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은 21세기의 피리 부는 사나이들이다. 그들이 무언가 공개적인 활동을 하면,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들이 어느 시상식의 레드 카펫에 서면 그 시상식은 곧바로 전 세계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오를 수 있고, 그들이 입은 옷의 브랜드나 디자이너는 전 세계 미디어의 관심을 받기도 한다. 그 점에서 방탄소년단의 활동은 그들 스스로 플랫폼을 만드는 순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로 인해 급격하게 사람들이 모이는 순간, 방탄소년단은 그들의 당시 활동과 관련된 여러 업체나 사람들이 ‘입점’한 플랫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과거에 누군가의 게시물이 ‘네이버 메인’에 뜨면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처럼, 무엇이든 방탄소년단과 연관되면 화제가 되고, 사람을 모을 수 있다. 스타 또는 셀러브리티라 불리는 유명인들은 대개 이런 영향력을 갖는다. 그러나 K-팝 아이돌의 인기는 강력한 팬덤에 근간을 둔다. 팬덤이 미디어나 플랫폼을 선택하는 첫 번째 기준은 그곳에 좋아하는 대상의 콘텐츠가 있느냐다. 방탄소년단이 무언가를 하면, 그곳이 지상파 TV인지 틱톡인지는 팬덤에게 부차적인 문제다. 그곳이 어디든, 아미는 열렬한 반응을 통해 ‘트렌딩’이나 ‘인기 동영상’ 등으로 화제성을 불러일으킨다.

방탄소년단이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역사에 여러 페이지를 차지하게 될 이유는 일일이 언급하기도 힘들 만큼 많다. 하지만 그들이 ‘3세대 아이돌’이라 불리기도 하는 한 시대의 대표성을 갖는 데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도 이유가 있다. 방탄소년단은 SNS를 통해 콘텐츠를 팬들에게 직접 전하고, 소통하는 것을 그들 이후에 나올 한국 아이돌의 기본이자 기준으로 제시했다. 팬들의 열광을 끌어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당연히 기본이다. 그 결과, 이전까지 명확하게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는 측정하기 어려웠던 팬덤의 영향력이 선명하게 가시화됐다. 팬덤은 물론 미디어도 이제 리트윗, 좋아요, 구독자 수, 검색량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순간의 버즈(buzz)가 모여 일어나는 현상들이 아이돌의 인기와 팬덤의 힘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알고 있다.
아이돌 산업에서 세대 또는 시대의 가장 직관적인 기준은 그 기간을 지배한 아티스트가 누구인지 따지는 것이다. 다만 이런 아티스트들의 부상은 곧 아이돌 시장의 변화를 의미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강력한 팬덤이 대중음악 산업 전체를 흔든 첫 번째 사례였다. H.O.T.를 시작으로 한 1세대 아이돌은 음악뿐만 아니라 드라마, 예능, 10대의 서브 컬처 등 다양한 영역과 결합하면서 기존 대중음악 산업과는 다른 성격의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동방신기와 소녀시대, 빅뱅의 시대에 아이돌은 해외 활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탄소년단은 SNS를 통해 한국어 콘텐츠를 전 세계에 동시 공개하고, 콘텐츠와 콘텐츠 사이에 팬과의 실시간 소통을 통해 전 세계 팬덤을 하나로 묶었다. 시장의 중심이 기존 미디어에서 스마트폰의 SNS로 옮겨졌고, SNS를 통해 결집한 팬덤의 힘이 전 세계 SNS 이용자들에게 방탄소년단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한국의 아이돌 음악이 닿는 국가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팬덤은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완전히 습득했다.

‘4세대'라고 불리기 시작한 아이돌이 어떤 시장을 만들어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마치 지금의 10대나 Z세대가 그런 상황에 있는 것처럼, 한국의 아이돌이 새롭게 가질 수 있는 그들만의 세상 또는 시장은 더 이상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해외 시장 진출, SNS의 활발한 활용, 팬덤의 영향력을 기반에 둔 홍보 전략 등은 이미 3세대까지의 아이돌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는 하다. 다만 지금은 기존의 기반 위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일들을 언급할 수는 있다. 빅히트 레이블 중 하나인 빌리프의 신인, ENHYPEN은 지난해 방송한 Mnet ‘I-LAND’를 통해 데뷔했다. 당시 최고 시청률은 1.7%(닐슨 코리아 기준)로 높다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I-LAND’는 유튜브의 빅히트 레이블 채널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고, 12회 방영분의 총 실시간 시청자 수는 1,980만 9,189명이었다. ‘I-LAND’ 출연자들을 대상으로 한 투표는 최대 178개국에서 참여했다. ENHYPEN은 방탄소년단 이후의 신인들이 데뷔 시점부터 전 세계에 자신들을 알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SNS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 한국 아이돌의 팬덤 세계에서는 국내 활동 후 해외 진출을 하는 대신 한국에서의 활동으로도 전 세계에 동시에 팬덤을 만들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먼저 반응이 오고, 그 화제성으로 한국에 다시 진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ENHYPEN 같은 팀이 앞선 세대와 다른 그들만의 무엇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데뷔부터 전 세계에 팬덤을 모을 수 있는 팀에게 필요한 건, 언어부터 주로 사용하는 플랫폼, 좋아하는 이유가 모두 다른 세계의 팬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방법이다. 위버스 또는 위버스가 최근 양수한 브이라이브 또는 유니버스 등의 팬덤 플랫폼은 이 지점에서 새로운 가치를 지닌다. ENHYPEN이 결성되기 전부터 위버스에는 ‘I-LAND’를 위한 공간이 생겼고, ‘I-LAND’의 시청자들은 위버스를 통해 투표, 관련 콘텐츠, 팬들 간의 의견 소통을 모두 할 수 있었다. ENHYPEN의 데뷔 이후 이곳은 자연스레 ENHYPEN의 팬덤을 위한 공간이 됐다. ENHYPEN의 콘텐츠는 유튜브, 트위터, 틱톡 등에서 각각 볼 수 있다. 하지만 팬덤 플랫폼은 이 모든 것들을 한데 모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팬덤의 반응도 한곳으로 모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아티스트가 기존 SNS에서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아티스트는 팬덤만 모인 공간에서 팬들의 반응을 보고 여기에 실시간으로 답을 줄 수도 있고, 특정 이슈에 대해 실시간 단톡방을 만든 것처럼 빠르게 대화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해당 팬덤은 아티스트의 반응에, 그로부터 일어나는 팬덤 내부의 뜨거운 반응에 몰입한다. ENHYPEN의 데뷔 앨범 ‘BORDER : DAY ONE’의 첫 주 실물 앨범 판매량은 28만 장 이상으로, 2020년 데뷔한 팀 중 최고다. 전 세계의 SNS 환경과 한국 아이돌 팬덤의 특성을 결합해 관심을 모은 뒤, 위버스에서 팬덤을 결집시킨 결과라 할 수 있다.

