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의 관계를 돌아보며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할 때 수빈은 신중했고, 고심 끝에 고른 사랑의 단어들에는 그의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존재들을 향해 전하는 가장 ‘따듯’하고 포근한 수빈의 언어.
최근 바쁜 일정 중에도 어릴 때부터 다니던 치과 원장님을 뵈러 갔어요. 지난 가을에는 모교를 방문해 선생님께 인사드렸고요.
수빈: 제가 찾아뵙고 있는 분들이 전부 연습생 때 약속을 했던 분들이에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가 엄격해서 조퇴도 어려웠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숙제든 청소든 많이 배려해주시고 도와주셨거든요. 다른 선생님들한테도 “수빈이는 좀 봐줘라.” 이런 얘기도 많이 해주셨고요. 너무 감사한 마음에 “선생님, 제가 데뷔하고 잘되면 꼭 찾아가서 선생님 어깨 이렇게 올라가게 하겠습니다. 반 학생들한테 자랑할 수 있게끔 하겠습니다.”라고 말했거든요.(웃음) 그래서 매년 찾아뵈었는데 올해가 정년퇴직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저는 슈퍼스타가 돼서 찾아가고 싶었는데 아직 그렇게는 못 되었지만(웃음) 마지막 기회일 듯해 이번에는 반까지 찾아가서 학생들한테 인사했고요. 치과 원장님도 마찬가지로 제가 연습생 때 너무 바쁘니까 치과 오픈 시간도 아닌데, 오픈 1시간 전에 오셔서 제 진료도 먼저 봐주셨거든요. 저 때문에 고생하신 분들께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작년 한 해는 그렇게 수빈 씨가 많은 관계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월드 투어를 통해 팬분들을 만나기도 했어요.
수빈: 모아분들을 만나면서 “오래 기다려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진짜 많이 했는데요. 그 이유가 저희는 리허설을 하다 보니 오후 7시 공연이면 오전 9시쯤 출발하는데 모아분들께서 그 이른 시간부터 저희를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투어뿐만 아니라 롤라팔루자 때도 공연이 8시간, 9시간 남았는데 저희를 응원해주시고 기 살려주겠다고 일찍 오셔서 앞줄을 다 채워주셨고요. 이른 시간부터 무대 앞 네 줄, 다섯 줄씩 모아분들로 채워지는 걸 보고 이거는 진짜 ‘사랑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구나.’ 싶었어요. 늘 감사했지만 특히 투어 때랑 롤라팔루자, 서머소닉 갔을 때 더 고마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여러 공연에서 모아분들의 사랑을 눈에 담을 수 있었네요.
수빈: 맞아요. 특히 투어에서도 ‘Thursday’s Child Has Far To Go’를 관객석에 내려가서 불렀는데 콘서트에서 부른 노래 중 제일 행복했던 곡이에요. 팬분들이 너무 행복해하는 얼굴이 눈앞에서 보이니까 제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고,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고.(웃음) 제가 행복함을 느꼈던 건 춤추고 노래하는 내가 행복한 게 아니고, 춤추고 노래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모아들을 보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이번 연말 무대도 팬분들과 대면으로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을 것 같아요. 매년 연말 무대가 항상 떨렸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신나셨다고요.
수빈: 연말 무대를 정말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그래서 이번만큼은 실수해도 후회 없이 후련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게 ‘진짜 나의 최선의 최선의 최선이었다.’라고 생각했고요. 이전 연말 무대 영상을 보면 부족한 점들이 많이 보였는데, 이번 연습 때 촬영한 영상을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 중에 제일 멋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그 자신감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대처하는 방식에서도 느껴졌어요. ‘MAMA’ 무대에서 안무 중 하나인 안대로 눈을 가리지 못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나갔어요.
수빈: 안대가 킬링 포인트 중 하나고 리허설 때도 안대를 묶지 못한 적이 없었거든요. 너무 열심히 준비했는데 갑자기 실전에서 안 되니까 괜히 나 때문에 포인트 하나가 날아갈까 봐 ‘이거 안 되겠다. 입에라도 물어야지.’라고 판단한 건 아니고, 진짜 저도 모르게 입에 딱 물고 췄던 것 같아요. 너무 다급한 마음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무대에서 실수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좀 힘들었는데, 그래도 당시 반응도 좋고 대기실에 오니까 다들 박수 쳐주셔서 ‘잘 넘겼나 보다. 다행이다.’ 하고 안도감이 들었어요.
