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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예진
사진 출처.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이전에 발표했던 솔로 곡들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 덕분에 ‘LIMBO’랑 ‘PSYCHO’가 나올 수 있었죠.” 준은 2018년에 공개한 스페셜 싱글 ‘Can You Sit By My Side?’로 시작해 지난달에 발표한 ‘PSYCHO’에 이르는 자신의 솔로 곡들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Can You Sit By My Side’, ‘Crow’, ‘Silent Boarding Gate’ 등 그의 초기 솔로 곡들은 그가 전하고 싶은 감정들을 목소리로 표현하는 데 집중하는 서정적인 곡들 위주였다. 이를테면 ‘Silent Boarding Gate’는 팬데믹 시기에 준이 느꼈던 감정을 은유적으로 압축한 노래다. “당시에 제 고향인 중국을 방문할 수 없고, 주변과 단절되어 자유롭지 못했던 상황 속에서 느꼈던 외로움을 담았어요.” 준이 그 시기 한강에서 산책하던 중 붉은 노을과 어둠이 뒤섞인 풍경을 마주쳤을 때 눈앞의 해가 지는 순간에 “차가워진 마음”을 대입했던 것처럼, 그가 말한 외로움은 가사(“在寂寞号登机口 / 我瞧云飞走 / 半橘半灰的天空 / 想飞往下一个我(적막호 탑승구에서 / 구름이 흩어지는 것을 바라봐 / 붉은빛과 회색빛이 뒤섞인 하늘을 말이야 / 다음의 나로 날아가고 싶어)”) 내 묘사된 풍경을 통해 전달된다. ‘Can You Sit By My Side?’는 노래 속 화자의 말을 빌려 팬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고, ‘Crow’에서는 까마귀에 이입해 메시지를 전하는 등 그의 곡들은 특정한 대상에 자신을 빗대어 감정을 전달하곤 했다. 그런데 작년 9월에 발표한 ‘LIMBO’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변했다.  

‘LIMBO’는 영화 ‘인셉션’을 비롯해 준이 평소 즐겨보는 작품들에 영감을 받아 “평소에 꿈꾸는 세계에 관한 상상을 자주 하면서 틈틈이 메모장에 적어둔 내용들”로 설계한 세계관의 설명서 격이다. 준이 “평소에 소설과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면 가사 속 장면이 머리 속에 재현돼 쉽게 노래에 빠져드는 스타일이에요.”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여러 작품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창작의 영감을 얻기도 한다. 영화 ‘인셉션’ 속 림보처럼 준이 창조한 ‘LIMBO’는 무의식이 지배하는 정신 세계고, 준은 이곳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한다. 이곳에서 준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Don’t be afraid / Don’t stay say no more / I just want to set you free”. “제 안의 다양한 모습과 감정을 담아낼 세계예요. 단순하게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만들고, 그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기도 해요. ‘환영합니다. 어서오세요.’ 하는.” 초기 솔로 곡들이 준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면, ‘LIMBO’부터 그는 무의식 속에서 또는 환상 속에서 존재하는 자기 자신이 살아갈 세계를 구축하고, 그곳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리고 준은 ‘PSYCHO’에서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로 등장해 이 ‘LIMBO’라는 세계를 활보한다.

준은 곡으로서의 ‘PSYCHO’에 의도적인 여백을 만든 뒤, 뮤직비디오에서 자신의 연기를 통해 채운다. 1절에서 후렴구 “别再骗自己了 psycho(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마 psycho)” 뒤로 준이 거침없는 기세로 전방을 향해 이동할 때 비로소 무언가의 진짜 정체가 밝혀지는 듯한 긴장감을 준다. 2절의 같은 가사 뒤로는 준이 영상 속에서 광기 어린 웃음에서 무표정으로 순간적으로 전환하는 표정을 보여주며 그가 표현하는 캐릭터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LIMBO’에서 준이 후렴구에 도달해 마침내 “Welcome to my lost world”를 내뱉은 순간 고조된 분위기 사이사이에 이와 대비되는 착 가라앉은 속삭임(“A dream in a dream, sweet dream”)을 반복적으로 삽입하여 마치 비현실에 갇혀 있는 듯한 감각을 준다면 ‘PSYCHO’는 그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준 그 자체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조금 과하게 표현하더라도 보시는 분들이 더 몰입하고 와닿게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라는 준의 말처럼, ‘PSYCHO’는 준이 설계한 판타지 세계 속에서,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가상의 인물을 그려낸다. ‘인셉션’의 등장인물들이 꿈의 세계를 설계한 뒤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 꿈을 누비는 것처럼, 준은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통해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세계, 이야기와 인물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LIMBO’가 판타지 세계라면 ‘PSYCHO’는 어떻게 보면 저와 좀 더 가까운 노래예요.” 준은 “모든 사람은 독특한 존재”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이 세상을 사랑하고 싶으면 가장 먼저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자는 생각으로 ‘PSYCHO’를 작업했다. 그는 ‘PSYCHO’ 뮤직비디오에서 강렬한 붉은색 PVC 재킷을 입은 채 입을 찢는 제스처나 머리를 싸매고 흔들어 기괴한 움직임을 주는 등 결코 준에게서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세상에서 이해받지 못하는 괴짜 같은 캐릭터를 통해 그런 자신 또한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실현하는 방법이다. 이는 준이 ‘Crow’를 준비할 때부터 전하고 싶은 메시지이기도 했다. “‘Crow’는 까마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어떻게 보면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던 노래였어요. 만약 어떤 생각을 가지고 남을 이해시키고 싶으면 제 자신부터 이해시켜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까마귀를 진심으로 사랑해야 까마귀의 진짜 매력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처럼요. ‘PSYCHO’도 마찬가지로, 제 안의 독특한 부분들을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준에게 ‘PSYCHO’는 ‘LIMBO’에 존재하는 ‘Crow’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Crow’와 마찬가지로 그는 ‘PSYCHO’를 통해 자신이 타인의 기준을 벗어나는 삶을 산다 하더라도 그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도리어 시각적으로 과장되게 드러내면서 자신을 표현한다. 그리고 준은 ‘PSYCHO’ 속 자신의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만약에 스스로 솔직하지 못한다면 저의 마음을 어떻게 대중한테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준은 그렇게 고정되어 있지 않아요. 계속 변하고 있고, 앞으로도 전에 없던 모습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미리미리 얘기해주는 거예요.’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준의 솔로 곡들은 아티스트로서의 발전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가는 청년의 기록이기도 하다. 처음엔 까마귀에 자신을 이입했던 준은 시간이 흐르면서 소설이나 영화로부터 영감을 얻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 안에서 ‘PSYCHO’인 자신을 선보인다.

