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의 신곡 ‘Pink Venom’은 29시간 35분만에 유튜브 조회 수 1억 뷰에 도달하며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음악평론가 강일권, 김도헌, 나원영이 ‘Pink Venom’의 음악에만 집중해 이 곡에 대해 말했다.
전통 악기에 대한 과감한 시도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현대 대중음악에서 과거를 소환하는 방식은 다각도에서 이루어진다. 레트로 소울 리바이벌이나 올드 스쿨 힙합처럼 장르적인 접근으로, 녹음과 믹싱 방법처럼 사운드적 접근으로 그리고 과거의 악기를 활용하는 접근으로. 때론 프로덕션 과정에서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되기도 한다.
이 중 전통악기를 동원하는 방식의 경우 방점은 과거의 재현이 아닌, 악기 활용 자체에 찍힌다. 디지털 작법으로 대변되는 현재의 프로덕션에 전통악기 사운드가 융화되어 굉장히 독특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1993) 이후, 전통악기를 연주하거나 샘플링하여 오늘날의 장르에 녹이는 시도가 종종 있었다. 블랙핑크의 ‘Pink Venom’도 따지자면, 그러한 명맥을 이어간 곡으로 평할 만하다. 도입부부터 등장하는 거문고 사운드는 확실하게 귀를 잡아끄는 요소이자 프로덕션에서의 하이라이트다. 마치 미시 엘리엇(Missy Elliott)의 명곡 ‘Get Ur Freak On’에서 전통 타악기인 타블라와 인도의 전통 현악기 툼비 조합이 그랬듯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우리 악기가 사용되었음에도 말이다.
특히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거문고의 역할 변화가 흥미롭다. 그룹 이름을 연호하는 인트로성 래핑 뒤에서 리듬 파트를 형성하다가 본격적으로 곡이 시작되면 드럼에 자리를 내주고 메인 루프로 바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새 디지털 여과를 거친 루프로 자연스레 대체되고 사그라진다. 곡 전반에서 거문고가 차지하는 물리적 비중은 크지 않다. 하지만 ‘Pink Venom’에 대한 기억을 지배하는 요소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현대 장르와 전통악기의 조합이 더는 신선하지 않은 시대임에도 ‘Pink Venom’에서의 과감한 시도가 여느 평범한 클럽 뱅어들과의 차별점을 만들어냈다.
2020년대는 우리야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Pink Venom’은 블랙핑크가 오늘날 월드 스타로의 지위를 선언하는 선공개 싱글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걸그룹과 제작팀은 팝 스타 워너비를 넘어 팝 스타 그 자체로 대중음악 역사에 기억되고자 하는 욕구를 과감히 투영한다.
노래 곳곳에서 제작자들의 취향과 지향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시작은 거문고지만 핵심 멜로디는 인도 발리우드 영화 음악과 펀자브 지방의 방그라 음악 스타일이다. 선율만 그런 것이 아니라 “This that pink venom” 후렴부를 고음역으로 부르며 영향을 숨기지 않는다. ‘Pretty Savage’, 리사의 솔로 곡 ‘LALISA’로 예고한 바 있는 이 전략은 1990년대 닥터 드레부터 2000년대 초·중반 팝 히트곡을 거쳐 오늘날까지 힙합 음악까지 팝 시장에서 자주 활용되는 샘플링이다. 제이 지의 ‘The Bounce’, 더 게임의 ‘Put You On The Game’, 카니예 웨스트가 선사한 푸샤 티와 퓨처의 ‘Pain’,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Toxic’, 블랙 아이드 피스의 ‘Don't Phunk With My Heart’ 같은 곡들이 스친다.
직접적으로 호명하기도 한다. 강렬한 제니의 도입부 ‘Kick in the door Waving the coco’에서 노토리어스 B.I.G.의 ‘Kick In The Door’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리사가 로제에게 바통을 넘기는 ‘You couldn’t get a dollar outta me’ 파트는 50센트의 ‘P.I.M.P’의 응용이다. YG엔터테인먼트를 지탱하는 음악 취향으로 최근 Y2K 유행 정서와도 궤를 같이한다
“2000년대 리아나, 퍼기,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있었다면, 2020년대는 우리다.” 강력한 자신감과 대단한 인기 근거 삼아 블랙핑크가 외친다. 넘치는 자신감으로 9월 16일 발매되는 앨범 ‘BORN PINK’를 예고하고 있다.
멋진 균열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리사가 솔로 곡 ‘LALISA’로 ‘베스트 케이팝’ 부문을 수상한 인상적인 장면은 근래의 블랙핑크에서 그가 출중히 수행하는 역할과 깔끔히 겹쳐진다. 이른바 패밀리 시절부터 YG가 ‘이국적인’ 악기 소리의 음색을 고명처럼 사용해온 것부터 미국 주류 팝 랩에 대한 동경까지의 익숙한 특징들이, 거의 익숙하게 ‘Pink Venom’을 구성하니 말이다. 그것이 ‘거의’ 익숙하다는 것은, 우선 곡이 각 양식들을 결합하는 와중 노토리어스 B.I.G가 ‘Kick in the Door’로 인용한 랩 구간이나 리아나의 ‘Pon de Replay’ 속 멜로디를 차용해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대중음악이 주로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전래하고 인용하는 지지체가 되어 거대한 점묘화를 이루는 식으로 이어져온 만큼 오직 ‘블랙핑크적’이거나 ‘YG적’으로 들릴 풍경의 편집된 형상을 자연스럽고 뻔뻔히 숨겨 놓았다는 건 이를 이래저래 알아차리는 것만큼이나 즐겁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욱 즐거운 건, 스스로를 ‘미국 팝’과 어울리게 위치시켜보고 싶어 하는 ‘Pink Venom’이 결국 자신이 한국에서 출몰한 아이돌 팝이라는 사실을 불연속적이게 삽입된 구간으로 불현듯 흘려버릴 때다. 외마디 지펑크 신스 음이 깔리고 브레이크 비트의 덜컹거리는 힘이 유난히 강조된 이 부분에서 제니와 함께 쫀쫀한 랩을 뱉는 이가, 바로 리사다. 손님으로 모신 셀레나 고메즈를 챙기듯 팝송에 더욱 가깝게 짜였던 ‘Ice Cream’이 경로에서 슬쩍 벗어날 때 한껏 활약했고, 그보다 ‘LALISA’에서 유사한 인과적 충돌을 감행하며 트랙에서 가장 돋보이는 영역을 (아이돌 팝 또한 그렇듯이) 다양한 원천들이 복합적으로 뒤얽힌 동남아시아 문화의 표현을 위해 사용했던 리사를 매개로, ‘Pink Venom’ 또한 동시기의 아이돌 팝 팀들 중 가장 ‘국제적인’ 블랙핑크의 어떠한 일관성을 헤집는다. 절대로 하나로 융합될 수 없는 성질들 간의 불화가 트랙 속에서 이렇게 의도적이거나 의도적이지 않게 분출하는 순간은, 어찌 됐든 트랙 내의 팝적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이런 곡들에서 가장 흥미로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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