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현은 촬영 전 탁자 위에 놓인 소품들을 천천히 둘러보고 의자에 앉아 주변 공기를 익혔다. 카메라 셔터음과 함께 모니터에 띄워진 사진에는 방금 전까지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닥이던 청년 대신 둘러싼 풍경의 주인처럼 보이는 그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민현의 말처럼, 그는 언제든 준비된 사람이었다.

 

최근 브이라이브에서 유튜브 ‘피식대학’의 최준 캐릭터를 따라한 게 화제가 됐어요.

민현: 일상 속 소소한 재미가 아닐까요.(웃음) 요즘 말로 ‘준며들었다’라고 하잖아요. 차 안에서나 대기실에서 최준 님의 영상을 보는데 재밌더라고요. 딱 생각이 나서 스치듯 따라 했던 거였어요. 좋아해주셔서 감사했죠.

 

“어 예쁘다.”, 이 네 글자의 힘이 엄청났죠. 알고리즘을 타고 유입됐다가 민현 씨의 다른 영상들을 연이어 보게 됐다는 반응들도 많았어요.

민현: 다른 분들께 소소하게나마 즐거움을 드린 것 같아서 기뻐요. 러브가 아닌 분들도 좋아해주시고, 또 러브분들이 다른 분들의 댓글을 보면서 미소 짓게 되는 게 좋았어요. ‘우리 민현이가 이렇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구나’ 하면서.(웃음)

 

7년 만의 정규 앨범 ‘Romanticize’ 또한 많은 분들에게 드리는 즐거움 중 하나일 것 같아요.

민현: 이번 앨범의 주제가 ‘낭만’이에요. 마침 이번 활동을 딱 봄에 하게 됐는데, 많은 분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듣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앨범의 첫 곡 ‘DRESS’의 첫 소절을 맡았어요.

민현: 도입부를 잘 부르기 위해 연구하고 연습하면서 제 실력이 더 늘 수 있게 돼 좋은 것 같아요. '여보세요’ 인트로 녹음할 때도 정말 중요한 파트라고 생각해서 ‘여보세요’ 그 네 글자를 몇백 번을 불렀거든요. 제가 들어도 녹음이 잘됐고.(웃음)

 

타이틀 곡 ‘INSIDE OUT’은 소화하기 어땠나요? 

민현: 도입부 걱정을 많이 했어요. 영어 부분에서 발음이 어눌하면 청자의 집중이 깨지니까, 가이드 음원의 발음이나 어조를 그대로 따라 하려고 했어요. 인트로는 누가 들어도 듣기 좋게끔, 다음 소절을 더 듣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내 팔을 끌어당겨’, ‘안아줘’처럼 사랑을 갈구하는 느낌의 가사로 바뀔 때는 감정적으로 디테일한 차이를 주려고 했어요. 딕션을 더 세게 하거나, 마지막 음을 낼 때 비브라토를 넣어서 떨림을 주는 식으로요. 섬세한 부분에서 제 노래만의 색깔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연구했어요. 

 

평소 노래를 들을 때도 가사를 제일 중요하게 본다고요. 

민현: 가사가 잘 들리고 또 그 가사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곡들을 즐겨 들어요. 모르는 언어의 곡이 좋다 싶으면 가사의 의미를 다 찾아봐야 해요. 제레미 주커(Jeremy Zucker)의 'always, i'll care'라는 노래는 가사가 따뜻하고 좋아서 밤마다 들어요. 가사처럼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분들을 잘 보살피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솔로 곡 ‘EARPHONE’도 청자에게 그런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곡이에요.

민현: ‘나한테 낭만은 뭘까’ 생각해봤는데, 음악을 들을 때였어요. 무거운 물음들이나 소음들은 놔두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자, 다른 사람들의 말보다는 내 목소리를 믿고 가자, 그런 마음을 담았죠. 브리지 ‘밤하늘 별이 비추는 오늘 내 목소리를 틀어’ 부분은 잔잔한 앞 파트와는 다르게 표현했어요. 곡의 기승전결을 생각한 것이기도 하지만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거기에 있기 때문에 소리가 세게 나와야 할 것 같았어요.

 

무거운 물음은 놔두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자고 했는데, 그만큼 고민이 된 것들이 있나 봐요. 팬데믹 이후로 그런 고민들이 더 생긴 걸까요?

민현: 아무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못하게 되니까요. 음악이 너무 좋은데, 가수를 오래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콘서트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러브분들과 소통하고 무대에서 땀 흘리고, 그런 희열과 만족을 느꼈던 순간들이 사라지니 ‘뭘 하면서 나를 키워 나가야 하지', '노래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 이런 고민들이 있었어요.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는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안 하려고 했어요. 완성도 높은 앨범, 좋은 무대를 보여드리기 위해 멤버들이랑 재밌게 연습하고 준비했어요. 이런 시기에는 러브분들도 지치잖아요. 그런데도 저희만큼, 어쩌면 저희보다도 더 큰 마음을 보여주시는 분들께 힘든 시간을 버텨주고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민현 씨도 지금을 버티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민현: 그렇죠. 준비를 하고 있는 거죠. 열심히 연습해서 러브분들 앞에 더 멋있는 모습으로 딱 이렇게 나타나기 위해서.


