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던 윤진의 말이 유일하게 빨라지던 순간이 있었다. 첫인상부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까지 조목조목 설명하던 윤진이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는 너무 다른데 같이 있으면 너무 잘 어울리거든요.”
드디어 데뷔네요.
허윤진: 아직 실감이 안 나고 꿈인 것 같아요. 제가 연습생 생활을 다른 멤버들에 비해 오래 한 편이고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을 때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요. 그만큼 많은 노력이 들어간 데뷔 기회라 엄청 크게 느껴지고 부담도 참 많이 되어서 아직은 현실이 아닌 것 같아요. 드디어 기다려온 게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르세라핌으로서는 오피셜 로고 모션에서 목소리로 처음 공개됐죠.
허윤진: 그거 녹음할 때 처음에는 엄청 어색했는데 럭셔리 화장품 광고 마지막에 나오는 엄청 ‘샤-’ 하고 우아한 느낌을 생각하면서 몰입하니까 잘되더라고요. 다섯 번 정도 녹음해보고 괜찮다고 하셔서 빨리 끝났어요.
그다음 공개된 데뷔 트레일러 영상에서는 물감을 뿌리거나 기타를 치는 등 자유로운 모습이에요.
허윤진: 그날 좋아하는 음악을 엄청 크게 틀고 촬영을 했거든요. 원래 밴드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외국 록을 많이 들었는데 마침 그날 바이브가 록이어서 그 음악을 틀고 행복하게 촬영했어요. 음악의 기운을 받으면서 촬영하니까 확실히 영상에 잘 녹아든 것 같아요.
기타 치는 장면에서도 그런 록적인 바이브가 느껴지더라고요. 그 장면에서 환하게 웃다가 조명이 꺼지자 무표정으로 바뀌는 부분도 인상적이에요.
허윤진: 저희가 전반적으로 밝으면서도 ‘FEARLESS’한 무드가 있단 말이에요. 반전 매력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서 밝은 에너지를 보여주면서도 ‘나는 반항심이 있다.’, ‘‘FEARLESS’하다.’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 영상에서 “저는 스무 살이에요.”, “아이돌 판을 바꾸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했잖아요.
허윤진: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던 말이었어요. 음악이랑 무대에서 춤추는 게 너무 행복하고 좋아서 그리고 한국에서 활동을 하고 싶어서 아이돌을 꿈꾸게 됐는데 연습생을 하고 K-팝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면서 느낀 것들이 조금 있었거든요.
어떤 부분을 바꾸고 싶어요?
허윤진: 아이돌에 대한 엄격한 기준에 맞추기보다 하나씩 깨고 싶어요. 좋은 모습을 보이는 건 당연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저의 본 모습을 감추기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저를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왜냐면 저는 제 자신을 누구보다 더 잘 알잖아요.
그런 생각이 ‘The World Is My Oyster’에도 녹아 있어요.
허윤진: 녹음할 때 굉장히 과몰입해서 진짜로 세상을 탓하는 반항심이 나왔어요.(웃음)
데뷔 트레일러 그리고 ‘The World Is My Oyster’에서의 당당함이 ‘FEARLESS’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요.
허윤진: 노래의 콘셉트나 메시지가 너무 저희의 이야기라 표현력도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저희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 진짜 “What you lookin’ at”의 느낌을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마침 윤진 씨 파트도 “욕심을 숨기라는 네 말들은 이상해 / 겸손한 연기 같은 건 더 이상 안 해”네요.
허윤진: 평소에 노래할 때 “음보다는 가사에 집중해서 조금 말하듯이 노래 불러봐라.”는 피드백을 자주 들었거든요. 처음 가이드를 들었을 때 싱잉랩 같은 느낌이어서 이번에는 아예 음을 조금 덜 신경 쓰고 그 무드랑 애티튜드를 표현하는 데 집중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할리퀸’ 같은 캐릭터를 상상하면서 쫄깃쫄깃하게 부르려고 했어요.
‘The Great Mermaid’에서도 네가 원하는 걸 가지려면 무언가를 내놓으라고 하는 세상에 내가 원하는 걸 다 가질 거라고 말하잖아요.
허윤진: 항상 “진짜 말하듯이 해봐라.”, “진짜 가사를 생각하면서 말하듯이 노래 불러라.”라는 말을 들었는데 르세라핌으로 녹음을 하면서, 저희 가사가 진짜 저희 이야기이고 저희의 생각과 고민과 걱정들이 다 반영된 이야기들이니까 자연스럽게 이 가사들이 너무 제가 하고 싶은 말 같은 거예요. 그래서 녹음할 때도 어떤 가사더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이야기하듯이 했어요.
