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논의 말에는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친절한 설명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한 편의 영화를 “‘스파이더맨 : 홈 커밍’에 악역으로 등장한 제이크 질렌할과 원조 ‘스파이더맨’ 주인공인 토비 맥과이어, ‘블랙 스완’의 주인공 나탈리 포트만이 나오는 영화”라고 설명한 것처럼. 
 
최근 위버스 닉네임을 ‘halfplastic’으로 변경했어요. ‘고잉 세븐틴’의 ‘100만 원’편에서 준 씨가 버논 씨에게 “약간 반 플라스틱”이라고 말한 뒤인데. 
버논: 너무 착하기만 하지 않고 적당히 나쁘다는 의미인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제 모습을 딱 보여주는 것 같아서요. 멤버들은 그냥 웃기려고 그런 줄로만 아는데(웃음) 웃기기도 하고요.
 
위버스에 재치 있는 게시물을 자주 올리더라고요. 남들을 즐겁게 하는 걸 좋아하나요? 
버논: 재밌어요. 가까운 사람을 웃길수록 만족감이 더욱 크죠. 멤버들한테는 일부러 애교도 많이 부려요. 싫어하면서도 웃는 표정을 보고 싶어서요.(웃음) 대뜸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호탕하게 웃길 때도 있고, 다양한 갈래의 유머를 응용하고 있어요.
 
타이틀 곡 ‘Ready to love’의 버논 씨 파트 중 ‘네 기분을 푸는 Secret recipe’라는 가사가 생각나네요. ‘빠-진, 표-정’, ‘레시피-’ 등 장음을 사용한 라임이 재밌어요.
버논: 그 부분에서 트랙의 소리가 많이 빠지잖아요. 앞에 코러스가 격정적으로 ‘빠-빠-’ 나오다가 2절 시작하면서 제 목소리에 딱 집중이 되니까, 그에 잘 묻어날 수 있게 완급 조절에 신경 썼어요.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부르다가 파트가 끝날 때쯤 힘을 더 풀어서 듣는 맛을 살리려고 했어요.

‘Anyone’에서는 2절 후렴에서 고음을 소화하는 버논 씨의 보컬이 새롭게 들렸어요.

버논: 신선해서 좋아하는 파트예요. 가성과 진성을 오가면서 마지막에 고음으로 지르는 파트인데, 세븐틴 노래 중에서 그런 보컬적인 디테일을 요하는 파트를 제가 부른 건 처음이에요. 랩이 아닌 보컬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반면에 래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힙합팀의 유닛 곡 ‘GAM3 BO1’에서는 언택트 시대에 게임 속에서라도 만나자는 메시지가 인상적이었어요. 

버논: 범주 형이 트랙을 보내줬는데 게임 속 뿅뿅 효과음 같은 소리가 많이 들려서 ‘게임 보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어요. 제 파트에는 듣는 재미를 위해 일상적인 단어를 많이 넣으려고 했어요. 포괄적인 내용보다는 딱 꽂히는 단어들이 있으면 좋잖아요. 특히나 ‘비트코인’은 요즘 많이들 얘기하고 ‘NFT(Non-Fungible Token)’나 ‘사이버펑크 2077’은 아는 사람만 알겠지만, 게임 보이라는 키워드와 미래지향적인 사운드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아이템을 어떻게 떠올리나요? 

버논: 작사와 별개로 흥미가 있어요. 그런 트렌드들에 대해서 파악을 하고 싶어 하고 평소에 알아두려고 노력하죠. 주변 사람들과 이런저런 정보를 주고받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유튜브를 많이 봤어요. 피드에 올라오는 것 중 재밌어 보이는 건 일단 다 봐요. ‘무한도전’도 자주 보고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제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일상에서 습득한 정보와 아이디어를 기록해두기도 하나요?

버논: 이따금씩 생각 정리 차원에서 핸드폰 메모장에 간단하게 써요. 적어둔 내용을 가사에 써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냥 쓰는 거예요. 최근에 쓴 건, 배우들이 격정적으로 분노하는 장면들을 찾아봤어요. ‘브라더스’라는 영화를 봤는데 다들 엄청 화가 나 있더라고요.(웃음) ‘폭스캐처’에서 주인공이 경기에서 지고 난 뒤 호텔로 돌아가서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는 장면도 봤고, ‘파이트 클럽’도 물론 봤죠. 제가 평생 한 번도 그런 식으로 화를 내본 적이 없더라고요. 분노의 대상이 따로 있는 건 아닌데, 그런 장면을 보면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뭔가 해소되는 것 같아요. 처음엔 배우들이 캐릭터로서 분노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는데, 보면서 짧은 영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분야나 장르 상관없이 문화예술 전반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버논: 화가이신 부모님의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두 분 다 추상화를 많이 그리시는데 어머니는 알록달록하고 아버지는 정갈한 느낌이에요. 두 분의 그림을 인이어에 넣기도 했어요. 최근엔 유에민쥔(岳敏君)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음악도 ‘듣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제 머릿속에 있는 모든 생각들을 일일이 다 나열할 수는 없잖아요. 추상적으로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 부분들은 제가 설명을 드리는 것보다는 듣는 분들이 느껴지는 대로 느끼는 게 좋아요.

