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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희성,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임수연(‘씨네21’ 기자)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KBS

‘홍김동전’ (KBS)

윤희성: ‘구개념 예능’을 표방하는 ‘홍김동전’은 지치지 않고 질문을 던진다. 뻔한 건, 정말로 재미가 없을까? ‘홍진경과 김숙이 동전을 던져 운명을 결정한다.’는 아이디어를 아예 제목으로 걸어 놓듯이 ‘홍김동전’은 숨기거나 비틀거나, 시청자들과 굳이 밀고 당기기를 하지 않는 프로그램이다. 오히려 방송은 구태의 예능을 성실하게 답습하며 분장 쇼와 지인 폭로, 깜짝 카메라, 가족들의 편지처럼 익숙한 예능 아이템들을 차근차근 꺼내 든다. 누구나 새롭고 파격적이기를 원하는 시절에 방송의 이런 태도는 느긋한 절실함이라는 특유의 분위기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솔로 활동을 시작한 방탄소년단의 지민이 출연한 30회 방송은 그런 ‘홍김동전’의 독특한 존재감이 새삼 발견된 회차였다. 예능 출연 경험이 많지 않은 게스트에게 ‘보아서’ 익숙한 게임 방식은 긴장을 풀어주기 적합했고, 안정적으로 쌓아올려진 진행자들의 캐릭터는 짓궂은 벌칙에 에피소드를 부여했다. 사실 이날 홍과 김, 심지어 동전조차도 게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아니었다. 대신 방송은 과거의 틀을 빌어와 게스트의 팬들이 한 번쯤 보고 싶었을 장면의 모음집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뻔한 규칙들은 지루하고 낡은 그림이 아니라 다정한 배려, 친숙한 공감으로 잠시 생명을 얻는 듯 보였다. ‘홍김동전’이 영광의 작품을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부지런하게 매주 다른 과거를 불러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공들여 잘라낸 사진을 원하는 풍경에 붙여 넣기하듯이, 웃음과 친근함의 불씨를 계속해서 뒤적거려 보는 이들은 지금 가장 낭만적인 예능 실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0,000 gecs’ - 100 gecs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잭애스’와 ‘아메리카 퍼니스트 홈 비디오’, 진지한 1990년대 힙합 영상 미학을 비틀어버리는 뮤직비디오. 복부에 별 두 개와 상반신에 8분음표를 새겨넣고 티셔츠를 뒤집어쓴 앨범 커버. 딜런 브래디와 로라 레스의 듀오 100 겍스(100 gecs)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들려준다. 쾌활한 태도와 느긋한 삶을 지향하는 둘은 파괴적이고 번쩍거리는 음악으로 하이퍼팝의 총아 혹은 괴짜 팝 듀오로 사랑받으며 종횡무진 언더그라운드 씬과 거대 록 페스티벌 현장을 누빈다. 그렇다고 가벼운 음악을 하는 팀은 아니다. 마니아로 출발한 경력에 무거운 책무를 느낀 둘은 지난 4년 동안 4,000곡의 데모를 만들고 버린 끝에 밀레니엄 시기 인터넷 중독자들과 소셜 미디어 피드를 쉴 새 없이 내리는 오늘날 Z세대를 위한 두 번째 정규 앨범 ‘10,000 gecs’를 공개했다. 헤비메탈, 스카 펑크 록, 뉴 메탈, 하드코어, 일렉트로닉을 바삐 오가는 콜라주와 레디메이드 기법은 1996년 천재 찬사가 쏟아졌던 벡의 ‘Odelay’를 떠올리게 한다. 언뜻 장난스럽지만, 장난이 아니다. 음악에 미쳐 사는 두 청년의 방대한 아카이브와 끝없는 자기혁신, 그래미 트로피 다섯 개를 거머쥐겠다는 야심이 잔뜩 구겨진 패스트푸드 햄버거 포장지에 싸여 있다. 이것이 바로 ‘키치’다. 

‘리바운드’

임수연(‘씨네21’ 기자): 고교 농구 MVP 출신이었지만 2부 리그를 전전하다 공익근무요원이 된 강양현(안재홍)은 덜컥 부산 중앙고등학교 농구부의 코치직을 맡는다. 해체 위기에 놓인 팀을 그럭저럭 유지하기 위한 미봉책으로 코치 월급을 주지 않아도 되는 공익근무요원을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양현은 이를 자신에게 온 기회로 삼는다. 그는 부산 중앙고 농구부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일념으로 농구에 진심인 학생들을 하나씩 설득해 팀을 꾸린다. 2012년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 중·고교농구대회에서 최약체로 여겨졌던 부산 중앙고가 보여줬던 반전 드라마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당시 경기가 화제를 모은 이유는 농구를 너무 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체력상 불가능한 일을 해낸 소년들과 젊은 코치의 근성과 투지에 있었다. ‘리바운드’는 그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는 영리한 상업영화다. 인위적인 갈등을 조장하기보다는 안재홍 특유의 담백한 코미디로 건강한 기운을 만들고, 본격 대회가 시작된 후에는 실제 선수 경험이 있는 배우들이 진짜 농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영화 자체가 ‘리바운드’를 연출한 장항준 감독의 긍정적인 기운과 닮았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불러온 ‘농놀’의 여운을 이어가기에 충분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