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를 치다’, ‘꼬리를 숨기다’. 여성의 유혹이나 속임수를 이르는 관용구들이다. 그중에서도 고양이나 여우는 과거의 여러 설화 속에서 소위 ‘요물’로 취급되며 부정적으로 그려지곤 했다. 선미는 공교롭게도 그의 노래 ‘꼬리’의 안무에 이 동물들의 동작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구미호처럼 선미와 댄서들이 팔과 다리로 여러 갈래의 꼬리를 표현하고, 선미가 뾰족한 손톱과 눈매를 한 채 기어가거나 부드럽게 팔을 뻗어 휘젓는 동작은 고양이의 날렵하고 유연한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선미가 ‘꼬리’의 콘셉트 비디오에서 ‘꼬리를 흔들다’에 대한 정의로 다음의 두 문장을 말한 것은 그가 왜 꼬리를 곡, 뮤직비디오, 안무를 아우르는 콘셉트로 선택했는지 보여준다. ‘do not hide’, ‘express yourself’. 여성에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곤 하던 ‘꼬리를 흔들다’를, 선미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선택한다.

‘꼬리’의 퍼포먼스 도중 선미는 의자에 앉은 남자 댄서에게 몸을 밀착시키거나, 그의 몸에 올라타는 동작을 보여준다. 또는 댄서들의 다리 사이로 기어가거나, 상체를 낮게 엎드린 채 허리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몸의 선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이런 동작들은 관능적인 이미지의 여성 아티스트들을 떠올릴 때 대중이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선미가 남자 댄서와 밀착되는 순간 나오는 가사는 ‘I’m not much of a drinker But I’m a dream girl’이다. 그에 이은 가사는 ‘물음표? 물음표? 그만 좀 물어 대’고, 뮤직비디오는 화려한 모습을 한 선미가 다채로운 형태의 동물 꼬리를 가진 것을 보여준다. 관능적인 이미지를 부각한 춤을 추면 ‘dream girl’이 된다. 동시에 이런 퍼포먼스를 한 여성 아티스트에 대해 일부에서 퍼포먼스의 맥락을 무시한 채 논란의 대상으로 만들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우기도 한다. 선미는 같은 동작을 통해 자신과 같은 여성 아티스트에게 전해지는 모순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꼬리’ 뮤직비디오는 영화 ‘배트맨 리턴즈’의 캐릭터, 캣우먼의 캐릭터를 오마주한다. 캣우먼은 남자로 인해 고층 빌딩에서 떨어져 살해될 뻔하다, 고양이의 도움을 받아 살아난다. ‘꼬리’ 뮤직비디오 속 선미도 같은 과정을 거쳐 살아났다. 그는 자신을 추락시킨 남자를 철로에 묶어놓고 싶을 만큼 복수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dream girl’이 되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의자에 묶어놓은 남자를 압도하는 순간을 떠올리기도 한다. ‘꼬리’의 뮤직비디오는 이 여성의 머릿속이 왜 이렇게 알 수 없는 상태가 됐는지에 관한 맥락을 전하고, 퍼포먼스는 그로 인해 그가 표현하는 모든 동작들을 캣우먼처럼 광기에 사로잡힌 여자의 시점에서 보여준다. 선미는 퍼포먼스를 하며 미소를 짓다가도 정색하고, 목이 졸리는 듯하다가도 머리를 때리는 강한 동작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랑받기 위해 선택한 것들, 그로 인해 사랑과 함께 목이 졸리는 것 같은 고통으로 돌아오는 또 다른 것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선택한 자신에 대한 복잡한 마음. 선미는 이 복잡한 머릿속을 캣우먼과 같은 광기 어린 캐릭터를 통해 무대 위에서 일관된 분위기로 통합하고, 맥락을 부여한다.
