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 개최될 제63회 그래미 어워드를 둘러싼 관심사 중 하나는 방탄소년단의 그래미 노미네이트 및 수상 여부다. 2019년 11월 방탄소년단이 제62회 그래미 어워드에 노미네이트되지 않자, ‘포브스’는 방탄소년단이 2019년 한 해 동안 보여준 성과들을 정리하며 “역사적으로 그래미에서 유색인종 아티스트들은 반복적으로 소외되어 왔다.”라고 지적했다. ‘롤링스톤’은 “시상식에서 K-POP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가요계의 일상적인 현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제62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방탄소년단은 릴 나스 엑스와 함께 짧은 공연을 펼치며 호평을 받았다. 2019년 2월 개최된 제61회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베스트 R&B 앨범 부문 시상자로 나섰고, 이들이 당시 착용한 슈트는 같은 해 11월에 LA 그래미 뮤지엄에 전시됐다. 그러나 당시에도 방탄소년단은 앨범 패키지의 아트 디렉터가 수상하는 분야인 ‘베스트 레코딩 패키지’ 노미네이트에 그쳤다. ‘포브스’와 ‘롤링스톤’의 주장처럼 그래미의 선택에 특정한 의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래미가 방탄소년단에 비춘 스포트라이트와 노미네이트 결과가 어울려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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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의 ‘Dynamite’는 지난 9월 1일과 9일(EST) 빌보드 차트 '핫 100'에서 2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아시아 아티스트로서는 1963년 'Sukiyaki', 2010년 'Like a G6' 이후 세 번째 1위 기록이다. 닐슨뮤직의 2020년 상반기 결산 리포트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의 ‘MAP OF THE SOUL : 7'은 미국에서 유일하게 올해 상반기 동안 실물 앨범 50만 장 이상을 판매한 앨범이었다. 또한 방탄소년단은 팝 아티스트 중에서는 실물 앨범 판매량에 디지털 음원 다운로드 횟수, 스트리밍 횟수를 앨범 판매량으로 환산해 합산한 총 소비량 기준으로 141만 7000점을 기록하면서 빌리 아일리시 다음 두 번째 순위를 차지했다. 이는 그룹으로서는 유일하게 총 100만 점 이상을 얻은 또 다른 아티스트인 비틀스를 뛰어넘은 기록이기도 하다. 비단 상업적인 성과뿐만이 아니다.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ARMY)는 SNS에서 불법 시위 제보를 받는 댈러스 경찰청의 앱 ‘아이워치 댈러스’에 팬캠을 업로드하며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이하 BLM) 시위를 통제하려는 움직임에 맞서거나, 해당 사안에 대해 10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팬덤의 사회참여에 대한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상업적으로 서구권 중심의 미국 음악 산업에서 큰 성공을 거뒀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다양한 정체성으로 이루어진 다수의 군단(ARMY)을 이끄는 시대적 상징이 됐다. 만약 방탄소년단이 그래미에 노미네이트되거나 수상을 한다면, 그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 역사에 한 줄을 더 추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수상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 역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방탄소년단의 그래미 노미네이트나 수상 여부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이것이 지금 이 시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BLM이 2020년의 중요한 화두가 되기 이전부터, 그래미는 정체성을 둘러싼 각축장이었다. 2014년 제56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맥클모어 앤 라이언 루이스가 켄드릭 라마를 제치고 최우수 신인상 및 랩 부문 3관왕을 차지했을 때, 맥클모어는 켄드릭 라마에게 “나는 당신이 상을 받기를 원했다.”라는 내용으로 보낸 사과 메시지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또한 2017년 개최된 제59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아델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본상(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노래상, 신인상) 중 신인상을 제외한 3개의 상을 비롯해 총 5관왕을 차지한 반면, 앨범 ‘Lemonade’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던 비욘세는 장르상인 베스트 어반 컨템퍼러리 앨범상과 베스트 뮤직비디오상 수상에 그쳤다. 켄드릭 라마는 2015년 ‘To Pimp A Butterfly’와 2017년 'DAMN.'