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규는 순간적인 행복을 낙관하지도, 언젠가 찾아올 절망을 비관하지도 않는다. 단지 스스로를 믿을 뿐이다. 그가 먼 길을 걸어가는 방법이다.

지난 ‘위버스 매거진’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어요. 요즘은 러브 마이 셀프가 잘되고 있나요?

범규: 러브 마이 셀프 하고 있죠!(웃음)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때보다 스스로의 가치가 높아진 것 같아요.

 

어떤 가치들이 높아진 걸까요?

범규: 음, 일단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게임도 줄이고요. 한때 아예 게임을 끊었다가 요즘은 소소하게 친구들이랑 한두 판 하고 바로 자는 식으로 절제하고 있어요.

 

절제하는 게 더 어렵지 않나요?

범규: 맞아요. 뭘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적은 많지만 항상 작심삼일인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각 잡고 스스로를 바꿔 나가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굉장히 좋아졌어요.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약점들을 보완하면서 더 건강해졌고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졌어요.


지난 3월 팬 라이브 ‘MOA X TOGETHER’에서 “최근 굉장히 행복하고 건강하다.”라고 말한 게 생각나네요. 무엇이 요즘의 범규 씨를 행복하게 만드나요?

범규: 그냥 일상들이에요. 무언가 해결되거나 뭔가를 특별히 해서 행복하다기보다는 일상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어요. 멤버들을 제외하면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었는데, 요즘은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는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짐을 덜게 된 것 같아요. 특히 ENHYPEN 친구들이랑 합동 무대를 하면서 희승이랑 정말 가까워졌어요. 희승이는 애가 재밌기도 하고(웃음) 서로 자는 시간도 비슷하고, 둘 다 게임도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가까워졌고, 다른 친구들도 한 명씩 점점 모여서 서로 의지하고 재밌게 놀게 됐어요.

이전에 ‘위버스 매거진’ 인터뷰에서 작곡은 범규 씨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했어요. 이번 앨범에서 범규 씨가 프로듀싱한 ‘Thursday’s Child Has Far To Go’에는 어떤 감정이 반영됐을까요?

범규: 아마 작년 말, 올해 초쯤이었을 거예요. 갑자기 ‘기분 좋은 음악을 쓰고 싶다.’는 ‘삘’이 와서 그날 안 쓰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렇게 쓰게 된 트랙이에요. 콘서트에서 모두 다 같이 뛰어놀 수 있을 만한, 드라이브할 때 들을 수 있을 만한, 혹은 기분이 이미 좋은 상태에서도 더 좋은 기분을 위해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되길 바라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제가 그동안 시도했던 음악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데, ‘거울 속의 미로' 이후로 2년 만에 제 노래가 운 좋게 저희 앨범에 들어가게 되어서 너무 좋아요.(웃음)


‘Thursday’s Child Has Far To Go’는 트렌디한 신스 팝인데, 범규 씨가 평소 선호하던 ‘세시봉’스러운 옛날 감성도 묘하게 느껴져요.

범규: 유행이 돌고 돌잖아요. 지금은 그게 트렌드인 것 같아요. 그렇게 신스를 쓰면서 중독성 있는 라인을 가지고 가는 게 요즘 잘나가는 곡들의 트렌드라고 생각해서 그런 부분을 응용해보려고 했어요. 이전까지는 기타로만 곡을 썼는데, 최근에 운동하면서 새로운 음악들을 많이 듣게 되다 보니 저도 그런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말씀하신 것처럼 옛날 감성이 강한 곡이 될 수도 있었는데, 태현이가 톱라인을 써주면서 세련된 느낌으로 바뀌어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새로우면서도 범규 씨다운 곡이 됐네요.(웃음) 타이틀 곡 ‘Good Boy Gone Bad’의 첫 파트에서 거의 랩처럼 빠른 멜로디를 소화하는 것도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범규: 힘들었어요. ‘이건 저혈압의 최범규가 따라갈 수 없는 템포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어떻게 불러도 박자가 밀린 것처럼 되더라고요. 녹음하는 데에 오래 걸렸어요. 그래도 가면 갈수록 혈압이 다시 올라오긴 해서 무사히 녹음했어요.(웃음)

 

감정적으로는 이 곡을 어떻게 이해했나요? 범규 씨가 “난 날 죽여 죽여놔”처럼 감정적인 가사를 부르면서 제스처를 취하기도 하는데.

범규: 최대한 ‘Bad boy’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 미친 사람의 심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마치 밤에 혼자 묘지에 들어가는 것 같은 분위기를 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최대치로 표현할 수 있는 게 100%라면, 한 50~60%만 표출해야 그 느낌이 멋있게 사는 것 같아서 절제했어요.

