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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이지연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한 팀으로 하늘에 오른 퍼포먼스

강명석: 중국 고전소설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은 분신술을 쓴다. 자신의 털을 한 움큼 집어 입으로 불면 털 숫자만큼 분신들이 생겨나 손오공의 지시를 따른다. 세븐틴의 새 앨범 ‘FML’의 더블 타이틀 곡 ‘손오공’의 퍼포먼스는 손오공의 분신술을 무대에서 재현한 것 같은 시각적 환상을 보여준다. 무대 중심에서 자신의 파트를 소화하는 멤버가 진짜 손오공이라면, 세븐틴 멤버들을 포함한 대인원으로 구성된 메가크루 퍼포먼스는 마치 그의 분신처럼 믿기 어려울 만큼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민규가 “DARUMDARIMDA 구름을 타고 여기저기로”를 부를 때는 나머지 사람들이 뒤에서 조금씩 시차를 두고 마치 한 사람처럼 뛰어다니고, 이어 정한의 “Say Say Say Say 영웅본색 Like This”에 이르자 그 많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다섯 명만 남는다. 준이 “진실은 때론 잔혹해”를 부를 때 파트를 소화하는 멤버와 나머지 사람들의 관계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다른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고 좌우로 걷는 사이, 준만이 혼자 허리를 펴고 걷는다. 그리고 그가 팔을 휘젓자 그 모양대로 나머지 사람들이 상체를 움직인다. 그래서 모두 똑같은 춤을 추는 후렴구 “마치 된 것 같아 손오공”은 진짜 손오공이 누구인지 맞춰 보라는 질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손오공’의 퍼포먼스는 다른 댄서들이 사라지고 세븐틴만 남으며 끝난다. 분신술이 끝나면 진짜 손오공만 남는 것처럼, 퍼포먼스의 끝에는 진짜 세븐틴만 남는다.

 

‘손오공’은 우지가 높은 곳에 앉아 “SEVENTEEN Right here”를 외치며 시작한다. 이어 원우는 “땅을 보고 계속 올랐지 정상까지”라고 노래한다. 세븐틴의 ‘here’는 ‘정상’인 셈이다. 공교롭게도 세븐틴의 지난 앨범 ‘SECTOR 17’에서 우지가 포함된 유닛 리더즈(에스쿱스, 우지, 호시)의 곡 ‘CHEERS’의 대표적인 펀치라인은 “우린 지하 방에서 건물을 올리지”였다. 손오공이 땅에서 하늘로 올라온 것처럼 세븐틴 또한 ‘지하 방’에서 K-팝 슈퍼스타의 자리에 올라왔다. 세븐틴이 묘사하는 손오공의 이야기는 그 자신들의 이야기와 겹친다. “우리들의 긍지를 높이러”처럼 ‘손오공’의 가사에 ‘나’가 아닌 ‘우리’가 들어가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 “I Luv My Team I Luv My Crew”일 수밖에 없다. 손오공의 분신술은 한 명만이 진짜다. 반면 세븐틴의 13명이 한 사람처럼 움직이려면 모두가 팀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메가크루 퍼포먼스는 시각적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세븐틴의 멤버들이 팀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몸으로 하는 증명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구름 같은 성공, 명성, 비난 같은 것들에 가려진 진짜 세븐틴이다. ‘손오공’의 앞에 배치된 ‘FML’의 첫 곡, ‘F*ck My Life’에서 호시는 “어릴 때 만화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은 왜 내가 될 수 없는지 내 맘은 아주 검은색”이라 부른다. 그런데 ‘손오공’이 끝날 즈음 우지는 “이 노래는 이 만화의 엔딩송이다”라고 노래한다. “SEVENTEEN”이 “Right here”에 있자 그들은 각자 가진 검은색의 마음에서 벗어나 만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정확히는 세븐틴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환상의 세계다. ‘손오공’ 퍼포먼스의 시작은 메가크루가 만들어낸 거대한 배경이다. 우지가 높이 올라가 있는 곳에서 시선을 내리면 보이는 앞쪽에는 20여 명의 사람들이 네 줄로 서 있고, 원우가 그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온다. 그가 있는 곳은 손오공의 ‘정상’, 하늘이고 네 줄의 사람들은 그를 둘러싼 구름이다. 뒤편에 우지가 있는 장소는 구름보다도 더 높이 있는 천상의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원우가 앞으로 이 배경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오는 움직임은 구름을 뚫고 나오는 것과 같다. 여기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편곡이 더해져, 세븐틴은 천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구름을 뚫고 앞으로 등장하는, 영화에서 CG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서유기’의 오프닝을 온전히 몸의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K-팝 아티스트가 자기 반영적인 이야기를 고전을 재해석한 퍼포먼스를 통해 담아낸다. K-팝 퍼포먼스가 다시 한번 이 장르의 범주를 깨는 기념비적인 순간이다. 그들은 드디어 하늘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다시 “힘을 다하고 쓰러져도 포기를 모르고 날뛰는 중”이라고 의지를 다진다. ‘빌어먹을 세상’을 뚫고 하늘로 올라오기까지 그 많은 노력과 열정을 불태웠음에도 다시 한 번 하늘을 휘젓고 다니겠다는 각오를 몸을 통해 증명해 나간다. 이것이 세븐틴이다. 지금도 한 사람이 팔을 움직이면 모두가 몸을 움직이는 마음으로 지탱하는. 

