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대 ‘잇 보이(It Boy)’” 지난 2월 17일(한국 시간)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멤버 연준이 얼킨(ul:kin)의 모델로 뉴욕패션위크 런웨이에 섰을 때, 국내외 언론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그를 ‘잇 보이’라는 다소 낯선 단어로 표현했다. 구글 트렌드 지표에 따르면, 당시 전 세계 이용자들이 한 주 동안 ‘it boy’와 ‘4th gen it boy’를 검색한 빈도는 각각 직전 주의 3배가량으로 증가했다. ‘It boy’의 관련 검색어로서 ‘4th gen it boy’의 검색 빈도가 급등했고 ‘4th gen it boy’의 관련 주제로 ‘K-pop’, ‘연준’ 등이 ‘급상승’ 단어로 집계됐다. 그만큼 ‘잇 보이’는 유래나 의미를 검색해서 알아봐야 할 정도로 생경한 동시에 호기심을 유발하는 키워드였다. “영어로 ‘4th gen it boy’, 모아분들이 요즘 제 별명으로 많이 불러주시더라고요. 너무 고마웠어요. 제가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주시고 생각해주셔서 그렇게 말해주시는 거잖아요.” 연준이 앞서 지난해 6월 19일 브이라이브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해당 키워드는 해외 팬덤 내에서 등장해 연준의 인지도 상승과 함께 팬덤 외부로 확산됐다. 

 

20세기초 사교계를 중심으로 사용된 이래 ‘잇'은 ‘하나의 트렌드를 대표하는, 누구나 갖고 싶고 모방하고 싶어할 만큼 매력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패션은 물론 문학이나 영화 등의 분야에서 통용돼왔다. 1920년대 배우 클라라 보(Clara Bow)부터 에디 세즈윅(Edie Sedgwick), 트위기, 케이트 모스 등 시대별 트렌드를 대표하는 ‘잇 걸(It Girl)’로 호명됐던 이들을 떠올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100년 남짓한 ‘잇’의 역사에서 ‘잇 보이의 등장은 좀처럼 드물다. 패션 분야에서 주된 소비 주체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잇 보이라는 단어는 주로 ‘유망한 신인’ 또는 연상의 마음을 사로잡는 젊은 남성’으로서 사용됐다. 예컨대 브로드웨이의 배우 조슈아 콜리(Joshua Colley), 모델 럭키 블루 스미스(Lucky Blue Smith)에 대한 언론의 소개, 2013년 열아홉 살 남성과 서른아홉 살 여성의 로맨스를 그린 프랑스 영화 20 ans d’écart(20년 차이)’가 영미권 개봉에 맞춰 번역한 영제 ‘It Boy’(국문 제목은 ‘서른아홉, 열아홉’) 등이 있다. 

 