 

캐럿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들이 있을까요?

버논: 근래 Bladee & Mechatok와 Charli XCX의 곡들을 즐겨 들어요. 되게 미니멀하고 중독적이에요. Dua Lipa의 ‘Cool (Jayda G Remix)’는 정규 수록곡을 리믹스했어요.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 데스 + 로봇’ 시즌 2 중에서 ‘집 안에서 생긴 일(All Through the House)’이 지금 딱 생각나요.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이 집 안으로 들어온 산타 할아버지를 숨어서 몰래 지켜보는데, 괴물인 거예요. 냄새를 맡아서 좋은 아이였는지 나쁜 아이였는지를 판별하고 구토를 해서 아이들이 원하는 장난감을 선물해주더라고요. 유쾌했어요.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데뷔 전 2013년에 지하철 옆자리 승객이 보던 영화를 이어폰까지 나눠 끼고 같이 봤다는 일화도 있죠.

버논: 옆에서 흘깃거리는 시선이 강하게 느껴져서 차라리 같이 보자는 마음이었나.(웃음) 그때 폰 요금제의 데이터 용량도 적었고 지하철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 않았던 때라 제 폰으로 영화 보기가 어려웠거든요. 어릴 때부터 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 영상은 다 좋아했는데 현실감 있는 판타지를 특히 좋아했어요. ‘해리포터’는 마법사인데 또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니까 동경했죠. ‘모노노케 히메’는 주인공도 매력적이고 절대악이나 절대선이 없다는 점이 현실적이라서 좋아요. 지브리 스튜디오 고유의 환상적인 분위기와 독특한 세계관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제2의 나라’라는 게임이 지브리와 협업했다고 해서 이전까지 한 번도 안 해봤던 RPG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음악 작업은 요즘 어떻게 하고 있나요? ‘힛 더 로드’에서 투어로 바쁜 와중에도 개인 장비를 챙겨 작업하는 모습이 담겼어요.

버논: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하려고 해요. 주로 범주 형이나 다른 작곡가분들의 작업실에서 하는데, 가끔 저 혼자 생각나는 게 있으면 조그마한 방에서 간단히 하기도 하고. 사실 믹스테이프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지는 않고, 일단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게 있으면 구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커요. 일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게 못하죠. 남에게 보이는 것을 신경 쓰면 제 머릿속에 변수가 많이 생기거든요. 물론 개인으로서의 욕심도 있는데,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해요. 대신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무엇인지 고민했죠.


2016년 17 13 24 포토북에서 “어차피 난 다르게 생겼으니까 다르게 쳐다보는 건 당연하다는 답을 내리고 신경 쓰지 않았다.”라고 말했는데, 이후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과정을 거친 걸까요? 

버논: 그땐 세상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너무 많은데 일일이 다 알아갈 수 있을까, 나중에 알아서 깨닫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크게 고민하고 싶지 않았어요. 회피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성인이 된 이후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정리하게 됐어요. ‘TRAUMA’는 캐럿분들에게 처음으로 그런 면모를 보여드리기 위해 만든 곡이죠. 보여주기 두려운 부분이라서 더 의미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마음을 더 열게 된 거니까.

 

인터뷰에서 팬들에 대해 얘기할 때는 책임감을 강조하곤 해요. 

버논: 세븐틴은 캐럿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존재예요. 그걸로 끝. 작년쯤 어떤 만화책을 읽는데, 내용이 덜 끝난 상태로 끊기니 너무 속상하고 아쉬운 거예요. 팬의 입장에서 겪은 마음을 제 스스로에게 적용해서 생각하게 됐어요. 캐럿분들의 소중한 마음에 책임감을 더 가져야겠다고. 지금의 목표는 세븐틴이 더 좋은 성적을 내는 거예요. 

