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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지은(작가), 임수연(‘씨네21’ 기자),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tvN

뿅뿅 지구오락실(tvN)

최지은(작가) :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즐기기 딱 좋은 예능 프로그램이 막을 올렸다. 코미디언 이은지, 오마이걸의 미미, 래퍼 이영지, 아이브의 안유진이 출연하는 ‘뿅뿅 지구오락실’에는 ‘1박 2일’, ‘신서유기’ 등에서 볼 수 있던 나영석 PD의 ‘여행+게임+미션+먹방 리얼 버라이어티’ 스타일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익숙한 틀 안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재미의 원천은 거침없고 개성 강한 출연자들의 기세와 거기에 압도당해 쩔쩔매는 제작진의 대비다. 그중에서도 눈여겨볼 대목은, 처음 만났을 때 에너지 레벨이 과도하게 높은 멤버들에게 놀라 토끼 눈을 한 채 멈칫거리던 안유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심스레 이성을 내려놓으며 분위기에 동화되는 과정이다. 그들 스스로도 ‘김피탕(김치피자탕수육)’처럼 예상치 못한 조합이라지만 이렇게나 맛있으니 앞으로의 여정도 기대해보자. 단, 100분 내내 웃으려면 공복으로는 버틸 수 없으니 든든한 저녁이나 야식과 함께할 것!

헤어질 결심

임수연(‘씨네21’ 기자) : 어떤 사랑은 거리감 때문에 동력을 얻는다. 남편이 산에서 떨어져 죽은 중국인 여자 서래(탕웨이)와 그를 용의선상에 놓고 의심하는 형사 해준(박해일)의 로맨스는 언어 장벽에서 오는 긴장감에서 시작된다. ‘헤어질 결심’은 한국말이 서투른 서래를 위해 쉬운 말로 설명하며 친절을 베풀 때, 사극으로 한국어를 배운 서래가 어색하지만 의미가 정확한 단어들을 쓸 때, 통역기가 ‘마음’을 ‘심장’으로 오역하면서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갖고 싶다.”는 묵직한 감정 표현이 오갈 때, 상대의 말이 통역되기를 기다리며 얼굴에 집중할 때 관계가 진전되는 멜로 영화다. 설정만 놓고 보면 알프레드 히치콕과 클로드 샤브롤, 마스무라 야스조 등이 만든 고전 영화들이 생각나지만, 언어의 차이 때문에 적극적으로 개입되는 스마트기기의 존재와 독특한 시점 장면들이 ‘헤어질 결심’만의 신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직접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던 영화가 서래와 해준의 언어로 그 의미를 마침내 담아내는 순간, 미결로서 영원을 아로새기는 역설이 찬란하게 아름답다.

‘고전적 조건형성’ - 박소은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 쩍 갈라진 땅을 바라보며 마음도 덩달아 메말라갔다. 다행히 장마가 찾아왔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강풍이 불어닥친다. 어항 속에서 걸어 다니는 듯 푹푹 찌는 열대야가 이어진다. 비는 어느 순간 갑자기 확 쏟아졌다가 얼마 못 가 그치고 만다. 수상한 계절, 어지러운 계절, 종잡을 수 없는 계절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곡도 요즘 장마철을 닮았다. 과격하고, 공허하고, 그리워하다 허탈해하고 끝내 무너진다. 제법 긴 고민 끝에 싱어송라이터 박소은의 정규 2집 ‘재활용’에 수록된 ‘고전적 조건형성’을 소개하고자 골랐다. “아름다운 것들만 예술로 창조되는 건 억울하고 부당하다는 박소은은 기타 한 대를 들고 블루스, 컨트리, 포크, 록을 섞어 ‘찌질함’으로 묻어버리고 마는 우리의 불편한 감정을 조곤조곤 노래한다.

 

‘재활용’ 앨범을 듣다 ‘고전적 조건형성’이 귀에 확 들어왔다. “기억에 다른 옷을 입혀도 / 습관은 널 기억하는 적당한 괴로움. 건조한 일상에 잊고 살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랑이 원래 그렇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처럼, 끈적이는 날씨처럼, 질척거리고 지루하다. 그런데도 그립다. 너무도 절실히, 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