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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큐브 엔터테인먼트

(여자)아이들의 선장 전소연. Mnet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과 ‘언프리티 랩스타 3’를 거쳐 심상치 않은 유망주로 주목받던 그는 데뷔와 동시에 (여자)아이들과 함께 신인왕에 올랐고, 2년 차에 여왕의 지위를 만끽하였으며, 진화를 거듭한 끝에 K-팝 시장에서 드물게 작가주의를 실현하는 창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5월 15일 ‘I feel’로 컴백한 전소연의 결과물 중 다섯 곡을 골라 그가 건설한 (여자)아이들의 세계를 분석해본다.

LATATA

(여자)아이들은 전소연의 팀이었다. 2018년 아이들이 데뷔를 알렸을 때 대부분의 매체는 ‘프로듀스 101’ 출신 전소연의 포함 소식으로 이 그룹을 소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퍼포머, 프로듀서, 솔로 가수로 전소연의 위상은 단순한 연습생 그 이상이었으며 (여자)아이들이라는 그룹 이름도 그의 솔로 곡 ‘아이들 쏭 (Idle song)’으로부터 얻은 아이디어였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인지도를 쌓은 연습생들이 쏟아져 나온 2010년대 중후반은 이들을 새로운 그룹으로 조화롭게 엮어내야 했던 기획사들이 동시에 머리를 감싸 쥐던 시기였다. 전소연의 소속사 큐브엔터테인먼트에게도 연습생 개인의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서사와 퍼포먼스, 장르를 전개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회사와 리더 모두 ‘전소연과 아이들’을 원하지 않았다. 큐브와의 음악 작업으로 이름을 알린 프로듀서 빅싼초와 전소연은 구성원들의 개성을 응축해 당대 유행하던 뭄바톤 장르와 결합하여 영민한 데뷔 곡 ‘LATATA’를 완성했다. 노래를 들어보면 멤버들 한 명 한 명을 생각하며 가사를 썼다고 밝힌 전소연이 데뷔 전부터 구성원들의 개성과 강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고혹의 추임새 “Uh Oh”의 시작을 알린 민니, 힘 있는 목소리로 확실하게 선언하는 우기, 곡의 핵심 추임새를 맡아 활약하는 슈화와 팀의 메인 보컬로 맑은 음색과 정확한 가창을 들려주는 미연이 날카로운 랩과 후렴 파트 보컬로 곡을 조율하는 소연의 지휘에 맞춰 하나가 되는 모습은 데뷔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자)아이들의 음악을 상징하는 핵심 공식이다. 섬세하고도 몽환적인 성향이 짙은 팀원들의 보컬에 맞춰 전소연은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언프리티 랩스타 3’의 강한 장르 색채와 발랄했던 솔로 경력을 잠시 내려두었다. 대신 무대 위 퍼포먼스로 서사를 구축하는 K-팝의 문법과 짧은 시간 내 개인을 모두 빛나게 하는 기용법을 익혔다. 고풍스러운 카리스마로 중무장한 (여자)아이들은 등장부터 남달랐다. ‘LATATA’는 데뷔 20일 만에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하며 (여자)아이들을 널리 알렸다.

Uh-Oh

‘LATATA’와 ‘한(一)’, ‘Senorita’로 이어지는 (여자)아이들의 초기 커리어에서 전소연의 프로듀싱은 이타적이었다. 일종의 탐색 및 연구 동안 그는 여러 시도를 통해 꿈꾸는 궁극의 이상향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LATATA’의 쓸쓸한 정서를 기초로 하여 시련을 딛고 일어서는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그려본 ‘한(一)’은 훗날 ‘LION’과 ‘화(火花)’의 불씨를 댕겼다. 미니 뮤지컬 한 편을 지향한 ‘Senorita’가 없었다면 ‘Nxde’도 등장하지 못했다. 그리고 ‘화(火花)’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서 전소연은 현명한 이기심을 발휘했다. ‘언프리티 랩스타 3’로부터 (여자)아이들의 활동 기간 동안 카리스마 있는 랩으로 확실한 정체성을 구축한 그는 1996년 블랙스트리트(Blackstreet)의 ‘No Diggity’가 연상되는 힙합 곡 ‘Uh-Oh’로 전공을 발휘했다. 우선 노랫말이 빛났다. 가식적인 아첨꾼들과 비관론자들을 저격하는 당돌한 주제 의식은 그가 숱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몸소 겪으며 익힌 생존 전략이었다. 힙합과 R&B를 결합한 이 비트에서 전소연은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를 선택했다. 날카로운 본인의 랩을 한 톤 죽이고 별도의 변주 없이 간결하게 곡을 마무리했다. 멤버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본인도 곡을 시작하는 첫 소절에 보컬로 참여했다. 장르 색채가 강한 음악이었기에 제작자의 개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상황에서 굳이 본인을 드러내기보다 적재적소에 구성원을 배치하는 제작자로 면모를 강하게 가져갔다. 결과는 대성공. 날 선 주제에 냉소적인 보컬 톤으로 응답하며 카리스마 있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미연, 민니, 우기, 슈화 모두가 고르게 주목받았다. 전소연의 힙합 DNA는 이후 솔로 앨범의 ‘Is this bad b****** number? (Feat. 비비(BIBI), 이영지)’와 정점에 오른 멤버들의 카리스마 넘치는 자기소개서 ‘My Bag’으로 이어진다. 그의 프로듀싱에 처음으로 감탄했던 곡이다.

