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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예진, 강일권(음악평론가), 김겨울(작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빌리프랩

‘R U Next?’ (JTBC)

이예진: ‘르세라핌, 뉴진스를 이을’ 하이브의 걸그룹을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R U Next?’는 ‘엘리트 아이돌의 조건’을 내세운다. 지금 현재 활동 중인 하이브 산하 아티스트들이 직접 말한 “본인만의 뚜렷한 캐릭터, 다양한 콘셉트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 무대 위의 올라운더” 등을 비롯한 아이돌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담긴 일곱 개의 관문을 거쳐야 데뷔에 이를 수 있다. 그리고 첫 번째 관문, ‘트라이아웃’에서는 지금까지 함께 3~4명의 유닛으로 연습한 출연자들이 함께 무대를 하되 각자의 레벨을 평가받는다. 함께 좋은 무대를 보여줘야 하지만 각자 경쟁해야 하는 입장이 된 출연자들은 각자가 받은 결과에 따라 감정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무대 뒤에서는 서로를 격려한다. 실력이 비슷한 출연자들끼리 모아 각자 어울리는 콘셉트의 곡을 부여하는 방식은 출연자 간 실력 차로 경쟁이 맥빠지지 않도록 하면서 데뷔하게 될 걸그룹의 모습에 대한 다양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효과도 준다. 그 사이 “청춘물”이라는 장르에 “중점을 두고”, “연습생들의 인간적인 매력을 주목시키면서 한 명 한 명 소중하게 보였으면 하는 바람”에 “인물 다큐멘터리”로 접근했다고 밝힌 제작진의 프로그램 기획 의도처럼 출연자들의 면면도 자연스럽게 소개된다. 일곱 개의 관문에서 보여줄 ‘엘리트 아이돌의 조건’이란 ‘R U Next?’의 출연자들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각자 머릿속에서 ‘르세라핌, 뉴진스를 이을’ 걸그룹을 상상하며 투표를 하게 되지 않을까? 

‘우탱 클랜: 아메리칸 사가’

강일권(음악평론가): 미국 슬럼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탄생하고 발전한 힙합을 문화적으로 온전히 이해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아마도 힙합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행위는 평생 계속 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가깝고도 먼, 그래서 더욱 매혹적인 음악이다. 다행히 세상엔 힙합을 소재 삼은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가 있다. 간접적으로나마 문화적인 경험과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훌륭한 매개체다. 이를테면 ‘우탱 클랜: 아메리칸 사가(Wu-Tang: An American Saga)’ 같은 드라마가 그렇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과반수를 소유한 OTT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Hulu)에서 방영한 이 드라마는 전설적인 그룹 우탱 클랜(Wu-Tang Clan)의 일대기를 다룬다. 9인 이상의 래퍼가 뭉친 우탱은 1990년대 등장하여 전례 없이 독특하고 혁신적인 음악을 선보이며 힙합계의 판도를 바꿨다. 드라마에선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와 명곡들의 창작 과정이 잔뜩 그려진다. 극적인 재미를 위해 꾸며진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사실에 기반을 두었다. 특히 샘플링 과정을 시각화한 시퀀스들은 대단히 인상적이다(만약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다면, 이 부분만이라도 유튜브에서 꼭 찾아보길 바란다.). 단지 그룹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그려낸 것뿐만 아니라 슬럼가와 래퍼들의 삶은 물론, 당대 힙합계의 역사와 흐름까지 잘 담아냈다. 이 작품을 강력하게 추천하는 이유다. 얼마 전(4월), 호평 속에 시즌 3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으니 용두사미는 아닐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유인원과의 산책’ - 사이 몽고메리

김겨울(작가): 제인 구달이 왜 이렇게 유명한지 궁금해한 적이 있는가? 침팬지 연구로 유명하다고는 하는데, 그녀가 침팬지와 찍은 사진은 왜 이렇게 유명한 걸까? 침팬지를 연구한다면 당연히 그런 사진 정도는 있을 것 아닌가? 답을 말하자면,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가 선택한 세 여성 연구자, 제인 구달,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는 각각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의 연구자로서 영장류 연구의 패러다임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이들은 자신의 연구 대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통제 상태에서 실험을 하는 대신, 자연 속에서 마치 사람에게 다가가듯 다가가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럼으로써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밝혀냈다. 인정받는 박사 학위조차 없었던 상태에서 연구를 시작한 그들은 끝없이 자신의 연구 대상을 기다리고, 관찰하고, 눈빛을 주고받고, 생애를 기록했으며, 그런 방식으로 ‘과학적 방법’을 배신했음에도 모두 과학자로 인정받았다. 그들의 기록을 과학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므로.

 

사이 몽고메리는 과학의 한 분야에서 완전히 패러다임을 바꾼 이 위대한 세 여성을, 다시금 이 여성들이 영장류를 연구했던 것처럼 연구한다. 그들의 생애를 관찰하고 이야기로 서술한다. 총 네 명의 당당한 여성을 마음껏 만나볼 수 있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