여러모로 이번 ‘MAMA’가 수빈 씨께 잊을 수 없는 무대가 된 것 같아요. 어린 시절 가수의 꿈을 꾸게 만든 카라의 무대도 볼 수 있었고요.
수빈: 카라의 무대를 볼 때 울컥했던 게 다시는 못 볼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다시 무대에 서 계신 모습을 보는 데 너무 즐거워 보여서 제가 다 행복했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K-팝을 좋아하고 가수를 꿈꾸게 된 것도 카라를 보며 영향을 받은 부분이거든요. 그리고 그분들이 출연하신 예능도 다 보면서 마인드 같은 부분도 많이 배웠고요. 엄청 단단한 그룹이라 생각하고 여러모로 제게 좋은 영향을 많이 주셨는데, 이제는 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그간 팬이었던 대상에 대해 정확히 밝힌 적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과거에 누군가의 팬이기도 했던 솔직한 마음을 나눈 이유도 있을까요?
수빈: 제가 카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멤버분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게는 너무 좋은 추억이었지만 괜히 저 때문에 카라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게 불편하실 수도 있고 조금 실례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피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컴백하셨으니 저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고, 한 번이라도 더 언급하며 홍보하고 싶더라고요.(웃음) 지금까지 말을 못했을 때 조금 답답하기도 했거든요.(웃음)
과거의 팬이었던 경험이 현재의 수빈 씨가 팬분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드는 부분도 있나요?
수빈: 너무나도 있는 것 같아요. 친구나 연인 관계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고 ‘팬과 가수의 관계’에서만 나오는 사랑이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있기에 존재하고 서로의 행복을 바라고, 나보다 상대가 더 잘됐으면 좋겠고. 이런 건 진짜 팬과 가수의 관계뿐인 것 같아서요. 사실 제가 가수 입장일 땐 팬분들이 팬 사인회에 올 때 팬레터 써오시고 “수빈이 생일 카페 이벤트 할 거야.”라고 하시면, “올 때마다 편지 써오는 게 너무 손 아플 것 같다. 나 때문에 시간 써주는 건 고마운데 돈은 안 썼으면 좋겠다.”라고 말씀드렸거든요. 그런데 이제부터는 팬레터든 이벤트든 감사히 다 받아야겠다 생각하면서 팬분들의 마음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저도 제 행복보다 팬의 행복이 무조건적으로 우선인 사람인데, 팬분들도 마찬가지로 가수의 행복이 우선인 그 마음이 다시 느껴져서 참 특별한 관계다 싶었어요.
생일날 진행한 위버스 라이브에서 이번 컴백을 즐겁게 준비 중이라고도 하셨어요.
수빈: 스스로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게 생긴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는 저를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그냥 한없이 부족한 사람인 것 같고, 특히 작년에는 ‘내가 가수가 적합한가?’ 이런 생각과 가수라는 제 직업에 의문점이 들기도 했던 한 해였어요. 그런데 팬분들을 직접 만나면서 제가 그분들께 좋은 영향과 감정을 줄 수 있는 가수라 생각하니까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지고, 사랑스럽고, 뿌듯하고.(웃음) 그런 감정으로 변하더라고요. 그래서 빨리 컴백해서 이 모습을 팬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왜 작년에 ‘내가 가수가 적합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요?
수빈: 투어를 할 때 너무 오랜만에 대규모로 많은 분들을 만나다 보니까, 이걸 낯가림이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는데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가수가 직업인 사람인데 ‘이걸 힘들어하면 내가 앞으로 가수 생활을 어떻게 할까? 내가 가수를 할 성격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작년은 첫 투어이기도 했고, 대규모로 정말 오랜만에 팬분들을 만나는 자리였다 보니까 스스로 낯선 부분이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두 번째 투어 때는 너무 재밌게 할 자신이 있어요. 이제부터는 가수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은 절대 없을 것 같고 뿌듯함만 가득할 것 같습니다.(웃음) 저는 작년보다 올해, 올해보다 내년에 더 나은 사람일 거거든요.
작년이 많은 도전이 있었던 해였네요. 이번 앨범 콘셉트도 어쩌면 또 하나의 도전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앨범 준비 과정은 어땠어요?
수빈: 이번 노래도 조금 어려운 것 같은데(웃음) 앨범 콘셉트로 ‘청량 섹시’라는 게 공개되고 나서 팬분들이 섹시보다 청량을 되게 기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퍼포먼스를 할 때도 ‘청량을 잘 담을 수 있는 파트나 구간이 어딜까?’ 생각하면서 멤버들끼리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청량함이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부분에는 “조금 더 청량하게 웃는 표정으로 가자.” 이런 얘기를 하면서 준비했어요.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 ‘Daydream’ 버전의 콘셉트 포토에도 청량한 웃음이 잘 담겨 있더라고요.
