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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사진 출처. TR 엔터테인먼트

트라이비의 대표 곡이라 할 수 있을 ‘우주로 (WOULD YOU RUN)’는 거의 한 해 차이를 둬 두 개의 다른 버전으로 공개되었다. 마치 같은 노래의 평행 우주 버전을 듣는 듯한 경험을 준다. 데뷔 때부터 트라이비의 프로듀싱을 맡은 신사동 호랭이가 말장난을 담아 제안한 ‘청량고추’와 ‘청량아치’ 콘셉트의 양극이 각각 담겼기 때문이다. 청양고추와 양아치의 매운맛’이 2021년도에 발매된 첫 번째 EP인 ‘VENI VIDI VICI’에 양껏 들어가 인상적인 데뷔년도 행보의 정점이 되었다면, ‘Back to the Original’이라는 부제와 함께 퍼포먼스 영상으로 먼저 공개되어 두 번째 EP인 ‘W.A.Y’에 실린 쪽은 조금 달라진 방향성을 ‘청량’의 뜻 그대로 맑고 서늘하게 지시한다. 같으면서 다른 두 곡 사이에 이렇게 분명한 격차가 있다는 점은 굉장히 신기한 일이며, 트라이비의 우주로 접근하는 두 갈래의 노선을 제공해준다.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리듬과 음색에 강하게 얽매인 댄스 장르에 있다. 동일하게 4박자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2021년도의 ‘우주로 (WOULD YOU RUN)’는 그 간격을 밀고 당기는 트레실로(tresillo) 박자를 기반으로 멀게는 댄스홀에서부터 현대적으로 갈라진 양식들을 활용하고, 2023년도의 ‘우주로 (WOULD YOU RUN)’는 일정하게 박혀 들어가는 포 온 더 플로어(four on the floor) 박자를 뼈대 삼아 하우스의 현대적인 변종들을 따른다. 물론 장르를 구성하는 데에 리듬만이 큰 힘을 발휘하는 게 아닌 만큼, 발리 펑크풍의 ‘우주로 (WOULD YOU RUN)’는 우악스럽게 울려 퍼지는 브라스에 가까운 사운드를 전면적으로 배치해 배경에서 묵직하게 들썩이는 베이스 음과 매콤하게 볶아낸다면, 딥 하우스풍의 동명 곡은 무게감을 줄인 신스 음과 건반 음이 빽빽했던 사운드에 시원하게 흘러내려 가는 틈새를 내어준다. 매력적인 후렴 구간은 공통되게 “더 높이 날아올라가 난 우주로”를 세 번씩 반복하지만, 그 주위에 장착된 다른 파트들은 벌스를 차지하는 현빈과 소은의 랩이라거나 송선의 브리지 멜로디 등을 곡별 특색에 맞게 교체하고 곳곳을 각자만의 어울리는 효과음으로 장식한다. 이렇게 두 버전의 ‘우주로 (WOULD YOU RUN)’는 동일한 빌드업-드롭이나 후렴구 등의 재료를 사용했음에도, 이를 다른 맥락과 구조에 배치해 사뭇 다른 온도의 풍경을 제시한다. 꽤나 다른 장르적 재미를 가져다주는 이 두 곡의 ‘우주로 (WOULD YOU RUN)’를 과연 온전히 같은 곡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두 갈래의 다른 평행선을 따라가다 같은 우주로 진입해버리는 듯 찾아올 이런 당혹감은, 트라이비를 듣는 맛으로 이어질 수 있을 테다.

이런 전환은 이미 작년의 싱글인 ‘LEVIOSA’의 두 곡에서 예고된 바 있다. 입 맞추는 소리가 격하게도 많이 들어간 ‘KISS’는 앞서 언급된 트레실로 리듬을 비롯해 라틴풍의 기타와 퍼커션 소리들을 집어넣어 2021년도의 연속성을 이어가는 듯 들린다. 뭄바톤과 트랩 박자의 움찔거리는 움직임은 “Blow a little Blow a little kiss”의 길게 빼는 혓소리에도 쭉쭉 뻗어나가는 고음에도 맞아떨어진다. 이와 쫀쫀하게 얽힌 소은과 현빈의 튼튼한 랩 구간을 지나가자, 캘리와 송선의 몽환적인 브리지가 여태까지의 분위기를 문득 바꿔버리며, 그간 끊임없이 등장했던 복창이 통통 튀는 “Kissin”으로 맺어져 당찼던 트랙에 효과적으로 발랄함을 덧붙인다. 샛길로 꺾어 들어가는 것과 같은 ‘KISS’의 전개가 켜놓은 방향등이 의미심장하게 눈에 띄자, 정직한 4박자인 EDM 트랙 ‘In The Air (777)’가 흘러나온다. 페스티벌이나 연말 무대에서 폭죽을 쏘아 올리는 쾌청한 분위기가 디스코풍의 현악과 함께 직설적으로 솟구치는 바로 그때에, 트라이비가 첫 EP에서 두 번째 EP를 향해 훌쩍 뛰어넘어가는 순간을 말 그대로 들을 수가 있다. 

