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라이브로 힙합에 관한 Q&A를 진행하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아이스 스파이스(Ice Spice)의 인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녀의 음악을 흥미롭게 듣고 있었지만, 실은 나도 궁금해지던 터였다. 오랫동안 평론가로 활동했어도 20대 초반의 여성 래퍼가 다른 세대와 젠더 팬층 사이에서 트렌드인 현상을 (그것도 전혀 다른 문화권에 속한 입장에서)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물론 ‘Munch (Feelin’ U)’란 곡이 기폭제가 된 건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2022년 8월에 발매된 이 곡은 빠르게 입소문이 났고, 신예들을 주류로 이끄는 플랫폼 틱톡(TikTok)을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랩스타 드레이크(Drake)의 지원 사격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드레이크는 위성 라디오 방송사인 시리우스엑스엠(SiriusXM)의 본인 채널 ‘사운드42(Sound 42)’에서 ‘Munch (Feelin’ U)’를 소개했다. 엄청난 청취자를 보유한 방송답게 파급력이 대단했다. 틱톡 유저들은 곡의 일부분에 맞춘 여러 반응 콘텐츠 및 리믹스를 생성했고, 플랫폼에서 해시태그 #munch와 #IceSpice는 수십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갱신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드레이크는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싱글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으며, 그가 주최하는 OVO 페스티벌에 아이스 스파이스를 초빙했다.
그녀 역시 드레이크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인정한다. 2022년 ‘콤플렉스(Complex)’와의 인터뷰에서 “드레이크가 ‘Munch (Feelin’ U)’를 칭찬하면서 나와 노래에 더욱 관심이 쏠렸어.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결실을 보기 시작한 것 같아.”라고 밝혔다. 이처럼 아이스 스파이스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Munch (Feelin’ U)’는 그녀의 음악 세계를 대변하는 곡이기도 하다. 드릴(Drill) 뮤직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한 변칙적인 리듬과 불길한 무드의 비트 위로 차분하고 평화로운 래핑이 흘러간다. 랩과 프로덕션이 이질적인 듯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특히 간결한 가사와 툭 던져놓는 스타일의 중독적인 후렴구가 숏폼과 챌린지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들에게 제대로 호소했다.
제목으로 사용된 뉴욕 속어 ‘Munch’도 화제였다. 현지인들에게조차 생소한 단어였기에 여기저기서 궁금증이 일었다. 이 단어의 대표적인 뜻은 성행위와 관련이 있다. 아이스 스파이스는 미디어 ‘지니어스(Genius)’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의미와 더불어 ‘당신에게 집착하는 사람 또는 당신을 시기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Munch (Feelin’ U)’에는 불충한 남자와 (그녀를) 시기하는 이들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이 담겼다. 폭력적이고 허무주의적인 가사의 드릴 뮤직을 본인만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셈이다.
이 한 곡을 둘러싼 일화와 기록만으로도 아이스 스파이스의 인기 요인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인기를 넘어 일종의 신드롬을 일으키는 배경으로선 부족하다. 인상적인 랩과 음악 그리고 틱톡에서의 성공 외에도 Z세대의 마음을 완전히 훔친 이유가 더 있을 것이다. 데이터에 기반을 둔 언론의 분석과 별개로 대중의 실질적인 생각과 반응이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세계의 음악 팬들이 활동하는 각종 온라인 포럼과 커뮤니티를 살펴봤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들 사이에서도 아이스 스파이스의 인기 요인에 관한 토론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아이스 스파이스의 주요 팬덤은 대략 14세부터 20대 후반까지의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오늘날 주류 음악과 트렌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를 많이 소비하는 연령층이다. 그들은 오렌지색 컬로 대표되는 그녀의 개성 있는 외모와 패션 스타일에 매료되었고, 본인이 만든 음악을 즐기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더불어 꽤 많은 이가 멋진 성격과 현실적인 모습을 매력으로 꼽는다. 일련의 반응을 보며 팬 대부분은 아이스 스파이스가 슈퍼스타임에도 곁에 가까이 있는 친구, 동생, 언니처럼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로 그녀는 여러 경로를 통해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이것이 열정적인 추종자를 양성하고 그들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바탕이 된 것 같다. 덕분에 아이스 스파이스의 팬들은 굉장히 헌신적이다. 스파이스 캐비닛(Spice Cabinet) 또는 먼치킨스(Munchkins)로 알려진 소셜미디어 팬덤은 대표적이다.
