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향신료, 예쁘고 깜찍한 것.”
카툰네트워크의 애니메이션 ‘파워퍼프걸’에서 유토니움 교수는 이 세 가지 재료로 완벽한 여자아이들을 만들려 한다. 물론 중간에 실수를 저질러 정체불명의 화합물 ‘케미컬 X’를 넣게 되고, 그 결과 초능력을 지닌 ‘파워퍼프걸’이 탄생하게 되지만. 여기서 말하는 “설탕, 향신료, 예쁘고 깜찍한 것”과 같은 “딸기 초콜릿, 밀크 초콜릿” 그리고 식물과 대화하는 능력이나 나는 능력 등의 슈퍼파워를 언급하며 뉴진스의 뮤직비디오 ‘New Jeans’가 시작된다.
‘파워퍼프걸’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애니메이션이었다. 공중파에서 정식으로 수입되는 일본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EBS나 기타 다른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하던 미국 애니메이션과도 달랐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여자아이들‘만’이 주인공인 미국 애니메이션은 드물었다. 거기다 깔끔하고 단순한 그림체, 비비드하지만 조화롭게 어우러진 색채 등은 어린아이들의 눈을 끌었다. 무엇보다도 작고 귀여운 소녀 캐릭터들이 악당을 완력으로 물리칠 때 느껴지는 쾌감이,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그건 분명 이전까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래, 설탕과 향신료 그리고 예쁘고 깜찍한 것들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여자아이들이 무력을 사용할 수 없는 건 아니지. 현실의 여자아이들인 우리가 그렇듯이.’ 바로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 때문에 전 세계 소녀들이 ‘파워퍼프걸’을 사랑했다.
뉴진스도 마찬가지다. 뉴진스가 데뷔했을 때 대중들은 좋은 의미로 충격을 받았다. 다섯 명의 소녀는 꾸밈없는 모습 그대로 거기에 서 있었다. 염색하지 않은 까만 생머리와 옅은 메이크업, 통굽 운동화를 신고, 헐렁한 배기 팬츠를 입은 채로. 아이돌이라고 해서 항상 화려한 의상을 입고 반짝거리는 메이크업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거기다 미니멀한 멜로디 위에 얹어진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부르는 보컬(후렴구에서도!)과 군더더기 없이 흘러가는 안무까지. 소녀들을 보여주었기에 오히려 큰 인기를 끌었던 ‘파워퍼프걸’처럼, 뉴진스 역시 ‘Attention’과 ‘Hype boy’ 그리고 ‘Ditto’, ‘OMG’에 이르기까지 10대 여자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렇기에 ‘New Jeans’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파워퍼프걸’화(化)된 뉴진스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멤버들의 행동 모두가 ‘파워퍼프걸’의 세계관에 자연스레 녹아들고, 멤버들은 제 옷을 입은 것처럼 ‘New Jeans’ 뮤직비디오 속을 자유로이 날아다닌다. 그게 바로 뉴진스이고 ‘파워퍼프걸’이기 때문이다. 뉴진스가 표방하고 있는 ‘자연스러움’이라는 키워드가 ‘파워퍼프걸’이라는 콘텐츠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거기다 ‘파워퍼프걸’ 속 세계에서 파워퍼프걸들은 마치 아이돌과 같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뮤직비디오 후반부에 등장하는 팬덤 캐릭터 버니즈(bunnies)처럼 ‘파워퍼프걸’에서 버니(bunny)라는 이름의 조력자 캐릭터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흥미롭다.
‘매일 찾게 되고 언제 입어도 질리지 않는 진(청바지)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되겠다.’라는 뜻을 지니고 Y2K 시대의 스타일링을 적극 차용하고 있는 그룹과 1998년에 첫 방영되었지만 지금까지 팝하고 아이코닉한 작품으로 사랑받는 애니메이션의 컬래버레이션은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New Jeans’에서 보여준 ‘파워퍼프걸’과 뉴진스의 컬래버레이션은 단순히 두 콘텐츠의 만남에서 그치지 않는다. 뉴진스는 그동안 잊혀졌던 ‘파워퍼프걸’을 다시 트렌드의 중심으로 끌어오는 동시에 기성세대에게는 과거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MZ세대에게는 새로운 뉴트로의 길을 제시한다. 상호 보완을 통해 각 콘텐츠가 개별적으로 낼 수 있는 효과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컬래버레이션을 하는 진정한 이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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