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승은 끊이지 않는 생각 속에서도 고유한 균형을 찾아낸다. 그래서 그의 유쾌한 말투 속에는 진중함이 녹아 있고, 여러 고민의 끝에는 확신이 함께 놓인다. 희승이 자신만의 길을 그려가는 방식이다.

얼마 전 저스틴 비버의 ‘Off My Face’를 커버했어요. ENHYPEN의 첫 개인 커버 곡인데, 어떻게 시작됐어요?

희승: 엔진분들도 계속 기다려주셨고, 앨범 준비 기간에 ‘이제는 커버를 해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프로듀서님과 상의도 하고, 개인적인 고민을 곁들였을 때 가장 적합한 곡이었어요. 제가 영상 스튜디오도 알아보고 했거든요. 편안한 배경과 자연스럽게 제 목소리에 집중될 수 있는 공간을 원했어요.

 

기타 선율에 목소리로만 채우는 노래라서, 편안하게 들리는 것과 달리 부르는 입장에서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희승: 요즘은 차분하게 정리가 되고 생각할 여유를 주는 음악들이 들어오더라고요. 기타 하나에 그냥 띵가띵가하고 부르는.(웃음) ‘Off My Face’가 단순히 “나 너 좋아해.” 하는 곡이 아니라 헌정하는 곡이잖아요. 엄청 진심을 담아야 하는 노래라 구절마다 감정의 변화를 최대한 표현하려고 했어요. 연기자분들은 같은 “고마워.”도 다른 말투와 억양, 속도로 변화를 주잖아요. 그렇게 더 생동감 있는 목소리를 녹음하고 싶어 디테일이나 발음에서 수정 작업을 많이 했어요.

 

수정이 끝났다는 확신은 어떻게 얻어요? 오래전 브이라이브에서 “만족할 때까지 만들어보고” 공개하겠다고 했는데, 희승 씨만의 기준점을 넘은 걸지 궁금했어요.

희승: 제 안에 있는 어떤 가능성을 스스로 볼 수는 없잖아요. 그런 입장에서 기준점이라는 게 애매한 것 같아요. 제 귀에서 만족할 때까지, 그냥 딱 들었을 때 ‘들어줄 만하다.’ 이런 생각이 들 때를 굉장히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가 그 말을 2년 전에 했는데 당시에는 스스로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제는 올려도 되지 않나.’ 싶어 작업하고 올리게 된 거죠.

 

3분이 채 되지 않는 영상이 나오기까지 오랜 고민이 담겨 있네요.

희승: 이게, 문제예요.(웃음) 무언가를 내놓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래도 엔진분들이 기다리신 만큼 엄청 좋아해주셔서 좋았어요. 자작곡도 프로듀싱하는 친구와 열심히 작업하고 있긴 해요. 아직은 바로 기대해달라는 말씀은 못 드리지만.(웃음) 하고는 있습니다.

지난 ‘위버스 매거진’ 인터뷰에서 작업할 때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악기를 넣는다고 했는데, 요즘도 그런가요?

희승: 지금은 레퍼런스를 잡아요. 간단하게 생각하면 라면에는 면과 수프, 플레이크가 들어가고 카레에는 강황가루와 당근, 양파가 들어가듯이요.(웃음) 울타리를 구분지어 만들려고 해요. 다 섞이면 맛이 없으니, 필요한 것들만 남기는 거죠. 2년 정도 활동을 하다 보니, 저희 노래도 비슷한 것 같지만 들어가는 음악과 느낌이 다르거든요. 그런 걸 보고 음악마다 색깔이 중요하고 그래야 각자 더 빛난다는 걸 느꼈어요.

 

‘희플리’에서 추천한 음악들은 R&B적인 색채가 있는데, 개인 작업에도 그런 색깔이 담기는지 궁금했어요.

