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조곤조곤 시간을 들여 생각을 정리했고 새로운 대답을 내기 위해 기억을 되짚기도 했다. 그런 그가 찰나의 고민도 없이 단숨에 목소리를 내던 순간은, 애정을 가진 대상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였다. 음악, 무대, 팀, 팬, 가족, 노력… 그리고 새 앨범 ‘minisode1 : Blue Hour’.

컴백 준비로 많이 바빴겠어요.
수빈:
 지난 활동은 관중이 없어서 아무리 힘을 내보려고 해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이번에는 멤버들과 함께 무대를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아분들 앞에서 춤을 추면서 한 곡 무대를 마친 다음 물도 벌컥벌컥 마시고 숨을 막 몰아쉬었는데, 그때의 숨가쁨이 그리워요.

이번 앨범의 ‘날씨를 잃어버렸어’에 많이 공감했겠어요.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일상에 대한 노래인데.
수빈:
 영화를 보고 싶어도 영화관에 갔다가 혹시 문제가 생길까 봐 포기하게 돼요. 예전엔 가고 싶을 때 언제든 갈 수 있었던, 지금은 갈 수 없게 된 곳들이 그리워요. 해외여행처럼 커다란 일도 그렇지만, 일상의 소소한 추억들이요.

팬들의 말이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브이라이브 도중 “수빈이 팬이라 행복해.”라는 댓글을 읽고 울먹이기도 했어요.
수빈:
 가수는 팬들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지내고, 팬들은 또 그런 가수를 보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아간다는 게 굉장히 바람직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시시콜콜하거나 사소한 일상도 같이 공유하려고 해요. 전에는 스케줄이 있을 때나 멋있는 셀카를 찍어야만 SNS에 글을 올려야 할 것 같았는데, 요즘은 사소한 일상도 자주 공유하려고 해요.

팬들의 반응을 많이 찾아보는 편인가요?
수빈:
 데뷔 초에는 별명이 ‘서치왕’일 정도였어요. 하루 종일 검색했거든요. 그런데 활동을 하다 보니까, 점점 아픈 말들이 눈에 밟히더라고요. 무슨 말을 하다가도 ‘아까 봤던 글에서 이런 말 하는 거 싫다 그랬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신경을 안 쓰는 게 어렵다면 아예 찾아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검색을 줄였어요. 모아분들 의견이 궁금하면 위버스에 들어가서 보는 정도예요.

안 좋은 반응들은 걱정되지만 무대에 서는 게 그 이상으로 좋은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학교 축제 무대에 섰다 가수가 될 결심을 한 걸로 알아요.
수빈:
 친구들이 같이 축제 무대에 올라가자고 했을 때 절대 싫다고 했더니, 애들이 몰래 제 이름을 명단에 같이 냈더라고요. 그런데 연습실을 대관해서 친구들끼리 연습하고 때론 장난치는 이런 과정이 그냥 너무 즐거운 거예요. 무대에 올라가서 기껏 연습해놓고 부끄러워하다 다 못 보여주면 아쉬울 것 같아서, 하는 김에 제대로 하자고 하면서 당당하게 공연했어요. 축제가 끝나고 모르는 애들인데도 무대 잘 봤다고 칭찬해주면 기쁘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어요. ‘아 무대에 더 서고 싶다.’

무대에 오르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겠어요.
수빈:
 저는 남들보다 훨씬 더디게 성장했어요. 처음 연습생이었을 때 다른 친구들이 점차 상위권으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저는 하위권에 머무른 거예요. 자격지심도 들고 스트레스도 되게 많이 받았어요. 스스로 너무 창피해서 ‘난 재능이 없나 보다’ 하는 자책감이 들었어요. 조심스럽게 포기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그때까지의 월말 평가 성적표를 보여주시더라고요. 아주 조금씩이라도, 0.1점이라도 점수가 꼭 올랐다고요. “더디더라도 지금처럼만 계속 열심히 해주면 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때 정말 감사했어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했더니 월말 평가를 치르지 않을 때쯤엔 상위권에 들었어요. 

이번 앨범에도 노력해서 성장한 부분이 있을까요?
수빈:
타이틀 곡 ‘5시 53분의 하늘에서 발견한 너와 나’의 후렴구요. 다른 멤버들에겐 고음이 아닐지 몰라도 저한테는 정말 미친 듯한 고음이거든요.(웃음) 파트를 받고 몇 번 불러봤는데 음 이탈이 나는 거예요. 그런데 슬로우 래빗 PD님이 “네가 이 부분을 꼭 불러줬으면 좋겠다.”며 붙잡아주셨어요. 정말 일주일 넘게 계속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면서 녹음을 했어요. 2주째부터는 됐다 안 됐다 하다가 “저 할 수 있나 봐요, PD님!” 하고 계속 불러서 성공했어요. 음역대가 낮은 게 불만이었는데, 이번 곡으로 한계를 깨서 좋았습니다.

