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승은 농구공을 다루는 데 익숙했다. 그가 던지는 공 대부분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골대로 들어갔다. 한 차례 공이 들어가지 않고 튕겨 나가자, 희승은 그 공이 들어갈 때까지 계속해서 골대를 향해 공을 여러 차례 던졌다. 결국 다시 골인. 그렇게 무엇이든 계속 던져보고 부딪쳐보면서 목표를 이루는 모습. 희승이 무대를 대하는 태도도 그랬다.

‘I-LAND’에서 희승 씨의 형이 “친구들이랑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고 공부하기 싫어하던 평범하고 철없던 귀여운 옛날의 너를 떠올리니 대견하다.”라고 이야기한 내용이 있어요.
희승:
 형이 말하는 그때에는 정말 철이 없었어요. 정말 모든 게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TMI 같긴 하지만 제게 오래된 절친이 한 명 있어요. 그 친구랑 같이 돌아다니면서 4차원 같은 행동도 많이 하고 천진난만한 생활을 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많이 성숙해졌어요.(웃음) 지금보다 더 성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요.

단체 컷을 찍을 때 스태프분들이 희승 씨 위치를 니키 씨 쪽으로 옮겨달라고 하니까, 니키 씨한테 “괜찮아?” 이렇게 먼저 물어보고 자리를 옮기시는 걸 봤어요.
희승:
 네, 그렇게 이야기하기는 했어요. 정말 짧은 순간이었는데 그걸 보셨네요.(웃음)

‘I-LAND’에서 경쟁 중인 상황에서도 다른 친구들의 안무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도 했어요. 선우 씨는 희승 씨 보고 ‘천사’라고 하더라고요.(웃음)
희승:
 ‘그런데 ‘이건 모두 저의 덕이다.’라고 이렇게 돌리고 싶지만 그렇지만은 않아요.(웃음) ‘I-LAND’가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비해서 팀워크를 강조하는 미션이 많아서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다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게 들었어요. 빅히트에 연습생으로 들어간 뒤로 6개월 차까지 정말 열심히 연습해서, 새로 들어온 친구들 사이에서는 실력이 괜찮은 축에 들게 됐어요. 그때부터 제가 뭔가를 리드해야 하는 역할을 자주 맡았는데, 그런 경험 때문인 것 같아요. 

연습생이 되기 전부터 춤이나 노래에 대한 경험이 많은 편이었나요?
희승:
춤은 지금도 잘 추는 편이 아닌데, 처음엔 정말 몸치였어요.(웃음) 진짜 진짜 못 췄어요. 간단한 동작도 못해서 친구들한테 놀림받고, “너 진짜 캐스팅 어떻게 받았냐?” 이런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빅히트의 트레이닝 시스템이 정말 잘되어 있어요.(웃음) (팔을 대각선으로 뻗으면서) 이게 기본 동작인데 ‘팔뻗기’라고 해요. 이것만 1년 했어요. 그리고 리듬을 타는 것도 1년 넘게 하고. 그렇게 반복되는 기본 동작들을 위주로 하다가 기초 안무반으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걸음마를 떼고, 연습을 계속하다 보니까 많이 나아졌어요.

몸치인 분들에게 희승 씨가 희망이 되겠어요.(웃음) 노래에는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다고 알고 있어요.
희승:
여섯 살 때부터 가수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감이 정말 많이 부족했어요. 가수는 노래를 남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정말 친한 친구들 두세 명이랑 노래방에 가서 부르는 걸 제외하면 고등학교 때까지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예술 고등학교 시험을 보라고 제안하셨는데, 너무 긴장해서 실기 시험에서 결국 아무것도 못 보여드리고 나왔어요. 공부나 다른 길을 선택해야겠고 생각하던 찰나였는데 나오던 길에 캐스팅이 됐어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지금 무대 위에서 희승 씨가 보여주는 모습을 생각하면 상상이 안 가요.
희승:
빅히트에 들어와서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연준 선배님을 보고 자극을 크게 받았어요. 이전까지 저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래도 노래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연준이 형을 보고 ‘아, 내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구나.’ 싶었죠.(웃음) 형이 전 과목에서 만점을 받는 사람이라면, 저는 한 과목만 80점쯤 맞으면서 자랑하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자신감 없고 나발이고(웃음) 그런 것 신경 쓰지 말아야겠다.’, ‘가수가 되려면 진짜 잘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때부터는 오히려 저답지 않게 무대 위에서 정말 뽐내려고 노력했어요.

