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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수연(‘씨네21’ 기자), 최지은(작가), 강일권(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파라마운트 픽처스

‘탑건: 매버릭’

임수연 (‘씨네21’ 기자) : 프레스 상영은 웃긴 장면도 무표정으로 팔짱 끼고 보는 기자 및 평론가들이 모인 자리라 대체로 리액션이 크지 않다. 그런데 ‘탑건’(1986)의 36년 만의 후속작 ‘탑건: 매버릭’은 며칠째 시니컬하게 별점을 계산하던 사람들도 진심으로 즐기며 봤다. 진급보다 현역이길 택한 전설의 파일럿 매버릭(톰 크루즈)이 자신이 졸업했던 훈련 학교 ‘탑건’의 교관으로 발령받으면서 후배 조종사들에게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는 모습은 환갑을 앞둔 톰 크루즈가 후배 영화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로도 읽힌다. CG보다 실제 로케이션, 리얼 스턴트,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살아남은 장르 문법과 극장의 힘을 믿는 톰 크루즈의 진심에 평론가들도 탄복했다. ‘탑건’의 아이스맨을 연기했고 현재 후두암 투병 중인 발 킬머가 스크린에 나타났을 때 객석에서 박수가 터졌고, ‘이런저런 일 끝에 남자랑 여자가 잘 이어진다.’는 식의 할리우드 영화 공식을 충실히 따른 전개에 환호성이 터졌다. ‘탑건: 매버릭’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인생을 바친 자들이 검증한 성공 법칙이 총망라된, 현존 최고 수준의 오락 영화다. 이런 경지에 오른 작품은 대중이든 평단이든 환호할 수밖에 없다.

‘왜 오수재인가’(SBS) 

최지은(작가) :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나락에 떨어졌던 주인공이 돌아와 목표에 한 발씩 다가가는 이야기가 재미없을 수 있을까. 그가 학연도 지연도 없는 여성인 데다 가족이라곤 자신을 뜯어먹을 생각뿐인 엄마와 무능한 오빠들이 다인 ‘K-도터’라면 더욱 그렇다. 한때 정의롭고 순수했던 변호사 오수재(서현진)는 남성 카르텔에서 치이고 이용당한 끝에 다시 태어나,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승부사가 된다. “우리에게 불리한 증인은 신뢰성을 무너뜨리고, 우리에게 불리한 재판은 재판 자체가 성립되지 않게 한다.”가 그의 신조다. 그러나 ‘왜 오수재인가’의 결정적 쾌감은 정의를 추구하지 않는 여성이 자신을 착취하고 무시하던 권력자 남성들의 뒤통수를 치며 결과적으로 정의를 구현한다는 아이러니에서 나온다. 한국 사회의 성차별과 성폭력에 관한 왜곡된 인식 등을 정조준해 풍자하는 대본은 김혜수의 ‘하이에나’에 이어 안티히어로형 여성 변호사의 활약상을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무엇보다 서현진의 흡인력 있는 연기가 오수재의 질주에서 눈 뗄 수 없게 만든다. 

‘수영장’ - 오헬렌

강일권(대중음악 평론가) : 한때 팝은 대중친화적인 멜로디로, R&B는 소울풀한 무드로 대변할 수 있는 음악이었다. 그러나 얼터너티브 팝과 얼터너티브 R&B 같은 장르가 나오면서 이 같은 공식은 깨졌다. 기존의 작법과 장르적 특성을 거스르며 새로운 스타일을 정립한 두 장르는 프로덕션과 보컬 면에서 공통분모가 많다. 그래서 종종 경계가 희미해지기도 한다. 싱어송라이터 오헬렌의 음악처럼 말이다. 전위적인 팝과 R&B의 경계에 선 그의 음악에선 탈형식적이며 즉흥적인 맛이 스며 나온다. 완성된 인스트루멘탈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멜로디를 만들어내며 흥얼거린 보컬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하다. 새 싱글 ‘수영장’은 흡사 데모 버전을 듣는 느낌마저 든다. 이게 참 흥미롭다. 독특한 음색과 창법 그리고 탁월한 프로덕션이 어우러져서 미완의 아름다움이 있는 완성된 작품이 됐다. 모순은 오헬렌의 음악이 품은 또 하나의 매력이다. “여기는 조금 따뜻했고 저기는 조금 깊다는 것도 알아 이제는”이란 가사가 더욱 진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