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BE’는 2020년 4월 17일, 멤버 RM이 유튜브 채널 ‘BANGTANTV’를 통해 앨범 제작에 대해 알리면서 시작됐다. 그 후 7개월 뒤, ‘BE’가 발표되기까지 RM의 머릿속에는 많은 것들이 담겼고, 많은 생각들이 흘러들어 왔으며, 다시 흘러나갔다.

‘BE' 앨범은 전과 다른 방식으로 만든 앨범인데, 마쳐 보니 어때요?
RM:
 멤버들의 덕을 많이 봤어요. 이번에는 작곡한 곡을 못 내서 작사만 했는데, 멤버들한테 고마웠죠. 뭐랄까 ‘정말 다들 각자 잘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 곡의 많은 부분들에서 친구들에게 빚을 진 것 같아요. ‘STAY’같은 곡은 원래 다른 곡으로 하려고 했는데 정국이가 자기 믹스테이프에 타이틀 곡으로 쓰려고 한 게 좋아서 모든 멤버들이 이걸 넣자고 해서 바뀔 만큼 멤버들의 비중이 컸어요. 그리고 앨범 사진에서 나름 제 아이디어였던 방이 채택돼서 기분이 좋고요. 코로나19 때문에 방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우리 일곱 명의 스타일도 다른 만큼 각자의 방으로 꾸며보자는 아이디어를 전개했어요.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웃음) 그때 제가 방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저는 모던하고 따뜻한 느낌이 좋아서 편안한 방을 만들었고요.

가운데에 그림이 있고 피규어가 대칭으로 있던데요.
RM:
 피규어들은 실제로 소장하고 있는 것들이고, 그림은 소장 중인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진 못했어요. 그래도 지금 저와 가장 가까운 것들이고, 제 방에 있었으면 하는 것들로 구현했어요. 

미술을 좋아하고 전시회를 자주 가는 건 잘 알려져 있는데, 앨범 사진에서처럼 집이나 다른 사람들이 없는 빈 공간에서 미술 작품을 보는 게 어떤 느낌인가요?
RM: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말인데, “이 그림을 굳이 살 필요 없다. 지금 보고 있는 동안에는 네 것이다.”라고요. 화가들이 가장 부러웠던 점 중 하나가 죽은 뒤에도 어떤 공간, 때로는 다른 나라의 누군가에게 그 공간에 그 그림이 걸려 있을 때의 느낌을 주는 거였거든요. 음악도 곡과 공연 영상이 남기는 하지만 시간을 넘어 그 공간에서 온전하게 감상자와 오랜 세월 전의 예술가가 만나는 것, 이건 화가라 가능한 것이기에 부러웠어요. 그래서 요즘은 어느 공간에서든 좀 더 편하게 보려고 하고 있어요.

전시회에 갈 준비를 하고 작품을 갤러리에서 보는 순간이 주는 게 있으니까요.
RM:
그게 완벽한 것 같아요. 작품 중엔 가정에서 소장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미술관에 있어야만 하는 것들이 또 따로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경험들이 음악 작업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 같나요? 이번 앨범에는 작곡을 안 하는 대신 전곡의 작사에 참여했는데, 가사 쓰기에 영향을 준 부분이 있지 않았나요?
RM:
공감각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많이 길러준 것 같아요. 전에는 말 자체에 예민하고 언어나 청각적인 텍스처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저의 생각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방법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미술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늘렸는데 밑바탕을 여러 번 칠해서 그 위에 색이 나오게 하는 것처럼 언젠가 승화되기를 기다리고 있고요. 음악에 어떤 영향을 직접 줬는지 일답하기는 어렵지만 창작을 하는 사람들의 일생이나 창작 과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생기는 것 같아요. 화가들은 워낙 긴 시간에 걸쳐 예술 활동을 보여주는데, 긴 호흡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해주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요즘은 가사 쓰기가 되게 어렵기도 하고요. 되게 조심스럽고.

왜 어렵나요?
RM:
전에는 할 말이 분수처럼 터져 나와서 그걸 빼기 힘들어 젠가처럼 잔뜩 쌓아놓고 뭘 빼야 되나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면, 요즘에는 블록 하나 놓기가 너무 힘들어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평생에 걸쳐 작품 활동을 해온 예술가들을 보면서 창작의 호흡이 점점 느려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딜레마가 계속 생겨요. 아직 스물일곱 살이고 여전히 계속 헤매고, 쥐어 터지고 그래야 되는데 너무 빨리 그들의 호흡을 눈에 담아서 흉내내려고 하나? 아니면 역으로 방탄소년단이 7년 사이에 너무 많은 걸 겪었기 때문에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시점일 수도 있고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서, 머리가 하얗게 센 청년 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곡을 하나도 못 냈어요. 써놓은 게 몇 개 있지만 앨범에 쓰기에는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였고. 이런 제 모습이 마음에 안 들기도 하지만, 생각하는 방향으로 할 만큼 해봐야 풀릴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선지 랩이 트렌드나 음악적인 고려보다 가사를 가장 잘 전달하는 쪽으로 바뀐 것 같아요. 일정한 형식이나 비트에 대한 고려보다 가사의 느낌을 강조하던데.
RM:
맞아요. 피독 형이 2017년인가? 저랑 윤기 형이랑 홉이의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하다 “남준이 너는 결국 리리시스트(lyricist)로 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얘기를 했었는데, 그게 제 마음에 되게 박혔었어요. 요즘 ‘쇼미더머니'를 보거나 빌보드 차트에 오른 힙합 곡들을 들을 때 여러 생각이 들어요. 내 음악은 ‘래퍼로서의 나’가 모든 출발점이었는데, 그래서 지금 나는 어디에 와 있는 건지 많이 생각하게 돼요.