희승: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애초에 R&B를 들으며 음악을 시작해서, 빼려야 뺄 수 없더라고요. 굳이 빼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R&B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 그런 색깔이 조금은 공존하면 좋겠어요. R&B는 뭔가 감정을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만의 독특한 표현이 마음에 들어요. 사실 관련된 책도 샀는데 책으로는 어렵더라고요.(웃음) 음악을 잘하는 친구한테 요즘 뭐 듣고 있는지 물어보고 들어요. 제가 생각보다 편식을 많이 해서, 그런 걸 없애려고 공부 중이에요.

 

바쁜 스케줄 속에서 그런 마음가짐을 갖는 게 대단한 일이잖아요. 최근 브이라이브에서 자기 계발에 힘쓰고 있다고도 했죠?

희승: 확실히 게임은 아이디를 삭제하자마자 흥미가 사라져서 이전과 달라진 삶을 살고 있어요.(웃음) 요즘은 작업에 안무와 보컬 연습도 있고, 커버 곡 준비도 해서 책을 읽을 여유가 많이 없긴 했어요. 그래도 확실히 책을 읽었던 시기에 봤던 내용들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독서의 어떤 점들이 도움이 됐어요?

희승: ‘악녀에 대하여’라는 책이 있는데, 죽은 한 사람에 대해 여러 명이 이야기하는 내용이에요. 책 속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말투를 상상하는 게 새롭더라고요. 음악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가사를 쓰거나 무언가를 만들려면 백지 상태에서 할 수는 없잖아요. ‘이건 이렇게 표현해봐야지.’ 하고 아이디어를 상상하게 해줘요. “너를 좋아해.”보다는 “난 내가 10시에 퇴근하는 것보다 네가 더 좋아.” 이러면 상상이 잘되잖아요.

 

그렇게 이어진 생각들이 MBTI 검사 결과의 변화도 가져온 걸까요?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웃음) 동일한 질문을 다르게 받아들인 결과라는 점에서 궁금했어요.

희승: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한 건 아닌데(웃음) 결과가 왜 자주 바뀔까 하는 궁금증에 재미로 생각해봤어요. 일할 때는 ‘ISTP’나 ‘INTP’가 나온다면 혼자만의 공간이 생겼을 때는 ‘INFP’인 것 같아요. 제가 낯을 안가리는 편은 아닌데 밖에서도 쭈뼛쭈뼛 할 수는 없잖아요. 한 번은 ‘ESTP’도 나오더라고요. 근데 항상 말하지만 MBTI는 사실 부수적인 거니까요.(웃음)


어떻게 보면 일에 대해서 프로페셔널해진 거네요?

희승: 더 생산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데뷔 초 많은 사람들 사이에 놓이는데, 감정적으로만 생각하면 해결되는 게 없더라고요. 더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판단하려고 하니 그런 성격이 생겨난 것 같아요. 아이디어를 구상하며 일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니, 커버 곡 같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고요. 시도를 많이 해보면서 그런 성격이 발휘된 것 같아요.

새 앨범이 ‘나’의 주체성을 그리고 있기도 하잖아요. 그런 변화 속에서 ‘Future Perfect (Pass the MIC)’ 같은 가사를 마주하는 건 어땠어요?

희승: 사실 인상적이었던 게 저희가 녹여낸 ‘드릴(Drill)’은 좀 감동적이더라고요. “함께 외쳐” 이런 가사는 떼창을 해야 될 것 같고요. 원래 시카고 드릴 하면 자랑도 많이 하고 센 척도 하는데 강하지만 눈물샘을 유발하는 가사가 담겨 신선하고 좋았어요. 후렴 녹음을 진짜 많이 했는데 잘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좋아서.

 

녹음 과정은 어땠나요? 지난 ‘위버스 매거진’ 인터뷰에서는 희승 씨의 목소리가 얇아서 중후하게 낸다고도 했어요.