‘Blue Flame’에서는 작사도 했죠. 평소 어떤 내용을 쓰나요?
허윤진: 평소 작사를 할 때는 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는 것 같아요.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나는 이런 힘듦이 있고 그런 것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든지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 해주고 싶은 위로 같은 걸 위주로 쓰는 것 같아요. 원래 작곡이랑 작사에 욕심이 있기도 하고, 어쨌든 저희의 이야기니까 저도 참여하는 게 좋지 않을까 했어요. ‘Blue Flame’에서는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오리지널 스토리를 알릴 수 있는 가사를 써달라고 하셨는데, 스토리텔링하는 걸 좋아해서 재밌게 작사했어요. 제가 작사한 첫 번째 줄이 딱 제 파트가 됐어요!(웃음) 제가 쓴 가사가 저희 커플링 곡의 시작이 되고, 그걸 부르는 사람이 저여서 신기했어요.
‘Blue Flame’은 퍼포먼스도 함께해야 하는데, 같이 소화하기 쉽지 않아 보이는 동작들이 많아요.
허윤진: 타이틀 곡도 힘든데 ‘Blue Flame’은 또 다른 의미, 다른 느낌으로 엄청 힘들어요. ‘FEARLESS’는 근력 운동이라고 표현하자면, 이 곡은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유산소 운동이거든요. 뛰면서 노래 부른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진짜 버피 테스트하면서 노래 부르는 느낌이에요.(웃음) 처음에는 노래하려고 하면 춤이 안 맞고, 춤을 추려고 하면 노래가 안 되고, 표정이 안 되고, 대형이 안 맞았어요. 그래서 계속 열심히 연습을 했고, 아직도 연습을 하고 있고, 따로 폐활량을 높이려고 헬스장에서 유산소 운동도 하고 있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 안정된 느낌?(웃음)
유산소 운동을 하면서 노래 부르는데 표정은 엄청 여유롭던데요.(웃음)
허윤진: ‘Blue Flame’의 매력 포인트는 진짜 그 밝은 미소와 엄청 상큼한 표정이어서 저희끼리 “아무리 힘들어도 무조건 표정은 완전 즐겁게, 완전 행복해 보여야 된다.”, “행복하게 하자.” 이런 느낌으로 연습했어요.
안무 연습할 때 서로 이야기하며 조율하는 편인가요?
허윤진: 모두 참여해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이게 더 예쁜 것 같은데?” 아니면 “언니 조금 더 빨리 이동해주면 좋겠어요.” 이런 얘기를 자유롭게 하는 분위기예요. 그리고 제가 저희 팀의 유일한 MBTI ‘J’형이어서 안무 연습할 때는 조금 주도할 때도 있어요.
전에 브이라이브에서 ‘기린’이 별명인 이유가 “춤을 췄는데 갓 태어난 새끼 기린 같아서”라고 했잖아요. 안무 연습을 주도하기도 하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데.(웃음)
허윤진: 많은 노력이 들어갔죠. 아주 많은 노력.(웃음) 어쨌든 연습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자기만의 싸움을 해야 하잖아요. 제일 힘든 건 열심히 하고 싶은데 몸이 잘 안 따라와서 계속 제 자신과 부딪힐 때였어요. 한편으로는 좀 쉬고 싶고,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 나를 이끌어 가고 싶은 마음이 부딪힐 때 있잖아요.
자신만의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연습생 생활은 어땠어요? 아이돌이 되기 위해 홀로 한국에 왔잖아요.
허윤진: 사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기억이 잘 안 나요. 너무 정신없고, 해야 되는 일도 너무 많고, 진짜 열정 가득했거든요. 그런데 방송(Mnet ‘PRODUCE 48’)이 끝나고 다시 잔잔한 연습생 생활로 돌아갔을 때는 조금 외롭더라고요. 가족이 다 미국에 있기도 하고 영어를 써왔다 보니 한국어가 조금 부족해서 저를 제대로 표현하고 싶은데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제대로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게다가 주변에 영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영어도 계속 어색해지더라고요.
외로움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어요?
허윤진: 저는 무의식적으로라도 음악이랑 무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걸 항상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무조건 나는 음악을 할 거고, 무조건 나는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포기를 못했던 것 같아요.