세븐틴은 최강이다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이런 빌어먹을 세상.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태양을 향해 불붙여라(‘HOT’)”는 구호와 함께 이 땅을 활활 태워버릴 것 같았던 열정도, 이 악물고 환하게 웃어 보이며 연신 파이팅을 외치던 성실함도 모두 바닥났다. 잿빛 풍경 속 무력하게 비틀거리며 한없이 작아진 나의 모습을 바라보니 욕만 나온다.

 

각자 다른 상황 속에서, 하이브 레이블즈 보이그룹들은 어른의 세계에서 마음을 베이고 눈물 삼키며 성장하는 청년의 시기를 표현하였다. 2017년 온통 겨울뿐이었던 고독한 세상에서 반드시 함께 피어날 내일을 꿈꿨던 방탄소년단의 ‘봄날’, 2021년 마법 같은 청소년기를 졸업하고 마주한 얼음장 같은 현실에 굳어버린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간절했던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과 ‘LO$ER=LO♡ER’가 예시다. 음울한 ‘FML’도 언뜻 그 공식을 따르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세븐틴의 자기혐오는 법적으로만 성년인 소년의 혼란이 아니다. 이미 그 시기는 ‘울고 싶지 않아’에서 이를 꽉 물고 눈물을 참으며 견뎌냈다. ‘F*ck My Life’는 학생이라는 보호막을 잃고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사회에 던져져 삭막한 빌딩 숲속을 헤쳐 나가는 어른의 노래다. 반복되는 일상을 구르다 단단해졌던 마음이 한순간 지독한 무의미함으로 주저앉는 순간이다. 환상의 세계 대신 현실에 발을 딛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달려온 9년 차 베테랑 그룹의 입에서 “이런 빌어먹을 세상”이 나올 때의 위력은 상당하다. 공감의 깊이가 다르다. 그리고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은 회복력도 강하다.

 

세븐틴은 “어릴 때 만화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은 왜 내가 될 수 없는지”라는 암시를 더블 타이틀 곡 ‘손오공’으로 완성한다. ‘서유기’ 속 손오공은 상서로운 존재로 태어나 화과산을 지배하고 천상을 뒤흔들었던 존재, 시련과 고난을 겪고 우여곡절 끝에 구도의 길에 합류하며 거친 모험을 헤쳐 나가는 영웅이다. 격렬한 리듬에 맞춰 힘찬 구호와 함께 ‘F*ck My Life’의 갑갑한 양복을 벗어 던진 세븐틴은 만화영화 속 동경의 대상, 슈퍼히어로 제천대성으로 거듭난다. 핵심은 혼자가 아니라는 거다. 손오공이 삼장법사,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여정을 완수한 것처럼 세븐틴도 굳은 13형제의 우의로 여기까지 왔다. 단 두 곡으로 벅찬 서사를 완성한다.

 

‘FML’은 놀랍게도 현실적인 주제 의식과 매끄러운 서사 진행을 뒷받침하는 음악의 완성도마저 훌륭하다. K-팝 씬의 손꼽히는 프로덕션 팀으로 검증을 마친 세븐틴 유닛과 우지, 범주 조합은 이번 앨범으로 그들의 최고점을 갱신했다. 레트로 힙합 비트 위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선율을 수놓은 ‘F*ck My Life’는 우울한 순간에 금세 떠올릴 수 있는 새로운 송가다. 저지 클럽을 적극 활용하는 ‘손오공’은 장르 고유의 매력을 십분 살려 매력적이다. 말랑말랑한 음악으로 대중화되었지만 원래 저지 클럽은 빠르고 공격적이며, 쉴 새 없이 귀를 두드리는 단단한 킥 드럼과 독특한 샘플로 역동적인 소란을 일으키는 파티 음악이다. 거침없이 달려 나가며 멈추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퍼포먼스로 정점을 찍는 세븐틴의 음악 세계를 뒷받침하는 데 적격이다. ‘Fire’는 지금까지 아프로비츠를 활용한 K-팝 곡 중 최고다. 에스쿱스, 원우, 민규, 버논의 힙합 유닛은 아프로비츠의 핵심인 몸을 들썩이게 하는 원초적인 리듬은 물론 아프리카 혈통 음악가들의 독특한 추임새와 랩 톤임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다. 무드와 디테일을 동시에 챙겼다. 얼터너티브 R&B의 몽롱한 기운을 담은 ‘I Don’t Understand But I Luv U’와 1980년대 신스팝의 핵심을 짚고 있는 ‘먼지’, 긍정적인 메시지와 함께 강한 개성으로 질주했던 앨범을 산뜻하게 마무리하는 ‘April Shower’까지 흠잡을 데가 없다.