‘10월 월말결산’ 영상에서 ‘하루에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의 보컬 연습을 하자.’라는 목표를 세우셨는데, 바쁜 일정 속에서도 목표를 거의 70~80% 가까이 지켰어요.
희승:
(웃음) 하고 싶은 일로 목표를 잡으면 실천하기 쉬워요. 좋아하는 것에는 모든 걸 쏟아붓는데, 별로 내키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진짜 추진력이 안 생기는 편이에요. 제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해요. 공부를 예로 들면, 중학교 때부터 공부에 흥미를 잃어서 다른 과목들은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영어 공부는 좋아했어요. 팝송 듣는 걸 좋아했거든요. 주변에 영어 성적만 반영하는 외국어 고등학교가 있었는데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이 나왔어요.

데뷔 앨범 ‘BORDER : DAY ONE’에서 많은 연습량이 느껴졌어요. 곡마다 다양한 느낌을 표현하는 보컬이 인상적이었어요.
희승:
타이틀 곡 ‘Given-Taken’은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는 내용이고, 데뷔 조로 결성된 저희 ENHYPEN도 이제 달려가기 시작한 거니까 열정적인 느낌의 도입부를 보여드리려 했어요. 곡이 하프로 시작되니까 어떻게 보면 감미로운 파트였지만, 음색을 살리면서도 최대한 힘을 실었어요. ‘Let Me In (20 CUBE)’ 같은 곡은 ‘열어줄래 너의 window 찾아 헤맨 나의 Nemo’ 이런 가사를 “열어줘!” 이렇게 강하게 하면 조금 이상하잖아요.(웃음) 최대한 무드를 깨지 않는 방향 속에서 메시지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녹음을 했어요.

무대나 음악에 대한 생각이 구체적인 편인가 봐요. ‘I-LAND’ 당시 촬영한 ‘-note’ 영상 일기에서도 무대에 대해 다양한 부분을 분석하면서 복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희승:
데뷔를 하게 되면 전문가로서 활동하게 되는 거잖아요. 무대 위에서 아직 제가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적으로 시도를 해야 프로다워진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바라는 방향으로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다양한 훈련을 많이 하려고 해요.

올해 하고 싶었던 일로 ‘자작곡 쓰기’를 몇 차례 언급하기도 했어요. 써둔 자작곡들이 있나요?
희승: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 추천으로 케이크워크(cakewalk)라는 시퀀싱 프로그램으로 작곡 수업을 받았어요. 그 뒤로는 연습생이 되면서 다시 곡을 쓰기 시작했어요. ‘I-LAND’ 방송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쓰던 곡이 있었고, 기존에 있던 비트에 제가 작사를 해서 녹음한 작업물도 몇 가지 있어요. 그런데 데뷔를 준비하는 과정이 정말 바쁘더라고요. 작업물을 못 보여드리는 게 많이 아쉬워요. 그래도 앞으로 작업할 시간이 생길 때마다 엔진분들에게 노래를 들려드리기 위해서 계속 시도할 테니까, 꼭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백예린의 ‘야간비행’을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언급했어요. 어떤 곡들을 주로 듣는 편인가요?
희승:
장르로 따지면 얼터너티브 알앤비에 관심이 많은데, 차분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의 곡들을 좋아해요. 최근에는 백예린 선배님, 앤더슨 팩(Anderson Paak), 에릭 벨린저(Eric Bellinger)의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요즘 어떤 음악을 선호하는지 살펴보려고 최신 음악을 주로 많이 듣는데, 투팍(2pac)이나 노터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의 오래된 명반도 챙겨 들어요.