그러나 연준에게 부여된 ‘4세대 잇 보이는 스타일 아이콘으로서의 의미가 뚜렷하다. “예술과 대중의 간극을 좁히고 전 세계에 K-패션, 나아가 K-컬처를 알리기 위한 매개체로서 K-팝의 아이돌인 연준이 적역이었다.” 얼킨의 대표이자 총괄 디자인을 맡고 있는 이성동 디자이너는 연준과의 협업 계기로 “하이엔드를 지향하는 예술적 영역에서의 패션과 대중과 가까이 맞닿아 있는 아이돌의 접점”을 꼽았다. 하이엔드 패션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고, 세계 시장에 한국 패션을 문화적 총체로서 선보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 연준을 발탁한 이유다. 이성동 디자이너는 “서구에서 유니섹스는 남성복을 기초로 한 여성복이 주를 이뤘다면 아시아, 특히 한국에서는 여성복을 베이스로 둔 남성복이 많이 나왔다. 여성 복식이 가미된 의상을 남성 아이돌이 많이 입고, 동시에 남성복임에도 여성들이 구매하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라며 “런던, 파리에 방문했을 때도 이와 관련해 많은 질문을 받았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우리 패션계에서도 아주 재미있는 이슈”라고 설명했다. 요컨대 ‘4세대 잇 보이는 해외에서 통용되었던 ‘잇 보이'와 달리, ‘남성이지만 여성복을 입고 여성이 남성복을 구매하는’ 젠더 플루이드적인 K-팝의 특성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위상을 모두 함의한다. 다시 말해, 현재와 같은 ‘잇 보이’의 의미는 해외에서 K-팝의 소년들을 형언하며 성립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신조어, 줄임말, 10대들의 은어 등을 아카이빙하는 소셜 딕셔너리 사이트 ‘어반 딕셔너리’는 이용자들이 직접 어휘와 그 의미를 등록하게 하고, 그중 많은 추천을 받은 의미를 해당 단어를 검색했을 때 최상위에 노출되는 ‘TOP DEFINITION’로 선정한다. 이 ‘어반 딕셔너리에서 방탄소년단의 뷔, 지민, 정국 등은 번갈아 가며 'it boy'와 Worldwide IT Boy'의 ‘TOP DEFINITION’을 차지하고 있다. 패션이나 뷰티 등 ‘꾸미는’ 남성들이 늘어난 데에 더해 여성들이 ‘보이의 스타일도 따라 하고 싶은 대상으로 삼는다는 의미다. 또한 이들은 ‘방탄소년단이 입은 옷과 똑같은 옷을 입는 것’보다 ‘방탄소년단이 자신의 스타일을 꾸미고 연출하는 태도를 닮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패션 칼럼니스트 겸 크리에이터 캐롤리나 말리스(Carolina Malis)는 이에 대해 “방탄소년단은 상업적인 차별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착장을 보여준다.”라며 “퍼포먼스를 펼칠 때의 무대의상뿐 아니라 그 공항 패션, 일상복에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연히 드러나며 이러한 360도 전방위적인 패션이 아티스트의 모습을 완성한다."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의 스타일이 패션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은 ‘BTS inspired outfits’, ‘How to dress like BTS’와 같은 파생 콘텐츠에서도 잘 드러난다. 유튜브, 틱톡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 콘텐츠는 방탄소년단에게 영감을 받은 바를 토대로 착장을 연출하는 내용으로, 한 멤버가 상황별로 보여준 스타일 또는 멤버별로 보여준 각기 다른 스타일을 소재로 한다. 핵심은 획일화된 기준이 아니라 개성에 따라 자유롭게 ‘나’를 표현하는 다양성에 있다. 그들은 방탄소년단을 참고하지만, 꼭 방탄소년단이 착용한 아이템을 고수하지는 않는다. 쇼트커트 머리에 체형이 드러나는 타이트한 옷을 입기도 하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루스한 핏을 연출하기도 한다. 여성과 남성 모두 슈가의 메이크업을 모티프 삼아 화장을 하고, RM과 진의 의상을 토대로 실제 일상에서 입고 지낼 수 있는 룩북을 구성한다. 이들의 다양성은 ‘걸 그룹처럼 입고 싶어 하는 소녀, 보이 그룹처럼 입고 싶어 하는 소년’과 같이 전형화할 수 없다. 캐롤리나는 “이전에는 K-팝을 묘사할 때 ‘여자처럼 입는, ‘게이 같은 등 편견 섞인 발언들이 나오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성소수자이든 성소수자가 아니든, 남자들을 포함한 누구든 얼마든지 예쁘게 보이기를 원하고 또 그를 위해 화장이나 여러 외형을 연출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패션 또는 K-팝 전문 유튜버를 표방하는 이용자뿐 아니라 평소 패션이나 K-팝과 무관하게 브이로그나 개인 취미 등 일상을 공유했던 이용자들도 성별, 나이, 머리 길이, 체형 등과 상관없이 ‘방탄소년단처럼 입기’를 즐긴다. 방탄소년단의 라이프스타일, 그들이 전하는 삶의 메시지를 입는다. 