 

‘F*ck’을 돌아본다. 지독한 현실을 견딘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비속어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애환과 그런데도 끝내 이기리라는 극복의 의지가 동시에 담겨 있다. 맞다. 참 빌어먹을 세상이다. 그렇기에 바꿔야 한다. 상처 입고 지치더라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정상에 올라야 한다. 그것이 젊음의 특권이자 도전하는 자의 아름다움이다. 게다가 이 거친 여정을 함께할 오랜 동료들도 굳건하다.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믿음으로 굳게 단결하기에 세븐틴은 최강이다.

빌어먹을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이지연: ‘FML’. 세븐틴의 미니 10집 앨범명과 동일한 이니셜을 가진 3가지 버전의 오피셜 포토는 이번 앨범의 서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Fallen, Misfit, Lost’ - ‘Faded Mono Life’ - ‘Fight for My Life’로 이어지는 각각의 버전에는 세븐틴이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가 담겨 있다. 앨범 첫 트랙 ‘F*ck My Life’에서 “이런 빌어먹을 세상”에도 “어제 나에게 부끄러운 내일”을 만들지 않기 위한 결심은 ‘Fallen, Misfit, Lost’ 버전처럼 어떤 오브제도 사용하지 않은 채 고요히 내면을 응시하는 듯한 얼굴 클로즈업으로 물에 비친 멤버들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직면하고 내면을 마주하게끔 만든다. 자신의 내면이 마치 거울처럼 명확히 보이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일렁이는 파동으로 인해 잘 보이지 않더라도 마주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설령 넘어지고(Fallen), 현실의 삶과 이상의 간극 속에서(Misfit) 때로는 길을 잃어버릴지라도(Lost). “나는 나를 찾고 싶어”라는 외침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자 “빌어먹을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을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Faded Mono Life’ 버전에서 멤버들이 정장을 입은 채 사무실을 연상케 하는 공간 속에서 일하는 모습은 이 앨범을 지금 이 순간도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확장시킨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때로는 “세상에 맘이 무뎌져서” “지쳐가”기도 하고, “이젠 너무나 지겨워 그만두고 싶어”(‘F*ck My Life’)라며 딜레마에 빠질 때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 버전으로 공개된 ‘Fight for My Life’에서 볼 수 있듯 “무뎌짐이 익숙한 세상에서”도 “이제 나는 나를 찾고 싶어”라는 결심을 바탕으로 치열한 삶의 현장인 ‘링’으로 상징되는 공간에 올라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선택을 한 모습을 보여준다. 팀을 상징하는 ‘세븐틴의 로고’ 형상을 한 링 위에서 멤버들은 글러브를 단단히 장착한 채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한 싸움’(“Fight For My Life”)을 시작할 준비를 한다. “12년째 17 Got My Back”이라는 가사처럼 서로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My Team”이자 “My Crew”인 서로를 버팀목 삼아.

 

‘FML’은 세븐틴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데뷔 9년 차임에도 “세븐틴은 또 한 번 새롭게 도전하려 합니다.”라는 우지의 말처럼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선택한 팀. 그것도 음악적인 스타일부터 정반대의 결을 가진 ‘F*ck My Life’와 ‘손오공’을 데뷔 후 첫 더블 타이틀 곡으로 선보이고, “분명히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네이밍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리스크 또한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라며 타이틀 곡의 제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완성도 높은 앨범을 선물하고자” 결국 도전을 선택하는 팀. “연습생 때 마인드로” 이번 앨범을 준비했다는 에스쿱스의 말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한결같은 태도로 임하는 팀. 1번 트랙인 ‘F*ck My Life’로 이야기가 시작되어, 6번 트랙 ‘April shower’로 마무리되기까지 그들이 건네는 메시지는 단순히 곡이나 비주얼적인 콘셉트를 넘어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온 세븐틴 그들의 이야기가 부여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늘 앨범에 진솔하게 담아온 팀만이 가질 수 있는 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빌어먹을 세상” 속에서도 “5월에 필 꽃”을 기다리며 이 시간을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또 한 번 담아내려는 의지. 그렇게 세븐틴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앨범에 담아 진정성을 더하고, 이를 보편적인 이야기로까지 확장시킨다. “빌어먹을 세상”을 함께 살아가며 싸워 나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 이야기의 주체로 포용하며, 트레일러 영상 ‘F*ck My Life : Life in a minute’ 속 담담한 어조로 가장 솔직하면서도 섬세한 위로를 전하는 것처럼.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는 당신의 행복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행복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삶을 위해 싸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