첫 소절도 수빈 씨 파트였어요.
수빈:
안 그래도 PD님께서 처음이라 중요하다고 하셔서 부담감이 많이 있었는데, 많이 도와주셔서 잘해낸 것 같아요. 원래 음역대가 낮다 보니 고음을 부를 때 조금 힘겨운 소리를 내는데, PD님께서 애절한 감정이 잘 담긴다고 해주셔서 기뻤죠.

타이틀 곡의 장르가 디스코인데,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기존에 보여줬던 장르와는 준비 과정이 또 달랐을 것 같아요.
수빈:
데뷔하고서 지금까지의 안무는 팀이 단체로 어떤 그림을 만드는 구성이 많았는데, 데뷔 전에 팝 음악에 맞춰 연습했던 춤들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컸거든요. 이번에 딱 그런 안무를 보여드릴 수 있게 돼서 신났어요. 연말 시상식 이후에 처음으로 댄서분들과 같이 함성도 지르고 박수도 치니까 연습할 때 에너지가 엄청 올라가더라고요.

머릿속에 그려놓은 그림을 실제로 구현하는 데에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수빈:
무대 오르는 당일에 헤어랑 메이크업하고 난 뒤 거울을 보면서 연습해요. 날마다 다른 헤어, 메이크업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게 나오거든요. 저는 왼쪽과 오른쪽 얼굴이 조금 차이가 있어요. 왼쪽은 날카롭고 오른쪽은 순하게 생겼어요. 그래서 앞머리를 올리면 왼쪽 얼굴을, 앞머리를 내리면 오른쪽 얼굴을 보여줘요. 이번 타이틀 곡 무대도 엔딩에서 왼쪽 얼굴로 끝날 때도, 오른쪽 얼굴로 끝날 때도 있을 거예요.

‘뮤직뱅크’ MC를 시작할 때도 많이 준비했겠어요.
수빈:
사실 제가 모아분들 사이에서 말을 엄청 더듬고 단어를 이상하게 바꿔 말하는 걸로 유명하거든요. 그래서 오디션 제안을 받았을 땐 너무 걱정됐어요. 그래도 다신 오지 않을 기회 같아서 역대 MC분들 영상도 다 찾아보고 대본을 빌려 읽어보면서 준비했더니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MC를 시작할 때 보여준 오마이걸의 ‘돌핀’ 무대는 유튜브 조회 수가 1,500만 회를 돌파했어요. 이런 반응은 기분이 어떤가요.
수빈:
‘어떤 콘셉트든 내가 잘 소화해야겠다.’라는 생각만 들었어요. 새로운 모습도 제가 잘해낸다면 좋아해주실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돌로서 시도하는 다양한 모습에 재미와 행복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한 인터뷰에서 “멤버들은 나를 귀여운 사람인 줄 알지만 사실 난 섹시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한 게 기억나네요.
수빈:
굳이 따지자면 저를 ‘청순’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무대 위에서 그런 특성이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어느 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는 귀엽게 방긋방긋 웃는 노래인데, 찰나에 정색했을 땐 그런 느낌이 나온 것 같아서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나온 표정이라 ‘나 약간 섹시한 사람인가?’ 생각했어요.(웃음)
스스로 생각하는 의외의 부분들이 또 있나요?
수빈:
모아분들이 가끔 제가 누가 안 지켜주면 큰일날 것 같다고 걱정해주시거든요.(웃음) 그런데 데뷔하고 느낀 건데, 생각보다 강단 있고 고집이 세더라고요. 전엔 남들한테 잘 맞춰주고 잘 휩쓸리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리더다 보니 여러 사람들에게 말을 해야 할 때가 있어서 필요한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리더로서 바라보는 멤버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수빈:
휴닝카이는, 제 안식처 같아요. 제가 처음 연습생이 됐을 때 낯선 분위기에 적응이 어려웠는데 4~5개월 뒤에 휴닝카이가 들어왔고 제일 먼저 친해졌어요. 성격도 그렇고 취향도 너무 잘 맞아서 급속도로 친해졌어요. 휴닝카이를 만나고 연습생 생활에 안정감을 많이 찾았어요.

휴닝카이 씨가 안식처라면 태현 씨와는 서로를 신뢰하는 ‘신뢰즈’로 불리기도 하던데요.
수빈:
태현이는 항상 객관적이고 현실적이라고 해야 하나. 제가 감정에 휩싸여 쭈뼛쭈뼛하고 있을 땐 태현이가 도와줘요. 그래서 태현이랑은 무대, 멤버, 회사 이런 얘기를 새벽에 같이 산책하며 자주 나눠요. 객관적인 시선으로 전체를 바라보게 해주는 사람이에요.

범규 씨와는 처음에 성격이 정반대라 신기했다고요.
수빈:
범규가 연습생 때는 정말 텐션이 높고 모든 연습생들과 다 친해지는 그런 ‘인싸’였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저랑 완전히 다른 성격이었는데, 지금은 제가 친화력이 생기고 범규는 좀 차분해진 것 같아요. 범규의 최대 장점은 포용력이에요. 상대방이 무슨 얘기를 했을 때 “아 그랬구나. 내가 몰랐어. 미안.” 하면서 바로 수용을 해줘요. 제가 리더로서 말할 때 상대방이 오해하는 건 아닐까 무서울 때도 있는데, 범규가 많이 도와줘요.

