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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후령
사진 출처. 위버스콘 페스티벌

지난 6월 10일 ‘Weverse Con Festival(이하 ‘위버스콘 페스티벌’)’에서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엄정화의 ‘초대’를 커버했다. 붉은 장막이 올라가는 듯한 스크린 앞으로 다섯 명의 검은 실루엣이 등장했고, ‘초대’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두 번의 박수 소리를 기점으로 조명이 밝아지자 실크 셔츠와 랩스커트형 팬츠를 입은 채 네일 아트를 한 손으로 부채를 든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멤버들이 드러났다. 일순간 현장에서는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무대가 공개된 이후에는 “성별이 바뀌었음에도 원곡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큼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린 무대”, “표현의 스펙트럼이 진짜 넓은 그룹”과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 

“‘초대’를 듣는 순간,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멤버들이 정말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퍼포먼스를 담당하는 빅히트 뮤직 퍼포먼스디렉팅2파트장 김수빈 디렉터가 ‘초대’를 선곡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했다. 김수빈 디렉터는 “무표정하면서도 고개를 들 때 아련한 느낌을 살리는 시선 처리”를 통해 원곡의 뉘앙스를 살리고자 노력했고, 안무를 구성하면서 기존 안무에는 없었던 “손을 사용해 몸을 터치하는 동작이 많은 보깅(Voguing)”을 접목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팔다리 라인이 길게 뻗어 있는 멤버들의 보디 비주얼”과 보깅이라는 장르가 어우러지면서, “얼굴이나 팔을 터치하는 동작을 했을 때 와닿는 임팩트를 극대화”해 표현한다. 보이그룹이 이미 살아 있는 전설이 된 여성 아티스트의 퍼포먼스가 가진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복장과 동작을 재해석했다. 데뷔 2개월 차(7월 13일 기준) 신인 그룹 BOYNEXTDOOR는 스페셜 무대로 f(x)의 ‘Hot Summer’를 커버했고, 유튜브 채널 ‘M2’에서는 한 해를 정리하는 스페셜 기획으로 걸그룹이 보이그룹 곡을, 보이그룹이 걸그룹 곡을 커버하는 릴레이 댄스를 기획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22년 12월 16일 ‘KBS 가요대축제’에서는 아이브의 이서, 엔믹스의 설윤, 르세라핌의 홍은채, 뉴진스의 민지와 혜인이 샤이니의 ‘산소 같은 너’ 커버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위버스콘 페스티벌’에서 ‘초대’를 선보인 순간은 이런 흐름이 도달한 결정적 순간 중 하나다. 2023년의 K-팝 퍼포먼스는 젠더크로스를 당연하게 여긴다. 보이그룹과 걸그룹 또는 여성과 남성 아티스트의 퍼포먼스에는 더 이상 뚜렷한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퍼포먼스는 누가 하든 아름답다.

2016년 4월 16일 세븐틴은 ‘쇼! 음악중심’에서 소녀시대의 ‘Lion Heart’와 여자친구의 ‘시간을 달려서’, 레드벨벳의 ‘Ice Cream Cake’를 매시업해 걸그룹 히트 곡 메들리 무대를 꾸몄고, 다시 2016년 12월 26일 ‘SAF 가요대전’에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S.E.S.의 ‘I’m Your Girl’, 이효리의 ‘U-Go-Girl’을 같은 해 세븐틴이 발표했던 ‘붐붐’과 매시업했다. ‘걸그룹 춤’, ‘보이그룹 춤’ 같은 단어로 성별에 따라 춤의 성격이 다른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에 세븐틴은 ‘쇼! 음악중심’에서 ‘Ice Cream Cake’의 힙합적인 바운스를 보다 강조하면서 이 곡과 퍼포먼스가 보이그룹이 소화해도 멋있다는 점을 입증했고, ‘SAF 가요대전’에서는 퍼포먼스의 클라이맥스에 ‘다시 만난 세계’를 배치하면서 선배 걸그룹에 대한 리스펙트를 보여줬다. 세븐틴은 다음 해 ‘2017 MAMA in Japan’에서는 슈트를 입고 보아의 ‘No.1’을 커버했다. 세븐틴이 보이그룹의 대표적인 의상 콘셉트 중 하나인 슈트를 입고 ‘No.1’을 커버하면서 ‘No.1’의 퍼포먼스가 발표 당시 소녀였던 보아뿐만 아니라 15년 뒤 보이그룹이 춰도 여전히 매력적일 만큼 역사적인 가치가 있음을 새삼 인식시켰다.