빌리프랩 ‘Training Camp’에서 스스로의 원동력을 “제가 스스로 잡은 높은 목표”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희승:
만약 제가 되고 싶은 모습이 100점이라면 지금의 저는 30~40점 정도인 것 같아요. 이건 정말 진심이에요. 제가 되고 싶은 모습이 되려면 훨씬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실력이 뛰어난 사람, 대단한 사람이 되기보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활동을 할수록 스스로에게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또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지다 보면 한편으로는 자아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일에 충실하면서도 자아가 같이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Chamber 5’ 무대가 생각나네요. ‘I-LAND’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고, 분명 희승 씨에게 더 유리한 다른 곡이 있었는데도 오로지 성장을 위해 새로운 콘셉트에 도전했어요.
희승:
(웃음) 엄청 막막하긴 했어요. ‘Chamber 5’처럼 청량한 느낌의 곡은 정말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과거로 돌아갈 수 없잖아요. 어쨌든 제가 선택한 것이고, 저는 어떤 콘셉트든 소화해야 하는 직업을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당연하게 생각하고 연습했어요. 그리고 옆에 엄청 뛰어난 스승님, 선우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웃음) 잘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그 경험 때문일까요? ‘Let Me In (20 CUBE)’ 무대에서 뒤돌아보면서 윙크하는 모습이 정말 잘 어울려요.
희승:
(웃음) 이제 그런 건 연습하지 않아도 그냥 나오게 돼요. ‘나 이렇게 매력적인 사람이야.’ 이렇게요. 좀 어색했나요?(웃음) ‘10 Months’ 같은 곡도 대놓고 귀여운 곡이잖아요.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저만의 방식을 고민해 보니까 또 답이 나오긴 했어요. 저는 그래도 멤버들 중에서는 성숙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방향으로 풀어내면 매력적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제는 다양한 매력을 보여드릴 수 있는 이희승입니다.(웃음)

ENHYPEN에서 리더를 선발하기 전에 한 설문 조사에서 ‘힘들 때 제일 찾아가고 싶은 사람’, ‘궂은일에 솔선수범할 것 같은 사람’ 같은 항목에 희승 씨 이름이 계속 나왔어요.
희승:
고민을 잘 들어주는 성격이기는 해요. 말하고 보니 자랑 같네요.(웃음) 뭐랄까, 제가 해결하거나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데 남들이 그 일로 앓고 있으면 그냥 지켜보기가 어려워요. ‘꼭 도와줘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편인 것 같아요.

다른 멤버들이 맏형인 희승 씨를 믿고 의지하는 게 보여요. 평소 멤버들에게 어떤 형이 되어주고 싶으신가요?
희승:
저를 중요한 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중학교, 고등학교, 동아리, 이런 곳들을 겪으면서 형이라는 존재가 다가가기 쉽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멤버들과 한 팀이 됐을 때 모두 쉽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되려면 제가 동생들에게 정말 별것 아닌 형, 귀여운 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런 형에게는 모두 쉽게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이미 그런 형으로 보이기도 해요. 브이라이브에서 멤버들이 희승 씨 머리가 보름달 같다면서 편하게 만지는 모습을 보니까 정말 친밀해 보였어요.(웃음)
희승:
(웃음) 네, 씁쓸하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웃음) 멤버들은 모두 성격이 다르고 개성도 강한 편이에요. 그럼에도 서로를 믿고 존중하려 노력하고, 또 필요한 선은 깔끔하게 지켜요.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요. 그래서 더 많이 친해질 수 있었어요.

‘-note’에서 주변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거나, 스스로의 연습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되 긍정적인 점을 함께 찾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희승:
방송에서는 다 보여지지 않았지만 리더라는 자리에 대한 부담이 컸어요. 챙길 것도 많았고요. 힘든 부분들이 분명 있었지만, 사람은 말하는 대로 된다고 믿기 때문에 감사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 했어요. 믿는 대로 말하면 생각이 바뀌고, 그러다 보면 힘든 부분을 극복할 수 있으니까요. 아티스트에게는 팬들도 중요하고, 실력도 중요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려면 끼도 중요하고, 정말 모든 게 다 중요하잖아요. 이 모든 걸 잘하려면 건강한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희승 씨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요?
희승: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저는 음악을 한마디로 정의하고 싶지 않아요. 정답이 있으면 안 되는 게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에 답이 없기 때문에 계속 다양한 음악들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분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거니까요. 그걸 정하는 순간부터 음악이 재미가 없어질 거예요.

글. 김리은
인터뷰. 김리은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비주얼 크리에이티브팀. 이건희(빌리프랩)
사진. 신선혜 / Assist. 백승조, 김민석, 김상우(@co-op.) (이상 디지털 컷), 전유림(필름 컷)
헤어. 이일중, 경민정
메이크업. 안성희, 권소정
스타일리스트. 최경원
영상. 방우정, 김수린, 염지빈, 김유정, 민영은(빅히트 쓰리식스티), 조영재, 김재형, 김태훈(브랜드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