‘W.A.Y’가 흥미로운 이유도 비슷하다. 한 해 동안 트라이비의 화끈한 색채를 만들었던 강렬한 리듬·음색적인 특징들이 새파랗고 말끔하게 교체되었다는 점이 급격히 실감나지 않기 때문이다. 떼창과 전조의 출중한 해소감이 빛을 뿜는 ‘STAY TOGETHER’가 들려주듯, 이번 EP는 일정한 박자에 맞춰 차분해진 구조를 비롯해 번쩍이는 채도의 전자음과 층층이 쌓아올린 코러스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를테면 타이틀 곡인 ‘WE ARE YOUNG’에는 2010년대 초·중반 신사동 호랭이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인 ‘Bubble Pop!’의 유산들이 보물찾기처럼 흩어져 있다. 기운차게 터지는 밝은 힘이 후렴구 멜로디로 옮겨졌다면 2010년대 중반 여성 아이돌 팝 트랙들의 보컬과 랩 파트를 깔끔히 엮은 구성을 비롯해, 은근히 숨겨진 금속질의 장식 음들과 ‘TRI.BE, be da Loca’에서는 소리들의 충돌이 불러올 쾌감을 즐길 수가 있다. 그런 내적인 파열들이 전체적인 사운드에 솜씨 좋게 기워지면서도 기워진 자국을 분명히 남기는 것까지도 말이다. 한편 ‘WITCH’에서는 저류에 기어다니는 인공적인 전자음이나 두텁게 포개진 남성 코러스, 치명적인 현악 소리가 트라이비에게 새까만 겉옷을 잠시 씌우기도 하지만, 이번 EP에서 재정렬된 트라이비는 아마 ‘WONDERLAND’에서 가장 분명하게 느낄 수 있겠다. EP의 전반적인 색조에 맞게 반짝이는 전자음들이 펑키한 베이스 그루브와 함께 안정적인 팝 공식을 짜내면, 하이 톤의 산뜻한 보컬 구간과 로우 톤의 쫄깃한 랩 구간이 알맞게 배분되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복고를 실천하니 말이다. 

 

트라이비의 스타일적인 변화가 꽤나 안정적이게 이뤄진 건, 신사동 호랭이와 함께 데뷔 때부터 트라이비의 공동 프로듀싱을 꾸준히 맡아온 엘리(ELLY)에게 특히 공을 돌릴 수 있다. 트라이비의 데뷔 이후 10주년을 맞은 EXID가 오랜만에 발매한 작년의 ‘X’에서도, 효과적으로 박자를 밀고 당기는 라틴풍의 ‘불이나’에다 정석적인 그루브를 각각 디스코와 하우스로 탄탄하게 활용한 ‘IDK’와 ‘LEGGO’가 담겨 있었으니 말이다. 이를 빗대어 주장해보고 싶은 건, 저마다 다른 규칙으로 움직이는 리듬들을 무엇이든 능숙하게 이용해온 EXID의 잔향이 엘리의 톤을 감지할 수 있을 랩 메이킹뿐만 아니라 프로듀싱의 형태로도 트라이비에게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EXID의 그루브가 대부분 미국의 1980~90년대적인 펑키함을 알맞은 복고적 접근을 통해 써먹은 데에 비해, 트라이비의 경우에는 펑키한 박자와 그루브를 더욱 자유로이 풀어놓은 중남미의 정열적인 댄스 양식들 쪽으로 옮겨진 편이다. 2010년대 내내 아이돌 팝 전역에서 부글대던 브라질 계열의 전자적인 댄스 팝에 대한 경향성이 2020년대에 들어 부분적으로는 NMIXX의 ‘O.O’나 권은비의 ‘Underwater’부터 라잇썸의 ‘Alive’, 클라씨의 ‘SHUT DOWN’, 특히나 블링블링의 ‘G.G.B’와 ‘너 나랑 놀래?’까지 여러 트랙들의 리듬적 가능성으로 차차 실현되는 동안, 트라이비의 2021년은 이 자그마한 전진의 최전선에 있었다.