음악인으로서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됐네요.
RM:
제가 오늘도 이소라 선배님 7집을 듣다 왔거든요. 6~7집에서 계속 방황하는데, ‘난 하나만 고르면 7집이 조금 더 좋은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하다 빌보드의 인기 곡들을 들으면 되게 혼동이 와요. ‘아, 뭐지?’ 요즘 김환기 선생님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아요. 그분이 뉴욕에 가서 마크 로스코(Mark Rothko)나 아돌프 고틀리브(Adolf Gottlieb)의 화풍을 받아들이게 됐지만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나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 사람 이상의 것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이 이상의 것을 할 수가 없다. 왜냐면 나는 변방에서 온 사람이기 때문에.” 저도 그 생각이 계속 들어요. 그게 요즘 제 화두인 것 같아요.

‘BE’에 그런 느낌들이 있던데요. 멤버들의 작곡과 프로듀싱 비중이 더 늘어나면서 과거의 한국 음악, 굳이 말하자면 RM 씨가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들었을 것 같은 음악의 특징들이 조금씩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그 시절 한국 음악도 아니고, 팝적이기도 하지만 팝도 아니고.
RM:
사운드적으로 조화가 돼야 하니까 그 느낌을 방탄소년단의 앨범에 낼 수도 없지만, 제가 요즘에 계속 들었던 음악들도 한국 곡들이었어요. 피타입(P-TYPE)의 ‘돈키호테’, 데드피(DEAD’P)의 ‘날개짓’, 소울 컴퍼니의 앨범 ‘The Bangerz’의 곡들 있잖아요. 그 시절이 저한테 남겼던 그 발자취, 그 시절의 가사랑 지금의 가사는 달라요. 그래선지 ‘BE’도 가요면서 팝이기도 하고, 저에게도 되게 독특해요.

‘Life Goes On’이 특히 그런 것 같아요. 팝적인 멜로디가 있는데 단적으로 ‘Dynamite’와 비교하면 팝적인 감성과는 아주 다르고. 감정에 깊이 빠지지 않고 흘러가는 멜로디가 주는 느낌이 독특했어요.
RM:
그렇죠. 후렴구는 완전 팝이고, 작곡에 미국 작곡가가 참여하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미국 트렌드를 따르는 음악이라고 할 수는 없고, 묘하죠. 그래서 ‘Life Goes On’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무척 담담하고 관조에 가까운 부분이 있고. 그래서 ‘Like an echo in the forest’나 ‘Like an arrow in the blue sky’ 같은 가사처럼 그냥 지나가고 사라지는 것들 같은 느낌일 수도 있어요. ‘Dynamite’ 다음에 나오니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고.

다른 건 모르겠는데 왠지 오래 갈 곡 같긴 해요. 지금 어린 분들도 나이 들어서 어느 시점에는 한번 듣게 되지 않을까 싶은.
RM :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거 하나를 바라는 것 같아요. 돌아봤을 때 ‘아, 이런 곡이 있었다’는. 좋아하는 화가들이나 나에게 오래 자취를,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의 공통점이거든요. 나한테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음악들, 이소라 선배님의 7집 같은 앨범의 공통점이 뭘까 했을 때 그 시절과 그 사람의 목소리로 사운드와 함께 뱉는 그 가삿말이 오래 남는 거예요. 나중에 돌아봤을 때 정말 나의 목소리로 내는 이 언어와 소리가, 청각적으로든 시각적으로든 아니면 그게 그냥 정말 총체적인 인생으로서든 오래 잔향과 여운을 많이 남겼으면 좋겠어요. 그게 딜레마이긴 해요. 우리 자체는 블링블링한 팀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져온 성공의 표상으로 대변되는 것들은 블링블링하니까요.

그런데 방탄소년단의 커리어는 더 블링블링해졌잖아요. ‘Dynamite’로 빌보드 HOT 100 1위까지 했고.
RM:
그날 확인은 제가 제일 먼저했는데, (웃음) 들뜨고 싶지는 않았어요. 마음의 추락이 무서우니까 습관적으로 제동장치를 거는 게 있어서, 가만히 있었어요. 그런데 한편으론 지금 즐기는 게 맞지 않나 싶기도 하고. 이런 게 인생에 많이 있는 일이 아닌데 좀 즐겨도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둥둥 떠 있기만 하면 그런 느낌이 싫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했어요. 이 큰 일에서 나는 작은 조각만 했다고 생각하니까.