이 각각 메타크리틱 96점과 95점을 기록할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정작 그래미에서는 본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GrammysSoWhite’라는 비판을 오랫동안 받아온 그래미가 의도적으로 흑인 아티스트들을 배제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빌보드’는 그간 그래미 시상식의 본상 분야에서 힙합 장르가 꾸준히 소외되어온 역사를 정리하면서 투팍, 노터리어스 비아이지, 나스, 스눕독, 아이스 큐브,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엠씨라이트, N.W.A, 런 디엠씨, 퍼블릭 에너미 등 적지 않은 힙합의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이 그래미의 영광을 맛보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힙합 아티스트들의 수상이 본상이 아닌 일부 장르상에 한정된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2017년 드레이크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랩 송 퍼포먼스 분야를 수상한 그의 노래 ‘Hotline Bling’은 랩이 아니라는 의견을 밝히면서, 자신이 흑인 아티스트이자 래퍼라는 이유로 본상이 아닌 랩 분야로 자신의 음악을 한정한 그래미의 시상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이는 지난 8월 미국 비디오 뮤직 어워드(VMA)의 K-POP 부문 신설이 본상에서 K-POP을 배제하는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일부 방탄소년단 팬들의 비판을 떠오르게 한다. 오랫동안 힙합이 겪어왔던 문제를, K-POP이 방탄소년단을 통해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래미에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과 혐오 문제를 전면에 드러낸 차일디시 감비노의 ‘This is America’는 2019년 제61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등 본상을 포함해 총 4관왕에 올랐다. 또한 2020년 제62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빌리 아일리시의 본상 4개 전체 수상을 포함한 총 5관왕 수상 그리고 리조 및 릴 나스 엑스의 다수 노미네이트 및 수상은 10대 여성, 흑인, SNS 스타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변화로 보였다. 그러나 최근의 이런 움직임은 아주 오래전부터 느린 발걸음으로 이뤄진 결과다. 지난 9월 ‘빌보드’는 그래미가 최근 몇 년간 백인 남성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2021년 개최될 제63회 그래미 어워드가 2020년의 인종 이슈를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흑인 아티스트에 대한 그래미의 시상 경향은 ‘#GrammysSoWhite’ 같은 비판이나 BLM처럼 첨예한 이슈가 벌어진 이후에야 변화를 보여왔다고 할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인 2017년, 프랭크 오션은 제59회 그래미 어워드 후보 등록을 위한 서류 제출을 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하면서 시상식에 대한 불만을 표했다. 제이지와 비욘세는 2019년 제61회 그래미 어워드, 2020년 제62회 그래미 어워드에 2년 연속 불참했다. 최근 그래미의 변화는 흑인 아티스트들이 오랫동안 목소리를 내온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인종차별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동양인 아티스트 또는 K-POP이 서구 음악 산업, 더 나아가 그래미를 마주하는 역사는 방탄소년단을 통해 이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즉, 올해 방탄소년단의 수상 여부는 그래미의 현재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다.

그래미가 의도적으로 K-POP 또는 동양인 아티스트를 배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구권 중심으로 돌아가는 미국의 음악 시장에서 동양인 아티스트가 상업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낸 사례 자체가 많지 않다. 중국계 주(ZHU), 대만계 길 창(Gil Chang), 말레이시아계 유나(Yuna) 그리고 한국계 예지(Yaeji), 박혜진(Park Hye Jin), 테드 박(Ted Park) 등이 높은 평가를 받지만, 상업적으로 큰 성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또한 K-POP을 좁은 의미의 ‘아이돌 음악’이 아니라 한국 아티스트의 음악 또는 한국어로 된 음악이라고 광범위하게 정의한다고 해도,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불러일으킨 성공이 곧 한국 음악의 현지화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지점에서 방탄소년단의 ‘Dynamite’는 논쟁적일 수 있다. 아티스트는 한국인이지만, 장르로 분류하면 디스코이고, 가사는 영어다. 또한 빌보드 핫 100에서 역사상 43번째 1위 데뷔곡인 동시에, 2주 연속 1위를 기록한 후 발매 5주 차에 다시 1위에 오른 곡이다. ‘포브스’는 ‘Dynamite’가 리믹스 발매로 다시 빌보드 핫 100 1위에 오른 것은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Rain on Me’, 도자 캣의 ‘Say So’, 메간 디 스탈리온의 ‘Savage’도 선택한 음악 산업의 통상적인 전략이라는 점을 짚으면서 “모든 팝 스타가 1위 히트곡이라는 같은 상을 위해 경쟁하고, 가장 많은 팬 베이스를 가진 영민한 아티스트가 금메달을 집으로 가져간다.”라고 평한 바 있다. 이를 바꿔 말하면, 방탄소년단은 ‘특정 팬덤만 좋아한다’는 K-POP 아이돌에 대한 편견으로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팬덤을 가졌고, 영어 가사와 디스코라는 점에서는 팝으로 분류되는 음악을 발표했으며, 현재 미국 음악 시장에서 어느 아티스트가 기록했더라도 놀라울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다. 인종으로나, 장르로나, 국경으로나 그간 서구 산업이 규정하던 벽을 뛰어넘은 방탄소년단의 이 결과물을 과연 그래미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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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대중의 투표로 수상을 결정하고 있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s)가 대중성을 평가한다면, 빌보드 뮤직 어워드(BBMAs)는 빌보드 차트라는 데이터에 기반해 상업적인 성공을 측정한다. 