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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REISSUE RECORDS

일본의 모든 엔터테인먼트가 그를 찾는다. 드라마와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장르도 불문. 코로나19로 인해 라이브 활동이 봉쇄당한 기간 동안 요네즈 켄시의 주가는 오히려 급상승했다. 콘텐츠의 주목도를 높이는 데 있어 탁월한 성과를 증명한 그의 노래들이, 많은 관계자를 불러 모으는 보증수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최근 들려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복귀작의 주제가 기용 소식은, 요 몇 년간 이어졌던 대형 타이업 중에서도 정점을 찍는 소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가 부르는 주제가들은 결코 정석적인 길을 걷지 않는다. 이야기와의 연결 고리는 최소한만 유지한 채, 의뢰받은 작품으로부터 얻은 영감을 극대화해 새로운 차원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그 역시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하며 성장한 아티스트이기에, 각 포맷에 대한 정서나 구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에도 주목할 만하다. 현시점 명실상부 일본 대중문화업계를 뒤흔드는 트렌드 메이커로 군림하고 있는 요네즈 켄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주제가들을 통해 그의 음악 세계를 소개한다. 

‘ピースサイン / Peace Sign’ (TV 애니메이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2기 1쿨 오프닝 테마)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무난한 흐름을 가진 노래 중 하나일 듯싶다. 조금은 뻔한 요소로 색다른 감흥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모험적인 모습이, 위기 극복을 성장의 필수 요소로 삼는 소년 만화 주인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처음부터 이 애니메이션이 가진 ‘정석적인 문법’에 집중하고자 했던 요네즈 켄시. 결국 자신의 유년 시절을 관통한 ‘디지몬 어드벤처’의 주제곡 ‘Butter-Fly’를 의식한 정직한 팝 록으로 방향성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특히 어렸을 적 자신이 좋아할 법한 곡을 만든다는 전략 하에, 아이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보편성에 중점을 둔 곡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그럼에도 특유의 실험적인 자아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는 사실이다. 후렴 말미 멈춰야 할 부분에서 재차 뻗어나가는 벅찬 느낌의 코드 진행이나, 벌스(verse)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타 톤 등 구성과 음향에 있어 파고들면 들수록 결코 그 고민이 만만치 않음을 느낄 수 있는 트랙이다. 역시나 본성은 어디 가지 않는 법인가 보다.

‘打上花火 / Uchiagehanabi (쏘아올린 불꽃)’ (극장판 애니메이션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주제가)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이보다 더 어울리는 주제가는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불꽃놀이’가 가진 전통적인 축제의 분위기, 겹칠 듯 겹치지 않는 두 주인공의 마음이 가장 설득력 있는 모습으로 융합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도입부의 애처로운 피아노 연주와 불꽃이 터지는 느낌을 구현한 현악 세션을 기반으로, 손대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다오코와 무심한 듯 살며시 마음을 전하는 요네즈 켄시의 하모니는 그렇게 새로운 여름 시즌 송을 낳았다. 본래 래퍼로 활동하던 다오코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었고, 본인에게도 당시 최고의 성적을 가져다준 노래이기도 하다. 영상의 이미지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에 있어 탁월한 역량이 있음을 명확히 증명한 결과물. 이후 편곡을 대폭 변경한 셀프 커버 버전을 정규작 ‘Bootleg’에 싣기도 했다.

‘Lemon’ (드라마 ‘언내추럴’ 주제가)

드라마가 끝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유메나라바 도레호도 요캇다데쇼(夢ならばどれほどよかったでしょう)” 소절만 들으면 울컥하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 ‘언내추럴’을 보지 않고선 노래의 진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작품과의 시너지가 유난히 탁월했던 주제가였다. 억울한 죽음에 맞서 이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법의학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매 에피소드를 마무리하는 요네즈 켄시의 단말마 같은 노랫소리. 제작 도중 할아버지의 임종을 겪으며 처음으로 마주한 ‘죽음에 대한 슬픔’은, 여운을 배가하며 드라마와 노래가 각각 지닌 강한 생명력의 원천으로 분했다. 그에게 있어 ‘죽음을 재정의’하는 곡임과 동시에, 레몬이 가른 단면을 태양에 비유하는 등 문학적인 면모가 강하게 드러난 곡으로 자리하고 있다. 지난 3월, 발매된 지 5년 만에 유튜브 조회 수 8억 회를 돌파하는 등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로서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중.