 

‘보그’는 2017년 빌보드 뮤직 어워드 레드 카펫에 선 뷔를 두고 “뷔는 어쩌면 가장 패션에 앞선 드레서였다. 그는 핀 스트라이프 재킷과 물방울 무늬의 셔츠를 루스 핏 바지에 매치하는 과감한 시도를 어려움 없이 소화해냈다.”라고 평했고, ‘아이매거진(I-MAGAZINE)’이 주최한 ‘패션 페이스 어워드에서 영국, 홍콩 등 30개국 이상의 패션 종사자 350여 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뷔를 아시아 남성 부문 2018년 1위, 2019~2020년 3위로 선정했다. 캐롤리나는 ‘Singularity’ 컴백 트레일러를 대표적인 예로 들며 “화려한 무대의상이면서도 일상복으로 쉽게 활용할 수 있을 만한 착장들과 미술, 소품 등 영상 전반에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미학적인 요소 곳곳에서 ‘뷔’를 발견할 수 있다. 뷔의 스타일에는 시크함과 럭셔리함, 흔히 ‘여성적'이고 ‘남성적'이라 인식되는 아이템들이 복합적으로 존재하지만, 전혀 억지스럽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뷔가 모든 것들을 스타일로서 이해(make sense)하고 있기에, 뷔 자체가 하나의 스타일이 된다.”라고 부연했다. ‘가디언은 최근 남성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장발 스타일로 이마를 덮도록 긴 앞머리를 곱슬거리는 질감을 살려 연출한 ‘체루빔 헤어커트(Cherubim haircut, 아기 천사처럼 복슬거리는 머리 모양)'를 소개하고 대표 주자로 트로이 시반, 저스틴 비버와 함께 뷔를 꼽으며 “용기 있는 자가 멋지게 보이면, 나머지 사람들은 곧 따라간다. 지난 20년간 남성들은 의욕 없이 미용실에 앉으며 머리를 기르고 싶다고 말했지만, 이젠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을 통해 K-팝에서 ‘잇 보이’를 인지한 해외에서의 관심은 연준을 ‘4세대 잇 보이'로 호명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4th gen it boy의 전 세계 언급량이 구글 트렌드에 최초로 포착된 시점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Run Away)’ 음악 방송 무대로 유튜브 노출이 늘어났던 2019년 11월 초 무렵이며, 이후 ‘세계가 불타버린 밤, 우린…(Can't You See Me?)’, ‘동물원을 빠져나온 퓨마’ 뮤직비디오 및 음악 방송 무대, ‘5시 53분의 하늘에서 발견한 너와 나, ‘날씨를 잃어버렸어' 뮤직비디오 등이 공개될 때마다 일시적으로 증가했다. ‘minisode1 : Blue Hour’ 콘셉트 포토 공개 당시에는 ‘4th gen it boy’ 언급 증가와 더불어 ‘YEONJUN’이 트위터 세계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올랐다. 해외 누리꾼들이 연준의 ‘잇’함을 포착한 순간들이다. “‘크롭 톱'이 트위터에서 세계 트렌드에 오르는 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냐고? 연준이 입고 있던 스마일이 그려진 흰색 긴팔 티의 옷자락이 그의 배꼽 바로 위에서 끝났기 때문이다.” ‘틴보그’는 지난 11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minisode1 : Blue Hour’ 콘셉트 포토에서 연준이 크롭 톱을 입었다는 사실에 대해 이같이 묘사했다. 해당 기사는 “K-팝의 모든 ‘잇 보이'들에게는 크롭 톱이 일종의 통과의례”라며 “경직된 성 역할과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K-팝 아티스트들은 릴 나스 X, 해리 스타일스 등과 함께 보다 젊고 젠더 플루이드한 세대의 남성들을 위해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북미 한류 매체 ‘코리아부’는 연준이 SBS미디어넷 ‘덕후투어에서 입은 논바이너리 메시지가 담긴 티셔츠 등을 예로 들며 “연준은 기존 성 역할을 깨트리고 어떤 것이든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는다.”라고 평했다. 

