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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예진, 강일권(대중음악평론가), 김겨울(작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채씨표류기 유튜브

채씨표류기 (유튜브)

이예진: 물길 한가운데에서 자욱한 안개를 배경으로 순박한 미소를 짓고 있는 청년, 그 옆을 장식하는 지상파 TV의 정통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는 로고 서체. 유튜브 채널의 배너 이미지부터 영상의 섬네일까지 심상치 않은 몬스타엑스 형원의 단독 웹 예능 ‘채씨표류기’는 현역 아이돌 그룹 멤버를 중심으로 제작하는 여타 콘텐츠에서 본 적 없는 콘셉트를 내세운다. 전통 무늬로 꾸며진 두건과 스카프를 착용해 완벽한 등산객 차림으로 벤치에 앉은 형원은 가방에서 손수건을 두른 생수와 봉지에 잘 싸여진 달걀과 사과를 주섬주섬 꺼내 먹은 후 이내 카메라를 들어 서툰 손길로 주변 경치를 담는다. 그렇게 ‘채씨표류기’는 영상 속 형원이 “원하는 걸 하고, 싫은 건 안 하는” 모습을 흘러가듯 그대로 보여주는 단순한 포맷이다. 20년 만에 고향 금호도를 방문한 형원은 가족들과 소소한 시간을 보낸다. 한편, 기상 상황으로 인해 일정에 차질이 생겨 형원이 직접 선장에게 연착을 부탁하다 뜻밖의 인연을 마주친다거나, 절친인 세븐틴 정한과 여행을 떠난다. 뜻하지 않게 데뷔 후 8년 만에 번지점프에 도전하고 두 사람이 뜬금없이 계곡 바위에 널브러져 있는 등 예상 밖의 재미를 낳는 장면들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제작진은 형원과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며 프로그램의 독특한 콘셉트에 맞춘 짓궂고 장난스러운 톤으로 형원의 행동을 짚고 묘사하기 일쑤지만, 역으로 이런 담백한 관계가 또 다른 예상치 못한 광경을 낳는다. 형원의 작은 어머니가 형원을 포함한 촬영팀이 탄 배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번쩍 흔들면서 인사하자 제작진의 장난스러운 말들이 그 순간이 주는 뭉클함을 자아낸다. 형원과 정한이 식사하는 동안 나누는 이야기가 깊어지자 편히 대화할 수 있도록 몰래 오디오를 끄는 배려 섞인 제작진의 태도 덕에 두 사람의 속마음이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달될 수 있었던 것처럼. ‘힐링’ 자체를 노골적으로 전달하려 하진 않는다. 하지만 영상을 시청하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 어딘가 몽글한 느낌이 남는다. “원하는 걸 하고, 싫은 건 안 하는” 독특한 표류기가 도달한 따뜻한 마음이다.

‘NewRnbEra’- oceanfromtheblue 

강일권(대중음악평론가): 현재 한국 R&B/소울 음악계에서 가장 착실하게 앨범 커리어를 쌓아가는 아티스트는 누구일까? 몇몇 후보가 떠오른다. 다소 척박한 장르 씬임에도 양질의 앨범을 발표하며 묵묵히 나아가고 있는 이름들이. 오션프롬더블루(oceanfromtheblue)는 먼저 떠오르는 이름 중 하나다. 그는 데뷔 EP를 낸 2018년 이래 매년 결과물을 발표하며 입지를 다져왔다. 지난 2월에 공개한 첫 정규 앨범 ‘oceanfromtheblue’에 이은 ‘NewRnbEra’는 믹스테이프다. 이제 믹스테이프와 정규작의 경계가 희미해진 세상이지만, 여전히 전자는 아티스트가 제일 자유롭게 음악적인 욕구를 표출할 수 있는 창구다. 오션프롬더블루 역시 이를 십분 활용했다. ‘NewRnbEra’는 지금 그가 관심있어 보이는 R&B 서브 장르 및 스타일의 집합체다. 얼터너티브 R&B, 플러그앤비(Pluggnb), 트랩 X R&B 퓨전, 드릴 X R&B 퓨전 등등. 이전부터 R&B의 다양한 사운드를 아울렀지만, 이번엔 트렌드, 특히 힙합과 접목된 R&B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에 따라 보컬도 종종 랩 싱잉과의 경계를 허물어 뜨린다. 제목에서부터 랩의 플로우를 내세운 ‘Bruce Lee Flow’는 물론, ‘Apgujeong-ro’, ‘Run It Up’, ‘Nov Rnb Freestyle’ 등은 이 같은 보컬 퍼포먼스가 극대화된 곡이다. 가사 면에서도 R&B 로맨틱 가이와 힙합 배드 가이의 면모가 수시로 교차한다. ‘NewRnbEra’는 타이틀처럼 새로운 시대의 R&B가 정제된 작품이다. 탁월한 프로덕션, 섬세함이 돋보이는 보컬, 유려한 멜로디, 트렌드를 다루는 솜씨가 잘 어우러졌다. 올해 가장 인상적인 R&B 앨범 중 한 장을 발표한 그의 이름이 좀 더 많은 이에게 알려지길 바라본다. 

‘아무튼, 당근마켓’ - 이훤

김겨울(작가): 중고 거래 시장에 홀연히 나타나 이제는 중고 거래의 대명사가 된 ‘당근마켓’. 시인이자 사진가인 이훤이 자신의 당근마켓에 대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단순히 중고 거래 중에 생긴 일이나 당근마켓의 장점 같은 것을 늘어놓은 책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저자는 프리랜서로서 살아가는 일, 새로운 물건을 사서 차곡차곡 쌓는 일, 쓰던 물건을 내놓고 사는 일을 들여다보며 조심스럽게 한 자씩 옮겨놓는다. ‘올해의 당근인’으로 선정된 이슬아 작가의 어머니인 장복희 씨와의 인터뷰는 이 책의 마지막 순서이자 백미. 아이폰 11프로 512기가 미드나이트 그린 컬러를 시세보다 30만 원이나 싼 값에 내놓던 중고 거래 초보 시절에서부터 당근마켓에 좋아하는 옷 브랜드의 알림 키워드를 설정한 지금까지 저자의 변화를 살펴보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세심한 성정으로 어느 하나 허투루 넘겨 짚지 않는 저자의 자세가 마음을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