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베스트 목록은 음악, 영화, 책 등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연례 행사였다. 물론 유튜브, 음악 스트리밍과 OTT의 시대를 맞아 저마다 널리 다양해진 취향 덕분에 특정 평론가나 매체의 ‘Best of’ 목록이 예전처럼 큰 의미를 갖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연말 리스트는 여전히 각 매체가 무엇을 지지하는지, 어떤 취향과 안목을 가지고 있는지 전시하는 가장 간단한 지표다. 다양한 시각의 리스트를 한자리에 모아 놓을 때, 시장의 관심이 모이는 교차점이 드러나는 이유다. 그리고 2023년 해외 매체가 발표한 연말 베스트의 교차점 중 하나는 K-팝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뉴진스다. ‘Super Shy’는 ‘피치포크(Pitchfork)’가 뽑은 100곡 중 7위, ‘가디언(The Guardian)’ 20곡 중 3위, ‘롤링스톤(Rolling Stone)’ 100곡 중 6위, ‘NME’ 50곡 중 2위다. ‘Get Up’은 ‘롤링스톤’의 100개 앨범 중 33위, ‘고릴라 vs. 베어(Gorilla vs. Bear)’의 50개 앨범 중 15위, ‘팝매터스(Popmatters)’의 80개 앨범 중 61위에 올랐다. ‘뉴욕타임스’는 소속 평론가 3명이 각각 뽑았는데, 존 카라마니카(Jon Caramanica)가 14개 앨범 중 4위로 꼽았다. ‘스테레오검(Stereogum)’과 ‘스틸 리스닝(Still Listening)’은 앨범과 별도로 EP 목록을 선정했다. ‘스테레오검’은 25개 EP 중 하나로, ‘스틸 리스닝’은 20개 EP 중 3위로 ‘Get Up’을 골랐다.
대부분의 매체가 뉴진스를 선정한 이유로 이들이 기존의 K-팝 문법에서 벗어나면서도 즉각적인 대중적 성공을 거둔 것과, 에리카 드 카시에르를 비롯해 K-팝에 접점이 없는 유망한 작곡진의 참여를 언급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각각 가장 대중적인 매체에 속하는 ‘롤링스톤’이나 ‘NME’의 연말 리스트에서 K-팝 지분이 늘어나는 현상은 지난 몇 년간 반복된 일이다. ‘NME’는 2021년 올해의 노래 50곡 목록에서 방탄소년단과 에스파를 다루고, 동시에 올해의 K-팝 노래 25곡을 발표했다. ‘롤링스톤’은 2022년 올해의 노래 목록을 50곡에서 100곡으로 늘리면서 K-팝을 대거 끌어들이기도 했다. 이 둘도 당연히 뉴진스를 올해의 베스트 목록에 수록했다.
하지만 인디 취향 웹진과 블로그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는 ‘피치포크’와 ‘고릴라 vs. 베어’가 올해의 노래 앨범에 각각 뉴진스를 상당한 순위에 올린 것은 크게 눈에 띈다. ‘팝매터스’, ‘스테레오검’, ‘스틸 리스닝’까지 범위를 넓혀 보면, 다양한 취향의 진지한 음악 애호가 중 아직 뉴진스를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뉴진스라는 이름이 닿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뉴진스는 ‘Get Up’ 발매 직후부터 그들 사이에서 “그거 들어봤어?” 아티스트였다. 연말 리스트는 그 반증이며, 결과이고, 메시지다. 그래서 ‘피치포크’의 7위는 순위 자체가 아니라, 그 위의 6곡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라나 델 레이, 핑크팬서리스, 서프잔 스티븐스, 노네임, 올리비아 로드리고, 시저다. 2023년을 돌아볼 때 도저히 건드릴 수 없는 6곡이다.
‘롤링스톤’의 올해의 노래 100곡을 좀 더 보면, 정국의 ‘Seven’이 99위, 에스파의 ‘Spicy’가 95위, 피프티 피프티의 Cupid’가 75위, 지수의 ‘꽃’이 67위, 뷔의 ‘Rainy Days’가 58위, 트와이스의 ‘Moonlight Sunrise’가 55위, 세븐틴의 ‘손오공’이 47위다. 뉴진스 6위를 포함하여 총 8곡이다. 2022년에는 93위 싸이 ‘That That’부터 24위 뉴진스의 ‘Hype Boy’까지 13곡이었다. 전체적인 순위를 보면 등재된 곡의 수가 줄어든 것이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K-팝이 미국 시장에서 대중적으로 의미 있는 장르 중 하나로 자리 잡음에 따라 발매 시점, 미국 시장에서의 영향, 취향이 자연스럽게 반영되기 시작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작년까지 상당수의 선정 이유가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목적이거나, K-팝 장르 내에서의 위치를 강조했다면, 올해는 팝 장르 내에서 충분히 그 가치를 설명하는 데에 성공한다.
‘NME’는 K-팝을 선택하면서도, 장르 내에서 자신들의 취향을 좀 더 확실히 표현한다. 올해의 노래 50곡 중, NCT 도재정의 ‘Perfume’이 45위, (여자)아이들의 ‘퀸카 (Queencard)’가 35위, 르세라핌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가 32위다. 앨범도 다른 매체에 비해 많이 뽑은 편인데, 올해의 앨범 50개 중, 아이브의 ‘I’ve IVE’가 47위, 슈가의 ‘D-Day’가 38위, 르세라핌의 ‘Unforgiven’이 30위다. ‘롤링스톤’도 올해의 앨범 100개 중에는 69위로 슈가의 ‘D-Day’를 선정했다.
전통적인 K-팝 장르는 아니지만 한국계 아티스트로 밴드 파란노을의 ‘After The Magic’과 예지의 데뷔 앨범 ‘With a Hammer’가 거둔 성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발매 당시부터 호평받은 두 앨범은 각각 ‘피치포크’가 선정한 올해의 앨범 47위와 15위에 올랐다. ‘스테레오검’에서는 파란노을 15위, 예지 22위다. ‘With a Hammer’는 ‘팝매터스’ 77위, ‘NME’ 24위에도 오르면서 광범위한 취향의 지지를 받았다.
요컨대 K-팝 혹은 넓은 의미의 한국 음악을 단지 하위문화의 일부나 시각적인 퍼포먼스만으로 정의하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K-팝은 “올해 가장 순수한 팝(The song is one the purest pop thrills of the year, ‘롤링스톤’, 뉴진스, ‘Super Shy’)”을 내놓고, “창작 집단의 힘(There’s strength in the collective, ‘롤링스톤’, 세븐틴, ‘손오공’)”을 증명하며, “‘바비(Barbie)’ 사운드트랙에 들어갔어야 하는 노래(If there was one song this year that should have been on the Barbie soundtrack, ‘NME’, (여자)아이들, ‘퀸카’)”라고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받는다. 우리는 2023년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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