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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디즈니+

OTT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아티스트의 공연과 다큐멘터리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 자료뿐만 아니라 OTT마다 자체 제작한 아티스트 관련 콘텐츠들이 무엇부터 봐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할 만큼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 중 대중음악 평론가 김도헌이 디즈니+에 있는 아티스트와 관련된 음악 콘텐츠들을 추천한다. 아티스트의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편집자 주)

올리비아 로드리고 ‘올리비아 로드리고: 네가 있는 집으로’

2021년은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해였다.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운전면허증을 딴 나이에 겪은 이별의 감정을 절절히 노래한 데뷔 곡 ‘drivers license’가 빌보드 HOT 100 차트 8주 연속 1위에 오르며 온 세계에 새로운 슈퍼스타의 등장을 알렸다. 기세를 이어 발표한 정규 1집 ‘SOUR’는 미국에서만 37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팝 펑크(Punk)와 얼터너티브 록 유행에 불을 지폈다. 월드 투어가 잡혔고, 그래미 어워드 신인상의 영예를 안았다. Z세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1년 사이 일어났다. 올리비아의 말처럼, 그의 삶은 “순식간에 송두리째” 바뀌었다.

 

스테이시 리 감독의 ‘올리비아 로드리고: 네가 있는 집으로’는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성공을 되짚어보는 음악 다큐멘터리다. ‘SOUR’ 앨범이 시작된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로부터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로드 트립. 작업 과정을 돌아보며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불안하고 수줍었던, 주저하며 만들었던 자신의 노래 작업기를 진솔하게 고백한다. 아름다운 광경과 역동적인 라이브 클립, 전 세계 10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지구 곳곳을 물들인 그의 활동 기록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올리비아의 세계에 대한 몰입을 돕는다. 열광과 환호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채로운 경험, 솔직한 감정 표현, 창작의 열망을 갖춘 오늘날 틴에이지 슈퍼스타의 등장을 확인하시라. 

빌리 아일리시 ‘Happier Than Ever: LA로 보내는 러브레터’ 

2019년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빌리 아일리시. Z세대의 불안과 자기혐오, 냉소의 메시지를 조곤조곤 위협적인 소리에 실어 보내던 빌리의 음악은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신인류의 등장을 선언했다. 젠더리스 패션과 진솔한 메시지로 세대를 대변하는 위치에 오른 그는 2년의 공백을 거쳐 2021년 7월 30일 발표된 두 번째 정규 앨범 ‘Happier Than Ever’를 공개했다. 우울한 정서로부터의 극복과 치유의 정서를 담은 앨범은 빌보드 200 차트 정상, 스포티파이 스트리밍 30억 회 이상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증명했다.

 

‘Happier Than Ever: LA로 보내는 러브레터’는 ‘Happier Than Ever’ 앨범 전곡 라이브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만달로리안’, ‘북 오브 보바 펫’ 제작에 참여한 로버트 로드리게스와 애니메이터 패트릭 오스본이 연출을 맡았다. LA 할리우드 볼에서 펼쳐지는 66분의 공연은 로스앤젤레스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과 도시 전경, 인상적인 그래픽을 통해 시각적 만족을 안기며,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기타리스트 로메로 루밤보의 참여로 풍성한 청각적 경험까지 보장한다. 여타 라이브 콘텐츠와 달리 노래 가사 해석을 제공하는 것 역시 음악에의 온전한 몰입을 돕는다. 추천 작에 올라 있는 ‘심슨가족 빌리가 리사를 만났을 때’까지 감상하면, 당신이 있는 그곳이 바로 완벽한 ‘빌리 아일리시 월드’다.

  • ©️ Disney+
‘축제의 여름(...혹은 중계될 수 없는 혁명)’
1969년 6월 29일, 뉴욕시 할렘 중심부 마운트 모리스 공원에서 30만 명 이상이 참가한 대규모 음악 축제가 열렸다. 팽팽한 인종 갈등 상황이 펼쳐지던 해,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에도 구름 관중이 몰려들었다. 기획자 토니 로렌스는 영리한 수완을 발휘했고, 블랙 커뮤니티에 우호적이었던 뉴욕 시장 존 린지는 축제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스티비 원더, 피프스 디멘션, B.B. 킹,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니나 시몬 등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무대를 빛내며 관객과 호흡했다. 이 모든 순간은 할 털친(Hal Tulchin)에 의해 40시간 이상의 기록물로 저장되었다. 하지만 5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이 축제를 언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할렘 컬처 페스티벌’은 그렇게 ‘중계될 수 없는 혁명’으로 잊혀갔다.

힙합 밴드 더 루츠의 드러머 퀘스트러브가 감독한 ‘축제의 여름(...혹은 중계될 수 없는 혁명)’은 ‘할렘 컬처 페스티벌’의 생생한 장면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미국 전역의 블랙 장르가 교차하는 만남의 장소에서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이 각자의 선율과 박자, 노래와 연주를 통해 흑인 공동체의 정신을 하나로 묶고 연대를 촉구하는 광경이 강렬하고 깊은 감동을 안긴다. 같은 해 뉴욕에서 개최된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심각한 운영과 야만적인 폭력 사태에도 오래도록 음악의 낭만으로 기록되었던 것을 돌아보면, ‘할렘 컬처 페스티벌’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음악 역사를 바로 세우고 블랙 커뮤니티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중요한 기록이다. 제94회 아카데미 베스트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수상작.