‘KICK BACK’ (TV 애니메이션 ‘체인소 맨’ 오프닝 테마)

‘체인소 맨’은 모든 장르를 통틀어 근래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한 충격을 준 콘텐츠였다. 읽는 사람의 예상을 끊임없이 배반하는 전개, 일차원적인 캐릭터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관계성. 그 낯섦을 스타일리시한 연출로 설득해내는 작가의 천재성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무언가를 나에게 주입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통해 느끼는 일종의 ‘배신감’은 이 노래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일부러 힘을 줘 일그러뜨리는 이제껏 본 적 없는 보컬 운용, 갑작스레 클래식에 가까운 무드로 전환되는 구성 등은 그의 실험적인 면모를 생각해도 다소 당황스럽다. 여기에 모닝구무스메의 ‘そうだ!(소오다!/그렇다!) We’re ALIVE(2002)’로부터 인용한 “努力(도료쿠/노력) 未来(미라이/미래) A BEAUTIFUL STAR” 구절까지 눈치채고 나면 더 이상 예측이라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밴드 킹 누(King Gnu)의 핵심 인물인 츠네타 다이키가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터무니없는 협업이 터무니없는 결과물을 낳았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기도 했다. 드럼 앤 베이스를 기반으로 본인의 가장 록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으며, 일본 아티스트 최초로 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에 랭크인하기도 한 의미 있는 곡이다.

‘月を見ていた / Tsukiwo Mite Ita (달을 보고 있었다)’ (게임 ‘파이널 판타지 XVI’ 테마 송)

어릴 적 ‘공상’에 대한 욕구를 맘껏 채워준 콘텐츠가 게임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는 요네즈 켄시. 그중에서도 ‘파이널 판타지 VII’는 자아를 확장함과 동시에 취향이 정착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말한 바 있다. 판타지를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의 정체’를 깨닫게 해주는 그의 작업물들은, 어떻게 보면 상당 부분 그가 플레이한 게임에, 특히 이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에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노래엔 그가 가진 게임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몇십 시간씩 주인공을 직접 조작하는 방식이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높은 몰입도를 유발한다고 생각해, 스토리와의 연결성을 어느 때보다 중요시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자 했던 지금까지의 타이업과는 현격히 다른 작업 방향인 셈. 곡조 또한 시리즈 중 가장 어두운 세계관임을 고려해 피아노와 첼로로 비장한 무드를 이어 나간다.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생겨나는 그리움이 인간을 나아가게 하는 요소라는 가사 또한 인상적. 아마 이 가상세계 여행에 동참한 이라면, 주인공 클라이브의 정서와 완벽히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선보인 주제곡 중 작품의 이야기와 가장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노래.

‘地球儀 / Chikyugi (지구본)’ (극장판 애니메이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주제가)

이 노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작이 될 것으로 유력한 작품의 주제가로서 거장의 세계관을 마무리하는 위치에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미야자키 하야오로부터 받은 것들을 돌려주는 성스러운 의식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로부터 영감을 얻은 ‘飛燕 / Hien (비연)’을 발표하기도 하는 등 이미 미야자키 하야오 키드임을 공언하고 있었던 상태. 요네즈 켄시라는 이름으로 내는 100번 째 곡은, 이처럼 일본 대중문화사를 통틀어 꽤나 무거울 법한 짐을 짊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 역할에 눌림 없이, 꼿꼿하고 선명하게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
 

피아노와 약간의 비트 그리고 왠지 모를 경건함을 부여하는 아이리시 사운드까지. 극히 심플한 반주 속에서 그는 거장의 마지막 행보를 자신의 방식으로 헌화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스즈키 토시오 스튜디오 지브리 대표와 대화를 겹쳐가며 그려낸 거장의 마지막. 결국 ‘삶이라는 것은 소유와 상실을 거듭하며 내면의 지도를 채워 나가는 과정’이라는 의미에 정착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끝까지 차분한 무드를 잃지 않음에도, 듣다 보면 마음속 잔잔한 파문을 일으켜 결코 가볍지 않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는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