희승: ‘Blessed-Cursed’ 때는 고민이 많았어요. 목소리가 얇아서 두껍게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까진 안 하는 것 같아요. 힘을 빼고 가볍게 불러야 오히려 더 무게감이 들더라고요. 자연스럽게 툭 하고 나온 소리가 오히려 좋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엔 낮게 내야겠다는 생각 대신 그냥 멋있는 척을 많이 했어요.(웃음) ‘Off My Face’를 작업하면서 기준점을 잡다 보니, 보여줘야 하는 느낌이 확실히 정리가 됐어요.

 

평소에 하던 작업에 영향을 받는 순간도 있었겠어요.

희승: 자작곡 작업할 땐 직접 선율을 만드는 거니까, 제 보컬에 어울리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연습하다 보면 ‘라인이 괜찮은데?’ 이런 게 생겨서 본 작업에도 넣어보려고 했어요. 특히 ‘ParadoXXX Invasion’이 제 취향에 맞았어요. R&B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법한 라인들이라 수월하게 해서 좋은 게 나온 것 같아요.

‘Dance Jam Live’를 보면 희승 씨 특유의 그루브가 있다고 느껴졌거든요. 세밀한 포인트에 맞춰 동작을 만드는 듯했어요.

희승: 아시겠지만 제가 팝핀을 좋아해요. 잘한다까진 모르겠고 그냥 좋아하는데, 팝핀 추시는 분들은 악기 소리를 엄청 집중해서 듣거든요. 음악에서 보컬 같은 소리가 첫 번째로 들릴 수 있지만, 저는 연습하며 다양한 악기 소리를 듣는 게 습관이 되어 있어서요. 보시기에는 제가 좀 특이한 행동을 한다고 느끼실 것도 같아요.(웃음) 

 

춤에서도 본인의 스타일이 있는 편인데, 어느 때보다 강한 느낌의 ‘Future Perfect (Pass the MIC)’는 어떤 점에 신경 썼어요?

희승: 춤출 때 무조건 에너지가 있어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첫 번째 후렴을 맡았는데 동작도 정확하게 하고 밸런스도 잘 잡혀 있어야 하지만, 봤을 때 뇌에 확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강한 에너지에 초점을 뒀어요. 또 힙합 베이스니까 그런 애티튜드를 많이 배우고 표현하려고 해요.

 

무엇보다 이번엔 엔진과 대면하는 활동과 무대를 앞두고 있잖아요. 

희승: 그래서 저희 멤버들이 엄청 이 갈고 있어요. 물론 이전에 그렇게 안 한 건 아니지만, 더 집중해서 했던 것 같아요. 방시혁 PD님도 갑자기 연락을 하셨어요. 영상을 봤는데 이렇게 독기 있는 건 처음 볼 정도로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요. 그 정도로 준비를 많이 했어요. 무대를 잘 보여드리려고.

 

최근 독일 ‘K-팝 플렉스’ 페스티벌에도 다녀왔는데, 그런 경험이 무대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희승: 동기가 확실하게 생긴 느낌이에요. 팬 미팅 전까지는 저희도 잘 몰랐어요. 큰 무대에서 많은 엔진분들의 함성을 듣고, 그 에너지를 받아 무대를 하는 게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분들을 위해 준비하는 거구나.’ 이런 목표 의식이 잡히다 보니, 연습할 때도 에너지와 책임감이 생겨요. 전에는 “힘들지만 그래도 하자.”였다면, 이제 “좀 더 잘해보자. 할 수 있다.”가 됐어요.

그럼에도 연습 과정이 힘든 건 매한가지일 텐데, 맏형으로서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희승: 사실 저는 맏형으로서는 이야기를 안 해요. 굳이 할 필요도 없고요.(웃음) 저도 어리고, 우연히 맏형이 된 거고, 멤버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물론 저도 힘이 되어주지만 동생들에게 배울 점이 많아요. 오히려 제가 형으로서 무언가를 하면 동생들도 불편할 거고요. 

 

막내인 니키 씨를 신경 써주는 듯한데, 최근 볼링을 치러 가시기도 했잖아요.(웃음)

희승: 니키가 볼링을 잘 쳐요. 제가 너무 깨져서, 그때 이후로는 다시 안 가요.(웃음) 

 

이제 함께 게임도 안 해준다고 아쉬워하시던데요?