연습생이 되기 전에는 미국에 살았잖아요. 미국 생활은 어땠어요?
허윤진: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어요. 지금의 저의 생각과 성격과 목표들에 어릴 때 경험한 것들이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 같아서 그때의 윤진이가 너무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요. 드라마 클럽에서 연극도 했었고, 뮤지컬이랑 프랑스어 동아리도 했었고, 스포츠로 하키팀 활동도 했었어요. 프랑스어는 학교에서 5년 정도 배웠는데 지금은 안 한 지 너무 오래돼서 다시 배우는 중이에요.
하키팀 활동 때는 캡틴이 되기도 했었다면서요?
허윤진: 학교 시스템상 중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팀 스포츠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었어요. 처음은 친구가 필드 하키를 했는데 같이 하자고 해서 시작했었어요. 처음엔 진짜 못했거든요? 그런데 몇 년 동안 계속 꾸준히 하니까 실력이 늘어서 더 재밌어지더라고요. 하키팀은 일단 그 팀에 합류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한 3일 동안 오디션처럼 시험을 보거든요. 거기서 합격한 사람들끼리 팀을 하는데, 팀이 구성되고 나서 팀원들이 투표로 캡틴을 뽑아요. 아직도 뭔가 감명 깊어요. 스스로 느는 모습도 보고, 결국엔 팀을 이끌 수 있는 캡틴이 됐으니까요.
또 다른 팀으로 새로운 시작을 함께하게 됐어요. 르세라핌은 어떻게 하나의 팀이 되어가고 있을까요?
허윤진: 저희끼리 그라운드 룰 같은 걸 세웠거든요. 첫째 그냥 받아들이기. 어떤 상황이든, 어떤 상태이든, 컨디션이 어떻든, 다른 멤버가 뭘 하든 일단 받아들이고 이해해주기. 둘째 표현하기인데, 저희가 다 내향적인 면이 있다 보니 힘들다는 얘기를 잘 못 꺼내고 다툼이나 서운했던 일이 있어도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서로에 대해서 더 알게 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표현하기로 했는데 이미 이렇게 한 지 조금 오래돼서 이제는 어떤 얘기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냥 다 얘기하고 있어요. 지금은 뭐만 하면 “우리 진짜 운명이다.”, “어떻게 이렇게 모일 수가 있지?”, “우리 이렇게 될 운명이었나 보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해요.
왜 운명이라고 느껴요?
허윤진: 우리는 너무 다른데 같이 있으면 너무 잘 어울리거든요. 가람이는 처음에는 차가워 보였는데 알고 보니까 굉장히 웃기고 엉뚱한 친구예요. 또 웃을 때랑 먹을 때가 너무 예뻐요. 우리 가람이가 먹는 걸 굉장히 좋아해서 항상 저희끼리 맛있는 거 먹으면 너무 행복해하는 모습이 귀여워요. 그리고 채원이랑 꾸라 언니를 거의 3년 만에 봤는데, 마지막으로 방송한 게 2018년이니까 시간이 많이 지나서 ‘많이 달라졌겠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대로여서 너무 신기했고 반가웠어요. 이렇게 잘 맞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말도 잘 통하고 생각도 같아서 너무 든든한 언니들이에요. 그리고 은채는 너무 귀여워요. 은채가 막내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합류하게 됐을 때 하루 만에 처음 들어보는 노래의 안무랑 대형까지 다 외워야 했던 상황이었거든요. 그때는 그 불안하고 부담스러운 상황 때문인지 조용했는데, 지금은 너무 유쾌하고 재밌는 친구예요. 그리고 즈하는 처음 봤을 때 진짜 성실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진짜 성실하고 열심히 해요. 그리고 그냥 있는데도 확실히 발레를 15년 한 티가 나요. 인생이 발레예요.(웃음)
르세라핌의 데뷔 이후에 멤버로서나 자기 자신으로나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까요?
허윤진: 음악으로 저를 온전히 표현하고, 음악을 통해서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르세라핌으로서 그 꿈을 조금이라도 이루어낼 수 있으면 너무 행복할 것 같고 그래서 더 작곡이랑 작사가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음악이랑 무대니까 그걸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라든지 표현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르세라핌으로서는 월드 투어를 하고 싶어요. 스타디움 투어도 하고요!(웃음)
‘FEARLESS’한 목표네요.(웃음)
허윤진: 제 자신에 대해 증명할 필요는 없지만 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상황에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FEARLESS’는 콘셉트라기보단 그냥 우리의 이야기예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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