‘TRI.BE da loca’를 선언처럼 삼았던 동명의 데뷔 싱글에서는, ‘Loca’부터가 “하나 둘 셋 쉬고 둘 둘 셋 빼고” 하는 트레실로 박자를 분명히 깔아두며 이를 밀고 나갔다. 그러한 박자감을 입말로 옮긴 ‘둠둠타 (DOOM DOOM TA)’는 뒤틀린 보컬 샘플로 곡을 시작해 중독성 넘치게 튕기는 박자 위에서 뛰어놀며 “이런 내게 적응 못해도 뭐 어째” 하는 자신감을 표한다. 아이돌 팝에서 이미 너르게 사용되었던 레게톤·뭄바톤의 타격감을 퍼커션으로 유독 돋보이게 뽑아낸 ‘TRI.BE da loca’의 특징은 그 대칭형과 같은 ‘CONMIGO’로도 이어졌다. 데뷔 싱글의 공식을 이어간 듯 흥얼거리는 보컬과 각종 관악기 샘플을 도입부에 깔아놓을 뿐만 아니라 매력적인 박자를 구음으로 외치기도 하는 ‘러버덤’은 리듬감을 더욱 변주하는 데에 몰두하며, 기본형에서부터 뽑아올 수 있을 각종 리듬들을 (각 부분마다의 특징적인 비트와 그에 얽매이는 사운드를 능글맞게 전환하며 그 능력을 여유롭게 뽐냈던 EXID의 ‘알러뷰’처럼) 연속적으로 배치해 진행의 재미를 키운다. 과격하게 두근거리는 초반부의 북소리가 만드는 떨림을 비롯해, 송선의 몽환적인 음색이 제공하는 인상적인 중후반이나 꽤나 청량한 빌드업 구간이 얼얼한 드롭과 충돌할 때 발생하는 낙차는 트라이비의 특징을 짜릿하게 각인시켰다. ‘Loca’의 후속과 같을 ‘LORO’에서도 증명된 이 솜씨는 ‘VENI VIDI VICI’에서의 미세한 변주들로 다시금 탐구되는데, 이를테면 소쩍새 울음으로 시작하는 막내 라인이자 랩 유닛 곡인 ‘-18’이 가야금와 꽹과리 소리를 주된 샘플로 사용해 사운드적인 결합에 도전하는 식이다. ‘LOBO’는 후렴구에서 리듬의 힘을 줄이되 웅얼거리는 목소리 샘플이 그리는 선 주위로 코러스를 배치해 소은의 흥얼거리는 보컬로 자연스럽게 이어가 장르 특유의 과도함을 줄여보며, 보컬 유닛 곡인 ‘GOT YOUR BACK’과 팬 송인 ‘TRUE’는 주술적인 리듬감이나 격렬한 관악기 샘플을 줄이는 대신 맑고 밝은 음색의 전자음들을 사용하며 ‘W.A.Y’에서 더 철저히 탐구될 청량함의 여지를 한껏 끌어올린다.

그렇게 다시, 경로는 ‘우주로 (WOULD YOU RUN)’로 돌아온다. 트라이비의 꽤나 통합적인 콘셉트나 두 EP 각각에서 주되게 따르는 장르의 차이에 있어 이질감을 줄일 수 있던 이유가 언제나 거기 있었으니까. 콘셉트의 방향성은 달라지더라도 굳건한 프로듀싱이 통일성을 유지하며 이끌어준다는 점은 변치 않는다. 그리고 음색의 톤과 그에 따른 역할들을 분명하게 부여받은 멤버들 간의 균형 잡힌 끈끈함이 특색을 묶어주니, 리듬과 사운드가 갈아 끼워지고 상쾌한 청량함과 화끈한 맵기가 합쳐질 때의 에너지가 온전히 보존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원래 데뷔 곡으로 내정되었다던 2023년의 ‘우주로 (WOULD YOU RUN)’를 지금까지의 경력상 어느 때에 두더라도 그리 어색하지 않고, ‘Back to the Original’이라는 부제가 재미있는 시간 패러독스를 일으키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트라이비의 근원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마이애미부터 킹스턴까지 카리브해 일대부터 브라질 해안 도시들까지 뻗어나간 폭발적인 리듬을 알싸한 청양고추 맛으로 옮겨온 기술력에 있을까? 아니면 그런 지역들의 쾌락적인 분위기를 전자적으로 다듬어 깔끔하게 즐겨볼 수 있도록 하는 청량함에 있을까? 2021년도의 트라이비가 전자를 우직하게 밀고 나가며 아이돌 팝에서 보다 색다른 리듬들이 선사하는 즐거움을 극대화했다면, 이번에는 한 팀에서 청량 또는 아치 모두가 가능할 수 있다는 단서를 보내며 미래의 잠재력이 담긴 ‘오리지널’로 돌아가 본다. 어떻게 보면 애초부터 그 ‘오리지널리티’란 이렇게 모든 시간과 공간이 한데 뒤섞이면서 발생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