반면 그래미는 음악 산업에 종사하는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작곡가 등으로 구성된 투표인단의 1차 투표를 거쳐 20명의 후보를 선정한 후, 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투표 회원 최소 20인으로 구성된 지명위원회의 검토를 받아 본상 후보 8명을 결정한다. 지난 2019년 12월 발간된 ‘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한 레코딩 아카데미의 TF 최종 보고서’는 지명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후보가 결정되는 과정에 대해 인기 투표를 방지해 합리적인 결과를 보장하고, 덜 알려진 예술가들과 작품들을 포함시키기 위한 취지라는 이전 경영진들의 설명을 포함하고 있다. 즉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래미의 투표 및 지명 시스템은 오히려 시상식으로서 순수하게 음악성에만 집중할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다만 TF 최종 보고서는 그래미가 본상 후보를 5명에서 8명으로 늘린 결과, 더 다양한 후보가 지명될 수 있는 기회는 늘어났지만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서는 투표에서 단 13%의 지지를 받은 후보자도 수상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빌보드의 보도에 따르면, 지명위원회는 투표인단의 1차 투표에서 넘겨받은 20명의 본상 후보 투표 순위를 알지 못하는 상태로 최종 후보를 결정한다. 그런데 지명위원회의 구성원들은 레코딩 아카데미 이사회의 최고 협의자와 협의하여 이사회 승인을 거친 후 임명되고, 바로 이 이사회의 구성은 2019년 12월 기준으로 남성 65%, 백인 63%다. 투표인단 전체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대표성은 부족하고, 지명위원회의 기준은 주관적이며, 조직 내부의 다양성은 앞으로도 그래미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래미가 최근 내부적 다양성의 확보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된 빌보드의 기사에 따르면, 레코딩 아카데미는 최근 2년간 투표인단 구성에서 더 많은 여성, 소수 인종 그리고 더 어린 연령대의 유권자들을 모집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2018년에 200명, 2019년에 590명의 신규 투표권자를 모집했다. 이런 노력들은 점차 그래미가 더 다양하고 시대성을 반영하는 음악을 선정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방탄소년단은 변화를 위한 그래미의 현재 한계선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측정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래미는 과연 K-POP, 아시아, 보이 밴드라는 마이너리티의 키워드들을 어디까지 품을 수 있을까? 이들은 지난 2월 발표한 ‘MAP OF THE SOUL : 7’으로 메타크리틱에서 최고 등급인 ‘전반적인 극찬’을 받았고,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글로벌 팝 현상"(‘롤링스톤’), "미국인들이 어떤 종류의 음악을 들을지에 대한 통념을 깨는 성공담"(‘월스트리트저널’) 등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또한 ‘Dynamite’는 디스코 장르의 복고적인 음악인 동시에 코로나19 이후의 일상에 대한 희망을 전달하는 음악이기도 하다. 요컨대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완성도, 다양성, 시대적 메시지 모두에 부합한다. 물론 올해 방탄소년단이 그래미 어워드에서 노미네이트되지 않거나 수상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결정이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그래미가 지금 미국의,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음악적 다양성과 시대적 흐름을 품을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를 질문할 수는 있다.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외국어로 제작된 영화를 후보로 하는 국제장편영화상뿐만 아니라 작품상을 비롯한 주요 부문 4관왕을 차지한 사례를 생각하면, 이 질문은 더욱 선명해진다.

앞서 언급한 그래미 TF 최종 보고서에는 K-POP이라는 단어가 한 차례 등장한다. 아시아계 미국인 아티스트들은 K-POP으로 압박을 받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임원들은 랩과 힙합 분야에만 참석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음악 산업은 산업 내 다양성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하는 부분이다. 단 한 번의 언급이 주는 교훈은 K-POP이나 동양인에 대한 언급이 다양성 실현을 위한 보고서에서조차 몇 차례 없다는 사실이 아니다. K-POP이라는 단어에 함의된 편견이 방탄소년단처럼 K-POP에서 출발한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 활동하는 일부 아시아계 아티스트들에게도 그들을 가두는 경계선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방탄소년단이 현재 하는 음악이 K-POP이냐, 팝이냐, 혹은 또 다른 무엇이냐가 아니다. 이들이 아이돌인지 보이 밴드인지에 대한 논쟁도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정체성이 음악에 대한 평가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지의 문제로 모아진다. 방탄소년단이 미국에서 겪은 일들은 그런 편견을 평단의 호평들로, 빌보드 차트에서의 상업적인 성과로, AMAs와 BBMAs에서의 수상으로 바꿔놓은 역사이기도 하다. 다시 질문. K-POP과 아시아라는 이름을 지웠을 때, 그래미는 ‘MAP OF THE SOUL : 7’과 ‘Dynamite’를 과연 어떤 음악으로 기억할 것인가?
글. 김리은, 이예진
디자인. Lee3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