LION

(여자)아이들은 잊을 수 없는 무대를 선보이는 팀이다. 그리고 중심에 소연이 있다. 라이브에서 음원보다 역동적인 목소리로 화면을 뚫는 데서 대번에 알 수 있듯 그는 확실한 무대 체질이다. 강렬한 인트로 포즈로 시선을 사로잡은 ‘한(一)’과 멤버들의 색깔로부터 떠오른 단어를 바탕으로 설계한 ‘Senorita’의 퍼포먼스에서 이미 예고된 바였다. Mnet의 걸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 ‘컴백전쟁 : 퀸덤(이하 ‘퀸덤’)’은 두 번의 서바이벌 경연 참가로 쌓은 노하우와 팀을 완전히 해체, 분석, 습득한 리더가 미쳐 날뛸 최적의 쇼케이스 현장이었다. 전소연은 ‘퀸덤’을 데뷔 2년 차 (여자)아이들의 커리어 하이라이트로 만들었는데, 이 퍼포먼스들은 따로 서술할 필요가 있다. 고혹적인 목소리를 가진 민니의 신비로운 주술로 분위기를 완전히 장악한 다음 기존 곡의 뭄바톤 스타일을 지우고 이를 악문 카리스마의 다크 팝을 선사한 ‘LATATA’ 리믹스부터 (여자)아이들의 경연은 신인의 한계를 뛰어넘은 현재를 과시하며 유일무이한 존재가 될 내일을 선포하는 자리였다. 풍부한 퍼커션 리듬을 바탕으로 다국적 멤버 구성을 완벽히 활용한 수준과 압도적인 댄스 브레이크를 선보인 2NE1의 ‘Fire’ 커버는 ‘We Are The Best of Our Generation’ 선언처럼 치명적인 경고였다. 잔잔한 발라드 수록 곡 ‘싫다고 말해’를 한 편의 섬뜩한 집착의 호러와 악몽으로 재해석한 무대는 충격으로 투표 버튼을 누르지 못해 순위가 낮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파괴적인 절정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완벽한 대관식의 결말 ‘LION’이 찾아왔다. 자신감 넘치는 신인, K-팝의 역사를 계승하는 정통성, 갈등하고 고뇌하며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불태우는 광기. 어느 하나 모자람 없는 그룹이 스스로 자격을 증명하며 끝내 왕관을 썼다. (여자)아이들의 승리, 전소연의 승리였다. 그룹의 막내로 물음표가 따라붙던 슈화를 곡의 주인공으로 삼아 왕국을 지배하게 되는 어린 소녀의 서사를 부여한 이도,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개척하는 길”을 증명하며 여왕의 위엄을 뽐낸 이도 모두 전소연이었다. ‘LION’의 기세를 이어 ‘Oh my god’과 ‘화(火花)’로 연결한 3부작마저도 훌륭하게 마무리한 전소연은 이제 결코 과거와 같을 수 없었다.