아이스 스파이스는 ‘Munch (Feelin’ U)’ 이전에도 2021년 초에 에리카 뱅크스(Erica Banks)의 ‘Buss It’ 챌린지를 촬영하여 틱톡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스타가 되기 전부터 디지털 시대의 브랜딩과 커뮤니티 중심의 바이럴에 능했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현재 구축된 팬덤은 이상의 홍보 역량이 같은 세대의 음악 팬들이 바라고 흥미로워하는 지점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스 스파이스를 좋아하는 건 일반 대중만이 아니다. 그녀의 급격한 인지도 상승에는 일부 유명인들의 열렬한 환호도 동반됐다.
일례로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과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자녀인 노스 웨스트(North West)는 아이스 스파이스의 히트 곡 ‘Boy’s a liar Pt.2’와 함께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는 틱톡 영상을 업로드하여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그래미 수상에 빛나는 래퍼 릴 나스 엑스(Lil Nas X)는 핼러윈 복장으로 ‘Munch (Feelin’ U)’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아이스 스파이스의 모습을 흉내 내어 화제를 모았다. 그런가 하면 비욘세(Beyonce)는 밝은 오렌지색이 특징인 ‘아이비 파크 X 아디다스(Ivy Park x Adidas)’ 컬렉션 캠페인 모델로 아이스 스파이스를 직접 선택했다.
아이스 스파이스는 뉴욕 드릴 뮤직의 태동부터 전파 및 유행까지의 움직임을 일컫는, 이른바 ‘뉴욕 드릴 랩 무브먼트’의 중심에서 태어났다. 그만큼 드릴 뮤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계열의 선구자이자 주류 전파에 앞장선 고(故) 팝 스모크(Pop Smoke)는 그녀가 영향받았다고 밝힌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아이스 스파이스의 음악이 기존 드릴 뮤직의 전형적인 공식을 따르진 않는다. 그녀가 듣고 자란 아티스트 중에는 팝 스모크 외에도 비욘세, 릴 웨인(Lil Wayne), 샤키라(Shakira) 등이 있고, 따라서 스파이스의 음악은 팝과 드릴의 조합이 반영되었다.
이 같은 특징 때문에 폭력, 범죄, 갱단 활동에 초점을 맞춘 가사가 매우 중요한 장르 성립 요건인 드릴에 그녀의 음악을 포함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쟁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드릴이 아이스 스파이스의 초기 음악에 영감을 준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녀는 기존의 드릴을 자신의 감정에 맞춰 성형해왔으며, 이러한 시도가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또 한 명의 Z세대 스타 영국의 핑크 팬서리스(Pink Pantheress)와 함께하여 히트한 ‘Boy’s a liar Pt.2’는 아이스 스파이스가 지닌 안목과 재능이 빛을 발한 곡이다. 그녀의 명성이 원 히트 원더로 얻은 게 아니란 사실을 보여주었다.
아이스 스파이스가 내뱉는 단선적이고 차분한 래핑 안에는 성과 관련한 매우 노골적이고 과감한 표현이 꿈틀거린다. 동시에 섹스를 비롯한 남녀 관계에서 능동적이며 주도권을 잃지 않는 여성으로서의 스탠스를 강하게 내비친다. 헤이터(Hater)들을 향한 강도 높은 디스에도 거침없다. 아이스 스파이스는 1990년대 릴 킴(Lil Kim), 폭시 브라운(Foxy Brown), 갱스타 부(Gangsta Boo), 2000년대 니키 미나즈(Nicki Minaj), 카디 비(Cardi B), 메건 디 스탤리언(Megan Thee Stallion) 등의 선배 여성 래퍼들이 강조해온 힙합관을 이어받아 현 세대의 드릴과 팝의 조화 위에서 펼쳐낸다.
기존의 규범을 존중하면서도 무작정 따르지 않고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한 그녀는 어느 때보다 팬들로부터 깊은 신뢰와 충성심을 쌓고 있다. 이렇게 아티스트와 팬 사이에 강한 유대감이 형성되는 건 흔치 않다. 아이스 스파이스의 영향력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은 이유다. 지금은 아이스 스파이스의 음악만이 아니라 아이스 스파이스 자체가 트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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