수빈: ‘Daydream’ 버전을 촬영할 때 ‘지금 네버랜드에서 즐기고 있는 상황이다.’라는 설명과 몽환적인 표정을 말씀해주셨는데요. 제가 생각했을 때 네버랜드는 행복하고 즐겁고, 순수하고 웃음이 많은 공간인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완전 해맑은 어린아이처럼 찍고 싶었고 틈만 나면 일부러 계속 행복한 웃음을 지으려고 했어요.
네버랜드의 이야기가 담긴 ‘네버랜드를 떠나며’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도 고르셨죠.
수빈: 곡 자체에 대한 애정이 커서 더 잘 부르고 싶었어요. 좋아하는 만큼 사실 녹음과 수정을 제일 많이 했던 곡이기도 해요. 난이도가 있는 노래다 보니 준비 과정에서 조금 힘들기도 했는데 다 끝나고 들어보니까 너무 잘 나왔더라고요.(웃음) 그리고 ‘Devil by the Window’나 ‘Sugar Rush Ride’는 유혹이나 악마 이런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 보니, 평생 안 써본 목소리로 소리를 내는 부분도 많았고 새로운 창법으로 노래를 불렀는데요. 그 과정에서 조금 고되기도 했지만(웃음) 노력한 만큼 그런 유혹의 키워드가 잘 표현된 것 같아요.
유혹의 뉘앙스가 잘 담긴 것 같아요. 때로는 그런 유혹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지켜내야 할 것도 있을 것 같아요. “It’s so sweet, but I should find my name”이라는 로고 모션 속 말처럼요.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멤버로서 수빈 씨가 지키고 싶은 것도 있을까요?
수빈: 데뷔 때부터 꾸준히 말한 부분이기도 한데 저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라는 이름을 지키고 싶어요.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도 ‘투모로우바이투게더’라는 이름이 깨끗하게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15주년, 20주년이 되어도 누구나 편하게 언급할 수 있는 이름이자 좋은 이미지로 ‘걔네 참 열심히 했고 참 대단했던 그룹이었지.’라고 생각할 수 있게 깨끗하게 이 이름을 유지하고 싶어요.
멤버분들이라면 충분히 그 이름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인간 최수빈’으로서 지켜내고 싶은 것, 시간이 지나도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요?
수빈: 이렇게 지금처럼 주위에 좋은 사람들과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어요.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진짜 좋은데(웃음) 주변에 있는 우리 멤버들, 제 친구들, 스태프분들 모두 다 너무 좋은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좋은 분들한테 둘러싸여 살고 있어서 스스로도 되게 복받은 삶이라고 느껴요.
수빈 씨가 좋은 사람이니까 주변에도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신 걸 거예요.
수빈: 맞아요!(웃음) 그런 것도 있을 거예요. 그런 영향도 없지 않을 거예요.(웃음)
“인간 최수빈을 봐주면 좋겠어요. 솔직히 저 진짜 제가 봐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라고 위버스에 남긴 말이 생각나네요.(웃음)
수빈: 저는 사실 ‘K-팝 가수로서의 수빈’은 부족한 점이 진짜 많다고 생각하는데, ‘인간으로서의 수빈’은 너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요. 제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긴 한데(웃음) 알면 알수록 되게 괜찮은 사람인 것 같고요. 그리고 작년 한 해가 주변 사람들한테도 좋은 말을 많이 들었던 시간이었어요. “수빈 씨랑 같이 있으면 마음이 너무 편안해지고 할 말 못 할 말 다 털어놓게 된다.”라든가 친구들한테도 “수빈이가 내 친구여서 너무 다행이다.”라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 진짜 꽤 괜찮은 사람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중한 사람들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기는 과정이네요.
수빈: 맞아요. 그런 부분에서 제 정체성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제 자신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되게 견고한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느끼고 있어요. 견고하기만 한 게 아니고 건강한 마인드로 견고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리고 모아분들도 늘 저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주시고요. 그래서 모아분들께 너무 자주 하는 말이라 진부하고, 무게감이 사라질 것 같아서 이렇게 남발하고 싶지 않은데(웃음) 진짜 “고맙다.”는 말이 제가 할 수 있는 제일 최선의 표현인 것 같아요. 정말 그냥 가볍게 하는 말이 아니고 저 진심으로 하는 거거든요. 너무 고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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