 

연준은 지난 3월 ‘얼루어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 좋아해요. 사실 (남들이 보기에) 좀 과한 것도 좋아합니다.”라고 답했다. 그에게 패션은 “크게 뭐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하게 입어보는",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누가 이건 여자 옷이다, 남자 옷이다 정해놓았냐는 거죠.(‘보그 코리아)”라고 말하는 연준 앞에서 타인이 정한 기준은 무력화된다. 특정 범주에 들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기에, 새롭게 시도하는 과정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어떤 모습이든 스스로 표현하는 ‘나'가 된다. 스타일링에 장벽과 한계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곧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잠재성을 의미한다. 캐롤리나는 이에 대해 “연준의 패션은 남성과 여성, 또는 그 중립점이나 젠더리스 중 어느 것에도 고정되지 않는다. 오직 ‘하고 싶은 것이라는 스펙트럼 안에서 원하는 대로 마음껏 움직이는데, 모든 것들이 그에겐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했다. 연준은 무대의상이나 공항 패션 외에도 연습실과 같은 일상의 순간에서 직접 촬영한 ‘셀피를 팬들과 공유하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착장이 담긴 사진들은 팬들이 각각의 상품을 찾아보기에도, 여러 아이템이 전체적으로 이루는 조화를 살피기에도 용이하다. 카메라가 비추는 시선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OOTD(Outfit Of The Day)를 통해 자신이 어떻게 ‘매일의 나’를 구성하는지 주체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새로운 세대의 ‘잇 보이’일 수 있는 이유다. 

“그냥 그렇게 입고 싶더라고요. 그날따라 꾸미고 싶었고 영상 촬영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노래에 악기 소리도 들어가 있어서 파리 분위기가 어울리겠다 싶었어요.” 연준은 지난 2월 ‘보그 코리아’ 인터뷰 중 ‘샴푸의 요정’ 안무 연습 영상에서 혼자 슈트와 베레모를 착용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이 입고 싶은 의상으로 원하는 분위기를 전달하고, 관객들은 영상을 감상하는 동안 각자의 위치와 상관없이 연준이 만드는 분위기를 공유한다. 실제론 파리에 갈 수 없지만, 동시에 모두 함께 파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 수업이나 친구들과의 모임이 온라인상으로 옮겨간 지금의 세대에게 틱톡,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한 상호 교류는 또 하나의 외출이다. 장소, 계절 등 물리적인 환경에 패션을 맞추기보다는, 그날의 감정, 연출하고 싶은 이미지 등 내면의 상황을 스타일에 반영한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날씨를 잃어버렸어 뮤직비디오 속 연준은 집 안에서 호피 무늬 재킷과 선글라스, 분홍색 머플러를 두르고서 스마트폰 너머의 상대방에게 인사를 건넨다. 실내에서 편안한 홈웨어를 입을 수도, 화려한 재킷을 입고 머리를 알록달록하게 물들일 수도 있다. 운동을 하든 말든 상관없이 원한다면 스포츠웨어를 입고, 겨울옷을 여름에 입거나 여름옷을 겨울에 입기도 한다. 연준은 현실적 공간에 따르는 대신 소셜 미디어에서의 스타일 연출을 통해 스스로 가상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기성세대에게 방황 또는 혼란으로 여겨지던 ‘유동성(fluid)’은 ‘4세대 잇 보이’에 이르러 하나의 스타일이 된다. 다시 말하면, 2021년의 ‘잇 보이'는 이렇게 정의할 수 있겠다. 패션, 뷰티, 나아가 한 세대가 공유하는 삶의 양식으로서 한 세대가 선택할 수 있는 버전(version)이라고 말이다. 


글. 임현경
디자인. 디자인 BDZ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