희승: 저도 그거 봤는데.(웃음) 이 인터뷰가 나간 시점 이후로는… “이제 게임도 다시 같이 하겠습니다.”라고 적어주세요.(웃음)


과거가 된 게임 친구 중에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범규 씨도 있었죠?(웃음)

희승: 사실 저희 본가에도 한 번 온 적이 있어요. 라면 먹고 게임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서로 바빠서 연락을 잘 못하고 있어요.(웃음) 저는 범규한테 제일 고마워요. 제가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KBS 가요대축제’ 하면서 범규가 “이렇게 오랫동안 아는 사이인데 안 친한 게 마음에 걸려서 친해지고 싶었다.”고 말하더라고요. 저도 되게 친해지고 싶었다고 얘기하며 가까워졌어요. 동료이자 친구니까 되게 든든한 것 같아요.

 

그래도 ‘EN-BTI’를 보니 멤버들처럼 가까운 이들에게는 직접 영상 통화를 건다고 해서 의외였어요.

희승: 그게 코로나19 때문에 각자 집에서 생활을 했는데 멤버들이 뭐하는지 궁금한 거예요. 그래서 영상 통화로 뭐하냐고 그러면 멤버들이 들어오거든요.(웃음) 그냥 멤버들은 같이 있으면 재밌고, 없으면 허전한 존재인 것 같아요. 멤버들을 다 너무 좋아해요.

 

함께한 지 2년이 되어 가는데, 서로에게 자연스레 맞춰 가는 것도 생길 듯해요.

희승: 아무래도 같이 생활하니까, 인간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단계인 것 같아요. 멤버들이 다 엄청 어리기도 하고, 저도 맏형이지만 스물두 살이니까요. 아직은 성숙함과는 거리가 멀어서(웃음) 점점 발전하고 있어요. 그걸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성격도 변화가 있는 게 아닐까 싶고요. 앞으로 이렇게 쭉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그런 멤버들과 함께하는 ENHYPEN의 성장을 지켜보는 마음은 어때요?

희승: 마냥 좋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아니더라고요. 점점 올라가는 기대치가 있는데 제가 제자리에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만큼 멋있는 사람, 멋진 아티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요. “다음 앨범을 이전보다 아쉬워하시면 어떡할까?” 그런 걱정도 크죠. 멤버들끼리 똘똘 뭉쳐서 풀어내야 할 고민인 것 같아요. 스스로도 만족시키고 엔진분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팀이 성장하며 비대면에서 대면으로, 이제 함성과 해외 공연까지 경험했잖아요. 지금의 희승 씨에게 무대는 어떤 의미로 바뀌었을까요?

희승: 무대라고만 말하긴 좀 그렇지만, 어렸을 때부터 제가 꿈꿔왔던 장소니까요. 용기만 가지고는 안 됐던 일들이 제게 일어나고 있는 거니까 의미가 있어요. 앞으로도 음악을 하겠지만, 지금의 이런 기억들을 가지고 쭉 행복하게 살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시기를 더 불태워보자는 느낌이에요.


그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엔진은요?

희승: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에요. 저희가 꾸준히 음악을 할 수 있게, 무대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라서요. 그냥 감사하다는 말만 드리기엔 뭔가 아쉬워요. 조금 더 제 표현이 성장하면 다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웃음)

Credit
글. 윤해인
인터뷰. 윤해인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김리은
비주얼 크리에이티브팀. 허세련, 이건희, 최아라, 차민수(빌리프랩)
사진. 정재환 / Assist. 정창흠, 송정현
헤어. 김소희, 여진경
메이크업. 권소정
스타일리스트. 지세윤 / Assist. 김민선, 최재은
세트 디자인. 최서윤, 손예희, 김아영(Da;rak)
아티스트 의전팀. 김세진, 오광택, 홍유키, 김한길, 강민기, 이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