TOMBOY

(여자)아이들의 커리어는 서머 송 ‘덤디덤디 (DUMDi DUMDi)’ 전과 후로 구분된다. 전소연은 이 곡부터 큐브의 베테랑 작곡가 빅싼초 대신 지코와 함께 블락비와 솔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팝타임(Pop Time)과 호흡을 맞춘다. 이 곡은 ‘LATATA’에서 선보였던 뭄바톤 장르와 ‘Fire’에서의 퍼커션 운용을 결합하여 강성한 (여자)아이들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만든 간결한 여름 노래로 성공을 거뒀다. 전소연은 이듬해 본인의 솔로 앨범 ‘Windy’의 타이틀 곡 ‘삠삠 (BEAM BEAM)’에서도 팝타임과 함께 호흡을 맞췄는데, 기타 연주를 바탕으로 2020년대 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던 팝 펑크 록 유행과 밀레니얼 시기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다. 블락비 시기 강렬한 전자 기타 소리와 과격한 소리, 따라 부르게 되는 중독성 강한 구간을 만들어낸 팝타임과의 컬래버레이션은 (여자)아이들의 록 음악 활용을 암시하는 선택이었다. 팀이 5인조가 됐고, 1년여 만의 컴백은 더욱 거칠고 강한 한 방을 주문했다. ‘I NEVER DIE’라는 독한 정규 앨범이 준비됐고, 전소연은 타이틀 곡 시안을 회사에 가져가 단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아냈다. 2022년을 장악한 ‘TOMBOY’의 등장이었다. 전소연은 냉정하고도 신비로운 유혹의 이미지를 도려내고 ‘LION’으로 확립한 당당한 여성상을 과격한 디스토션 기타 리프에 실어 보냈다. 중요한 사실은 ‘TOMBOY’가 그저 록이어서 성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칠기 그지없는 소리와 고자극의 보컬, “미친X”과 “Fxxking Tomboy” 등 비속어의 향연이 펼쳐지는 가운데 드럼과 베이스는 놀랍도록 침착하다. 전소연의 랩으로 시작하는 2절은 기타 리프만으로 시작해 유연한 템포 변경으로 완급 조절을 펼치다 다시금 엄격한 폭행의 현장으로 듣는 이를 끌고 들어간다. 과격한 블락비의 음악에 완급 조절을 더했던 팝타임의 노하우가 빛나는 지점이다. 새 파트너의 도움에 힘입어 전소연은 새로운 (여자)아이들의 세계를 열며 새로운 전성기를 알렸다. 절박함이 가져온 극적인 변화였다.

Nxde

‘Senorita’에서 전소연은 ‘Nxde’의 미래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샘플링한 오페라 ‘카르멘’의 ‘하바네라(Habanera)’가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춤을 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의미심장하다. 4년 전 탱고의 정열을 빌려 애타는 마음을 담았던 전소연은 이제 더 이상 내숭이나 아양을 떨 필요가 없기에,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일일이 타협할 생각이 없기에, 과감히 허례허식과 가식을 벗고 토할 것 같은 말을 무시하며, 있는 그대로 자신을 과감히 드러내고자 했다. ‘Nxde’는 섹스 심벌로 자신을 소비하는 시대를 살며 대중의 요구를 연기함과 동시에 스스로는 꾸준히 편견과 금기를 깨고 진정한 예술인을 꿈꾼 마릴린 먼로의 삶에서 영감을 받았다. ‘퀸덤’의 퍼포먼스를 음원으로 옮긴 듯 생동감 넘치는 3막 구성은 팝타임의 과감한 소리와 완급 조절을 통해 짧은 시간 내 깊은 몰입을 유도하며 그 무대 위에서 목소리로 연기를 펼치는 멤버들의 표현 능력은 현재 최고조에 올라가 있다. 천연덕스럽게 마릴린 먼로의 ‘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를 노래하는 민니, 그 세계를 단호히 끊어내며 눈요깃거리를 따르는 이들을 비웃는 우기, 우아한 극의 주인공으로부터 현실에 존재하는 당당한 여성상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미연 그리고 종국에 “변태는 너야”라며 오해와 폭력의 굴레에 마침표를 찍는 슈화까지 각 위치에서 제 임무를 수행한다. 연극을 감독하는 전소연은 ‘누드’라는 단어에서 외설을 제거하고 아름다움의 원형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뱅크시, 마돈나, 영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등 대중문화 속 아이콘을 시각적 요소로 활용하며 대중의 이해를 돕는 선택은 덤이다. ‘Nxde’는 불특정 다수 앞에 내던져진 삶, 개인의 의견이 제한되고 우상이라는 엄격한 지위에 지배되는 삶을 사는 K-팝 아이돌 그룹의 충격적인 발화다. 많은 기획사와 아이돌 그룹이 주체적인 창작과 진정성 있는 서사를 꿈꾸며 ‘실력파’ 호칭을 바라지만, 이는 단순히 작사, 작곡을 스스로 한다거나 현재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낸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셀 수 없이 부딪히고 투쟁하며, 때로는 실수도 하며 끈질기게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순탄치 않은 길을 골라 걸어온 전소연이기에 모든 것을 벗어던져 끝내 아름다움을 거머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