 

‘ROCKET’의 ‘Finally I realize All along love was by my side’라는 가사가 떠오르네요. 

버논: 최근에 아는 형이 톡방에서 영화 ‘미나리’ 속 꼬마 남자아이의 대사를 따라 하는 조카의 영상을 보여줬어요. 아이고 귀엽다 했는데 웬걸, 범주 형이 그 음성을 샘플링해서 노래를 만든 거예요. 그 트랙에 맞춰 춤추는 조카의 모습도 함께 보고.(웃음) 작은 것에도 행복할 줄 아는 게 중요하다는 걸 소소한 일상에서 매번 새삼스럽게 느껴요.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이 뭘 좋아하고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게 필요해요.

스스로 깨달은 정체성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요?

버논: Diverse(다채로운)한 사람. 편견이 없기도 하고 그러기 위해서 늘 인지하고 노력해요. 어릴 때부터 그런 교육을 많이 받았는데 특별한 계기나 사건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일상적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대화를 나눴어요. 그리고 담백한 사람이요.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걸 추구하는 담백함이라고 할까요.


타인에게 보여지는 직업 특성상 담백함을 유지하기가 쉽진 않을 것 같아요.

버논: 어려워요. 그래서 더욱 현실 직시와 자기 객관화가 필요해요. 원하는 것과 원하는 대로만 되지 않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고, 본인의 욕망이 본인 자신보다 우선시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는 거죠. 저는 제 털을 좀 두고 싶은데, 회사에서 반바지를 입을 때 왁싱이 필요하다고 하면 의견에 따라요. 여전히 둘 사이 접점을 찾고 있어요.


솔직하시네요.(웃음) 앞선 여러 인터뷰에서도 일부 질문에 다른 말 하지 않고 ‘비밀’이라고 돌직구로 답했더라고요.

버논: 평소에 자주 노출되는 직업이다 보니 저만의 것을 사수하려 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대충 둘러대면 제가 아닌 사람을 소개하는 거잖아요. 그건 싫어요. 거짓말로 ‘Taking Advantage(이득을 위해 속여먹는 일)’를 하고 싶진 않은 거죠. 속임 당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거짓말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고잉 세븐틴 2020’의 ‘카니발’편에서 승관 씨와 원우 씨가 버논 씨에게 “강한 멘탈이 정말 큰 무기”, “그 무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버논: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니 자신감이 남달라지더라고요. 그게 멤버들에게 바이브적으로 도움이 됐으려나. 사실 특별히 한 게 없거든요. 누가 지쳐 있으면 그래….(토닥) 한 정도예요. 힘들어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억지로 기분을 끌어올리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중학교를 자퇴하고 세븐틴 안에서 사회화를 하면서 멤버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젠 제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위버스에서 멤버들에게 남기는 댓글이 저만의 애정 표현이라고 합시다.(웃음) 

‘평화주의자’가 무기를 든 까닭은 뭘까요? 뉴스를 보며 다같이 양보하고 살면 좋을 텐데 왜들 싸우는지 모르겠다고 성토하던 때가 있었다고요.

버논: 여전히 평화, 평등을 바라지만, 이제는 왜 그럴 수 없는지도 알아요. 그래서 저나 잘하려고 해요. 먼저 저와 제 주변을 돌보려고요. 제가 동경하는 아티스트들은 스스로에게 진실돼 보이고, 당연하게도 작(作)이 좋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자아 성찰, 자기 객관화, 현실 직시를 열심히 해야할 것 같아요. 그리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진심일 수 있어야겠죠.

 

데뷔 초 가장 큰 소원으로 ‘모두의 행복’을 꼽았는데, 현실 직시와 자기 객관화를 거쳐온 지금은 어떤가요.

버논: 지금도 모두의 행복을 바라요. 행복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처해계신 분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바랄 수는 있으니까. 바랄 수는 있잖아요.

 

글. 임현경
인터뷰. 임현경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오민지
비주얼 크리에이티브팀. 유인영, 김효담(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사진. 채대한 / Assist. 배준선, 손효정, 오창환
헤어. 우은혜(BIT&BOOT), 문현철(BLOW)
메이크업. 고진아, 박수진(BIT&BOOT), 김시진, 손가연(BLOW)
스타일리스트. Team WHITE CHAPLE
세트 디자인. 다락(최서윤 / 손예희, 김아영)
아티스트 의전팀. 안소량, 강미주, 김도윤, 류하영, 박기목, 송진우, 이현주, 정연준
아티스트 매니지먼트팀. 김낙현, 심재현, 장인혁, 송태혁, 진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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