 

세븐틴이 퍼포먼스를 통해 여성 선배 아티스트에게 보여준 존중은 예언과도 같았다. K-팝 아티스트 사이에서 서로의 곡 퍼포먼스를 함께 추는 챌린지가 유행하는 지금, 보이그룹과 걸그룹은 서로의 춤에 리스펙트를 보내며 최대한 멋지게 소화하려 노력한다. “예전에는 특별한 모멘텀이 있어야 타 아티스트의 안무를 하는 커버 무대를 볼 수 있었다면, 숏폼 콘텐츠가 자리 잡으면서 보다 다양한 퍼포먼스를 구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어요.” 쏘스뮤직 마케팅팀 이은지 담당자의 말처럼, 댄스 챌린지는 걸그룹과 보이그룹이 서로의 춤을 쉽게 교환할 수 있는 일종의 계기로 작용했다. 쏘스뮤직 마케팅팀 편지은 담당자가 “챌린지가 정제화된 느낌의 콘텐츠는 아니기 때문에 앵글에 담기는 아티스트들의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듯, 챌린지 영상은 방송국 계단 앞, 연습실, 대기실과 같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촬영하곤 한다. 연말 무대와 같은 자리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걸그룹과 보이그룹이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뉴진스의 ‘Hype boy’ 챌린지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Hype boy’ 챌린지에 사용하는 동작들은 누가 추든 활기가 넘친다. 반면 프로미스나인르세라핌, 뉴진스 등 걸그룹은 같은 하이브 소속인 방탄소년단의 ‘달려라 방탄’ 챌린지로 ‘달려라 방탄’의 안무가 걸그룹에게도 멋있게 어울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연준은 2022년 12월 24일 ‘SBS 가요대전’에서 제시의 ‘ZOOM’, 블랙핑크의 ‘Shut Down’, 방탄소년단의 ‘달려라 방탄’ 챌린지를 연이어 무대로 선보였다. 챌린지의 유행과 함께 여성 솔로, 걸그룹, 보이그룹의 퍼포먼스는 어느 누구도 그 사실에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섞인다. 김수빈 디렉터가 당시 선곡 기준에 대해 “정말 다른 스타일 세 가지의 조합”을 보여주고자 “힙하면서 그루비한 부분이 많은 ‘ZOOM’과 강약 조절이 중요한 ‘Shut Down’, 파워풀함을 극대화한 ‘달려라 방탄’” 챌린지를 골랐다고 말한 것은 챌린지와 함께 퍼포먼스의 젠더크로스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보여준다. 춤을 추는 연준도,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도 지금 추는 춤이 어떤 성별을 가진 아티스트의 곡인지 신경 쓰지 않거나, 아예 모른다. 중요한 건 춤을 추는 당사자와 그가 올라선 무대에 얼마나 잘 어울리느냐다. 

이를테면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멤버들 각자가 춤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김수빈 디렉터가 “진짜 5명 다 다른 방식”이라고 얘기한 그들은 수빈의 경우 “힘이 좋아서 점프하는 동작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파워풀한 에너지가 있거나 밝고 청량한 곡에 정말 잘 어울리는 편”이고, 연준은 “워낙 잘해서 별다른 디렉션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춤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자 노력하는 멤버”다. 태현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마인드로 같은 동작은 반복해서라도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편이고, 범규는 “어떤 표정을 지어서 킬링 포인트를 만들지 고민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휴닝카이는 “그루브가 몸에 배어 있어 웨이브적인 안무를 할 때 몸선이 되게 예쁜” 편이다. “각 멤버들로부터 나오는 느낌이 모여 팀 퍼포먼스의 스타일”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그룹에게 같은 디렉션을 준다 해도 이런 느낌은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김수빈 디렉터의 발언은 지금 K-팝 퍼포먼스가 추구하는 중요한 방향 중 하나를 보여준다. 성별이라는 경계가 과거보다 훨씬 지워진 시대에, 아티스트는 경계에 구애받지 않고 그들이 가장 보여주기를 원하는 것을 찾아 나간다. 지난 ‘위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르세라핌의 퍼포먼스를 담당하는 박소연 디렉터가 ‘ANTIFRAGILE’에 관해 했던 말처럼, 지금 르세라핌이 추는 춤은 “멤버들이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열망하는 바”다. 이는 편지은 담당자가 “커버 무대든, 챌린지든 르세라핌의 ‘I’M FEARLESS’라는 정체성을 항상 생각하면서 기획”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수빈 디렉터가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맡으면서 느낀 점은 K-팝 퍼포먼스의 현재다. “저도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담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걸그룹과 보이그룹 퍼포먼스의) 경계가 뚜렷하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초대’의 퍼포먼스를 재해석했다. 전형적인 경계가 사라지자 아티스트마다 그들만의 특별함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경계와 한계 대신 각자의 수많은 가능성으로, 다시 말해 다양성의 세계로 한발 더 나아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