‘BACKSTAGE : TXT x EN- DOCUMENTARY’에서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에 맞춰서 신나게 춤추던 모습을 생각하면, 평소에는 절제하기보다 최대치로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무대를 선호하는 것 같은데 가장 적절한 표현을 고민하는 거네요.

범규: 연습생 때부터 무대 위에서의 표현이나 표정에 대한 욕심이 컸어요. 그냥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하는 분들은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더 나아가서 사람들의 이목을 잡을 수 있는 무대를 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스스로 만족하지 못해서 더 욕심을 내는 것 같아요.

 

생일에 맞춰서 공개한 ADOY의 ‘Wonder’ 커버 영상도 범규 씨가 추구하는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회사를 오랫동안 설득한 결과물이라고 알고 있어요.

범규: 애초에 ‘Wonder’를 선택한 건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노래와 함께 보여주는 것까지 계획에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만약 그런 무드를 보여줄 수 있는 영상이 없다면 이 커버는 완성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서 회사에 제 생각을 확고하게 말씀드렸어요. 결과적으로는 영상 팀에서 너무 잘 도와주셔서 마음에 드는 영상이 나왔어요. 제가 격리하고 있을 때 그 영상이 나왔는데, 정말 만족스러워서 매일 봤어요.(웃음)

 

생일날 진행한 브이라이브에서 ‘Wonder’의 영상에 대해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삶”, “인간 최범규가 퇴근한 뒤의 모습을 담았다고 설명했어요. 왜 그런 모습을 모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나요?

범규: 모아가 볼 수 없는 모습이니까요. 이제는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원래부터 저의 힘든 부분을 모아들에게 잘 이야기했지만, 이전까지는 70%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나머지 30%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아무래도 화려한 모습만 보여주게 되는데, 사실 밝은 면만큼 어두운 면도 확실히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인간 최범규의 지친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모아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이전에 뷔 형이 올린 아델의 ‘Someone Like You’ 커버 영상이 있는데, 그 영상을 보면 뷔 형이 길을 따라 걷는 옆모습만 보여줘서 마치 형과 같이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걸 보고 영감을 얻어서 영상 팀에 제가 전달하고 싶은 요소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드렸어요. “모아들이 함께 산책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구도로 촬영해야 하고, 퇴근하고 차를 타고 가는 제 모습이 있어야 하고, 아래에 자막은 노란색으로 어떤 글씨체로 보여야 한다.” 이런 식으로요.

아티스트로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끝까지 추진한 거네요. 그런데 평소에는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편이기도 해요. ‘TO DO X TXT’에서도 수빈 씨가 계속 새우를 먹어보라고 부탁하니까, 원래는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먹는다거나.

범규: 저희 멤버 중에서 저만 해산물을 못 먹어요. 멤버들은 고기보다 해산물을 좋아하는데, 저 때문에 외식을 갈 때 해산물을 안 먹어요. 항상 멤버들이 저 하나 때문에 이렇게 배려를 해주거든요. 그래서 조금씩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한 번쯤은 시도해볼 만한 음식이라는 생각도 있었고요.(웃음) 혼자서는 잘 안 먹게 될 테니, ‘기회 왔을 때 먹어봐야겠다.’ 그런 생각이었어요.

 

JTBC ‘시고르 경양식’도 평소 텐션 높고 장난기가 많은 모습과는 다르게 사려 깊은 범규 씨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범규: 분위기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TO DO X TXT’나 ‘놀라운 토요일’은 콘셉트가 확실해서 평소보다 더 까불기도 하는데, ‘시고르 경양식’은 그런 느낌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첫날에는 힘들었어요. 책임감을 갖고 예능을 하러 갔는데, 제가 평소에 보여드리던 장난기 많은 모습이 적합한 예능은 아니다 보니 어떻게 해야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어요. 그런데 너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서 어느새 걱정이 사라졌고, 오히려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했어요. 평소에는 해볼 수 없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는 것도 저에게는 힐링이었고요.

 

아르바이트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일에 필요한 것들을 빠르게 익히고 적응해서 주변을 놀라게 했어요. 비결이 뭘까요?

범규: 살아남아야 했거든요.(웃음) 이것도 관계랑 연관이 있는데, 좋은 사람들만 있으니까 그분들에게 얼른 도움이 되고 싶어서 ‘이 일을 내가 하면 저분이 조금은 더 편해질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뛰어다니게 됐어요.