준은 ‘LIMBO’와 ‘PSYCHO’를 “노래, 퍼포먼스, 연기 등 무대를 이루는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솔로 곡”으로 설명했다. ‘Can You Sit By My Side?’에서 ‘PSYCHO’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그가 아티스트로서 음악, 퍼포먼스, 뮤직비디오에서의 연기 등으로 표현 영역을 넓히는 동시에 자신이 상상하는 것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더 많은 방법들을 찾아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팀이 아닌 혼자서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데에는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고, 이는 눈앞에 놓인 수많은 가능성과 선택지 중에서 결정을 내리는 일이기도 했다. “비유하자면 단체 퍼포먼스를 할 때 저는 자동차의 한 부분이에요. 왼쪽 타이어일 수 있고 브레이크일 수도 있어요. 모든 부분 중 하나만 문제가 생겨도 전체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저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면서도 사람들이 차를 탈 때 ‘이 브레이크 좋다.’라고 느낄 수 있게 저만의 장점을 고민하기도 해야 해요. 반면 솔로일 땐 제가 하나의 자동차니까 이 자동차의 브랜드를 생각해야 하죠. 이때는 무대 위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맡게 되는 거예요.” 준에 따르면 ‘PSYCHO’는 강하고 긴박한 비트가 곡을 끌고 가는 특성상 자신이 많이 해온, 이른바 ‘칼군무’ 스타일의 안무를 짜는 것이 보다 쉬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동작이 주는 시각적인 쾌감 이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세계와 스토리라인을 정확히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춰 퍼포먼스를 완성시켰다. 준이 세븐틴의 퍼포머로서 보여준 화려한 동작들 대신 때론 웃는 표정만을 보여주거나 가사의 상황을 연기하는 동작들로 안무를 구성하거나, 함께 무대에 오르는 댄서들이 준과 함께 춤을 출 뿐만 아니라 준 주위의 배경이 돼 준과 그를 둘러싼 세계의 관계를 보여주는 이유다. 이는 ‘PSYCHO’ 퍼포먼스에서 준이 하얀색, 댄서들이 검은색 의상을 입고 한 개인인 준과 그를 둘러싼 세계와도 같은 댄서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LIMBO’를 준비하면서 저에게 부족했던 점은 명확했어요. 저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부분 그리고 중간중간 스스로 의심했던 것.” 준이 ‘LIMBO’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깨닫게 된 점은 한 사람이자 예술을 하는 아티스트로서 스스로에게 솔로 곡이 가지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 7월 8일 ‘2023 TMEA 텐센트 뮤직 엔터테인먼트 어워즈’에서 솔로 곡 ‘LIMBO’로 ‘올해의 뉴 싱어송라이터’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던 준은 솔로 곡을 통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아가고, 표현한다. “내가 좋아하는 게 바로 이거라고, 이걸 하고 싶다고, 이건 싫다고, 정확하게 표현을 하는 게 처음에는 너무 어려워서 ‘LIMBO’에서는 솔직하게 말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일치시키는 과정이 길었어요.” ‘Crow’에서 준이 제3자의 입장에서 까마귀를 묘사하는 방식(“非败类却被归类 / 在街上独自徘徊 / 漠视那众目睽睽(나쁜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분류돼 / 길 위에서 홀로 배회해 / 많은 사람들의 주시를 냉담하게 바라봐”)이 ‘PSYCHO’에 이르러 스스로 발화자가 되어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hey 谁又是谁眼中的异类(hey 누가 또 누구의 눈에 보기에 별종인가)”, “别再骗自己了 psycho(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마 psycho)”)으로 바뀌는 것은 곧 성장 중인 청년이자 아티스트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에 대해 점점 또렷한 확신을 갖는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됐을 만큼 말이다. “저는 늘 제 노래에 그렇게 높은 점수를 주진 않아요.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다음에 나올 노래는 무조건 이전 노래보다 점수가 높을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