맏형 연준 씨는요?
수빈:
연준이 형이랑은 사소한 일로 많이 투닥거리는 편이에요.(웃음) 어쩌면 팀에서 저랑 제일 비슷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생각보다 낯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이더라고요. 형은 실력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려고 노력해요. 고쳐야 될 것 같다 싶은 건 노력해서 고쳐요. 지금도 좋은 사람이지만 갈수록 더 좋은 사람이 될 것 같아요. 반면 저는 제 단점은 단점대로 사랑하는 편이라 남들이 보기엔 답답할 수도 있어요.

단점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건 자존감이 높다는 것 아닐까요.
수빈:
저는 제가 받은 사랑만큼 나눠줄 수 있는 사랑이 되게 많아요. 늦둥이라 그런지 부모님은 물론이고 형, 누나까지 거의 네 명한테 자라면서 워낙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 사랑의 온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멤버들한테 많이 나눠주고 싶어요. 멤버들이랑 최근에 얘기하면서 느꼈는데, 제가 남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멤버들을 사랑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좋아한다.”(울먹) 이렇게 말했어요. 너무 소중해서 없으면 정말 안 될 것 같아요.
사랑의 온기 외에도 가족에게서 배운 삶의 자세가 있나요.
수빈:
제가 어릴 때 TV를 보고 있는데 엄마께서 막 울면서 후원 전화를 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 “너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착하게 살아야 된다.”라고 하셨거든요. 그런 엄마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저에겐 정의의 사도 같으세요.

그러고 보니 재밌게 봤다고 언급했던 웹툰들이 대부분 현실 사회를 꼬집는 내용이에요.
수빈:
꼬마비 작가님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인간과 종교를 주제로 한 웹툰이었는데, 제가 가지고 있던 의문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요즘 인상 깊게 본 작품이 또 있나요.
수빈:
어제 넷플릭스에서 ‘마이 뷰티풀 브로큰 브레인(My Beautiful Broken Brain)’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갑작스럽게 뇌졸중을 겪고 난 뒤의 일상들을 담은 내용인데, 처음엔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도 잊어버리고 말하고 싶은 단어도 생각이 안 나요. 그런데 꿋꿋이 이겨내는 모습이 너무 멋있더라고요. 그리고 노래로는 윤종신 선배님의 ‘나이’요.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더 나이 들어 다시 들으면 더 감탄하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 이번 앨범의 ‘Wishlist’도 좋아요. 채택은 안 됐지만 노래만 듣고 열심히 가사를 써봤을 만큼 좋아했어요.

이번 앨범의 ‘Ghosting’ 작사에 참여했는데, 묘사되는 상황이나 감정이 흥미롭더라고요. SNS로 더 이상 연락이 안 되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수빈:
처음에 작사 할 때는 뭔가 좀 멋있고 웅장하게 써보려고 했는데, 많이 거절당했거든요. 오히려 일상적으로 쉽게 썼더니 채택되더라고요. 특히 ‘여전히 숫자 날 반겨 1만’이란 부분이 마음에 들어요. 제가 쓴 부분인데 (웃음) 메신저에 들어가면 1이 계속 떠 있으니까 그걸로 상대방이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확인을 하잖아요. 하루가 지났는데도 1이 계속 떠 있으면 괜히 스크롤 올리고서 내가 무슨 말을 했나 확인하게 되고.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서 썼어요.

앞으로 어떤 가사를 쓰고 싶나요?
수빈:
제가 좋아한다고 지겹도록 많이 언급했던 노래인데, ‘터벅터벅’이라고 사회 초년생의 고된 하루를 토해내는 가사예요. 지금도 퇴근할 때 무조건 한 번은 들어요. 작사를 하고 싶어진 계기이기도 해요. 저한테 그 노래가 큰 위로가 됐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가사를 쓰고 싶어요.

만화 ‘피너츠’의 명언을 스마트폰에 저장해두며 힘을 내기도 했다고요.
수빈:
한 아이가 “처음부터 그렇게 나쁜 트리는 아닌 거 같았어. 사실 꽤 괜찮지. 사랑이 좀 필요할 뿐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연습생 때 저장해두고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졌을 때 보면서 조금씩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어요.

그렇다면 수빈 씨가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뭔가요.
수빈:
늘 하는 말이에요. “저희도 너무 보고 싶었어요.”라고요. 너무 자주 말해서 형식적으로 느끼실 수도 있지만, 진심이에요. 보고 싶어요. 저희도.
글. 임현경
인터뷰. 임현경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비주얼 크리에이티브팀. 이현주, 허지인(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사진. 김희준 / 김한나, 김수진, 양명준
헤어. 김승원
메이크업. 한아름
스타일리스트. 김규남
세트 디자인. 다락(최서윤 / 손예희, 김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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