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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섬머소닉

토요일 오전 9시, 오사카 난바역 앞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렸다. 섬머소닉 2023이 열리는 마이시마 스포츠 파크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려는 관객들이었다. 이틀 치 6,600엔의 비싼 가격과 긴 대기 시간에도 불구하고 일본 최대의 음악 페스티벌 중 하나로 손꼽히는 섬머소닉 오사카로 향하는 이들의 열정이 이른 시간부터 뜨거웠다.

 

올해 많은 K-팝 아티스트들이 전 세계 음악 페스티벌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롤라팔루자 시카고에서 거대한 순간을 일군 뉴진스와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헤드라이너로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런던 하이드 파크를 달군 블랙핑크와 롤라팔루자 파리 헤드라이너로 무대를 장식한 스트레이키즈 등 가짓수와 더불어 규모도 점차 거대해지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주목받는 K-팝의 오늘날이다.

 

그중 섬머소닉에 참여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해외 페스티벌에 대한 기대다. 대다수 한국 음악 페스티벌은 해외 가수를 섭외할 때 섬머소닉과 후지 록 페스티벌 참가 명단을 참조해 섭외를 진행한다. 블러, 폴 아웃 보이, 리암 갤러거, 요아소비 등 가수들은 한국에서 단독 공연이 아닌 이상 음악 페스티벌에서 모습을 보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 음악 페스티벌에서 K-팝 가수의 무대가 그리 많지 않으며, 단독 공연 예매 팬클럽이 아닌 이상 역시 쉽지 않다. 해외 페스티벌 무대에 선 K-팝 가수의 공연 과정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일찌감치 티켓이 모두 팔린 도쿄 대신 오사카를 선택했다.

 

섬머소닉 페스티벌은 2000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대표 음악 축제다. 도심에서 열리는 축제인 만큼 여러 장점이 있다. 대중교통 접근이 용이하여 모든 공연이 귀가를 위해 밤 10시를 넘지 않고 일찍 마무리된다. 도쿄는 지바 조조 마린 스타디움과 마쿠하리 멧세, 오사카는 마이시마 스포츠 아일랜드 일대에서 무대가 진행된다. 기반 시설에서 펼쳐지기에 환경이 쾌적한 편이다. 도쿄와 오사카에 오가는 독특한 구성이 유명한데, 총 이틀간의 공연 동안 첫날 공연을 마친 가수가 다음 날 다른 도시로 이동해 무대에 서는 구조다. 그중 도쿄에만 등장하는 이들이 있고 오사카에서만 공연하는 가수가 있다. 도쿄에서는 소닉마니아(Sonic Mania)라는 전야제 성격의 공연이 있는데, 이 공연에 참여한 이들이 오사카에서 단독으로 무대에 서는 경우도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광활한 마이시마 스포츠파크의 전경이 펼쳐졌다. 오사카 섬머소닉은 바다를 맞대고 있는 거대한 오션 스테이지, 야구팀 오릭스 버팔로스의 2군 경기장 마이시마 베이스볼 스타디움을 활용한 마운틴 스테이지, 농구팀 오사카 에베사의 홈구장 오오키니 아레나에서 열린 소닉 스테이지와 공원 내부 매시브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총 여섯 개 무대가 준비된 도쿄보다는 작다. 그러나 규모와 인파는 만만치 않았다. 굿즈 구입을 위한 대기 줄이 기본 한 시간 이상 소요되었다. 오전 일찍 도착했는데도 기념품을 사고 짐을 맡기니 열두 시 공연 시간에 빠듯하게 도착할 정도였다.

  • ©️ SUMMER SONIC Instagram

두 번째 날이 밝았다. 오사카의 한낮 기온은 최대 36℃까지 끓어올랐다. 약간 서늘하다는 느낌도 있었던 첫째 날보다 고된 날씨에 관객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뜨거운 햇빛을 견디며 엔하이픈의 무대가 열리는 마운틴 스테이지로 향했다. 좌석은 불타는 듯 뜨겁고 스탠딩 객석은 그대로 직사광선에 노출되었다. 그런데도 엔하이픈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았다. 관객들은 시야제한석을 제외한 객석을 가득 채웠고, 입석 구역에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강렬한 밴드 편곡의 ‘Tamed-Dashed’와 함께 엔하이픈이 무대에 서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무대 상단에서 내려온 현수막과 불꽃이 더위에 맞서는 40분간의 공연 시작을 알렸다. 이어지는 곡 ‘Attention, please!’는 ‘DARK BLOOD’ 스페셜 쇼케이스에서 인상 깊었던 활기찬 퍼포먼스로 록 페스티벌을 원하는 관객들의 열기를 충족했다. 이어지는 ‘Always’와 ‘Forget Me Not’, ‘Polaroid Love’로 접어들 때는 뜨거운 여름을 빛내는 엔하이픈의 청량한 노래를 모두 함께 따라 불렀다.