‘Life Goes On’에서 ‘저 먹구름보다 빨리 달려가 그럼 될 줄 알았는데 나 겨우 사람인가 봐’라는 부분이 생각나네요.
RM:
‘겨우 사람’이 지금 제 상태에서 제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 게, 한강을 가다 먹구름이 남산타워 쪽에 있는 걸 봤어요. 그때 친구랑 “비가 오고 안 오는 경계는 어딜까?” 그런 얘기를 하다 거기까지 한 번 뛰어보면 어떠냐고 해서 뛰었어요. 그런데 한 10분 뛰어도 먹구름이 제가 있는 곳보다 더 멀리까지 가 있는 거예요. 그때 어떤 퍼즐이 맞춰진 순간이라고 해야 하나, ‘네가 뛰어봤자 저 먹구름보다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아? 못 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김환기 선생님 말씀처럼 나는 한국 사람이라 한국 사람 이상의 것을 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고. 예전에는 작업하다 안 되면 밤을 새고, 그래도 안 되면 삼성에서 신사역까지 걸으면서 계속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나도 이 이상의 것을 못 하는구나 싶으니까.

위버스에 운동을 많이 하면서 근골격량이 늘었다고 했어요. 몸의 변화가 장기적으로 창작에도 변화를 주게 되지 않을까요?
RM:
‘체질이나 기질을 약간은 바꿔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꾸준함에 관한 건데, 전에는 치열하게 고민하는 걸 팡팡 터뜨리고 ‘아, 모르겠다’ 이러면 됐다면, 이젠 꾸준하게 하나를 가져가면서 깊게 뿌리를 박을 시간 아닌가. 그런데 가장 확실한 게 운동이었고, 지금 제 기질을 많이 바꾸는 것 같아요. 1년, 2년 운동이 축적되면 다른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

음악이 본인의 일이자 인생이기도 한데, ‘병’에서 표현한 것처럼 본인의 일이 요즘엔 어떻게 느껴져요?
RM:
이 일은 지금은 직업이고 소명이며,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순수하게 제 창작으로서만 고민할 수 있게 된 상황에 대해서 운 좋은, 행복한 고민이라고 생각하고요. 내가 믿음을 준 사람들에 대해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그래서 어떤 선을 넘지 않으려고 하고, 제 나름대로 절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해 프로페셔널로서 일하려고 해요. 이건 이 자리에 있는 거고, 제가 배신하지 않는,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 그런데 이왕 할 거면 좀 행복하게 하자고. 그게 잘 안 될 때도 있지만, 그런 것 같아요.

그럼 지금 시점에서 방탄소년단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RM:
방탄소년단은…. 글쎄요 참, 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방탄소년단의 역사는 내가 방탄소년단을 ‘다 안다’에서 시작해서 ‘방탄소년단을 진짜 하나도 모르겠다’로 가는 역사인 것 같아요. 옛날에는 다 알 것 같았고, 다 하면 될 것 같았어요. 치기라면 치기고 패기라면 패기인데, 그래서 ‘방탄소년단은 지금 나한테 뭘까?’라고 한다면 그냥 어떤 길목에 있던,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이 만난 거예요. 그런데 시대적인 상황과 여러 사람들의 지혜와 인복이 잘 맞아떨어져서 스타트업 회사가 유니콘 기업이 돼 버린 느낌이에요. 하지만 돌아보면 이 업계가 가진 아이러니와 모순도 많았고, 그런 걸 하나하나 알게 되니까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하나도 모르겠다’가 된 것 같아요. 그래도 정리해본다면, 내 치기 어린 20대. 20대의 역사. 많은 모순과 사람들과 명성과 분쟁이 얽혀 있기도 했지만, 내가 선택했고 거기서 얻은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치열하고 행복했던 20대.

한 사람으로서의 RM 씨는요?
RM:
되게 정말 한국 사람.(웃음) 한국에서 뭔가를 하고 싶은 사람. 지금 밀레니얼 세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대 사이에서 사회에 쳐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선택한 게 방탄소년단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를 이 세대 안에 녹이려고 하고, 나와 같은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고민하고 치열하게 일하고, 그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이 고민을 담아내려고 하고. 이런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고 느끼기도 하지만, 그냥 이게 나다. 나는 그냥 한국의 스물일곱이다. 그런 것 같습니다.

글. 강명석
인터뷰. 강명석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비주얼 크리에이티브팀. 이선경, 차연화(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사진. 신선혜 / 백승조, 김민석(@co-op.)(이상 디지털 컷), 전유림(필름 컷)
헤어. 한솜, 최무진, 이다은
메이크업. 김다름, 김선민, 서유리
스타일리스트. 이하정, 김혜수, 홍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