운동, 청소, 독서, 피아노 연습 등 하루를 바삐 보내는 것도 준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민현: 4년 전쯤부터 건강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전날 밤 자기 전에 내일 뭐할지를 다 정해요. 청소는 당연한 습관이라 계획에는 안 들어가는데(웃음) 늦어도 오전 10시에는 꼭 일어나서 일단 청소기부터 돌리고, 그다음에 운동, 피부과, 연기 수업 같은 계획들을 지켜요.
 
‘바생사(바른 생활 사나이)’라고 불릴 만하네요.
민현: 드라마 ‘라이브온’ 촬영 때에는 전날 아무리 늦게 끝나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준비했어요. 원래는 커피를 즐기지 않았는데 이후로 맛을 들여서 집에 커피 머신을 사다놨어요. 아메리카노만 마셔요. 살 안 찌는 걸로.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입니다.(웃음)
 
“먹고 싶은 걸 다 먹으려면 아이돌을 하면 안 된다.”라는 말을 남긴 브이라이브가 생각나요.
민현: 아이돌이라는 직업 자체가 많은 분들의 힘이 되어야 하고, 누군가는 닮고 싶다는 마음을 갖기 때문에 생활 자체에서 많은 절제가 필요해요. 식욕은 그 절제의 시작인 거죠. 작은 것을 절제할 수 있어야 더 큰 것들도 절제할 수 있으니까요.
 
얼마 전 러브들과 함께 ‘닭가슴살 먹방’을 하기도 했죠. 
민현: 보신 분들이 하루 세끼 다 닭가슴살을 먹는 줄 알고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운동 직후였기 때문에 단백질을 보충해야 했는데, 마침 러브분들과 소통하면서 먹고 싶어서 브이라이브를 켰던 거예요. 일반식도 영양제도 잘 챙겨 먹습니다.(웃음) 
 
러브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민현 씨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민현: 힘을 많이 얻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러브분들이 저한테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저도 러브분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댓글 하나하나를 신중한 마음으로 달고 있어요. 제가 막 조급해하는 편은 아닌데, 러브분들의 글을 보다 보면 공백기에 아무것도 안 하면 우리 러브들이 슬퍼할 테니 어떤 활동이라도 해야 될 것 같고, 쉬지 않고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될 것 같아요. 그런 조바심이 조금 생겨요. 

피아노 연습도 러브들의 요청으로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러브들에게 꼭 직접 연주하며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나요?
민현: 가장 먼저 ‘Universe (별의 언어)’를 부르고 싶어요. 스탠딩 에그의 ‘Little Star’도 좋을 것 같아요. 혼자서 연습하기엔 어려워서 시간이 난다면 선생님께 제대로 배워보려고 해요.
 
하고 싶은 일들이 많네요.
민현: 너무 많죠. 요즘 등산을 가볼까 생각 중이에요. 자연의 변화를 느끼고 풍경이 담긴 사진도 찍고 싶어요. 내려와서 맛있는 것도 먹고요. 트레이너 형이랑 가까운 산부터 가보려고 해요. 나중에는 더 높은 산들도 가봐야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은 설레지만 떨리고 긴장도 많이 되잖아요. 해냈을 때 성취감을 얻으면 굉장히 행복해요. 그래서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곳을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해요.

첫 드라마 주연작 ‘라이브온’도 새로운 도전이었죠.
민현: 뮤지컬에서 필요한 연기와 드라마 연기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작은 호흡이나 고갯짓 하나만으로 감정이 달라진다는 걸 느꼈어요. 이번 앨범 작업을 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지금까지 황민현으로 살아오면서 경험한 일들이 적은데, 연기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다른 직업이나 성격을 가진 인물들로 살아보면서 새로운 벽에 부딪치고 헤쳐 나가보고 싶어요.
 
은택이라는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했나요? 1초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성격에, 내면의 상처를 잘 드러내지 않는 고교생이었는데.
민현: 감독님이나 연기 선생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은택이처럼 매 시간 계획표대로 살아보기도 하면서 은택이를 이해하려고 했어요. 촬영 3개월 동안 또래 배우들과 매일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는데, 그동안은 정말 고등학생이 돼서 학교생활을 경험한 것 같아요. 요즘 친구들은 페이스북 메시지로 대화하는 것도 알았고요. 

촬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뭔가요?
민현: 1화 1부 에필로그요. 버스 안에서 잠든 호랑이의 치마가 자꾸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흔들려서 은택이 창문을 닫아준 거였잖아요. 
 