 

엔하이픈의 음악을 들으며 록 페스티벌에 선 그들의 모습을 많이 상상해봤다. 록 밴드 편곡이 어울리는 노래가 많아 이를 유기적으로 엮여냈을 때 인상 깊은 무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페스티벌에 선 엔하이픈은 그 상상을 현실로 옮겼다. 그루비한 기타 리프를 전개하며 원곡을 업그레이드한 ‘Bite Me’와 기타와 드럼을 앞으로 끌고 나와 속도감 있게 편곡한 ‘Blessed-Cursed’가 만족스러웠다. ‘DARK BLOOD’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Karma’와 2022년 위버스콘보다 훨씬 센소리로 무장한 ‘Blockbuster (액션 영화처럼)’는 페스티벌이 요구하는 분위기를 십분 이해한 결과였다. 멤버들이 더위를 호소할 만큼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무대를 닫는 ‘Future Perfect (Pass the MIC)’까지 흐트러짐 없이 멋지게 공연을 마무리했다.

긴 시간 동안 록 페스티벌의 정체성을 가져간 페스티벌임에도 이틀간 지켜본 현장은 록보다 모든 음악을 아우르는 축제의 성격이 강했다. 오사카만의 특징일 수 있으나 록 페스티벌 하면 떠오르는 춤과 점프, 단체 합창, 슬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투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 리암 갤러거, 폴 아웃 보이, 블러 등 록 팬들의 지지를 받는 공연은 의외로 조용하지만, 힙합 스타 켄드릭 라마 무대의 관객들이 열광적이었다. 리암 갤러거가 오아시스의 히트 곡을 부를 때 조용하던 팬들은 켄드릭 라마가 랩을 뱉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합창으로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특히 전반적으로 힙합의 강세가 크게 느껴졌는데, 첫날 소닉 스테이지에서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들려준 에이위치와 두 번째 날 한낮의 환호를 부른 힙합 그룹 우메다 사이퍼 무대에 관객들이 꽉 찼다.

 

해외 가수의 무대보다 자국에서 주가를 올리는 에이위치, 여왕벌, 즛토마요, 요아소비 등 가수들의 공연 수요가 더 많았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가를 올리고 있는 최정상의 가수인 만큼 인지도도 높을 뿐 아니라 그들의 정교한 음악 역시 페스티벌에 최적화되어 있는 덕이다. 특히 즛토마요와 요아소비의 경우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가 포화하여 입장이 제한되기도 했다. 섬머소닉을 계획한 한국 음악 팬들은 블러와 요아소비 중 누구의 무대를 봐야 하는지 고민이 컸는데, 현지 관객들은 크게 의식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세카이노 오와리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미련 없이 폴 아웃 보이와 블러를 제치고 요아소비의 마운틴 스테이지를 향해 구름 같은 관중이 빠져나가는 모습이 내겐 생경했다.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오늘날의 음악 페스티벌은 다양한 취향의 관객들과 팬덤이 방문하여 가수의 유명세가 아닌 주관에 따라 관람을 선택하는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 여전히 헤드라이너는 해외 가수의 몫이지만 과거처럼 필수적인 선택은 아니다. 메이지 피터스, 홀리 험버스톤, 혼네, 제이콥 콜리어 등 다양한 장르와 성격의 음악가들이 종합 음악 축제의 의의를 강조하고 있다.

 

그만큼 관객층이 다양해졌다. 어느 무대를 가든 일정 수 이상의 관객이 들어찼지만, 오히려 해외 밴드의 관객이 적은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공연을 즐기기보다는 관람하면서 박수와 환호 정도로 호응을 마무리하는 모습도 낯설었다. 유명 가수라도 언제든 자국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 덕이었을까? 아니면 순전히 취향이 아니었던 탓이었을까? 많은 가수가 호소했듯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연 경험의 부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해외 아티스트 중 한 명이라도 한국 공연을 발표한다면 당장이라도 표를 예매할 입장에서 놀랍고, 한편으로는 페스티벌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일본 음악 시장의 수요가 부럽기도 했다.

 

K-팝이 패러다임 변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은 명확하다. 도쿄에서의 뉴진스 무대가 12시 이른 시각에도 정말 오래간만의 마린 스테이지 입장 제한을 부르며 역사적 순간을 장식했다. 엔하이픈과 트레저, 태양 등 다수의 K-팝 아티스트들이 멋진 무대를 펼치며 일본에서의 인기를 증명했다. 페스티벌 개념의 격변기 가운데 K-팝의 상륙을 경험하며, 범대중적 접근과 록 페스티벌의 낭만 가운데 향후 대형 음악 축제의 방향성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예상과 다른 점이 많았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섬머소닉 페스티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