 

연세가 많은 손님에게 빵 드시는 법을 상세하게 알려드리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범규: 어릴 때부터 저는 친구 집에 가면 친구랑 안 놀고 친구 어머니랑 놀았거든요.(웃음) 어른들이랑 이야기 나누고 그런 걸 정말 좋아해서. 그런 경험이 도움이 됐어요.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했는데 점차 익숙해지니까 ‘이분은 이런 것 같으니까 내가 조금 더 다가가야겠다.’ 이런 감도 생겼어요. 

주변을 즐겁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2021 MMA’ 비하인드 영상을 보면 목을 다쳐서 제대로 들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카메라를 향해 “지금 노려보는 거 아니에요. 착하게 보고 있는 거예요.”라고 장난을 쳤어요.

범규: 저도 사람이다 보니까 힘들고 지친 상태에서 아프면 기분이 좋을 수는 없어요. 그때 그렇게 말했던 건 모아분들 때문이었어요. 나중에 그 영상을 모아분들이 보게 될 테니까 최대한 걱정을 안 시키고 싶었어요. 농담을 하면 덜 아파 보이니까요.

 

‘MOA X TOGETHER’에서도 리허설에서 연습한 건 ASMR이었지만, 현장에서는 모아들이 원하는 무아지경 댄스를 스스럼없이 췄죠.

범규: 아, 사실 하고 나니까 부끄러움이 밀려왔어요. 엄청 창피했어요.(웃음)

 

하지만 음악이 시작하기도 전에 춤추기 시작하던데요.(웃음)

범규: 원래 그렇게 해야 더 재밌거든요. 제 예능 철학이에요.(웃음) ‘나는 미친 사람이다!’ 하고 췄어요. 빠질 수 없으면 즐겨야죠. 모두가 제 춤을 원하는데 제가 부끄럽다고 추지 않으면 분위기가 가라앉잖아요. 전 그게 더 싫어요. 차라리 제가 부끄럽더라도 다 같이 즐기는 분위기를 유지하는 게 낫지. 저 하나 창피하기 싫다고 모두가 원하는 그림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즐겁게 했어요.

 

모아들을 오랜만에 눈앞에서 보는 건 어땠나요? 그날 첫 인사를 할 때, 리허설 당시에는 앞 무대로 나가지 않았는데 실제 공연에서는 관객석 가까이 나가서 인사할 만큼 들떠 보였어요.

범규: 거의 2년 만에 만나는 거라 너무 반가웠고 흥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뛰쳐나갔죠.(웃음) 그렇게 많은 모아분들로 객석을 채운 게 정말 오랜만이었고, 그 순간만큼은 저희밖에 없었으니까요. 그 긴 시간을 버텨준 멤버들과 모아분들에게 고맙고 또 행복했어요.

오랫동안 모아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그사이에도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네요.

범규: 보지 못한다고 해도 더 가까워지면 가까워졌지, 멀어졌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당연히 함성이나 대면 행사들이 그립긴 했는데, 그 그리운 시간만큼 저희도 모아분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공유했고 모아분들도 저희에게 더 많은 걸 이야기해주면서 이전보다도 더 친구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었어요.

 

앞으로 점점 모아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텐데,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요?

범규: 그냥 더 자주 보고 싶어요. 오랜만에 자주 만난다고 해서 무언가를 준비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한다기보다는, 그냥 지금까지처럼 모아분들이 보시던 모습 그대로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저다운 모습.

 

범규 씨다운 건 어떤 걸까요?

범규: 저다운 거요? 아, 어렵네요.(웃음) 힘든 것은 받아들이되 점점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 제가 행복하다고 해서 앞으로도 행복하기만 하진 않을 거예요. 저는 매년 하나의 고민을 가지고 1년 동안 싸우는 사람이라 또 어떤 고민이 찾아올 수도 있어요. 그래도 지금까지 힘든 것들은 그때의 범규가 잘 해결했으니까.(웃음) 전 앞서서 걱정하는 걸 정말 싫어하거든요. 그저 행복한 지금을 즐기고, 하나하나 경험을 쌓아가면서 여러 일을 긍정적으로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목요일의 아이는 먼 길을 가야 하니까요.(웃음)

범규: 항상 좋은 길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모든 것들을 잘 해결하면서도 유연함을 유지하면서, 그렇게 저다운 길을 걷고 싶어요.

Credit
글. 김리은
인터뷰. 김리은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이지연
비주얼 크리에이티브팀. 정수정, 허지인(빅히트뮤직)
사진. 윤지용 / Assist. 기원영, 전민형, 김기웅, 송은지
헤어. 김승원
메이크업. 노슬기
스타일리스트. 이아란
세트 디자인. 다락(최서윤 / 손예희, 김아영)
아티스트 의전팀. 김대영, 김지수, 신승찬, 유제경, 고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