팬에게 콘텐츠 소비는 팬 활동의 시작일 뿐이다. 그들은 언제나 몰입할 수 있는, 이른바 ‘달릴' 거리를 원한다. 방탄소년단이 이 과정을 SNS 세계에서 구현했다면, 위버스를 통한 팬덤의 결집은 팬들이 ‘달리는' 방식을 체계화시킨 것에 가깝다. 팬덤 플랫폼은 아티스트를 구심점으로 팬덤 커뮤니티를 만들면서 팬덤을 결집시킨다. 플랫폼에서 보내는 알림을 따라 콘텐츠를 소비하고, 콘텐츠가 나온 뒤에 아티스트가 올린 게시물에 반응하며 ‘달리다’ 보면 팬은 아티스트와 팬덤에 빠르게 밀착된다. 이제 시작 단계이기는 하지만, 팬덤 플랫폼은 아이돌이 또는 한국 아이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팬덤 문화가 가진 빠르고 정신없고 그렇기 때문에 깊이 빠져들게 되는 여러 요소들을 한곳에서 통합시키며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4세대 아이돌의 시작으로 명명할 수 있고, ENHYPEN 또한 4세대 아이돌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방탄소년단 데뷔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서가 아니다. 두 팀은 방탄소년단을 통해 새롭게 정의된 시장을 기반으로, 그다음 세대의 아이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유튜브의 빅히트 레이블 채널을 통해 처음으로 모습을 공개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데뷔했던 2019년 3월 즈음 빅히트 레이블의 구독자 수는 2,150만 명 정도였다. 만 2년이 된 지금 구독자 수는 5,130만 명이다. 방탄소년단과 같은 팀이 IP(지식재산권)이자 플랫폼이 되는 시대에, 투모로우바이투게더 같은 팀들은 전 세계에서 한국 아이돌에 열광할 준비가 된 이들이 모이는 플랫폼을 통해 데뷔한다. 그리고 위버스와 같은 팬덤 플랫폼은 팬들이 유튜브, 트위터, 틱톡 등을 통해 생긴 관심을 하나로 모아 그들을 쓰는 언어가 달라도 잠들 때까지 ‘달리게' 만들 수 있다. 콘텐츠 공개 이후의 소통, 실시간 이슈 그리고 코어화. 지금까지의 아이돌 산업이 기존의 SNS, 더 나아가 대중의 세계 안에서 팬덤이 하나둘씩 모이는 형태였다면, 팬덤 플랫폼은 기존 SNS와 모두 연결된 베이스 캠프이자, 그들의 팬 활동을 종합적으로 할 수 있는 그들의 ‘-verse’다. 빅히트가 ‘대형’ 기획사의 역량을 갖고 있다면, 빅히트가 팬데믹 상황에서 2020년 연간 매출을 7,963억 원으로 1년 전보다 36% 증가시켰다거나, 위버스와 브이라이브를 합칠 기반을 마련하는 것 같은 ‘빅딜'들을 연이어 성사시켜서만은 아니다. 지금의 빅히트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그 콘텐츠를 전파할 플랫폼을 운영하는 것을 넘어 소유하고, 이 두 가지를 합쳐 팬이라면 누구나 쉽고, 빠르고, 강렬하게 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아티스트가 콘텐츠와 소통을 통해 팬들의 몰입을 이끌어내기까지의 과정을 설계할 수 있다.
미국 대중음악 산업, 또는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한가운데에 있는 유니버설뮤직그룹(UMG)은 빅히트와의 사업 합작 이유로 “가장 혁신적인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라는 점을 꼽았다. 유니버셜뮤직그룹이 말하는 혁신이 빅히트를 계속 이름과 같은 거대한 성공으로 이끌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엔터테인먼트 산업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분야는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빅히트는 새로운 세대의 아이돌과 함께 새로운 시장을 찾고, 그 과정에서 아이돌이 데뷔하고, 활동하며, 성공에 점점 다가서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앨범 ‘minisode1_Blue Hour’의 첫 주 실물 앨범 판매량은 30만 장 이상이다. 같은 해 데뷔한 팀들 중 최고 성적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일본에서 발표한 정규 1집 ‘STILL DREAMING’은 미국의 빌보드 200 차트 173위에 올랐다. 한국 아이돌로서는 방탄소년단에 이어 두 번째다. 결과는 어찌 될지 알 수 없지만, 가고 있는 길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다. 그 길의 이름이 4세대든 뭐든, 그 길 끝에는 과거와 다른 세계가 있을 것이다.
글. 강명석
디자인. 페이퍼프레스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