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원하지 않는 이유로 인류의 역사에 오랫동안 기록에 남을 한 해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갔고, 살아남기 위해 애썼다. 12월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 이어지는 여섯 팀의 어떤 무대들에 대한 각각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2020.07.16. Mnet ‘엠카운트다운’ - ‘Apple’ Comeback Stage

여자친구는 ‘엠카운트다운’의 ‘Apple’ 컴백 무대에서 그들의 변화를 주제로 내세운다. 무대 시작 전 VCR은 교복을 입은 은하가 두 개의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해 달려가는 모습으로 시작되고, 흰 옷을 입은 은하가 빛을 따라 미궁을 벗어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선택의 결과, 은하가 도달한 곳은 사과나무가 있는 ‘엠카운트다운’ 무대다. 이전까지 ‘파워청순’이라는 수식어로 인기를 얻었던 여자친구가 ‘마녀’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대중에게 선보이는 순간. 이 변화의 의미는 여자친구 멤버들이 흰 옷을 입고 무대를 시작해, 2절 후렴구 직전 검은 옷을 입은 모습으로 변화하는 무대 구성으로 극대화된다. 여자친구 멤버들이 입고 있는 흰 의상과 스트랩 신발, 배경에 깔린 푸른 사과나무의 이미지 그리고 대리석은 마치 신화 속 여신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반면 후반부에서 검은 의상을 입은 멤버들의 짙은 메이크업과 화려한 액세서리 그리고 사과나무를 중심으로 세워진 잿빛 대리석 건물들은 타락 또는 악마를 떠오르게 한다. 의상이 검은색으로 바뀐 뒤 등장하는 ‘We O Wow Wow Wow Wow’의 후렴구에서 가장 키가 큰 멤버인 소원은 다른 멤버들의 동작을 지휘하고, 이때 조명은 번개처럼 번쩍인다. 1절에서 ‘다가와 다가와 어느새 입술은 새빨간 널 탐하네’, ‘날 물들이는 pleasure’처럼 욕망에 대한 가사가 등장할 때 중앙에 선 멤버가 다른 멤버들에게 둘러싸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부정적인 이미지로 독해되던 검정빛 무대장치들을, 여자친구는 오히려 ‘욕망의 주인은 나’라는 메시지로 사용하는 듯하다.

예린이 ‘감히 그려온 축제의 막을 열어줘’라고 노래하면, 무대 위의 잿빛 사과나무에는 불이 붙는다. 그 뒤 신비가 과거 여자친구의 활동곡이었던 ‘너 그리고 나’의 가사를 뒤집은 ‘수줍은 아이는 놔’라는 가사를 노래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화형식을 연상시키는 불의 이미지는 오히려 ‘마녀’가 된 여자친구의 무대가 주는 카타르시스를 강화한다. "우리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에 모두 공감했다." 지난 7월 13일 개최된 ‘回 : Song of the Sirens'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서 소원이 한 말이다. ‘엠카운트다운’의 ‘Apple’ 컴백 무대는 여자친구가 언급한 변화의 시작인 동시에, 이 변화의 방향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보여준 선명한 선언이다. 무대는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검은색에서 불의 이미지로 여자친구의 변화를 점진적으로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검은 계열의 세트나 멤버들의 짙은 메이크업, 화려한 장신구, 피어오르는 연기 또는 화형식을 연상시키는 불을 장치로 활용한다. 대중의 시선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걸 그룹이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무대에서, 그동안 여성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쓰이던 메타포들의 의미가 전복된다. 노래의 시작에서 마치 그림자처럼 시간 차를 두고 같은 동작을 취하던 멤버들은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연상시키는 ‘We O Wow Wow Wow Wow’에서 빙빙 돌며 동시에 춤을 춘다. 내면의 갈등이 해소된 뒤 즐거움만이 남은 춤. 이 춤은 특정한 신체 부위를 강조하는 대신, 몸을 꼿꼿하게 세운 채 추는, 오직 나를 위한 춤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시선으로 보든 마치 ‘내 안에 별이’ 뜨는 것처럼. 2020년, 걸 그룹이 보여준 가장 인상적인 변화의 순간이다.
글. 김리은
디자인. 페이퍼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