에필로그 전까지만 해도 은택은 거슬린다는 듯 ‘계속 너한테 닫으라고 말했는데 못 들어서 내가 직접 닫는다’는 식으로 대하죠.
민현: 좋게 말하면 되지 왜 저렇게 하나 싶은.(웃음) 뒤에 밝혀질 반전을 위해서 더욱 까칠하게 연기했죠. 은택이의 속마음을 잘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하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그런 모습이요. 연기를 하면서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도 관객분들께 다양한 감동을 드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연기를 본 멤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민현: 종현이는 첫 예고가 나오고부터 제 대사를 막 따라하더라고요.(웃음) 멤버들이 제 생일 기념으로 촬영장에 커피 차를 보내줬어요. 다른 배우분들의 커피 차가 왔을 때 스태프분들의 즐거운 모습을 보니 내심 부럽기도 했거든요. 매번 연습실에서 함께 생일을 보냈던 멤버들이 보내준 커피 차를 보니 뿌듯하고 든든했어요.
 
멤버들과 함께한 지난 시간을 되돌이켜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민현: 연습생 때는 우리가 데뷔만 하면 다 잘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데뷔 후에 점점 분위기가 침체됐던 것 같아요. 정말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잘 안 되니까요. 공백기에는 거의 아무런 일정 없이 쉬는 날이었는데,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매일 연습하러 나갔어요. 지금 ‘라떼 이즈 홀스(나 때는 말이야)’일 수도 있는데(웃음) 택시비가 너무 아까워서 연습실에서 숙소까지 걸어 다녔거든요. 그때 매일 연습을 했던 게 빛을 봤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한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민현: 중학교 3학년 때 시험에서 전 과목 평균 88점을 넘기면 당시 유행하던 패딩을 사주겠다고 하신 거예요. 열심히 공부해서 목표를 이뤘고 매장에서 핫 핑크 색을 골랐어요. 평소엔 무난한 색을 좋아하는데 그날만큼은 어렵게 얻은 기회를 평범한 옷에 쓰고 싶지 않았나 봐요. 그 패딩을 입었던 하굣길에 캐스팅이 돼서 아직까지도 옷장에 간직하고 있어요. 지금 서울에 있는 집에요. 저한텐 행운의 아이템이에요.
 
노력에 대한 보상이 큰 행운을 불러왔네요.
민현: 지금은 그 대상이 러브들이 된 것 같아요. 늘 자신 있는 모습으로 러브분들 앞에 서고 싶어요. 흐트러지지 않고요. 앨범 활동이 끝난다고 해서 연예인으로서의 제 생활이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갑자기 새로운 일을 하게 될 수도 있고, 러브분들과 만나는 자리가 생길 수도 있고요. 그래서 자기계발도 하고, 보컬 연습이랑 연기 연습도 하는 거죠.

러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시더라고요.

민현: 내면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 비호감도 호감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저를 좋아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저를 만난다면 ‘좋은 사람이구나’ 느낄 수 있도록요.

 

10년 차 아이돌로서의 무게감도 있을 것 같아요.

민현: 이렇게 오래 왕성한 활동을 하는 팀이 많지 않잖아요. 잘 버텨준 멤버들이나 저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고, 특히 긴 시간 저희를 지켜줬던 러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돌아보면 러브분들 덕분에 1위도 하고,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러브분들과 함께 3일 동안 콘서트를 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감사하게도 뮤지컬과 드라마도 경험하게 됐죠. 전에 세워뒀던 목표는 다 이뤘고 이젠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됐어요. 뉴이스트 민현으로서는 오래 음악을 하는 게 가장 큰 목표인 것 같아요. 음악을 놓지 않으면서 재미있게 활동하는 것. 저를 좋아해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고 오래오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민현 씨가 오래도록 활동하며 들려주고 싶은 음악은 어떤 건가요?

민현: 저만의 색깔과 감성이 담겨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어쿠스틱이나 밴드 사운드를 좋아해요. 제가 즐겨 듣고 좋아하는 다양한 아티스트 분들께 곡을 의뢰해서 좋은 작업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그분들의 감성에 제 목소리가 들어가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날지도 너무 궁금해요. 넬 선배님들을 좋아해서 김종완 선배님의 곡을 꼭 받아보고 싶어요.

 

음악과 일에 대한 확신이 느껴지네요. 

민현: 자신감도 있고, 만약 사람들이 나를 떠난다고 해도 돌아오게끔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제가 잘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더 노력해야죠. 다시 감사함을 잊지 않고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요. 돌고 도는 거죠.(웃음)

글. 임현경
인터뷰. 임현경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오민지
비주얼 크리에이티브팀. 유인영, 장윤희(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사진. 박성배 / Assist. 신지원, 한지훈
헤어. 박옥재(@rue710), 엄정미(@PRANCE)
메이크업. 문주영(@rue710), 달래(@PRANCE)
스타일리스트. 김은주
세트 디자인. 다락(최서윤 / 손예희, 김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