요의 익숙한 통속성은 왜인지 팝의 ‘완벽한 단맛’을 발명하는 데에 있어 늘 걸림돌이나 결함으로만 받아들여지곤 했다. 아이돌 팝이 옛 가요의 통속성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가까운 과거를 확실히 조준하는 총알로서, 체리블렛이 꿰뚫은 과녁의 핵이 바로 거기일지도 모른다. 진한 체리 맛의 전자음을 높이 함유했음에도 앵두나 버찌, 어쩌면 오디와 닮은 맛의 멜로디가 발산하는 쾌감을 전해주는 체리블렛은, 시디신 통속성을 굳이 걸러내지 않고도 여전히 팝과 가요의 전형을 초과하는, 아이돌 팝만의 “무릎을 탁 치고” 가는 짜릿함이 생성 가능하다는 걸 똑똑히 들려준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Love In Space’와 ‘Love So Sweet’의 멜로디가 가요사의 정전에 기입된 대표적인 노래들을 지칭하듯 들리는 것으로 돌아가볼 수 있다. 이 유사성은 과장된 전자적인 팝 사운드를 입고 자신의 인과마저 지속적으로 불화하는 구조와 전통 있는 통속성을 그 안쪽에 결합한 가요 양식으로서 스스로를 밀고 나가는 아이돌 팝이 과거와 현재의 팝과 가요에 있어 무얼 조준하는지를 드러낸다. 과거의 전형들이 담지했던 일정한 일관성보다, 달콤하게 가공되거나 시큼하게 발효된 소리들이 동일한 층위에서 맞부딪히는 것으로, 팝과 가요가 제공한다고 기대되는 안정적인 바탕과 경계를 뒤흔들고 뒤집기. 2020년대의 두 EP 연작으로 재편되기 전, 체리블렛의 세계관을 담은 데뷔곡 ‘Q&A’가 이를 아마 또 다른 비유로 드러낼 것이다. 흔치않게도 ‘운영체제(OS)’를 콘셉트로 삼은 이 트랙은 화자에게 무한한 흥미를 띤 채 호기심을 표하면서도, 저쪽의 질문들에 모조리 답해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담는다. 오래된 게임 콘솔에서 끔뻑이며 흘러나오는 칩튠과 두꺼운 베이스음으로 키워진 누-디스코 그루브가 뒤섞이고, 빌드업에서는 방금 전원을 킨 컴퓨터의 팬에서 나는 듯한 우르릉 소리가 시동을 건다. 팝과 가요의 지난 시스템을 구성했던 코드들을 이곳저곳에서 잔뜩 떼어와 기어이 하나로 기워낸, 아이돌 팝만의 운영체제가 그렇게 가동되는 셈이다. 거기서 돌려볼 음악들은 “물어보기도 전에 왠지 알 것 같은데.” 하며 미리 구현된 알고리즘의 규칙을 따르듯, 자동 조합된 것만 같은 묘한 외관을 띠고 시종일관 화려하게 번쩍인다. 팝과 가요의 전자음들이 제공해주는 감미로움을 조금씩 올려보다 못해 얼얼할 정도로 단맛을 조려낸 수록곡들과 당도만이 감미료 같은 음악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전통의 맛을 숨겨둔 타이틀 곡이 체리블렛을 운영하는 이 체계들을 짜놓는다. 정전기 오른 모니터 화면에 손을 가져다대면, 미뢰를 이상한 방식으로 자극하는 익숙한 단맛이 혀끝에서 알싸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