‘비틀즈: 겟 백’ 

전 세계 비틀마니아들은 3년 전부터 ‘비틀즈: 겟 백’ 다큐멘터리를 학수고대했다. 2019년, ‘반지의 제왕’, ‘호빗’의 감독 피터 잭슨이 비틀즈의 전설적인 옥상 공연(Rooftop Concert) 50주년을 맞아 비틀즈 커리어에서 마지막으로 발표된 정규 앨범 ‘Let It Be’의 제작 과정 영상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하겠다는 계획을 알리면서부터였다. 원래 ‘Let It Be’ 앨범이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었던 만큼 충분한 영상이 남아 있었고, 2018년 치밀한 고증으로 역사의 한 장면을 그대로 펼쳐 보인 제1차 세계대전 다큐멘터리 ‘데이 쉘 낫 그로우 올드(They Shall Not Grow Old)’를 감독한 피터 잭슨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소식만으로도 모든 음악 팬들의 기대를 받기에 충분했다. 긴 제작 기간과 예고편 공개를 거쳐 한국 시각으로 2021년 12월 22일, 3부작 486분에 달하는 비틀즈의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왔다. 제목은 ‘렛 잇 비’의 원래 프로젝트 이름을 살린 ‘비틀즈: 겟 백’이다.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와 그들을 둘러싼 이들이 생생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경이롭다. 동시에 카메라는 해체 직전까지 몰린 비틀즈 말기의 냉랭한 공기와 사소하지 않은 다툼까지 고스란히 담아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네 명의 멤버들이 옥상에 올라 역사적인 공연을 펼치는 순간이 오면 모두가 숨죽이고 역사 속 위대한 밴드의 음악에 오감을 집중하게 된다. 다큐멘터리 3부는 2022년 2월 11일 ‘비틀즈 겟 백-루프탑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영화관에서 특별 상영되었다.

‘매카트니 3, 2, 1’

두 노년의 남자가 작업실에서 대화를 나눈다. 수염을 길게 기른 남자의 이름은 릭 루빈이다. 그는 미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 프로듀서 중 한 명이다. 런-DMC, 비스티 보이즈, 퍼블릭 에너미와 같은 1980년대 힙합 스타, 슬레이어, 시스템 오브 어 다운,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등의 메탈 밴드, 거장 닐 다이아몬드와 조니 캐쉬, 팝스타 샤키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이 릭 루빈의 손을 거쳐 히트 앨범을 발표했다. 옆의 남자는 설명이 필요없는 사람이다. 위대한 싱어송라이터, 비틀즈의 베이시스트, 폴 매카트니다.

 

릭 루빈은 폴 매카트니에게 비틀즈 노래의 탄생 과정을 묻고, 폴 매카트니는 기억 속 선명히 남아 있는 순간을 현상하여 생생한 창작의 순간을 펼쳐놓는다. 오롯이 음악에만 집중하여 폴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여러 식상한 인터뷰와 차원을 달리한다. 지미 헨드릭스와의 조우, 대중음악 역사에서 위대한 앨범으로 평가받는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제작 과정, ‘Yesterday’의 악상이 떠올랐을 때, 당대 유행하고 좋아하던 음악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재커리 하인저링 감독의 흑백 영상과 함께하는 ‘매카트니 3, 2, 1’은 일견 신성해 보이기까지 하는 고품격 음악 다큐멘터리다. 팝 음악 팬들에게는 필수 전공과목,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흥미롭게 신청할 수 있는 교양과목이다. 

비욘세 ‘블랙 이즈 킹’

2013년 12월 13일, 비욘세는 정규 5집 ‘Beyoncé’를 기습 공개하며 모든 곡에 뮤직비디오를 담아 공개하는 ‘비주얼 앨범(Visual Album)’ 시대를 열었다. 비욘세의 세계에서 뮤직비디오는 홍보용 영상을 넘어 아티스트의 철학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한다. 뮤직비디오가 영화와 다큐멘터리로 가공되면서 러닝타임이 길어지는 만큼 비욘세가 담고자 하는 사상과 야심도 거대해졌다. 여섯 번째 정규 앨범 ‘Lemonade’의 65분은 블랙 프라이드(Black Pride)의 고취와 여성 해방 선언이었으며, 2018년 코첼라 밸리 뮤직 & 아츠 페스티벌 실황을 담은 ‘비욘세의 홈커밍’은 21세기 대중문화 역사에 길이 남을 퍼포먼스를 통해 집필한 아프로-아메리칸 커뮤니티의 디지털 역사 교과서였다.

 

​2020년 공개된 ‘블랙 이즈 킹’은 비욘세가 디즈니의 대표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과 2019년 개봉한 실사 영화를 기반으로 제작한 비주얼 앨범이다. 비욘세는 실사 영화 개봉에 맞춰 영화를 주제로 한 컴필레이션 앨범 ‘라이온 킹: 더 기프트(The Lion King: The Gift)’를 발표했고, 이 음악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이 바로 ‘블랙 이즈 킹’이다. 스스로 영혼 안내자가 되어 젊은 지도자를 지도하는 비욘세가 아프로-아메리칸 커뮤니티의 위대한 역사와 조상의 가르침을 예술적으로 펼쳐 보인다. 우아하고도 강렬한 ‘흑인은 자랑스럽다(Black is Proud).’의 외침이다. 비욘세의 남편 제이지, 퍼렐 윌리엄스, 모델 나오미 캠벨, 배우 루피타 뇽오들이 특별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