‘꼬리’가 마치 뮤지컬과 같은 형식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마치 뮤지컬 ‘캣츠’에서 캣우먼의 삶의 이야기가 추가된 것처럼, ‘꼬리’는 캣우먼에 빗댄 ‘dream girl’ 또는 선미 자신의 이야기를 뮤지컬처럼 곡, 가사, 퍼포먼스, 뮤직비디오의 스토리가 통합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곡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늘어나는 댄서의 숫자는 퍼포먼스를 위해 필요하기도 하지만, 뮤지컬이 아닌 음악 방송에서 캣우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배경이기도 하다. 귀가 다소 울릴 정도로 곡을 채우는 저음은 선미의 목소리가 휘저을 배경이 되고, 다른 소리들에 다소 묻혀 있는 선미의 목소리는 보컬의 비중이 큰 일반적인 K-팝에서와 달리 넓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된다. 또한 이 곡은 후렴구 멜로디를 1절부터 마지막까지 변주 없이 반복한다. 그 결과, 폭발적인 고음을 쓰거나 하는 대신 ‘우린 미친 듯이 사랑하고 미친 듯 입을 맞추고’ 같은 후렴구의 가사를 자기 음역대에 맞춰 연기하듯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대신 ‘꼬리를 높이 세워 / 더 예민하게’에서 뮤지컬이 그러하듯 속도를 늦추며 클라이막스를 예고한다. ‘꼬리’와 함께 발표한 ‘꽃같네’(‘What The Flower’)는 재즈적인 스타일을 바탕으로, 아예 뮤지컬 속 한 캐릭터의 테마로 써도 좋을 만큼 선미의 독백에 가까운 형식으로 진행된다. 선미는 ‘꼬리’에서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난 여성을 그리면서, 역시 K-팝의 전형을 조금씩 벗어나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형식을 찾는다. 뛰어난 상상력의 아티스트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직접 프로듀싱할 수 있을 때 나오는 결과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꼬리’는 논쟁적인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 선미는 가사, 뮤직비디오, 표정, 동작의 전후 맥락을 연결해 자신의 의도를 전달한다. ‘dream girl’이 사랑받는 동시에 ‘꼬리를 흔드는’ 여자가 되고, 이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려면, ‘꼬리’의 결과물 그대로 ‘dream girl’로서 자신을 유혹하는 모습 또한 보여줘야 한다. 물론 선미는 퍼포먼스의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꼬리’의 뮤직비디오에서 선미가 남자 댄서의 몸에 올라가는 순간, 선미의 행동은 남자 댄서의 몸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대신 선미의 차가운 표정이 클로즈업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선미의 맥락과 의도를 읽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공개된 ‘꼬리’의 안무 영상에서 선미가 엎드린 채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동작은 선미가 버티지 못하고 넘어질 만큼 힘들다.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선미는 안무가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괜찮지 않다.”라고 답하거나, 기어가는 안무를 연습하며 생긴 멍으로 가득한 무릎을 공개하기도 했다. 선미와 안무를 함께하는 댄스 크루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선미가 ‘꼬리’ 안무를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 운동을 병행했음을 언급했고, 이전부터 선미는 투어를 위해 증량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선미의 의도와 노력과 상관 없이, 어떤 사람들은 안무의 일부만을 떼어내 소비하거나, 그의 체중이 늘었다는 사실만을 또는 달라진 몸의 선만을 화제에 올린다. 선미가 무엇을 하든 일정 비율의 사람들은 그를 섹시한 이미지로 소비하고, 인터넷에서 그의 몸을 품평한다. 그럼에도 선미는 모순적으로도 보일 수 있는 자신의 복잡한 내면을 드러내고, 이 복잡한 모습들이 왜 한 사람 안에 있는지 맥락을 만들어 설명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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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가 지금 K-팝 산업 안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여성 아티스트가 논쟁 또는 논란이 따를 수밖에 없는 작품을 계속 내놓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여성 아티스트가 논란에 휘말리는 것은 내용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타격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선미는 논란이 계속되고, 때로는 부정적인 반응이 오는 상황에서도 계속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나간다. 그 결과, 한두 개의 단어로만 표현할 수 없는 여성의 복잡하고 입체적인 모습을 K-팝 산업의 한가운데에 던져 놓는다. 선원을 유혹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이렌’, 나이 어린 여성을 낮춰 부르는 방언인 ‘가시나’, 이른바 ‘노는 언니들’과 동의어인 ‘날라리’처럼 부정적인 인상이 강하거나 주체성이 상실되었던 낱말은 여성이 스스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었다. ‘꽃같네’에서 꽃은 ‘웃지 않아도 되는데’ 웃어야 하고, ‘자꾸 왜 만지려 해’서 ‘그만해’라고 말해야 하는 처지다. 선미는 ‘꽃같네’를 욕설을 재치 있게 바꾼 말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꽃을 아름답기 때문에 오히려 고달픈 존재로 정의하면서 새로운 의미까지 불어넣는다. 선미는 여성에 관한 언어들을 재정의하면서 그 언어들에 여성 자신이 바라본 그들의 삶을 담아낸다. 때로는 모순되거나 올바르지 못하거나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할지라도, 표현이라도 해야 하는 삶.
글. 윤해인
사진 출처. 어비스 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